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8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88화(788/1105)
788회
82. 공작님의 제2의 생일
사실 나는 세르펜스가 ‘제2의 생일’로 삼고 싶어 하는 날이 정확히 며칠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입사 후 처음 참석한 야유회 날짜가 며칠이었는지 3년 후에 물어봤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장담컨대 아무도 없으리라 확신한다.
‘그래도 세르펜스는 그날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으니, 분명 알고 있겠지.’
그렇다고 녀석에게 그게 언제였냐고 물어볼 수는 없다.
얼마 전 교황을 쓰다듬었던 일로 세르펜스가 단단히 삐치는 바람에, 녀석을 달래느라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날 녀석이 만족할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느라 손금이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다.
세르펜스는 그런 작은 일로도 심하게 토라지는 소심한 녀석이다.
그런데 녀석이 기념일로 삼고 싶어 할 정도로, 특별하게 여기는 날이 언제인지 몰라서 물어본다?
그땐 개처럼 짖는 정도로도 모자라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녀석에게 물어보는 것 말고, 해당 날짜를 알아내는 방법이 또 하나 존재했다.
공작령에 내려가는 건 매달 마지막 주가 되기 바로 전 금요일 오후니까, 3년 전 5월 달력을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달력은 내가 막 빙의했을 때 사용했던 수첩 앞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날짜는 5월 25일과 26일.
25일은 내가 녀석의 속을 들쑤신 날짜고, 26일은 함께 미트볼 토마토 리조또를 먹은 날이다.
세르펜스는 둘 중 어느 쪽을 기념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 의문을 풀지 못한 채로 나는 25일을 맞이했다.
심지어 그것도 숲길 한복판에서.
아무리 교단 측에서 우리와 비슷한 체격의 사람들을 대륙 곳곳에 풀어놓았다고 한들.
제국 수도에서 출발한 우리가 진짜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행적이 발각당하지 않도록 사람들이 지나지 않는 길로만 다니고, 도시도 최대한 들르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 루트를 짠 탓에 벌어진 참사다.
“오늘 야영이야?”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럼 내일은?”
“내일도 마찬가지다.”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꼬박꼬박 대답해 주며 눈을 빛냈다.
제2의 생일을 위한 이벤트 때문에 물어보는 거냐고 얼굴에 써 붙인 듯한 표정이다.
며칠 전이 푸로르의 생일이라서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약소하게나마 축하를 해 줬었는데, 그때부터 녀석은 줄곧 저렇게 들떠있었다.
자신의 생일에는 더 근사한 것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게 틀림없다.
‘악숭이들만 아니었어도 공작저에서 밤새워 놀며, 성대한 파티를 열어줬을 텐데···.’
그랬다면 오늘과 내일 중, 언제 축하 파티를 열어야 할지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테다.
하지만 시기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불행 중 다행이랄까?
전투 중이 아니라 이동 중에 오늘을 맞이한 게 어디랴 싶다.
이틀에 걸쳐서 노는 건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악숭 퇴치가 끝나고 해도 되겠지.
“세르펜스는 오늘이 좋아, 내일이 좋아?”
“나는 오늘이 좋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세르펜스가 즉답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오른 녀석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정말로 25일을 더 특별히 여기는 건지. 아니면 그냥 하루라도 더 빨리 내가 준비한 선물을 받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지금 무슨 얘기 하는 거야?”
휴마눈새···가 아니라, 휴마누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잘 생각해 보니 에드나가 세르펜스에게 제2의 생일 파티를 제안한 건, 성검 일행이 없을 때다.
더군다나 그 날짜를 특정할 수 있는 사람도 나와 세르펜스 뿐이었으니.
다들 나와 세르펜스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이따 저녁 먹고 생일 파티 하자는 얘기요.”
“누구의?”
“세르펜스의.”
“응? 세르펜스 생일은 12월이잖아.”
“그런데 오늘을 제2의 생일로 삼겠대요.”
“뭐야 그게···?”
휴마누스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다. 실은 나도 이걸 진짜 챙겨야 하는지 고민했었으니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우리 애가 원한다는데.
이렇게 해서 세르펜스가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늘어난다면.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날마다 기대할 일이 넘쳐난다면.
없는 기념일을 만들어 내서라도 매달 파티를 열어 줄 의향이 있다.
지금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망할 놈의 악숭이들 때문에 수많은 기념일을 챙겨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이따 저녁상에 케이크를 올려놓겠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 또 불러야 해?”
“음치누스는 특별히 입만 벙긋거려도 됩니다. 이해해 줄게요.”
“나 지금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말라고 화내야 할지, 아니면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되기 시작했어.”
그게 고민될 정도로 노래를 부르는 게 싫었나 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탬버린이라도 구해다 줘야겠다. 다른 사람들 노래 부를 때 그거라도 흔들 수 있게.
“그걸 진짜로 챙기실 줄은 몰랐는데···.”
“뭘 그렇게 놀라요? 에드나 씨가 제안한 거잖아요.”
“제안한 건 아니었어요.”
에드나가 발뺌하며 잡아뗐다.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니마가 분홍빛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에드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얼마 안 가 에드나는 아니마가 정한 ‘제2의 생일’을 축하하게 될 테다.
“혹시 오늘이 세르펜스와 선우가 처음 만난 날인가요?”
세르펜스의 옆에서 걷고 있던 유지스가 앞으로 튀어나와서 뒷걸음질로 걸으며, 나를 마주 보고 질문했다.
“아뇨. 처음 만난 날은 따로 있고, 그냥 본격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로 한 날이라고 해야 하나···? 대충 그런 느낌입니다.”
“두 분의 추억이 깃든 기념일인데 저희가 껴도 되는 건가요?”
“둘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제2의 생일로 삼겠다잖아요? 그럼 다 같이 축하해야죠!”
내가 유지스의 물음에 대답한 그때. 세르펜스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을 돌아보니, 얼굴에 선명하게 떠올랐던 들뜬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세르펜스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 선우. 내가 무언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생일은 1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이미 늦었어. 한 번 생일은 영원한 생일이니까.”
“······.”
세르펜스가 시들펜스로 변하며 울상을 지었다.
어려서 그런가. 아직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떠들썩한 파티보다, 보호자의 관심을 혼자 독차지하는 게 더 좋은가 보다.
“생일 주인공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떡해? 내일 아침에는 미트볼 토마토 리조또를 준비해 줄 테니까, 기분 풀자. 응?”
“으음. 선우가 그리 말한다면야···.”
나는 세르펜스의 손을 잡고 살짝 끌어당기며 달래는 투로 말했고, 그제야 녀석이 마지못하다는 듯 걸음을 다시 옮기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부지런히 나아간 덕분일까?
하늘이 캄캄해지기 전에 적당한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고 천막을 펼치고 하다 보니, 다 같이 상 앞에 둘러앉았을 땐 이미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달이 휘영청 떠올랐고 별이 반짝반짝 빛났다.
야영 도중에 파티를 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건 이거대로 운치가 있어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음? 케이크가 아니라 파이인가?”
내가 ‘갈레트 데 루아’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상했던 반응이고 당연히 변명도 준비했다.
“제2의 생일이니까, 제1의 생일이랑은 다른 점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 건가?”
“그런 거야. 그보다 초는 세 개면 되겠지? 그날이 3년 전이니까.”
나는 세르펜스의 의문을 가볍게 넘기며 세 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폭신폭신한 케이크 대신 바삭한 파이가 놓였다는 것과 초의 개수만 다를 뿐, 생일 파티 과정은 똑같이 흘러갔다.
나는 립싱크하는 휴마누스를 제외한 일행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파이에 그려진 나뭇잎 무늬의 잎맥을 셌다.
노래가 끝나자 세르펜스가 소원을 빌고 촛불을 꺼트렸고, 다들 손뼉을 치는 사이에 나는 재빨리 빵칼을 확보했다.
그리고 파이를 아홉 등분한 뒤, ‘페브’가 들어간 조각을 세르펜스의 앞 접시에 옮기며 말했다.
“이 파이 말고, 다른 생일 선물은 준비 안 했는데 괜찮지?”
“물론이다. 선우가 이렇게 오늘을 축하해 주는 것이야말로,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크나큰 선물이다.”
일부러 서운함을 유도해서 진짜 선물을 받고 두 배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려고 했는데, 도리어 내가 감동을 받아버렸다.
우리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큰일이다. 어쩜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할 수 있지?
녀석이 페브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나는 서둘러 남은 파이 조각을 모두에게 배분하고 제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 먹죠!”
내가 먼저 갈레트 데 루아를 먹기 시작하자, 세르펜스도 따라서 포크를 들었다.
한 입, 두 입. 녀석이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파이를 잘라 먹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펴보느라, 파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음? 파이 안에 무슨 이물질이···.”
“앗! 그게 세르펜스의 파이 안에 들어갔구나!!”
“······.”
세르펜스가 멀뚱멀뚱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연기라는 게 너무 티가 났나 보다.
“흠, 흠! 오늘 준비한 이 파이는 ‘갈레트 데 루아’로, ‘페브’라 불리는 도자기 인형을 넣고 굽는 게 특징이야.”
“파이 말고 다른 선물은 준비 안 했다더니. 이 안에 선물을 숨겨 놓았다는 뜻이었나?”
세르펜스가 포크로 파이에 파묻힌 작은 도자기 인형을 발굴하여, 손수건으로 그것에 묻은 아몬드 크림을 닦아냈다.
아직 페브에 대한 설명도 안 끝났는데 벌써 녀석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고깔모자를 꺼내어 녀석의 머리에 씌웠다.
“페브를 발견한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소원을 말할 수 있는데···. 황태자가 껴있는 모임에서 공작이 왕관을 쓰는 건 여러모로 위험할 것 같아서, 고깔모자로 대체해 봤는데 괜찮지?”
“으음···. 그건 괜찮은데, 소원이라면 촛불을 끄면서 속으로 빌었던 것을 말하는 건가?”
“그러면 재미가 없지!”
“재밌는 소원을 빌어야 하는 건가···?”
세르펜스가 자신 없다는 듯 말하며 페브를 소중히 감싸 쥐었다.
재밌는 소원을 빌지 못하면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보다. 어린아이가 할법한 발상이다.
“잘 가지고 있다가 내게 바라는 소원이 생기면 그 도자기 인형을 나한테 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르펜스가 포크로 자기 몫의 갈레트 데 루아를 헤집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하나뿐이던 페브가 두 개로 늘어날 리는 없다.
더 이상 페브가 나오지 않자 세르펜스는 내게 불만을 제기했다.
“나는 선우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쿠폰을 열 장이나 줬는데, 어째서 선우는 하나만 주는 거지?”
“그래서 싫어? 안 받을 거야?”
“그, 그런 게 아니라···. 이걸 선우에게 줘 버리면 내게 남는 게 없잖은가.”
“그러니까 신중하게 소원을 빌어야지.”
“으음···.”
세르펜스가 페브를 감싼 손수건을 살짝 걷어 그것을 빤히 들여다보며 침음을 흘렸다.
덕분에 나도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될 수 있으면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사람 모양이나, 강아지 모양 페브를 구해 달라고 했었는데.
손수건에 감싸진 페브는 검정에 가까운 진갈색의 강아지 모양이었다.
“혹시···, 소원을 빌어야 하는 기한이 있는가?”
“아니, 그런 건 없어. 만약 그 페브가 마음에 들면, 소원을 빌지 않고 쭉 가지고 있어도 괜찮아.”
“그렇다면 됐다. 제2의 생일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날을 축하해주고, 선물까지 준비해 줘서 고맙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소중히 여기겠다.”
세르펜스가 해사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당장은 내게 무언가 소원을 비는 것보다, 내가 준 선물을 지니고 다니는 게 더 좋은가 보다.
녀석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