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7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71화(771/1105)
771회
81. 공작님과 작은 단서들 (9)
“그런 게 아니면 뭔데?”
“그냥···. 부담스러울까 봐 그랬어.”
“어떤 점이?”
제온은 그냥이라고 말했지만, 이 세상에 그냥 부담스러운 일은 없다.
따라서 부담스러울까 봐 염려했다는 제온의 말에도 마땅한 이유가 존재할 테지.
나는 시선을 피하며 미적거리는 제온을 붙들고 집요하게 그 이유를 캐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을 보았다.
“방법, 못 찾을 줄 알았거든.”
“응?”
“고작 작은 형이 쓰던 짐을 고향에 보내는 것조차 이것저것 엄청나게 따져야 했잖아. 그래서 핑곗거리를 만드느라 저쪽 방을 채우려고 돈도 잔뜩 썼고. 지금이야 형이 신의 사자라는 게 알려져서 다들 이해한 눈치지만. 주인님께서 떠나시기 전. 공작저 한 달 예산의 절반에 버금가는 금액을 인테리어 비용으로 책정하고 가시는 바람에, 저택 내외로 얼마나 시끄러웠는 줄 알아?”
제온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내 방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말했다.
공작저의 한 달 예산을 일반적인 가계 지출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용인과 병사 외 기타 등등 세 자릿수에 달하는 사람들의 월급과 식비. 몇 채나 되는 건물과 넓은 정원 보수 및 여러 소모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이 모든 것을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니까.
‘돈이 많이 들었을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는 제온의 이야기에 나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많은 돈이 고작 방 하나 꾸미는 데에 쓰였다니. 아까 옷을 갈아입으러 잠깐 방에 들렀을 때 자세히 좀 둘러볼걸.
그렇게나 돈 지랄을 해댄 방을 드레스룸 취급하며, 세르펜스의 방에서 잠을 청해도 과연 괜찮은 걸까?
끊어질락 말락 간당간당한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고, 나는 세르펜스를 노려보았다.
제온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그게 진짜라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예산으로 책정해 놓았는지 따지기 위해.
하지만 세르펜스는 내게 그런 것을 답해줄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저도 아직 선우에게 ‘형’이라 불러본 적이 없는데···. 대외적 신분 때문에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사석에서···? 게다가 서로 반말까지 쓰면서···?”
세르펜스가 동공이 풀린 눈으로 제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제온은 내게 형이라 부르겠다고 선언한 뒤로도 공작저의 규칙을 지키느라, 세르펜스가 있을 때면 항상 존댓말을 쓰며 나를 보좌관님이라 불렀다.
그 말인즉. 제온이 내게 반말을 쓰며 형이라 부르는 것을 세르펜스가 본 건, 오늘이 처음이란 뜻이다.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충격받은 얼굴을 한 적이 있었던가?’
멍한 눈동자와 힘없이 벌어진 입이 아주 가관이다.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면, 나도 모르게 녀석의 입에 손가락을 넣다 빼며 장난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제온만 이 자리에 없었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실행에 옮겼을 거다.
나는 끓어오르는 장난질 욕구를 억누르고자 깍지를 끼며 제온에게 시선을 던졌다.
항상 대외펜스만 봐 왔던지라, 제온은 세르펜스 본연의 모습이 낯설다 못해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우선 세르펜스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 진행은 어려울 것 같다.
“어휴···. 세르펜스, 그러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았어야죠. 제가 반말을 쓰고 싶다고 말했을 땐, 공적인 자리에서 말실수할 것 같다며 거절하고. 형이라 불러보라고 했을 땐 질색해 놓고. 이제 와서 제온을 질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그, 그때는···.”
“그때는 뭐요? 이제 와 후회해 봤자 늦었습니다.”
“읏···.”
큰일 났다. 깍지로 손장난 단속은 성공했는데 혓바닥 단속에 실패해 버렸다.
괜한 질투 하지 말라는 말만 하고 끝냈어야 했는데.
곤란해하며 울상을 짓는 녀석의 반응이 재밌어서 한 번만 놀려 먹는다는 게, 그만 울려버리고 말았다.
“주인님을 울리면 어떡해?!”
“앗, 나의 실수!”
“이게 실수로 끝날 일이야?!”
울보펜스가 얼마나 잘 우는지 모르는 제온이 경악하며 급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무래도 울보펜스에게 손수건을 건네줄 생각인가 본데 지극히 잘못된 판단이다.
나와 제온이 친근해 보였던 게 발단이 되어 이런 상황에 도달했는데, 제온이 달래준다고 세르펜스가 울음을 그칠 턱이 있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라 여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리 와요.”
나는 손수건을 꺼내 들며, 옆에 앉으라는 뜻으로 침대를 팡팡 두드렸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화분을 꼭 끌어안고 도도도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익숙하게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눈물을 닦아주고 있자니, 제온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주인님께 무슨 짓을 했길래···. 아니다. 그 전에 대체 얼마나 자주 울렸길래, 달래는 자세가 익숙한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
제온의 반박에 나는 내게 기대어 있는 세르펜스의 표정을 살폈다.
비록 내게 반말을 듣지 못하고 나를 형이라 불러보지도 못했지만.
토닥임을 받는 건 자신뿐이라고 말하는 듯,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눈물도 이미 그쳤고.
역시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내 판단이 옳았다.
‘굳이 중요한 점을 찾아보자면 녀석의 행동에서 아니마가 겹쳐 보인다는 건데···.’
이 나이대 애들의 행동이 다 거기서 거기지,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냥 평범하게 보호자를 독점하고 싶은 아이의 어리광에 불과하다.
나는 이제 필요 없어진 손수건을 대충 내려놓고, 한쪽 팔을 세르펜스의 어깨에 걸쳐 어깨동무한 상태로 다시 본론을 꺼냈다.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가 리벨론 가문을 돕지 못할 줄 알았다는 거지?”
“으, 응···.”
“그래서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한 내가 부담을 느끼며 곤혹스러워할 줄 알았고?”
“그렇···지.”
제온이 내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르펜스를 힐끔거렸다.
하여간 세르펜스 이 시선 강탈자 때문에 무슨 얘기를 못 하겠다.
그러잖아도 제온은 자꾸 말을 아끼려 해서 답을 이끌어 내는 것도 손이 많이 가건만. 대화의 흐름을 끊어서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일부러 도발적으로 속을 긁어서 제온의 대답을 유도했다.
“짐을 보내는 것도 힘들었으니, 비비를 지키는 건 더 힘들 테니까. 고작 그런 어림짐작으로 그냥 포기해 버린 거야?”
“어림짐작이 아니야. 나라고 작은 형···이었던 동생을 왜 지키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형이 리벨론 가문의 안전을 신경 쓴다는 걸 악마 숭배 세력이 알게 되면, 그 이후의 일은 뻔하잖아? 주인님께서 우리 가족을 전부 저택으로 데려와서 보호해 주신다고 하더라도, 악마 숭배자들이 리벨론 령의 영지민들을 인질로 삼거나 학살을 자행하겠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얘기다.
악숭하는 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리벨론 백작가가 힘이 없는 가문이라지만, 그래도 귀족가로서 명예를 버린 적은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리벨론 령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고향이라고. 아무리 목숨이 중하다 한들 외면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이러한데 영주이신 아버지와 소영주인 큰형은 더하겠지.”
“···누가 시온 동생 아니랄까 봐, 은근 소심하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소심하다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본 사람처럼, 제온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벨론 삼 형제 중 가장 소심한 건 누가 뭐래도 시온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쭉 지켜본 바로는 제온도 그에 못지않게 소심했다.
유난히 소심한 시온의 그늘에 가려지고, 겉으로 보이는 똑 부러지는 성격 탓에 예민함과 꼼꼼함으로 포장되었을 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보다 나이 많은 형들을 챙기려 할 정도로 걱정이 많고.
글씨체나 버릇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봤다가, 기억과 다른 점이 보이자 대뜸 의심부터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확실하다.
걱정과 의심이 많다는 건 그만큼 불안이 많다는 뜻이며, 이러한 특징은 소심한 성격과 직결된다.
오늘 일도 그렇다.
혼자서 이런저런 가능성을 떠올려 보다가,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들을까 봐 지레 겁먹어 우리에게 직접 부탁하지 못했고.
우리를 무시했다는 말처럼 들릴까 봐, 비비를 보호할 방법을 못 찾을 줄 알았다는 얘기를 선뜻 꺼내지 못했다.
“시온이 대놓고 소심한 타입이라면, 제온 너는 까칠한 소심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래.”
“내가 작은 형만큼 소심하다고···?”
“이제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겠지만, 형들을 챙기면서 실은 누가 자신을 챙겨주길 바랐지? 그래서 먼저 청혼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널 귀여워해 주는 이올렌 씨에게 반한 거잖아.”
“그, 그그그,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방금 전까지 소심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으면서.
이올렌 얘기가 나오자, 제온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빽 내질렀다.
성격 파악을 끝내 놓으니 속내가 투명해도 이렇게 투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악당 같은 표정으로 웃지 말아 줄래?”
“신의 사자한테 악당이라니? 그런 얘기 이단 심문관 앞에서 하면 잡혀간다?”
이단 드립은 차마 맞받아칠 수 없었는지, 제온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크윽···.’ 하는 소리를 흘렸다.
진짜로 제온을 이단으로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장난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서운했다고.”
“······.”
자신도 모르던 소심함과 연애 심리까지 까발려져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해진 탓일까?
제온이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 속에서 겨우 그 얘기를 하려고, 남의 성향을 들추다 못해 들쑤신 것이냐는 원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냥 내가 널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이해를 왜, 이딴 식으로···?”
“너무 억울해하지 마. 언제는 리벨론 가를 가족처럼 여겨도 괜찮고, 자신을 동생이라 생각하라더니. 네가 먼저 넘어오지 말라는 듯 선을 그었잖아. 하지만 그게 소심한 성격 탓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아! 그래도 얘기를 했어야지! 애초에 비비가 죽을 뻔한 원인이 나한테 있는데! 어쩌다 신의 사자인 걸 들켜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거냐고 따졌어야 하는 거 아냐?”
“형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따져?!”
제온이 울컥해 하며 언성을 높였다.
시온의 몸을 뺏었다는 이유로 제온에게 들들 볶인 적이 있던 나로서는 황당할 노릇이다.
“왜? 전에는 따졌잖아. 작은 형의 몸을 뺏었다고.”
“가뜩이나···.”
내 반박에 제온이 움찔 몸을 움츠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세니어의 버프가 없으면 내 청력은 일반인 수준이다.
입속말로 작게 웅얼웅얼대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다.
“뭐라고? 잘 안 들리니까 좀 더 크게 말해.”
“그 일로 가뜩이나 미안한데, 어떻게 또 따질 수 있겠냐고···.”
제온이 이번에는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준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서운함을 접어두기로 했다.
내게 죄가 없다는 걸 알면서 실수로라도 나를 또 탓하게 될까 봐.
그러지 않으려고 대화를 피한 거라는데 어쩌겠는가?
“배려해준 건 고마워. 그래도 앞으로 이런 얘기는 가급적 내가 묻기 전에, 남의 입을 통하지 말고 직접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리벨론 백작 부인의 상태에 관해 내가 모르고 있으면 이상하잖아?”
“응, 앞으로는 주의할게.”
머쓱하다는 듯, 제온이 자신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얘기가 잘 통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좋아, 그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로 끝! 넌 더 하고 싶은 말 없어?”
“진짜로 내가 작은 형만큼 소심해?”
“지금 네가 몸소 증명하고 있다는 걸 굳이 내가 지적해 줘야 할까?”
“······.”
돌아온 대답은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제온이 자신의 소심함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