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96화(796/1105)
796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8)
– 차르륵···!
테라스로 들어와 커튼을 치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꼿꼿이 세우고 있던 상체에 힘을 뺐다.
그동안은 연기를 하더라도 행동거지만큼은 평소대로 해도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살롱 관계자가 우리의 행동을 하나하나 주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며 행동했더니 금방 진이 빠졌다.
‘이제야 좀 살겠네!’
나는 숨을 돌리며 테라스 내부를 빙 둘러보았다.
황실 연회장과 다르게 여기는 지붕 없이 위쪽이 뚫려 있는 대신, 펜스를 둘러쳐 놔서 사방이 다 막혀 있었다.
이런 곳까지 와서 하늘 구경하러 테라스로 나오는 이는 없을 테니.
춤추다가 눈 맞은 이들에게 애먼 짓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장소임이 틀림없다.
‘무슨 짐승 짝짓기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덕분에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한 10분···. 아니, 20분 정도는 여기에서 쉬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주머니에서 라빌루츠 남작가에서 대여한 회중시계를 꺼내어, 현재 시각을 체크한 뒤 도로 넣으며 에드나를 향해 말했다.
“아까 춤추실 때 보니까 발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잠깐 구두를 벗고 계시는 게 어때요?”
“···그럴까요?”
테이블 위에 축 늘어져 있던 에드나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솔깃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차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 역시 구두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드레스 자락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에드나가 ‘아···.’ 하는 소리를 흘렸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반응이다.
그러더니 낑낑거리며 허리를 구부리려고 애썼다.
‘왜 저러지? 어···, 설마?’
손을 쓰지 않고 신발을 벗으려면 필연적으로 반대편 신발 바닥으로 뒤축을 밀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구두에 긁힌 자국이 생기는 건 뻔한 일이다.
특히나 구두가 발에 딱 맞거나 작아서 잘 벗겨지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아무래도 에드나는 비싼 남의 구두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아서 손으로 벗을 생각인가 보다.
하지만 코르셋을 바짝 졸라맨 채 허리를 굽혀서, 풍성한 치맛단을 걷어내고 구두를 벗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직접 내가 경험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으니까 안다.
에드나는 혼자서 신발을 벗으려고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포기해 버렸다.
그 모습이 딱하기도 하고 보는 내가 답답해서 에드나에게 제안했다.
“제가 벗겨 드릴까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정말요?”
“···아니요.”
어차피 민망함은 찰나에 불과하고, 발이 자유를 만끽하는 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쭉 이어진다.
합리적인 에드나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나는 씩 웃어 보이며 잘 생각했다는 뜻을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나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에드나가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자 검은색 뾰족구두를 신은 발이 드러났다.
이런 걸 신고 잘도 춤을 췄구나 싶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나는 에드나의 한쪽 발목을 조심스럽게 잡고 구두를 벗겨 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짝을 막 벗겨 낸 그때.
– 끼이익···.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면서 내가 쳐놨던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갑작스런 낯선 이의 등장에 크게 당황한 나는 반사적으로 손에 든 물건. 즉 에드나의 구두를 무기처럼 들고 놈을 향해 겨눴다.
“뭐, 뭐야?!”
“어우, 좋은 시간 보내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정체 모를 불청객은 능청스럽게 말하며 테라스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문을 닫고 자신이 들어오느라 살짝 걷혔던 커튼을 끝까지 쳤다.
실례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본 것치고는 이미 실례하고 있으며, 나와 에드나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계속 실례할 작정인 듯하다.
‘세르펜스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세니어를 꺼내라고 했지만···.’
녀석은 공깃밥에게 살롱 초대장을 준 놈의 뒤를 쫓고 있으니 나타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테일러는 분명 나와 에드나를 지키기 위해 계속 이쪽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터.
방금 들어온 자가 위험한 의도로 접근한 거라면, 테일러가 튀어나왔어도 진작에 튀어나왔을 거다.
그러니 저 불청객의 정체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살롱 초대장을 전달하는 놈이겠지. 그리고 낮은 확률을 따져보자면···, 개처럼 굴려지는 취향이 있어서 함께 놀자고 찾아온 놈이려나?’
후자는 악숭이와는 다른 의미로 위험한 자니까 부디 살롱 초대장 전달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혹시 모를 낮은 확률을 경계하여, 구두 굽을 놈에게 겨누며 에드나의 앞을 막아섰다.
“이 구역의 개자식은 나뿐이야! 내 투자자···가 아니라, 미래의 내 아내를 탐낼 생각이라면 썩 꺼져!”
“미래의 아내라니, 그런 얘기가 오가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요···?”
에드나가 개연성을 걱정하며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우 지당한 얘기지만, 지금 필요한 건 지당한 얘기가 아니라 설정에 걸맞은 대사다.
그래서 나는 에드나의 대사에 조미료를 살짝만 뿌려주기로 했다.
“그 말인즉, ‘내 돈과 남편 자리를 노린다면 더 열심히 짖어 봐.’라는 뜻인 거죠? 알겠습니다, 제가 펠로 왕국 최고의 개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왈왈!”
“지, 진정하시죠, 신사분! 저는 그런 목적으로 찾아온 게 아닙니다!”
내가 금방이라도 머리를 찍어버릴 듯 구두를 높이 치켜들자, 불청객이 기겁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개처럼 짖으며 여성용 구두를 위협적으로 들어 올렸는데도 ‘신사’라고 불러주다니. 신사의 기준이 남다른 사람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보이는 놈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보통 당황한 게 아닌가 보다.
‘이렇게 해도 초대장 전달자라면 절대 도망치지 않고 남아있겠지.’
돈을 위해서 자존감도 버리고 개처럼 짖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남을 해치는 일에는 더더욱 거리낌이 없을 거라고 짐작할 테니.
어떻게든 악숭 세력에 끌어들이지 못해서 안달을 낼만한 인재 중의 인재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놈을 위협한 건 가점 요소면 가점 요소지, 결코 감점 요소가 될 수 없다.
‘나야 뭐···. 어차피 얼굴도 가렸고 지금 이 신분은 라빌루츠 남작의 것인데다가, 그냥 이런 설정의 연극 배역을 맡았을 뿐이라는 생각에 편히 짖을 수 있었던 거지만.’
나는 불청객을 지긋이 노려보다가, 미심쩍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구두를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구두 굽이 무서웠던 건지, 아니면 미친개처럼 날뛰는 내 모습에 기가 질렸던 건지.
놈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품 안에서 검은색 편지 봉투를 두 장 꺼냈다.
처음 예상대로 초대장 전달자가 맞았나 보다
“제가 여러분을 따라 들어온 건 이것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뭔데?”
나는 편지 봉투 두 장을 몽땅 뺏어 들고 그중 하나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빳빳한 재질의 검은 종이에 붉은색 글자로 뭐라 뭐라 적혀 있었는데, 자세한 건 나중에 읽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도로 집어넣었다.
“아까 홀에서 본 두 분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더군요. 그래서 두 분을 꼭! 살롱에 초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이렇게 실례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사과드리겠습니다.”
“살롱? 그쪽이 주최자야?”
“그런 건 아니지만, 제 권한으로 드릴 수 있는 초대장이 몇 장 있거든요.”
초대장 전달자. 줄여서 초전자 놈의 말을 쉽게 번역하자면 그냥 끄나풀이라는 뜻이다.
고작 초대장 나눠주는 일에 윗선이 직접 나설 리는 없으니 예상했던 바다.
“분명 두 분에게 좋은 기회의 장이 될 겁니다.”
“무슨 기회?”
“신사분께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투자금이 필요해서 이곳에 오셨다고 하셨죠? 저희 살롱에는 좋은 투자자가 될만한 분들이 많습니다.”
“흐음···, 그래요?”
“네. 기본적으로 살롱에서도 이곳처럼 가면을 쓰고 서로의 신분을 감추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신사분께는 득이 될 수도 있죠. 격 없이 지내다가 친해져서 나중에 서로 정체를 밝히고, 신분 고하에 관계없이 친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믿기 힘든 얘기다.
귀족도 사람이니까 세르펜스나 휴마누스처럼, 신분을 따지지 않고 친구를 만드는 이가 전혀 없는 건 아닐 테다.
하지만 악숭 살롱에 다니는 놈들이 과연 그 정도로 마음이 열려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니까 편히 할 수 있는 얘기지만, 배경을 따지면서 유지하는 친분이 어디 진정한 친분이겠습니까? 이런 가면 무도회가 한 달에 한 번씩 열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그런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그냥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한 개소리들은 이놈이 지금 하는 개소리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리라.
비유하자면 초전자 놈의 개소리는 대형견의 ‘컹컹!’ 짖는 소리고, 내가 한 개소리는 소형견이 ‘알알!’거리는 소리라 할 수 있다.
악숭 살롱이 선의에 의한 자발적 헌혈 모임도 아닐진대, 퍽이나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겠다.
하지만 그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미끼를 넙죽 무는 것도 수상하겠지.
나는 잠시 고민을 하는 척 뜸을 들이다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초전자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데? 진정한 우정을 원하는 이들을 꼬드겨서 투자금을 받아내라니···. 어째서 오늘 처음 본 내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대체 무엇을 바라고?”
“하하하! 진정한 우정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건 그분들에겐 일종의 액세서리에 불과합니다. ‘나는 이렇게나 마음이 열려있고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자도 친구라 여기며 챙겨준다.’ 같은 느낌이랄까요? 돈 많고 여유가 있는 자들이나 즐길 수 있는 여흥이죠.”
악숭하는 놈들이 그렇게까지 남의 눈을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초전자가 말하는 살롱이 악숭하는 장소라는 것을 모른다는 설정이므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신사분께서는 투자금을 받은 후에도 사업 확장을 위해, 그분들과 계속 친분 유지하실 생각이죠? 그것도 온 정성을 쏟아서.”
“그야 당연하죠!”
“네, 홀에서 개처럼 짖으실 때부터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가면으로 가려지지 않은 초전자의 입매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알 것 같은데, 개처럼 짖는다는 말 때문에 기분이 몹시나 더러웠다.
하지만 그 부분을 따질 수는 없었다. 내가 개처럼 짖은 건 사실이니까.
“더군다나 신사분께서는 난생처음 본 귀부인의 발을 핥는 것까지 감수하실 정도로 간절하신 거잖습니까? 이건 제 개인적인 바람인데, 저는 신사분처럼 그렇게 간절하고 사업을 위한 열정을 지닌 분이야말로 반드시! 성공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전자 놈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댔다.
너무 충격적인 탓에 정신이 멍해졌다. 머리가 먹통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설마하니···. 들어왔을 때 좋은 시간이 어쩌고 하는 말을 했던 게···?’
나는 그저 발이 아픈 에드나를 위해 구두를 벗겨줬을 뿐이건만.
과격한 에드나의 설정 탓에 내 선행이 이상하게 왜곡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