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9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95화(795/1105)
795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7)
에드나의 애드리브을 가장한 아무 말이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NG를 외치고 재촬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개자식’ 발언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일루미나티 수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연기 초짜 에드나에게 애드리브로 밀릴 수 있겠어?!’
무슨 말을 하든 전부 맞받아쳐 주리라.
나는 각오를 불태우며 비장하게 입을 뗐다.
“사람을 아주 잘 보셨습니다. 펠로 왕국에서 제일가는 개자식이 바로 접니다!”
“그런 것 같았어요···!”
“개자식을 좋아하신다니, 원하신다면 개처럼 짖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멍멍!”
“아, 세상에나···! 저, 그런 거 되게 좋아하는데···.”
내 애드리브를 받아치는 에드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연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긴장되어서 힘이 바짝 들어가서 떨린다기보다, 울먹거린다는 느낌이다.
짙은 현타가 찾아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자포자기하며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우리의 대화가 그저 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른다.
에드나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는 감격에 겨워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딱 좋았다.
심지어 울먹거리며 뱉은 대사도 감탄문이지 않은가.
“가면 무도회에서는 익명의 힘을 빌려, 다들 숨겨왔던 취향을 드러내며 화끈하게 논다고 듣기는 했는데···. 정말···, 와···.”
공깃밥이 입을 떡 벌리며 놀랍다는 눈으로 에드나를 바라보았다.
민망함이 밀려든 것일까? 에드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공연히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어쨌거나 공깃밥이 에드나의 취향을 포용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 같으니 잘된 일···인가?’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에드나가 열심히 입을 놀리며 소리 없이 욕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경쟁자를 재꼈으니까 이제 춤 신청을 해야 할 타이밍인데 좀처럼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세르펜스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압박감과 비교하면, 이 정도쯤이야···!’
어차피 에드나가 욕을 하는 대상은 내가 아닐 거다.
그도 그러할 게 개자식이 좋다고 외친 건 내가 아닌 에드나였으니까.
자신의 입방정을 탓하고 있거나, 이곳을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원망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춤 신청을 할 용기가 샘솟았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배운 대로 에드나를 향해 정중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 짖었다.
“왈왈! 그럼 숙녀분, 이 개자식과 함께 춤을 추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짜, 개 같네요.”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대답은?”
“···기꺼이요.”
에드나가 내 손바닥 위에 손을 얹으며, 울며 겨자라도 먹는 듯한 목소리로 춤 신청에 응했다.
대본은 개판이 났지만, 어찌어찌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에드나의 손을 잡고 홀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공깃밥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미소를 본 공깃밥의 반응은 무척이나 간략했다.
멍하니 풀린 눈동자로 ‘헐···.’ 하는 소리를 흘리는데, 아무래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홀의 중앙에는 이미 춤을 추는 귀족들이 많았다.
내가 공깃밥을 견제하며 티격태격하고, 에드나 앞에서 개처럼 짖는 동안 다들 파트너를 구했나 보다.
나와 에드나는 그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 일주일간 피땀 흘려 연습한 스텝을 밟아나갔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춤을 추느라 몸이 밀착되자, 에드나가 소곤소곤 귓속말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개자식이 되었고 본인은 개자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 설정을 계속 밀고 나가도 되는 거냐는 뜻일 테다.
‘연기를 하는 나와 에드나는 보통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작전을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설마하니 악숭이들도 신의 사자가 가면 무도회에 잠입해서, 개처럼 짖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설정이라는 건 바꾸고 싶다고 도중에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 번 대중에게 선보인 이상, 절대로 무를 수 없다. 이 배역을 마칠 때까지 무조건 안고 가야만 한다.
“설마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하는 겁니까?”
“충동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는데···. 어떻게 후회를 안 할 수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에서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까 공작새 깃털 가면을 쓴 자도 말했잖습니까? 이곳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익명의 힘을 빌려, 숨겨왔던 취향을 드러낸다고. 그러니 이름 모를 숙녀분도 마음 편히 욕망에 몸을 맡기시죠, 멍멍.”
나는 춤을 이어나가며, 에드나의 귓가에 대고 개 짖는 소리를 해댔다.
그러자 에드나가 뒤늦게 당황하며 ‘어···, 어어···.’ 하고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도중까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무도회장 가득 음악이 흐르고 수많은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한들.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 법인데, 귓속말이라고 해서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진짜 그런 취향인 건 아니···죠?”
“네, 저는 그런 취향이 아닙니다. 하지만 투자만 해 주신다면야, 얼마든지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게 더 좋죠? 처음부터 그런 취향인 사람과 노는 것보다, 그런 취향이 아닌 사람을 직접 길들이는 편이 더 재밌을 테니까.”
“아···, 진짜 말이나 못 하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입마개라도 씌워서 입을 막아버리고 싶어···.”
방금 에드나가 한 말은 나더러 들으라고 한 걸까, 아니면 그냥 혼잣말일까?
어느 쪽이든 등골이 오싹했다.
개처럼 짖는 것쯤이야 성대모사라고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입마개는 아니다.
나는 에드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춤에 집중했다.
그렇게 대화 없이 스텝을 밟아나가다 보니 곡이 바뀌었고 우리는 홀 가장자리로 빠졌다.
일주일간 춤 연습을 한 것이 아깝긴 했으나 우리는 여기에 춤을 추러 온 것이 아니다.
빌려온 구두가 발에 잘 안 맞는 건지, 곡이 끝나갈 즈음이 되자 에드나의 스텝이 반 박자씩 늦어지기도 했고.
“목이 마르실 것 같은데, 음, 한 잔···, 하시겠습니까?”
공깃밥과 말싸움을 하고 개처럼 짖고 춤까지 춰서 목이 타던 차에, 웨이터 한 명이 다가왔다.
어눌한 말투만 들어도 변장한 테일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심하며 음료를 마시려고 시선을 쟁반 위로 옮겼는데 작은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 공작새 깃털로 장식한 가면을 쓴 자가 살롱 초대장을 받음. 리에나 님은 그자를 감시하고, 세르펜스 님은 초대장을 건넨 자의 뒤를 쫓는 중. ]눈에 들어온 글자를 머리가 처리하기도 전에, 테일러가 약지와 소지로 쪽지를 집어서 자신의 소매 안으로 쏙 넣었다.
그러면서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샴페인 잔의 손잡이 부분을 잡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고, 테일러는 에드나에게도 샴페인을 한 잔 들려주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공깃밥을 아는 걸 보면 테일러도 나와 에드나가 벌인 짓을 본 것 같은데, 잘도 저런 말이 나오는구나 싶다.
테일러는 바로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나와 에드나 둘만 남겨졌다.
우리는 샴페인을 마시며 주변을 눈으로 슥 훑었다.
술을 퍼마시는 사람, 여럿이 몰려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 딱 달라붙어서 춤을 추거나 농밀한 스킨십을 즐기는 남녀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눈에 띄었다.
저들 중 어떤 부류를 연기해야 우리가 이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준비한 대본이 그쪽이기도 하고.
나는 에드나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가, 갑자기, 무슨···?!”
“춤을 추는 동안 잡고 있던 손을 놓으니 허전해져서 말이죠. 당신도 허전하지 않아요? 특히 마음이. 그러니까 이런 곳에 온 거 아닙니까?”
“아···.”
애드리브의 영향으로 대본의 존재를 망각한 건지, 에드나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빼려다가 도중에 멈췄다.
내가 ‘춤을 추고 난 이후의 대본’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챈 거다.
나는 깍지 낀 손 엄지로 에드나의 손등을 쓰다듬는 한편, 무도회장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며 샴페인을 홀짝거렸다
여기서 포인트는 사람들을 관찰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고도의 시선 처리다.
진짜 관심이 있는 건 에드나의 반응이라는 것을 티 내며, 나는 슬쩍슬쩍 고개를 돌려서 에드나의 반응을 살피듯 쳐다보았다.
에드나는 고개를 푹 숙여서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간간이 내 얼굴 쪽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서 묘한. 아니,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껴지도록 유도한 침묵이 흘렀다.
이 가면 무도회는 무려 자정까지 진행된다.
굳이 그때까지 남아있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초대장을 받을 때까지는 계속 죽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초대장을 받자마자 바로 떠나면 수상하니까, 적어도 한 시간은 더 머물다 가야 한다.
어찌 되었든 여기에서 엄청 오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몇 시간 분량의 대본을 준비할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침묵’을 연출하기 위한 레퍼토리를 몇 개 준비해 두었다.
물론 침묵이 너무 반복되면 좋지 않고 긴 시간 연기를 이어나가는 건 너무 피곤하니까, 가끔 테라스로 가서 쉬어 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 가끔은 바로 지금이다. 힘들게 춤을 추고 난 뒤에 쉬지 않으면 언제 쉬러 가겠는가?
조금만 더 시간을 끌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쉬러 가야지.
방해꾼 공깃밥이 사라지니 대본 진행이 참 수월해졌다.
‘그런데 놈이 살롱 초대장을 받았단 말이지···?’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마음을 달래고자 가면 무도회에 참석한 듯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사상이 악숭이 쪽인가 의심하기에는 연애 사기 근절을 외치던 모습이 인상 깊다.
나에게 에드나를 뺏기고 실연당한 모습이 퍽 불쌍해 보여서 스카우트 당한 거려나?
“언제까지 손을 만지작거릴 생각이에요?”
에드나가 불만스럽다는 투로 대사를 쳤다.
타이밍이 다소 이른 것 같기는 하지만, 에드나치고는 드물게도 대사를 잘 살렸다.
“성격이 참 급하시네요. 아니면, 그만큼 안달이 난 건가?”
“으에···.”
나도 내 대사가 느끼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역해도, 연기 중에 티를 내는 건 참아줬으면 좋으련만.
‘아니면 참아서 이 정도인 건가···?’
그래도 더 참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들어주기 힘들기로서니 말하는 나보다 더 힘들까.
어쨌든 분위기 연출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이제 테라스로 나가서 조금 쉬다가 다시 나와야겠다.
“아차, 이런 것보다 개소리를 좋아한댔죠?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때요, 멍?”
“나쁘지 않네요.”
잠시나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에드나의 대답이 굉장히 빠르게 돌아왔다.
나는 깍지를 풀고 에드나의 손을 가볍게 받치듯 잡고 비어있는 테라스로 에스코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