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7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72화(772/1105)
772회
81. 공작님과 작은 단서들 (10)
* * *
새벽 훈련을 하고 아침 식사까지 마친 뒤.
우리는 대신전으로 향하고자 성검 일행과 일루미나티, 두 그룹으로 나뉘어 마차에 올라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두 명의 피보호자들이 말썽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세르펜스, 유니어는 대체 왜 들고 있는 겁니까? 설마 대신전에 가져가려고요?”
“아니마가 제게 꼭 붙어서 안 떨어지는데 어쩌죠?”
대신전에 가는 길에 막간 공연도 해야 하건만. 예기치 못하게 본관 앞에서 발목을 붙잡혀 버렸다.
나는 세르펜스에게서 유니어를 빼앗아 배웅 나온 에일리히에게 떠넘겨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에드나는 좀처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는 당연했다.
‘아니마의 팔을 떼어내는 척 붙잡고 이쪽 눈치를 살살 보는 게, 누가 봐도 아니마랑 같은 마차에 타고 싶어 하는 거네.’
에드나는 어제저녁 연구실에서 아니마와 시간을 보내다가, 본관 5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대신 서쪽 별관에서 아니마와 함께 잤다고 한다.
불가피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서야, 에드나 또한 아니마와 붙어있기를 희망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6인승 마차니까 아니마를 우리 쪽 마차에 태워도 되고, 넷밖에 안 되는 성검 일행 쪽 마차에 에드나를 보내도 상관없다.
그래도 기왕이면 마차를 쾌적하게 타는 게 낫겠지 싶어, 에드나에게 저쪽 마차로 가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럼 나랑 자리 바꿀래?”
휴마누스가 에드나에게 자리 교체를 제안했다.
행여 그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 새라. 에드나와 아니마는 반색하며 감사 인사를 한 뒤, 후다닥 뒤쪽에 있는 성검 일행 측 마차에 올라탔다.
“문제 해결됐으면 어서 가요!”
앞쪽 마차에 먼저 올라타 있던 유지스가 문밖으로 상체를 내민 채, 팔을 크게 흔들며 소리쳤다.
재촉하는 걸 보니 빨리 연극의 막이 오르는 걸 보고 싶은가 보다.
비록 유지스는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이 아닌 배경 엑스트라를 맡았으나, 각본에 이바지한 비중이 상당했으니.
저렇게 기대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우선 세르펜스를 마차에 태워 유지스 옆에 앉히고, 그다음 녀석의 옆에 앉았다.
휴마누스와 윈스톤은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문을 닫자 마부가 출발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세르펜스는 그리하라고 대답했다.
작은 진동과 함께 마차가 정문까지 쭉 뻗은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연극의 무대는 정문 앞이고, 막이 오르는 타이밍은 마차가 막 정문을 통과한 시점이다.
그곳에서 제온이 우리의 마차 앞을 가로막을 예정이다.
공작저가 워낙 넓은지라 정문까지 도달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각본을 되새기며 연극 준비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잡담을 하며 긴장감을 털어내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휴마누스, 어제 저녁에 황궁 다녀왔죠? 별일 없었어요?”
“아바마마께서 너를 만나보고 싶어 하시더라.”
휴마누스에게 슬쩍 질문을 던지자 예상은 했으나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 돌아왔다.
황제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휴마누스에게 미리 전해 뒀으니, 강제로 황궁에 끌려가는 일은 없겠지.
하나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그래서 휴마누스는 뭐라고 답했어요? 설마하니 눈치 없게, 제가 만나기 싫어한다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전한 건 아니겠죠?”
“나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니면 다행이고요. 그래서 뭐라고 거절했는데요?”
“바빠서 안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휴마누스의 모습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지금이야 신의 사자로서의 사명이 있으니 건들지 않겠지만, 혹시 또 모르잖는가?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날 불러놓고, 대체 얼마나 바빴길래 만남을 거부했느냐며 꼬장을 부릴지.
“···설마 그게 끝은 아니죠?”
“그럴 리가. 우린 이곳에 쉬러 온 게 아니잖아? 악마 숭배 세력과 관련된 정보들을 접하다 보면, 그에 관해 갑자기 계시가 내려올 수도 있으니 네가 빠지면 안 되고. 서류를 보지 않을 땐, 위급 상황을 대비해서 호신용 검술을 익혀야 한다니까 이해해 주시더라.”
“오올~?!”
적절한 핑곗거리에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짝짝짝 손뼉을 치고 있자니, 또 다른 박수 소리가 겹쳐졌다. 그 소리의 주인은 유지스였다.
휴마누스의 대처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나에 이어 유지스까지 휴마누스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하자, 세르펜스도 따라서 박수를 쳤고.
오늘도 바위처럼 조용히 있던 윈스톤도 은근슬쩍 박수 세례에 동참하며, 주군인 세르펜스와 뜻을 함께했다.
“박수는 왜 치는 거야?”
“휴마누스가 너무 대견해서요?”
“···난 네가 이럴 때면 너무 헷갈려. 좋아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하는 게 맞는 건지.”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죠.”
“없어.”
“제가 내뱉은 순간, 그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겁니다. 아무튼 그러니까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칭찬을 즐기세요.”
“······.”
휴마누스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괜히 창밖을 내다보며 삐친 티를 냈다.
내가 골라준 답이 아니라 다른 쪽을 고른 것이다.
이런 답정너 같으니라고. 그럴 거면 왜 내게 의견을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달래줘야 하나?’
하지만 곧 정문에 도착한다.
기분을 풀어주다 말고, 할 일 해야 하니까 기다리라고 말하면 놀리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삐친 상태면 그때 잘 달래봐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
“어? 정문 쪽이 조금 소란스러운데요?”
유지스가 마차 창문을 열어 고개를 밖으로 내밀며 말했다.
제온은 프라시더스 공작저의 현 집사였으니. 그가 정문 앞에서 대기한다고 해서 경비병들이 제지할 리는 없다.
물론 신경 쓰이니까 왜 거기에 서 있느냐고 물을 수야 있겠지.
그래도 나나 세르펜스에게 뭔가 전해줄 게 있다며 핑계를 댈 수 있으니. 벌써 소란스러워질 이유는 없다.
‘혹시 관객몰이를 위해, 제온이 애드립으로 뭔가 하고 있나···?’
관객을 확보하려면 광장 한복판에서 연극을 시작하는 게 제일이다.
하지만 그러자니 너무 인위적이라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공작저 내에서 연극을 공연한다면, 소문이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자연 소멸할 게 뻔하다.
훌륭한 복지와 타 귀족가 대비 높은 임금을 자랑하는 대륙 현존 최고의 직장인 만큼, 공작저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강한 자부심과 높은 충성심을 자랑하니까.
‘그래서 고른 장소가 공작저 정문 앞이었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최소 한둘쯤은 있을 테니까.
어쩌면 공작저 주변을 배회하는 민숭이가 있을 수도 있고.
그래도 소문이 최대한 빠르고 멀리 퍼져 나가는 게 좋기도 하고, 모처럼의 연극이니 관객이 많이 모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과연 제온이 무슨 짓을 해서 관객을 모았으려나? 사극에서 많이 본 장면처럼, 오체투지를 하며 이마를 땅에 박고 통촉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작은 기대를 가슴에 품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시야에 담긴 풍경은 내 기대와 사뭇 달랐다. 제온은 서 있었을 뿐 아니라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냥 둘러싸이기만 했다면 관객들을 많이 모았구나 하며 넘어갔을 텐데.
사람들은 제온에게 잘 보이고자 굽실거렸고, 제온은 짜증스레 이마를 짚은 채 그들을 외면했다.
“···저게 대체 무슨 상황이래요?”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시온을 불러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엥? 저요?”
“시온이랑 아는 사이인가 봐요.”
아직 거리가 조금 있는 데다가 여러 사람이 한 번에 말하는 통에, 내 귀에는 웅성거림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으나 유지스의 귀에는 다 들리는 모양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건 세르펜스도 마찬가지였고, 녀석은 불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뭣도 아닌 주제에 감히 날 오라 가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나저나 시온의 지인들이라니···. 얘 아싸 아니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에게 가족 이외의 지인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빙의하기 전의 시온을 알고, 먼저 아는 척을 해 온 사람이라고는 투스토르 뿐이었으니까.
그마저도 보좌관 면접에서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시온의 기억을 뒤져볼 생각조차 못 했다.
저들을 만나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그때.
마부석과 연결된 작은 창이 열리며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후문으로 돌아서 나갈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들도 마차를 봤을 텐데, 이제 와서 방향을 틀면 후문 쪽으로 몰려들겠죠. 어쩌면 이미 후문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냥 정문 앞에서 잠깐 멈춰주세요.”
시온의 몸으로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간다면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막 내뱉은 참이기도 하고, 마침 관객들이 필요하기도 했으니.
나는 정면 돌파를 결심했다.
“이히이잉!”
마차의 속도가 점차 늦춰지더니 완전히 제자리에 멈췄고, 말이 길게 울음을 토했다.
화려한 문양이 더해진 쇠창살 대문은 아직 열리기 전이었지만, 나는 마차가 멈추자마자 곧바로 뛰어내렸다.
사람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고, 그들과 관련된 시온의 기억을 떠올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온!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만나서 반갑다!”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나를 아는 체했고, 그 사람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앞다퉈 떠들어 댔다.
시온과 언제 어디에서 만났고 얼마나 친한 사이였는지 열거하며, 친분을 늘어놓는 내용이었다.
만난 시기와 장소를 알려주는 것까지는 기억을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나 그뿐이다.
‘유명해진 뒤에 친분을 주장하며 찾아온 사람 중, 진짜 친했던 사람은 극소수인 법이지.’
대문이 열릴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고 시온의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그들 중 시온과 막역한 사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 예상대로 시온은 아싸가 맞는 것 같다.
심지어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카데미 시절 옆 반이었다고 주장하는 놈이었다.
정말로 그냥 옆 반이기만 할 뿐. 서로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닌가 보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여기에 온 건지 모르겠다.
마침내 대문이 활짝 열렸다.
나와 함께 마차에서 내린 세르펜스와 휴마누스의 눈치를 보는 걸까?
사람들이 저택 안으로 밀어닥치면 어쩌나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문 안쪽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기, 시온?”
얄팍한 친분 어필을 끝내고 나자 할 말도 떨어졌는지, 자칭 내 지인이란 자들은 공연히 시온의 이름만 불러댔다.
대충 기억 확인도 끝냈겠다, 나는 팔짱을 풀고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 이게 다들 누구야?”
내 반응에 희망이라도 본 것일까?
사람들이 얼굴에 화색을 띠며 다시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아하하! 그래, 기억나는구나? 난 또 네가 나를 모르는 척하는 줄 알고···.”
“휴우···, 깜짝이야. 정말 기억 못 하는 줄 알고 놀랐잖아.”
“반갑다, 친구야!!”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사람들이 다시 잠잠해질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말을 마쳤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니까 다들 대체 누구시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