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8화(78/1105)
78. 공작님과 투기장 (6)
유지스는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다스리고, 눈가에 살짝 맺혔던 눈물을 손가락으로 걷어냈다.
“그 흑마법 시약에 대해서라면 짚이는 게 있어요. 내일 그것의 위치를 알리는 메모가 도착할 거라느니, 열 병 모두 빠뜨리지 말고 잘 챙기라는 둥. 그런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어요. 하지만···.”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가방 안을 보며,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틈새 없이 꽉꽉 들어찼던 이전과 달리 조금 널널해 보였으나, 여전히 시험관 형태의 약병이 가득 차 있었다.
가방을 슬쩍 건드리자, 병들이 부딪치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한 장소’에서 찾은 것은 열 병뿐입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세르펜스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나, 정황이 그러했다.
‘가방 안쪽을 내게 보여주며, 영지 곳곳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던 것도 그렇고···.’
여관으로 돌아오기 전, 내가 그에게 자신의 몸에 그것을 투여했다는 것은 숨기는 편이 좋다고 말했을 때.
그가 두 개의 빈 병을 포함. 합계 열 병을 꺼내 들고, 신성력으로 그것을 정화한 뒤 흘려 버리는 모습까지 봤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 말씀은···. 영지 이곳저곳에 흑마법 시약을 미리 여기저기 퍼트려 놓고, 3일마다 한 장소씩 알렸다는 이야기인가요?”
유지스 또한, 그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답을 받기 위해 세르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그렇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세르펜스가 긍정했다.
이렇게 되면 투기장에서부터 악마 숭배 세력까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직접적인 연결선은 없다는 소리였다.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악마 숭배자들 쪽에서 언제든지 끊어낼 수 있는.
아주 일방적인 관계다.
“혹시 메모를 발송하는 자의 행방도 찾으셨습니까?”
“서류를 뒤져서 그에 관한 자료를 찾긴 했으나···. 그냥 중간 연락책이라나 봐요.”
투기장 측에서도 진작 뒤를 캐 본 모양이다.
시약의 개수가 한정된 탓에, 경기 횟수까지 한정되어 버렸다.
악마 숭배자 관점에서야 과유불급이라, 흑기사를 망가트릴 수는 없으니 적당히 조절하는 것일 테지만.
그들의 계획을 모르는 투기장 측에서는 불만을 품고,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경기를 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경기를 진행하자니···.’
사회자가 자기네 투기장은 질이 높다며, 으스댔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큰 자극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일반적인 경기는 시시하게 느껴질 뿐.
그러니, 투기장 측은 익명의 팬이라는 작자를 찾아내어 자신들의 손안에 넣고 싶었던 거겠지.
시약을 만드는 방법을 캐내거나,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만들어내게 할 작정이었을 터.
하지만 발신인이 중간 연락책에 불과했으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이 될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뿐이리라.
‘그것들이 이미 영지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도 파악했겠지?’
하지만 그냥 두고만 보고 있는 것은 미리 준비된 분량이 다 떨어진 이후를 노리는 걸 테고.
검은 투사의 팬이라는, 익명의 존재가 다시 접촉하는 것을 노리고 있을 거다.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 중 시약을 숨긴 위치가 전달될 겁니다.”
그것들은 현재 세르펜스가 모두 회수한 상태. 지정된 위치에 아무것도 없다면 바로 의심을 살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로 가져다 둘 수도 없었다.
애초에 세르펜스가 백작령을 꼼꼼히 발로 뛰면서 저것들을 회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대로 둔다면 투기장을 정리하는 동안, 누군가가 혼란한 틈을 타 그것들을 챙겨서 도망칠지도 모른다.
이제까지야 시약 제공이 끊길까 봐 내버려 뒀다지만, 사업 자체가 문을 닫을 위기니 그런 건 신경도 안 쓸 터.
일부라도 빼돌린다면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도록 노력이야 하겠지만···.’
실질적 작전 인원이 2명에 불과하니, 피라미까지는 신경 쓰기 어렵다.
게다가 세르펜스의 말에 의하자면···.
‘이미 1제를 투약한 시점부터,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의 몸은 망가지기 시작할 거라나?’
생명력이라 말했으나,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선천지기(先天之氣)라 해야 한다. 그런 것이 들끓고, 손상되는 것이다.
일반인의 몸이 버텨낼 리 만무했다. 2제의 투약을 막더라도, 이미 살아남기는 글렀다.
1제 만으로도 사람을 고통 속에서 죽게 할 수 있는 훌륭한 극독이나 다름없으니, 투기장을 다시 열지 않더라도 여러모로 비싸게 팔아먹기 딱 좋았다.
‘이 녀석은 그딴 걸 잘도 처마셨네···.’
앞으로는 뭔가 주워 먹기 전에 내게 확인받고 먹으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거 지지니까 먹지 마!’라고 말해줄 거다.
“아무래도 그자를 당장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네? 지금요?”
“리디아님께서는 이곳에 남아, 저자들을 감시해주시겠습니까?”
세르펜스가 구석에 찌그러진 세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전히 기절한 것처럼 보였으나, 몇 분 전부터 깨있었다. 자세가 불편한지 조금씩 꾸물거리기 시작한 것을 보아 확실했다.
그 셋과 나를 번갈아 본 유지스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 시선은 무슨 의미지?’
아무리 내가 약해도 그렇지, 오러도 못 갖추고 꽁꽁 묶여있는 이들을 감시하는 일조차 못 할까?
“그건 그렇다 치고. 가셔서 어쩌실 생각입니까?”
발신인과 악마 숭배 세력 사이에 연결점을 찾게 된다면 혼자 쫓을 생각인 거냐, 라는 의미를 담아 세르펜스에게 물었다.
“그자의 정보가 투기장 측에 새나간 것을 눈치챘다면, 지금 준비된 분량이 모두 소진된 후에는 다른 자를 매개로 삼으려 할 겁니다.”
고작 메모를 전달하는 일일 뿐이다. 거금을 쥐여준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꺼이 하려 들 사람은 많다.
세르펜스가 아니라 서스펜스가 나서 그자를 겁박 한들, 없는 증거가 생겨날 리 없으니. 악마 숭배자 관련으로는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리라.
“그럼 그쪽은 놓친 겁니까?!”
“확인은 해봐야겠으나,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숨겨둔 시약을 감시하는 자가 있을까 싶어, 주의하여 살펴봤으나···.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자라거나, 그들의 앞잡이로 추정되는 자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악마 숭배 세력의 세르펜스 스카웃 과정이 너무 우연의 산물인지라, 행운에 스탯을 몰빵한 집단을 타락펜스가 캐리 하는 줄 알았는데···.
나름 지성을 갖춘 집단이었나 보다.
“그렇다 해서 투기장 쪽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는 가방 속에서 1제와 2제를 각각 다섯 병씩 꺼내 들었다.
그의 손에서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병 안의 내용물을 정화한다.
“납치를 담당한 자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어느 정도 의심을 살지도 모르나. 만약 전달된 위치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확신이 될 겁니다. 최악에는 검은 투사를 비롯하여 많은 죄 없는 이들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발신인을 만나 어느 위치를 알려 주는지 확인하고, 그 장소에 효능을 잃은 시약을 가져다 두겠다는 이야기다.
당장 쳐들어갈 수도 있으나, 일단 휴식도 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겠지.
그러려면 시간을 끌어 둘 필요도 있고,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발신인에게 그것을 시킨 자에 대해 물어봐야 할 테니.
겸사겸사 인가?
“그럼 다녀오겠···.”
“그런 거면 굳이 세르, ···센이 갈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
“예?”
“새벽부터 나가서 식사도 못 하고, 백작령 전역을 돌아다니셨잖아요.”
그리고 나서 연달아 2시간이나 울어 재껴댔으면서.
세르펜스는 지정된 위치에 물건만 숨기고 바로 돌아올 녀석이 절대 아니다. 보나 마나 메모가 제대로 발신됐는지 여부까지 확인하고 올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투기장 측에서 그것을 잘 회수하는지까지 확인하고 올 거다.
“잠도 좀 자고, 아침 되면 식사도 하셔야지. 또 어딜 나갑니까?”
“저는 다녀와서 한두 시간 자는 거로도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리디아님께서는 주무시면서 정령에게 경계를 부탁할 수 있으니, 효율적인 면으로 볼 때···.”
“그건 세···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고 있더라도 저 치들이 뭔가 수작을 부린다면 눈치채고 바로 일어날 수 있으시잖아요?”
“하아···. 세상에 절 걱정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고작 하루 이틀···.”
“고작이라니, 식사와 수면이 얼마나···.”
“잠깐! 두 분 다 멈춰보세요!”
나와 세르펜스가 논의를 주고받고 있으니, 갑자기 유지스가 끼어들어 그것을 끊어냈다.
“알았어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으니, 제가 갈게요.”
“방금 돌아오셔서 피곤하시지 않습니까?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페르센트씨만큼 피곤할 것 같지는 않네요. 게다가 저렇게 걱정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냥 쉬세요.”
“···으음.”
“여기 남았다가 무슨 원망을 들을까 무서워서 그러는 거니까, 절 위해 양보하신다 생각하고 이번 일은 제게 맡겨주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머뭇거리며 감사를 표하니, 유지스가 픽-웃으며 그의 손에 쥔 병들을 빼앗듯 가져갔다.
“그럼 다녀올게요.”
“다녀오세요!”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유지스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 창문은 그냥, 건축 미스로 높은 위치에 만들어진 출입구처럼 느껴진다.
“어···. 그럼 이만 잘까요?”
창문에서 눈을 떼고 돌아보니, 세르펜스가 기절한 척 눈을 감고 있는 납치범들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의 타격음.
“걔네는 또 왜···.”
“이편이 안전하잖은가.”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완벽하게 기절한 것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세르펜스가 잘 준비를 한다.
뭔가 그에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참! 이거 얘기해 뒀어야 했는데. 아까 세르펜스가 너무 오래 울어서 말씀드리는 걸 까먹었습니다.”
장난삼아 살짝 놀리는 투로 운을 띄웠더니, 세르펜스가 동작을 멈추고 질색팔색하는 눈으로 노려본다.
그러고 보니 울음 기는 이제 완전히 가셨나 보네.
“흑기사, 아니. 검은 투사를 회유하는 거 잘 부탁합니다. 직접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라···. 잘 좀 달래주시죠.”
“회유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의 얘깁니다. 제가 분명히 스카웃 할 거라 얘기했잖아요?”
“······.”
그 역할을 자기가 맡게 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그걸 왜 내가 해야 하지?”
“전문이시잖아요?”
“그대 전문이 아니라?”
우리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게 떠넘기는 건 무슨 의도입니까?”
상당히 미심쩍다는 듯한 말투.
‘내가 무슨 일만 벌여놓고, 남에게 막 떠넘기는 사람으로 보이나?’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정답이다. 바로 맞췄다.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바로 옆에 만능펜스가 있으니. 의도하지 않더라도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그러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