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8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90화(790/1105)
790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2)
일단 주연은 정해놓긴 했는데 아직 문제가 남아있었다.
살롱은 시종과 호위를 대동할 수 있지만, 가면 무도회는 그게 안 되는 듯하니.
이대로라면 나와 에드나 둘이서 가면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다.
무기 소지는 당연히 안 될 테니 세니어도 아공간 주머니 안에 넣어 둬야 할 텐데.
‘과연 이걸 세르펜스와 아니마가 허락해 줄까?’
나는 힐끔 곁눈질로 두 사람을 살폈다. 둘 다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당연히 걱정하느라 안 된다고 반대할 줄 알았건만.
“언니가 자작 부인이면 나는 언니의 시녀 할래. 마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걸까?”
아니마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싸며 실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벌써 역할 놀이를 할 생각에 들뜬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가면 무도회와 살롱에 에드나가 참석하면, 아니마는 밖에서 연락을 받아야 하니까.
당장 그 점을 지적하면 난리가 날 테니 가만히 내버려 두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깨닫겠지.
“가면 무도회라면 혹시 웨이터도 얼굴을 가립니까?”
“아, 네네. 웨이터 옷을 구해다 드릴까요?”
“예, 부탁하겠습니다.”
“그럼 대강의 치수를···.”
세르펜스는 웨이터로 잠입할 생각인가 보다.
녀석이 펜과 메모지를 꺼내어 자신의 옷 치수를 적어서 테일러에게 건넸다.
“재밌겠다! 그럼 나도···.”
“성검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아, 맞다···.”
세르펜스의 지적에 휴마누스가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휴마누스 본인은 신성력을 잘 조절하여 그 기운을 숨길 수 있다지만, 성검은 그게 안 되어서 악마에게 감지당하기 딱 좋다.
악마가 성검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거리라면, 우리 쪽도 악마의 기운을 감지하는 게 가능하니 평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성검을 내팽개치지 않는 이상, 휴마누스가 어딘가에 잠입하는 건 불가능하지.’
악마가 가면 무도회까지 참석할 것 같지는 않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성검이 애물단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성검은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누가 운반해 줄 수도 없으니까.
휴마누스는 성검이 없으면 아직 세르펜스보다 약하다. 거기다가 용사의 무구까지 빼면 더 약해질 테다.
가뜩이나 악마의 실력을 종잡을 수 없는데, 우리 편 전력을 깎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니 휴마누스는 먼 곳에서 아니마와 함께 대기해야 한다.
‘그럼 나머지 사람 중, 가면 무도회장에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지?’
우선 윈스톤은 아웃이다. 저 키에 맞는 웨이터 복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있어도 근육 때문에 옷이 터질 테니까.
마찬가지의 이유로 190에 근접하는 큰 키에 근육질 체형인 푸로르도 아웃이다.
그런 체형의 여성이 있다면 웨이트리스가 아니라 기사나 용병을 하겠지.
“웨이트리스 유니폼이 헐렁해서 체형 보완이 가능하다면, 유지스 정도는 잠입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때요?”
“살롱은 커튼을 쳐 놔서 내부를 못 봤지만, 가면 무도회장은 창문 너머로 일하는 사람들 유니폼을 슬쩍 봤는데···. 상의가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디자인이라서, 음. 아, 안 될 것 같은데요?”
테일러의 말에, 누구보다도 역할극에 진심인 유지스가 크게 낙담하며 슬픈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유지스도 무대 밖에서 대기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훌륭한 배우를 썩혀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어쩔 수 없으니, 리에나가 같이 가 줘야겠네요.”
“저, 저요? 제가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리에나는 이제 접근전도 가능한 훌륭한 전력이잖아요? 잠입 액션도 문제없어요!”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게···.”
내 응원에도 불구하고 리에나는 자신 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런 리에나를 설득한 건 세르펜스였다.
“리에나 님. 그러지 마시고 함께 가 주십시오. 초대장에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를 해둔 걸 보면, 가면 무도회 또한 악마 숭배 세력의 손길이 닿아있는 게 분명합니다. 시온과 에드나 씨가 그런 곳에서 내어주는 식음료를 함부로 섭취하게 둘 수 없으니, 저희가 중간에서 바꿔치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 볼게요.”
설득이라기보다는 역할 설명에 가까웠으나, 책임을 느낀 리에나는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럼 세르펜스 님이랑 리에나 님께서 입으실 유니폼을 준비하면, 음. 되는 거죠?”
“그리고 테일러 님 것도요.”
“네, 네?! 저, 저도 말인가요···?”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내 말에 테일러가 잠시 당황하긴 했으나, 이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세르펜스를 제외한 나머지 잠입 멤버에게도 옷 치수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그럼 다음 무도회가 열리는 건 일주일 뒤니까, 그때까지 유니폼을 구해 놓고. 음, 음. 시온 님과 에드나 님께서 입으실 옷은, 라빌루츠 남작과 벤트리온 자작 부인의 것을 수선하는 거로···. 네. 그렇게 해서 준비하겠습니다.”
테일러가 우리의 옷 치수가 적힌 종이를 고이 접어 품 안에 챙기며 말했다.
일주일이면 맡은 역할을 분석하고 에드나에게 연기 연습을 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에드나의 발연기가 쉽게 커버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얼굴은 가릴 거니까 표정 연기는 버리고 목소리에만 집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그때.
“시간이 빠듯하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춤을 배워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세르펜스가 내 안일한 생각을 깨부쉈다.
그렇다. 가면 무도회도 어쨌거나 무도회였고, 무도회에 춤은 필수다.
“저는 미망인 설정인데, 저도 춤을 배워야 하나요?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춤추고 노는 건 뭔가 이상할 것 같은데···.”
“슬픔에 잠겨있을 거라면 애초에 무도회에 참석하지 말았어야죠. 배우자를 여읜 사람이 무도회에 참석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새로운 상대를 찾기 위함일 테니, 더더욱 열심히 춤을 춰야 해요!”
유지스가 에드나를 일으켜 세우며, ‘역할 분석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일침을 놓았다.
자신이 역할극에 참여할 수 없으니 에드나를 가르치는 것에 집중할 생각인가 보다.
하마터면 벤트리온 자작 부인이 될 뻔했던 또 다른 후보, 리에나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엑스트라인 웨이트리스 역을 맡게 되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서류에 적힌 인적 사항에 따르면, 라빌루츠 남작은 사업이 망한 후에 이혼당했다던데 딱 맞네요!”
갑자기 유지스가 나를 보며 불길한 소리를 입에 담았다.
대체 뭐가 딱 맞는다는 건지,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나 인정하고 싶지 않다.
“벤트리온 자작 부인이 쓰고 있는 검은 베일을 보고, 미망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라빌루츠 남작이 먼저 접근하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전 남편의 돈을 자신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도록 부추기는 거죠.”
“그거 저더러 에드나 씨를 꼬시라는 거잖아요?!”
유지스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에 나는 그저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니마가 자신이 라빌루츠 남작 역할을 맡겠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어도 반응하지 못했다.
어차피 아니마도 안 되는 걸 알면서 그냥 질투가 나서 아무 말이나 해댄 것에 불과할 테다.
그냥 내버려 두자.
“두 분이 의심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같이 있으려면 그 수밖에 없어요. 아니면 악마 숭배자일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춤을 추시려고요?”
“후우···.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나도 유지스의 의견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세르펜스가 진심으로 안 내킨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유지스의 의견에 동조했다.
안전 얘기가 나오자 아니마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조금 진정했다.
연기하고 춤을 추는 건 나와 에드나인데, 왜 세르펜스와 아니마가 저렇게까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일 끝나도 세르펜스 보좌관 신분으로 계속 이쪽에서 살 거니까, 까짓 거 이참에 배워두지 뭐!”
“배워도 쓸모는 없을 거다.”
“이럴 땐 의욕이 나는 말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툴툴거리긴 했지만, 세르펜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이제까지 춤을 단 한 번도 춰 보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저, 저기···! 저는 그럼, 옷을 구하러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없어도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히···, 음. 집이 이래서 그다지 편하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어···. 아무튼 계세요. 춤도 열심히 배우시고···.”
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걸까?
테일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몸을 배배 꼬며 떠듬떠듬 말을 이어나갔다.
“같이 나가죠. 어차피 이 안에서는 춤을 배우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아, 네, 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르펜스와 함께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뒤이어 춤을 배워야 하는 에드나는 유지스에게 끌려 나왔고, 춤과 아무래도 상관없는 아니마가 에드나를 따라나왔다.
마지막으로 테일러가 칙칙한 색의 로브를 두르며 허겁지겁 쫓아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인 뒤, 로브를 꼼꼼히 여며서 이단 심문관 복장을 가리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여자 쪽 스텝은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사절로 인간들의 나라에 방문할 일이 간혹 있어서, 혹시 몰라 배워뒀거든요!”
“당신은 내가 가르치겠다.”
유지스와 세르펜스가 각각 에드나와 나를 붙들고 말했다.
나와 에드나가 함께 춤을 추는 건, 기본 스텝을 배운 이후인가 보다.
하기야 초보자 둘이서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그게 낫겠지.
‘맡은 역할은 뭔가 사기꾼 느낌이 나서 별로지만, 춤은 좀 재밌을 것 같은데?’
본래 이런 식으로 시간이 남으면 윈스톤과 대련하며 목검으로 후려 맞거나, 관절을 꺾는 리에나에게 붙잡히지 않고자 대련을 빙자한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
그에 비해 사교댄스를 배우는 건 노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 진짜로 노는 거다.
“여기, 이렇게 움직이면 돼?”
“발을 너무 앞으로 뻗었다. 보폭을 살짝만 줄여서···.”
내 자세를 고쳐주는 세르펜스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녀석인데, 내 검술 훈련 지도 자격을 윈스톤에게 뺏겨 버렸으니.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울 만도 하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처음 검을 배웠을 때도, 세르펜스가 이런 식으로 내 자세를 고쳐줬었는데.”
“후후, 나도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와 세르펜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춤을 배웠다.
반면에 에드나와 유지스 쪽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왜 춤을 안 배운 거지?! 아니마도 언니에게 춤을 가르쳐 주고 싶은데···!”
문자 그대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아니마를 신경 쓰느라 에드나의 스탭이 자꾸만 꼬였다.
그 모습을 본 유지스가 에드나의 귀에 무언가를 속닥였고, 곧이어 에드나가 크게 깨우친 표정을 지었다.
“아니마, 언니한테 배우는 건 싫어?”
“으, 응?”
“마법은 내가 항상 아니마에게 배우는 처지니까, 춤 정도는 내가 가르쳐 주고 싶은데. 안될까?”
“돼, 돼! 완전 돼!!”
아니마가 고개를 끄덕이다 못해 격렬한 헤드뱅잉을 하며 에드나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 아니마의 행동에 에드나가 ‘됐다!’라고 말하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언니가 아니마에게 서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완벽하게 춤을 출 수 있을 때까지 들어가 있으면 안 될까?”
“그, 그건···.”
“언니가 아니마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게다가 춤을 배우는 과정을 아니마가 봐 버리면, 언니가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줄 수 없잖니.”
“그것도 그러네! 알랐오~, 구럼 아니마는 들어가서 마법 연구하고 잇을겡~!”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니마가 이상한 외계어를 구사하며 룰루랄라 오두막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