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화(8/1105)
8회
2. 공작님의 보좌관 (5)
‘이 인간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설마하니 내가 모질게 대해지고, 멸시받는 걸 즐기는 부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의 말을 해석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런 탓에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내가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듯했다.
“괜찮습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취향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으음···. 말하기 힘드셨을 텐데,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가 대자대비한 미소를 한껏 머금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그런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지 마! 차라리 모멸 찬 시선···으로···.’
아···.
입 밖으로 내뱉었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뻔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그 오해는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얼추 풀어낼 수 있었다.
혹시 몰라서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그에게 몇 번이나 아니라고 얘기했다. 결국, 그로부터 오해해서 죄송했다는 사과까지 듣고 나서야 마음 놓고 퇴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냥 거짓으로 인정하고, 막 대해달라고 했으면 세르펜스의 본성을 끄집어낼 수 있지 않았으려나? 그랬다면 좀 더 친해지기 쉬워졌을 것 같은데.’
아니다. 나를 막 대하는 세르펜스라니?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무서운 것도 무서운 거지만, 그보다 나 자신의 존엄성을 소중히 하자.
‘그러고 보니 한스가 내 방 위치를 알려준다고 했었지?’
오늘 아침 세르펜스가 마차에서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랐다. 잠깐 만나서 방 위치만 알아두고 돌아가야지.
“보좌관님!”
집무실을 나선 지 열 걸음도 채 안 되어,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웠다. 아까 식당에서 본 시종 중 하나다.
이름이 잭 페르단테랬던가? 아까 가장 열성적으로 세르펜스의 찬양을 해대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억하고 있다.
“네, 어쩐 일이십니까?”
“집사님이 보좌관님께 방을 안내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시종을 올려보낸 듯했다. 나이 많은 시종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마침 잘 되었다.
가는 동안 세르펜스에 관해 물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잭은 공작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던데. 일한 지 오래되셨나 봐요?”
“어릴 때 들어와서 햇수로 따지자면 6년째입니다.”
지금은 21살로, 그의 아버지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프라시더스 공작가에서 일했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께 이것저것 들은 게 많다나? 나이스!
“앞으로 공작님을 모셔야 할 텐데,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답이 돌아온다.
이유인즉슨, 공작님은 몹시나 자비로워서 큰 실례만 아니라면 별 탈 없이 용서해준다고 했다.
‘크게 실수하면 공작님이 용서해도 집사님이 용서하지 않으신다나?’
오해긴 했지만 이상한 취향에도 응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마당에,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좋아하거나 싫어하시는 건 없으십니까? 책이나 음식이나, 취미든 뭐든!”
“딱히 없으십니다.”
그게 인간이냐?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어 그를 빤히 바라보자, 자신이 말하고도 뭔가 이상했는지 하하 웃는다.
“하지만 공작님이시잖습니까.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좋아하는 걸 따지고 들자면···.”
“그렇다면?”
“만물을 평등하게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게 과연 인간인가?
‘아, 안 되겠어···. 이 사람 머릿속에선 이미 세르펜스의 신격화가 완료되어 있음이 분명해!’
거룩하신 그 뜻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저 표정을 보아라.
저 정도면 세르펜스가 악마 편에 붙었을 때,
“지금의 인간들이 썩었기 때문에 그분께서 인류를 버리신 것이다! 이대로 대륙의 파멸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라 외치며, 신흥 종교를 창시했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친한 사람도 없으시겠군요···.”
“그건···.”
“있습니까?!”
아니, 세르펜스랑 친한 사람이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사람이지?
“황태자님과 친하십니다.”
“···아.”
그 일방적인 관계요? 나도 알아요, 책에서 다 봤어요.
세르펜스는 휴마누스를 그저 귀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싫어했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세르펜스를 가장 친한 벗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둘의 나이가 동갑이고 황태자인 자신에게 꿇릴만한 작위가 아니라는 점이라던가.
그 외에도 짊어진 무게감에서 오는 동질감도 컸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따로 있다.
‘세르펜스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한다는 것.’
황태자라는 사실 때문에 모두 타인과 자신을 다르게 대했으나, 세르펜스만은 모든 이들을 같게 대했다.
그래서 그는 세르펜스와 누구보다 친해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줄어들지 않는 거리감을 사무치리만큼 느꼈다.
세르펜스의 심장을 겨누고, 끝내 꿰뚫었던 그 날까지도.
『
“세피!! 어째서, 어째서 네가···?”
휴마누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검이 한때 그의 친구였던. 아니, 친구라고 믿었던 자의 심장을 겨누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더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진 세르펜스가 그를 비웃었다.
한때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던 맑은 청은 색의 머리칼이, 마왕의 힘을 흡수한 탓에 탁하고 더러운 잿빛으로 전락했다.
바람에 살랑이며 공중을 수놓았던 그것이, 이제는 검붉은 피로 덩어리져 아무렇게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분명히 쓰러진 것은 그 일진데.
어째서 이렇게 처참하고 간절한 건 자신일까.
“혹시···. 그래, 혹시 마왕의 손에 대륙이 유린당할까 봐. 네가 대신 막아준 거지? 그런 거지?”
세르펜스의 검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휴마누스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메마른 얼굴로.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어서 그렇다고 말해! 어째서, 어째서야? 너는···. 세피 너는 대륙을 사랑했잖아! 프라시더스 공작가도! 제국도! 넌 그 모든 것을 사랑했잖아!”
“······.”
“우린 친구잖아···? 아니, 날 친구라 생각···해?”
“······.”
아무 대답도 없다.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어! 그게 아니라면···! 정 못하겠거든 어서 죽여달라 소리쳐!! 이대로 자신을 놓아준다면 대륙을 완전히 멸망시킬 거라 협박해!!”
“선택하십시오.”
자신의 친우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본심을. 생각을. 그 어떤 것도.
단 한 조각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휴마누스는 ‘이자’가 정말 자신이 알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세피···. 아니, 세르펜스. 당신은 누구지?”
“······.”
검을 쥐고 있던 손에 천천히 힘을 가했다.
검 끝을 타고, ‘그자’의 살갗을 가르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수많은 마물들을. 악마들을. 인간들을.
그들을 베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섬뜩한 감각에 검을 놓칠 뻔했다.
검 끝이 떨리자 굳게 닫혀있던 그자의 입술 사이로 쿨럭-하고 피가 섞인 기침이 터져 나온다.
이윽고 성검이 마기로 물든 그자의 심장에 닿았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자신의 그 무엇도 그자의 심장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성검이 그자의 육체를 완전하게 꿰뚫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난 기분이다.
』
휴마누스는 최후의 최후까지 그를 친구라 여겼지만, 자신이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그를 놓아버렸다.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세르펜스는 끝까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지.’
어째서 성자로 추앙받던 그가 암흑가 따위에 손을 댄 것인지.
왜 그가 인류의 적으로 돌아섰는지. 마왕의 힘을 거둬 집어삼킨 이유까지.
그의 행동 원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단지 그가 죽고 난 이후.
세르펜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상을 통해, ‘이런 이유로 이러저러한 게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추측하건대.’
그 최후의 순간.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게 선의를 요구하고 애정을 호소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최종적으로 대륙은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지 몰라도, 휴마누스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죽이는 대신, 오랜 벗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그런 끝을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보좌관님?”
“아, 죄송합니다. 제가 딴생각을 조금···.”
잭의 부름에 정신이 돌아왔다.
“하하, 괜찮습니다. 이 방을 보좌관님이 쓰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여긴 어디지? 정신을 놨더니 어떻게 도착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복도에 난 창밖의 높이를 보니 2층인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나가면서 아는 길이 나올 때까지 되짚어봐야겠다.
방문을 열어보니 깔끔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 넓이면 지금 시온의 자취방보다 크지 않나? 엄청난 호사다.
“오른쪽을 보시면 개인 욕실도 있으니, 언제든 편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내가 이 세계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은 세르펜스에게 방을 내달라고 한 것이다. 틀림없다.
“전 보좌관님이 쓰시던 방이라···. 깨끗이 청소한다고는 했는데,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왜 그런 찝찝한 방을! 빈방이 여기밖에 없나 했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냥 프라시더스가의 보좌관들이 대대로 쓰던 방이라···.”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써야지.
잭의 말에 따르면 1층에는 한스의 방도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내 방 바로 아래다.
아까 공작님은 넘어가도 집사님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얘길 생각하면 좀 깐깐한 양반이려나?
층간 소음에 유의해야겠다.
“그럼 이만 저는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방도 확인했으니 이제 돌아가 봐야겠다 생각하며, 잭에게 인사를 건넸다. 잭 또한 나에게 인사했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안가세요?”
“아니, 갈 건데···. 가긴 할 건데 말입니다.”
잠시 뜸 들이던 내가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다 말하니 잭의 표정이 썩었다.
오늘 아침 메모하던 내 모습을 바라보던 한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도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더랬지, 크흑-!
“···앞장설 테니 이번엔 잘 외워두십시오.”
세르펜스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잭이 딱딱한 표정과 말투로 말하며 앞장섰다.
‘이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잭, 당신은 대체 누구지?’
···라는 건 장난이다.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제대로 살폈다. 아는 길이 나왔을 즈음엔 잭의 태도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한 번 잭에게 인사를 건네고, 공작가를 뒤로 했다.
‘결국 오늘 알아낸 거라고는 자문회가 사실은 무투회였단 것. 프라시더스 공작저는 사실 세르펜스의 팬클럽 집단이라는 것. 겨우 이 정도인가?’
그 밖에는 세르펜스가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얽매이거나, 특별한 관심을 표한 적이 없다는 건데···.
‘···그런 사람이 존재할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