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6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67화(767/1105)
767회
81. 공작님과 작은 단서들 (5)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러할진대 당사자인 비비는 어떠할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사무쳐, 엄청나게 혼란스럽겠지.’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이모나 다름없이 자신을 귀여워해 주었고, 이번 생에도 자신을 아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 거다.
“그런 대사건이 있었는데, 제온 그 자식은 아까 나를 봐놓고 왜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저희가 알아서 설명하고 대책을 생각해 둘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안심시켜 뒀습니다.”
내가 분통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알타르가 진정하라는 동작을 취했다.
이단 심문관이 그렇게 말을 한 데다가 본관 앞에는 보는 눈도 많았으니. 제온이 내게 별말을 안 하고 넘어간 것도 이해가 됐다.
나는 알타르에게 잘했다고 말한 뒤,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비비가 몇 살이더라? 4월 중순에 태어났으니까···, 며칠 전에 두 돌을 막 넘겼겠네.’
평범한 아기였으면 이제 겨우 입이 트여서 본격적으로 말을 배울 시기다.
신성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
특별한 능력이 없는 어른일지라도 악의를 품고 죽이려 들면 못 죽일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해를 시도한 걸 테다.
‘즉, 저항할 수 없는 어린애라고 생각해서 죽이려 들었다는 거잖아?! 비비의 내용물이 성인 시온이기에 망정이지! 진짜 어린애였다면···!’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고 있자니, 세르펜스가 슬그머니 내 손에 포크를 쥐여줬다.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 마음을 좀 가라앉히라는 뜻이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지만, 아이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얼그레이 테린느를 포크로 퍼먹다시피 입에 밀어 넣었다.
녹진하면서도 꾸덕한 식감이 혀를 감싸고, 화려한 얼그레이 향이 비강을 채웠다.
그리고 기분 좋은 단맛이 느껴졌다.
‘···맛있네.’
왠지 디저트에게 패배한 것 같아서 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르펜스가 이번에는 차를 권했다.
나는 차를 홀짝이며 눈동자를 굴려 전·현직 이단 심문관들과 일행들을 살폈다.
내가 흥분해 있으면 대화가 감정적으로 흘러갈 게 뻔하니. 다들 내 기분을 살피며 내가 진정하길 기다리는 눈치다.
‘시온의 친동생이자 비비의 친형인 제온도 제 할 일을 하면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이성을 잃고 날뛸 수는 없지.’
다행스럽게도 미수로 그친 사건이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이번에는 내 손을 자신의 머리에 올려놓으며 촉각 테라피를 권했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힐링하듯, 자신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기분 전환을 하라는 뜻이다.
정말 나를 위한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이건 좀 너무 갔다 싶어서 손을 거뒀다.
“죄송합니다.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리벨론 백작 부인의 오랜 지인이 그럴 줄은···.”
당시 리벨론 백작령이 아닌 수도에 있었을 알타르가 면목없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였는데, 순간 쓰다듬어 달라는 뜻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해버렸다.
다행히도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지 알타르는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됐어요. 그보다 그 자작 부인은 붙잡았어요?”
“예. 지금 대신전으로 옮겨져 심문을 끝낸 뒤, 처형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혹시 만나 보고 싶으십니까?”
“아뇨, 됐어요. 교단이 어련히 심문을 잘 끝내 놨을 텐데, 제가 뭐하러요?”
“신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벨론 백작가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게 미안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불쾌한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서 그런가.
알타르 이단 심문관이 오늘따라 유달리 정중한 느낌이다.
“이제까지 악숭이들이 리벨론 백작가를 건드는 일은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하필이면 그런 아기를 노린 겁니까? 놈들은 비비가 시온의 환생이란 걸 모를 텐데···.”
“환···생···?”
“혹시 제가 아직 말 안 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되는 걸 보면, 안 하신 듯합니다.”
알타르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안 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진짜 시온의 행방에 관해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니.
내게 몸을 내어주고 룩스메아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여 넘어간 것일까?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결코 공감할 수 없지만, 종교인의 사고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본래의 시온은 제게 몸을 내어주고 비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성력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라고 해야 할지, 보상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겁니다.”
“아! 그래서 갑자기 리벨론 가에 신성력 보유자가 태어난 거로군요!”
룩스메아와 얘기를 나눈 게 아닌지라. 비비가 신성력을 지니고 태어난 정확한 이유를 몰라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도 알타르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대체 뭔 줄 아셨어요?”
“그야 당연히···. 본래의 시온 님께서 대륙의 미래를 위해 육체를 넘기며, 포상으로 곧 태어날 동생의 미래를 가호해 주길 바랐고. 신께서 그것을 들어주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종교인들의 마인드란 원래 이런 걸까? 대체 어디가 당연한 건지 모르겠다.
만약 교단의 성직자들이 전부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룩스메아를 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성직자 중 누군가의 몸에 넣어 줬다면, 죄책감도 안 느끼고 내 한 몸 지킬 힘도 갖출 수 있었을 텐데.
‘혹시 룩스메아는 신성력 보유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못 끼치나?’
예전이라면 이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하고 넘겼겠지만.
룩스메아가 사람들의 기원 속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듣고 난 이후인지라, ‘어? 진짠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미심쩍긴 했지만 맞든 틀리든 현 삶에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무슨 신학자가 되어 논문을 작성할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 당면한 문제에나 집중하자.
“어쨌든. 그래서 악숭 세력이 갑자기 왜 비비를 노린 거래요?”
“심문 결과, 악마 숭배 세력의 명령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엥?”
“그냥 아이루고 자작 부인, 그자가 자의적 판단으로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 어린애를 죽이려 했다고요? 미친 거 아냐?!”
“악마를 숭배하는 자이니 미친 게 당연합니다.”
당연한 게 참 많기도 하다.
아까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알타르가 말한 ‘당연’에는 일리가 있었다.
악숭하는 자가 제정신일 리가 없다. 동의하는 바다.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왜 죽이려 했대요?”
“미친 자의 망언일 뿐이라, 이유를 들어 봤자 이해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새삼스럽게. 괜찮으니까 그냥 알려주세요.”
어린애를 죽이려 했는데, 이해 가능한 이유 따위가 존재할쏘냐?
굳이 안 들어도 개소리일 게 뻔하다.
하지만 그 개소리라도 일단 들어야, 대책을 생각하든 말든 할 테니. 기분이 나빠질 것을 감수하고 들을 수밖에 없다.
“세간에 알려진 건 시온 님께서 신의 사자라는 것뿐이고, 사실은 천사님의 영혼께서 깃들어 계신다는 건 사람들이 모르지 않습니까?”
“에, 뭐.”
나는 천사가 아닌지라, 차마 ‘예’라고 답할 수 없어서 ‘에’ 하고 어중간한 발음으로 답했다.
그 사소한 발음에 꼬투리를 잡기에 알타르의 신앙심은 너무나도 깊었다.
갑작스레 공개된 천사 설정에 헛소리하지 않도록, 공작저에 오기 전에 미리 얘기한 덕에 휴마눈새도 잠잠했다.
“시온 님은 이미 신성력을 갖지 못한 채로 태어난지라. 신께서 아직 태중에 있었던 막냇동생에게 대신 축복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뇨.”
“그렇다면 막냇동생은 시작일 뿐이고, 리벨론 가문 전체에 축복이 내려졌다는 소문은 더더욱 못 들어보셨겠군요.”
“······.”
내가 신의 사자라는 게 까발려지고 난 바로 다음날, 짐을 싸서 곧장 출발하여 제국에 도착한 것이건만.
어째서인가 소문은 나보다도 빨리 제국에 도착하여 새끼까지 깠다.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졌다면 경로는 하나뿐이다.
‘하여간 귀족 놈들이 문제야!’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서 제국까지 도달한 게 아니다.
귀족들이 아스페르 연합에 심어놓은 정보원들을 통해 직통으로 전달되어, 그 정보를 받은 귀족들이 퍼트린 게 분명하다.
“아이루고 자작 부인은 그 소문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축복의 증거인 리벨론가의 막내가 죽는다면, 신께서 분노하여 신의 사자로서 시온 님이 부여받은 능력을 거두고, 리벨론 가문에 재앙을 내렸을 거라고 떠들어대더군요.”
“예에?! 아니, 무슨 그런···.”
“예, 전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요. 자애로운 신 룩스메아 님께서 그런 몹쓸 짓을 할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놀라서 큰 소리를 내고 말았지만, 이어진 알타르의 말에 빠르게 진정할 수 있었다.
내가 룩스메아를 신나게 씹고 다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룩스메아가 선한 계열의 신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지가 내린 상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고 집안을 풍비박산 내놓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데도 자작 부인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이유는 뻔하다.
“마왕 그 좀팽이 새끼는 그러나 보죠.”
“그런가 봅니다.”
어째서인가 알타르가 크게 깨우친 표정으로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악숭이의 심리를 하나 알게 되어서 한층 더 깊이 있는 심문이 가능해졌다, 대충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한다.
“하여간 고작 그런 확실치도 않은 이유로, 그 작은 아이를 죽이려 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알타르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작 부인인지 자작나무인지. 여하튼 그자는 악숭을 그냥 종교로만 접한 일반 신도에 불과하리라.
악숭 세력에서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도, ‘신의 사자’에게 해를 가할 방법을 떠올리고 그것을 실천으로까지 옮겼으니.
쓸데없이 신앙심만 출중한 악숭이가 아닐 수 없다.
‘페라리우스 백작의 보좌관이 떠오르네···.’
아무리 출중한 신앙심을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본투비 악숭이들에게 일반 신도는 착취의 대상에 불과하다.
악숭 사상에 심취한 것만 빼면 민간인과 구분되지 않으므로 대충 민숭이라 칭하겠다.
아무튼지 악숭이들은 민숭이들에게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교리를 전파하고, 흑마법이 아닌 세 치 혀로 세뇌시킬 뿐.
적에 대한 정보라든가,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악숭하다 들켰을 때 심문을 당하면 정보를 불기 쉽다는 이유도 없잖아 있지만. 진짜 이유는 그보다도 간단하다.
그냥 민숭이들은 예비 제물에 불과할 뿐이고, 가끔가다 써먹으면 의외로 유용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망치질하기 전에 망치 앞에서 ‘못을 박는 이유 설명회’ 따위를 열지 않는다.
악숭이들에게 민숭이는 그런 존재다.
‘내가 시온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라는 걸 알았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비비를 노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고 싶지는 않다.
신의 사자라는 직함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천사의 영혼 어쩌고 하며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지금 타이밍에 그걸 밝혀버리면, 리벨론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다는 게 너무 티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