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9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99화(799/1105)
799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11)
“대본은 나름대로 요긴하게 써먹긴 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겨서 애드리브로 대응하다 보니 설정이 바뀌어 버렸어요.”
“모든 변수를 제어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죠. 그게 뭐 그리 심각한 일이라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나요? 애초에 설정이 다소 바뀔 수 있다는 건 미리 염두에 뒀었고, 그래서 살롱용 대본은 가볍게 초벌 작업만 해 둔 거잖아요?”
유지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설정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얘기겠지.
“다소가 아니라 아주 딴판으로 달라져서 싹 다 엎어버리고 새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 정도인가요? 대본을 새로 쓰려면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겠네요!”
내가 유지스를 너무 얕봤던 모양이다.
자신이 만든 설정이 폐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유지스는 실망하기는커녕 새로운 창작 욕구로 의지를 불태웠다.
“전부 얘기하자면 깁니다. 내일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얘기할게요.”
“하긴 내일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그러는 게 좋겠네요. 하지만 너무 궁금한데···.”
“일단은 에드나가 개자식을 좋아한다고 선언해서, 제가 개처럼 짖었다는 것 정도만 알고 계세요.”
이번 연극의 총감독을 맡은 유지스에게는 최소한의 설명은 해 두어야, 대본 작성에 차질이 없겠지.
나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간략한 정보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뭐?! 언니가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에드나와 통신 중이었음에도 아니마가 누구보다 빠르게 내 말에 반응했다.
요지에서 크게 벗어난 소리였으므로 무시해도 상관없다.
“네에?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다음으로 유지스와 휴마누스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경악했다.
말하는 뉘앙스로 보아 유지스는 그런 일이 벌어진 경위가 궁금한 모양이고, 휴마누스는 나와 에드나의 기행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질겁한 듯하다.
“엄청 볼만했겠네! 너희 진짜 대단하다!”
“에드나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닐 줄 알았는데···.”
푸로르는 재밌는 구경을 놓쳐서 아쉽다는 투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윈스톤은 그냥 너무하다. 에드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줄 알았다니, 나는 그런 사람일 줄 알았다는 뜻이잖은가.
윈스톤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척이나 궁금할 따름이다.
[ 제가 처음 말한 개자식은 진짜로 멍멍 짖는 개를 지칭했던 게 아니었는데, 시온 씨가 갑자기 짖으신 거잖아요! 아, 그렇다고 나쁜 놈을 뜻하는 개자식이 좋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통신기 너머에서도 반응이 나왔다.
뭐라뭐라 변명을 쏟아내는 에드나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나도 반박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이의를 제기합니다! 제가 개자식처럼 굴었을 때 개자식이 좋다고 하신 건, 어쩔 수 없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개처럼 짖었을 땐, 지금처럼 멍멍 짖는 개자식이 좋다는 게 아니었다고 딱 잘라 부정할 수 있었잖아요? 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되게 좋다고 하실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아니라며 팔짝 뛰니까 오히려 더 의심스러운 거 아세요?”
{ 그때는 갑자기 대본이 바뀌는 바람에, 시온 씨의 애드리브를 따라가기 급급해서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
“흐음···, 에드나 씨는 연기 초보니까 그럴 만도 하겠네요. 좋아요, 반론을 인정합니다!”
{ 휴우···. }
가까스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 낸 에드나가 통신기 너머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란스러웠던 방안이 겨우 잠잠해지고, 조곤조곤한 리에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테일러 님께서 드레스 코드에 맞춰서 옷 제작 의뢰를 넣어야 하니까, 살롱에는 누가 따라가는 건지 알려 달라고 하셨어요. }
“그 얘기를 왜 리에나가 전하는 겁니까? 테일러 님은 어디 갔어요?”
{ 어디 간 건 아니고, 화장실에 들어가 계세요. 지금 제가 에드나 님의 드레스 벗는 걸 도와드리고 있거든요. 저도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
우리 쪽은 꼴랑 가면을 벗은 게 전부인데, 저쪽은 벌써 옷을 갈아입고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방 어딘가에서 ‘찰칵’ 하고 문고리 돌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환복을 마친 세르펜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치사하게 소란을 틈타 먼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었나 보다.
“저와 윈스톤 경이 시온의 시종과 호위 기사 신분으로 따라가겠습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대화를 전부 들었는지, 세르펜스가 곧장 내 시종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추가로 윈스톤에게도 배역을 지정했다.
본인 동의를 받은 것 같지는 않지만, 충실한 기사 윈스톤이 주군의 말을 거역할 리 없으니 문제 될 건 없···.
“어라? 그럼 윈스톤이 저를 주군으로 불러야 하는 거네요?”
“······.”
내가 검지로 나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조금 전만 해도 멀쩡했던 윈스톤의 얼굴이 암담함에 물들었다.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게 얼마나 싫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존경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선배님이라 불러줬던 과거의 윈스톤은 당최 어디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 이제 슬슬 아니마가 에드나의 시녀 역을 맡겠다고 나설 때도 됐는데···?’
웬일로 조용한 게 이상해서 아니마를 살펴보았다.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에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드디어 현실 부정을 끝내고, 자신은 절대 에드나와 함께 살롱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모양이다.
축 처진 아니마의 모습이 못내 안쓰럽긴 했으나 어쩔 수 없다.
진작에 정해뒀어야 할 기사 역과 시종, 시녀 역을 이제서야 정하기로 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배려는 다 했다.
“에드나 씨의 기사 역은 푸로르 씨가, 시녀 역은 리에나 님이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단 심문관께서는 기척을 감추고 유지스와 함께 건물 밖에서 대기하다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지원해 주십시오.”
“오~, 살다 살다 기사 노릇도 다 해 보네. 알겠습니다, 한 번 해 보죠!”
{ 이번에는 시녀 역인가요? 음···, 알겠어요. 테일러 님께서도 그리하겠다고 전해 달라 하시네요. }
그동안 말만 꺼내지 않았을 뿐.
마음속으로 배역을 전부 정해두고 있었는지 세르펜스가 빠르게 역할을 분배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지목당한 푸로르와 리에나, 테일러는 아무 불만 없이 자신의 배역을 받아들였다.
유지스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거로 보아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 테일러 님, 저희 옷 다 갈아입었어요. 이제 나오셔도 돼요. }
{ 아, 아. 네에···. 그럼 이쪽에 계신 두 분을 모시고 그쪽 여관으로 갈 테니까···. 음, 음. 푸로르 님과 윈스톤 님의 옷 치수를 미리 적어서 준비해 주시고···. 시온 님께서 오늘 입으셨던 옷은 반납해야 하니까, 그것도 같이 챙겨서···. 그리고 세르펜스 님께서 입으셨던 건 가지셔도 됩니다. 쓸모는 없겠지만···. 반납할 필요도 없어서···. 그렇다고 멀쩡한 옷을 버리는 건 낭비니까···. }
옷을 다 갈아입었다는 리에나의 말이 들리고 난 후.
처음으로 통신기 너머에서 테일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불필요한 말이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지만, 아무튼 빨리 옷을 갈아입고 잘 포장해 놓고 기다리란 소리였다.
이제 곧 통신을 끊을 것 같으니, 나도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가야겠다.
“언니, 언니! 빨리 보고시포요~!”
{ 응, 나도 그래. 금방 갈 테니까, 일행들이랑 잘 기다리고 있어. 그럼 이따 봐~. }
“웅~, 알았또~!”
나는 아니마의 혀 짧은 소리를 뒤로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 * *
방을 더 빌려서 여관에서 하룻밤 묵은 후.
우리 아홉 명은 동이 트기 전에 몰래 도시를 빠져나왔다.
참고로 테일러는 어젯밤 에드나와 리에나를 데려다 주고, 윈스톤과 푸로르의 옷 치수를 적은 종이랑 내가 입었던 옷을 챙긴 뒤.
내가 어제 타고 다녔던 마차를 타고 라빌루츠 령으로 향했다.
어차피 라빌루츠 남작이 영지로 돌아간 척 마차를 돌려보내야 하니까.
옷을 반납하고 살롱용 의상 제작 의뢰도 요구할 겸 그대로 타고 간 것이다.
사실 옷 반납은 그냥 부가적인 거고, 주된 목적은 라빌루츠의 가문 이름으로 나와 세르펜스, 윈스톤의 살롱용 의상을 주문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라빌루츠 령에 방문한 다음에는 벤트리온 령으로 이동하겠지.
“그래서 어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깊은 숲길로 들어오자, 유지스가 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달라며 재촉했다.
다른 일행들도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가면 무도회에 나 혼자 간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나만 쳐다보는 거지?’
심지어는 함께 호흡을 맞춰 열연을 펼쳤던 에드나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 넘치는 일행들과 달리, ‘너 대체 왜 그랬던 거야? 어디 들어나 보자!’라고 말하는 듯 굉장히 매서운 눈길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찔끔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으흠!’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 모든 건 공깃밥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펠로 왕국은 무도회에서 밥 같은 것도 제공해? 그런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면 유명할 텐데, 왜 나는 처음 듣는 것 같지?”
“휴마누스, 아직도 절 모릅니까? 이만큼 알고 지냈으면, 누군가의 별명이겠거니 하고 눈치껏 때려 맞춰야죠.”
“선우야, 나도 노력은 하고 있어. 그런데 네가 너무 어려운 걸 어떡해? 알고 지내면 알고 지낼수록 더 불가사의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휴마누스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상에 나만큼 단순하고 알기 쉬운 사람이 어딨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살아온 세상이 달라서라고 할 수도 없는 게, ‘공깃밥’에 대해 의문을 가진 건 휴마누스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유독 휴마누스만 저렇게 애를 먹는 건 순전히 그의 눈치 문제다.
“유지스, 공깃밥이 뭐일 것 같아요?”
“다들 가면을 쓰고 있었을 테니까, 가면의 특징으로 사람을 구분하게 되겠죠? 그렇다면 공작새 깃털로 장식된 가면을 쓴, 밥···. 밥···, 바보?”
“아이고,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이 세상에서는 밥맛없다는 표현을 안 쓰니까, 얼추 다 맞춘 셈이네요!”
나는 훌륭하다는 의미로 유지스에게 짝짝짝 박수를 보내며, 휴마누스를 향해 ‘이거 봐라. 너만 모르는 거.’ 라는 눈빛을 보냈다.
내 눈빛의 의미를 눈치챈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내 표정이 아니꼬웠던 건지, 휴마누스가 불퉁하게 인상을 구겼다.
“그걸 맞추는 유지스가 대단한 거지!”
“사실 저도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맞출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랐어요.”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대충 맞장구를 쳐 주자 휴마누스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휴마누스는 내가 어렵다고 했지만, 내게 휴마누스는 너무 쉬운 사람이었다.
삐친 사람도 잘 달래 놓았으니 이제 다시 얘기를 시작해야겠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문제의 시작은 공깃밥 그놈입니다. 놈이 제게 접근하는 바람에 모든 게 다 틀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