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8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89화(789/1105)
789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1)
세르펜스의 제2의 생일을 축하하고 약 보름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녀석은 3센티도 채 되지 않는 도자기 인형을 애지중지하며, 손에서 떼어놓을 줄 몰랐다.
“너무 만지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다 닳겠네.”
“조심조심 만지고 있으니 괜찮다.”
“어이구, 그렇게 좋아?”
“좋다마다.”
세르펜스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대답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또 페브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다.
보름이나 흘렀으면 이제 슬슬 관심이 떨어질 만도 하건만.
완전히 정을 붙인 모양이다.
나는 녀석이 계속 페브를 갖고 놀게 내버려두고, 지도를 들고 있는 유지스에게 말을 붙였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잠깐만요. 지도에 따르면 이제 곧 새의 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나와야 하는데···. 아! 찾았어요. 저거 맞겠죠? 저 바위의 부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 시간쯤 쭉 나아가면 오두막이 나올 거래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지스가 어느 한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들 사이로 이끼가 잔뜩 낀 바위가 보였다.
생각 없이 보면 그냥 평범한 바위 같은데, 새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새처럼 보였다.
“여기부터는 길이 아니니까,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유지스가 친절하게 주의하라고 경고했으나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다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나는 냉큼 세르펜스의 뒤로 가서 녀석의 어깨를 짚었다. 그러자 내가 업힐 수 있도록 녀석이 자세를 낮춰 주었다.
에드나와 아니마는 마법을 써서 몸을 띄웠고, 리에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푸로르의 등에 올라탔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서 신성력 날개를 펼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나 보다.
오랜만에 세르버스의 안락한 승차감을 느끼며 꾸벅꾸벅 졸다 보니, 목적지까지는 금방이었다.
일어나라고 깨우는 세르펜스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폐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숲속 오두막이라길래 아기자기한 맛이 있을 줄 알았건만.
동물 친구들 대신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비쥬얼이다.
“교단이 알려준 접선 장소가 정말 여기 맞아요?”
“누군가가 우연히 이곳을 찾을 수도 있으니,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가 아닐까요?”
유지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두막 문이 열리며, 이단 심문관 복장을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20대 초반쯤 되었을까?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과 몸 이곳저곳에 둘러맨 벨트에 걸린 단검들이 인상적이다.
그 모습으로 보아,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이단 심문관 ‘테일러 A. 시카’가 맞는 것 같다.
“귀한 분들을 이런 누추한 곳으로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테일러 이단 심문관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허리를 꾸벅 숙이며 사과해 왔다.
아무래도 나와 유지스가 나눈 얘기를 다 들었나 보다.
그래도 대놓고 오두막이 구리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세르펜스의 등에서 내려와 인사했다.
“죄송하실 것까지야···. 그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테일러 님이시죠? 슈테판 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악마와 연관된 살롱을 찾아내셨다고요.”
“아직 악마가 엮여있다고 확실시된 건 아니지만, 음, 음. 그렇죠. 네.”
이단 심문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수룩하고 숫기가 없는 사람이다.
이리저리 몸을 꼬며 말하는 모습이 저러다 꽈배기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워졌다.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겉모습은 이래도 안은 그럭저럭 괜찮···을 겁니다. 오신다고 하셔서 매일매일 열심히 청소하며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오두막이 굉장히 작아 보여서 우리가 다 들어가면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청소까지 열심히 해 놨다는데 사양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게다가 이 이단 심문관, 엄청 소심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는 테일러를 따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좁았다.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해서 커다란 10인용 테이블을 마련해 둔 모양인데, 그래서 더 좁아 보였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와 간식을 내오겠습니다.”
말릴 틈도 주지 않고, 테일러가 구석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내가 세르펜스에게 디저트를 먹이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나 보다.
잠시 뒤 테일러가 차와 비스킷을 테이블로 가져왔다.
“언제 오실지 정확히 몰라서, 이런 것밖에 준비하지 못했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유통기한 문제로 보존성이 높은 비스킷을 사 놓았나 보다.
투박한 생김새로 보아, 단맛보다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더 두드러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윈스톤은 잘 먹겠지만, 세르펜스는 좀 아쉬워하겠지.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냥 얻어먹기만 하는 건 미안하니까, 선물로 잼 한 병 드릴게요. 공작저 시녀들이 직접 만든 수제 무화과 잼인데, 빵이나 비스킷에 발라먹으면 엄청 맛있더라고요.”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잼이 든 병을 두 개 꺼내어 새것은 테일러에게 건네고, 먹던 것은 뚜껑을 열어서 작은 종지 아홉 개에 나눠 담았다.
테일러를 포함하면 열 명인데 잼을 9인분만 준비한 까닭은 윈스톤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번 드셔 보세요.”
“그,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테일러는 별 의심 없이 잼을 받았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때, 옆에 앉은 세르펜스가 내 무릎을 툭 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옆을 쳐다보니 시샘이 가득한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째서 어린 사람만 보면 못 챙겨 줘서 안달이냐고 따지는 눈빛이다.
‘내가 진짜 왜 이러는지 몰라? 너한테 단 거 먹여주려고 이러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시선에 담아서 세르펜스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내 깊은 뜻을 읽었는지, 녀석의 얼굴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고 비스킷으로 무화과 잼을 퍼올려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쫄깃한 과육과 함께 씨가 톡톡 씹히는, 무화과 잼의 독특한 식감을 비스킷의 단조로운 식감이 받쳐주었다.
“이 비스킷 완전 대박인데요? 이 무화과 잼이랑 완전 잘 어울려요! 진짜 완벽한 조합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테일러 님도 어서 드셔 보세요! 세르펜스도 빨리 먹어 봐!”
내가 테일러를 먼저 언급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세르펜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무화과 잼을 듬뿍 올린 비스킷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우리 둘이 맛있다는 티를 팍팍 내자 호기심이 일었는지, 테일러도 따라서 비스킷을 잼에 찍어 먹었다.
“이건···, 잼이 맛있어서 맛있는 것 같은데···.”
“잼이야 당연히 맛있죠! 하지만 비스킷이 받쳐줘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없잖아 있습니다. 나중에 다른 것에 찍어 먹어 보면 ‘어라? 이 맛이 아닌데?’ 싶으실걸요?”
나는 테일러의 중얼거림에 그렇게 답해주고, 한 입 베어 물었던 비스킷을 다시 한 번 무화과 잼에 찍어서 먹어 치웠다.
그리고 손가락을 비벼서 손에 묻은 비스킷 가루를 가볍게 털어내며 본론을 꺼냈다.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 살롱에 잠입할 방법을 마련해 놓으실 거라고 들었는데, 준비는 다 끝났어요?”
“아, 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가면 무도회가 있는데, 우선 그곳에 참석하셔서 살롱 초대장을 받으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저희더러 알아서 잘하라는 거네요···?”
“그, 그게···. 이 신분으로 참석하시면 분명 초대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살짝 실망하려는 찰나, 테일러가 품속을 뒤적여 웬 카드 두 장과 서류를 꺼냈다.
카드는 가면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인 것 같고, 서류는 어느 귀족들에 관한 개인 정보였다.
“이거 진짜 있는 사람에 관한 정보예요? 아니면 그냥 설정?”
“실존 인물입니다. 이 초대장 뒷면, 여기 이 부분을 자세히 보면 무늬가 살짝 다르더라고요. 입장할 때 초대장을 제출하니까, 이거로 신분을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실수로 악마 숭배에 동조하지 않을 법한 사람을 초대했다간, 살롱의 정체가 금방 들킬 테니까···. 네, 그래서 이런 조치를 해 둔 게 아닐까 합니다.”
두 초대장을 비교하여 살피니 정말 테일러가 말한 대로 무늬가 미묘하게 달랐다.
생각보다 보안이 철저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면 무도회에 잠입했으면 바로 걸릴 뻔했다.
“사실 가면 무도회 초대장을 더 구해두고 싶었지만···. 최근 비관적인 일을 겪고, 교단에 적극 협력해 줄 것 같으면서, 여러분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추려놓고 났더니···. 음, 음. 이 두 장이 최대였습니다.”
“그냥 초대장을 가로챈 줄 알았는데 협력까지 받아내셨어요?”
“여러분이 가면 무도회나 살롱에 참석하신 동안, 진짜가 다른 곳을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밤에 몰래 찾아가서···, 음. 가면 무도회에 악마 숭배자들이 출몰하는 것 같으니까 잠입에 협조해 달라고 그랬더니. 두 사람 다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몸에 단검을 잔뜩 두르고 있는 이단 심문관이 늦은 밤 침실에 숨어들어, 악숭이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면 누구든 협조하지 않을까?
어눌한 테일러의 말투도 그런 상황에서 맞닥뜨리면 공포심을 자극할 요소로 작용할 것 같다.
“라빌루츠 남작은 최근에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을 말아 먹었는데, 음. 키가 170 중반에 갈색 눈동자니까 시온 님께서 맡아 주시면 될 테고. 이쪽 벤트리온 자작 부인은 170 초반인데···, 음. 에드나 님께서 맡아 주시거나, 리에나 님께서 굽이 높은 신발을 신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근데 눈동자 색이 달라서 그건 가려야 할 것 같은데. 마침 남편이 죽었으니 검은 베일을 쓰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마침이라니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지만, 검은색 베일로 눈을 가리자는 테일러의 의견은 적절했다.
이 세상에는 눈동자 색을 바꾸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이제까지 변장할 때마다 눈동자 색을 괜히 그대로 둔 게 아니다.
마법으로 눈동자 색을 바꾸려고 시도를 하는 족족 시력을 잃어서, 이제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고 들었다.
반드시 필요한 마법도 아니며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너무 크니까.
“리에나의 연기력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에드나 씨보다는 나을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돌발 상황 발생 시, 밖에서 대기하는 인원과 연락을 취하려면 에드나가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지스가 손을 들어 올리며 의견을 냈다.
그러고 보니 유지스도 에드나와 마찬가지로 키가 170 초반이며, 바람의 정령을 통해 원거리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테일러가 괜히 후보에서 제외한 게 아니겠지.’
엘프 특유의 저 호리호리하고 길쭉길쭉한 팔다리는 인간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극한의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아이돌도 겨우 가질까 말까 한 체형이다.
활동량도 적고 매 끼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귀족 부인이 그런 체형의 소유자일 리가 없다.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살이 쭉쭉 빠졌다고 우겨보려 해도, 타고난 뼈대까지 얇지 않으면 엘프 체형은 안 나온다.
결국 벤트리온 자작 부인을 연기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갖춘 사람은 에드나와 리에나, 이 둘뿐이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생각한다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저는 에드나 베네볼렌 씨를 캐스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