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0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02화(802/1105)
802회
83. 공작님과 가면 무도회 (14)
“진정하세요, 두 분. 에드나 님의 말에는 저 또한 동의해요. 하지만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돼요. 펠로 왕국의 1왕자가 악숭 세력과의 결탁을 목적으로, 8왕자를 가면 무도회에 출석시켰다는 증거는 아직 없잖아요.”
리에나가 은근슬쩍 ‘저도 펠로 왕국의 1왕자를 개새끼라고 생각해요.’라는 의견을 피력하며 말했다.
순간 욱해서 1왕자를 비난하긴 했지만, 세르펜스도 아직 1왕자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나는 흥분했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생각했다.
‘그래.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예비 악숭이로 낙인찍을 수는 없지. 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악숭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게다가 1왕자가 공깃밥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두는 것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새롭게 왕위에 오른 자가 후환을 없애기 위해 경쟁하던 형제자매들을 전부 죽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니까.
후계자 경쟁에서 밀렸을 때 죽을 위험이 가장 큰 건 1왕자고, 1왕자가 죽으면 그를 도왔던 공깃밥은 그날로 제삿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고 들면 1왕자가 동생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돕고 있는 것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이 얘기인즉슨.
만약 1왕자가 고의로 악숭 살롱에 동생을 보낸 게 맞고 공깃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공깃밥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살롱에서 공깃밥을 만나면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대해야겠다.
“세르펜스, 보고는 그게 끝이야?”
“중요한 얘기는 끝났다.”
“초전자에 관한 건?”
“그렇지 않아도 이단 심문관에게 펠로 왕국 중앙 귀족들의 초상화를 구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초상화는 좀 못 미더운데···.”
바스툴 왕국에서 짝퉁펜스 초상화를 봤던 터라, 그것 가지고 사람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지 몹시 의심스러웠다.
그러한 내 생각을 전하자 세르펜스는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로도 못 찾겠거든, 내가 수도에 몰려 있는 귀족들의 저택에 잠입해서 직접 얼굴을 확인하면 그만이다.”
세르펜스가 비상식적인 얘기를 상식적인 척 내뱉었다.
너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해서, 나도 모르게 ‘그러게? 내가 왜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까?’라고 말할 뻔했다.
“귀찮게 뭐하러 그래? 초상화만으로 못 찾으면 냅둬. 어차피 초전자도 살롱에 참석한다니까, 살롱을 뒤엎으면 같이 딸려서 나오겠지. 가택 침입은 살롱에 놈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두자.”
“사실 나도 선우를 두고 혼자 멀리 다녀오는 건 내키지 않았다.”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 세르펜스가 사르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녀석이라면 미리 정보를 파악해두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할 줄 알았건만.
휴마누스를 비롯한 일행들과 함께이니, 내 안전을 걱정하느라 불안해져서 그런 건 아닐 테고.
그냥 나랑 떨어지는 게 싫은가 보다.
‘분리불안 때문에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 응석은 받아줘도 괜찮겠지?’
그리고 이런저런 변명을 꾸며내고 계략을 부려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것보다, 이렇게 솔직히 말하는 게 훨씬 낫다.
나는 앞으로도 녀석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녀석을 우쭈쭈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오구오구~, 우리 공작님! 그랬어요?”
걷는 도중이라 오랫동안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는 없었지만, 잠깐의 쓰다듬으로도 세르펜스는 만족해하며 헤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부러워졌는지, 아니마도 에드나에게 쓰다듬어 달라고 졸라서 원하던 결과를 얻어냈다.
‘가면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얘기했고, 리에나와 세르펜스의 보고도 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살롱 대본을 짜는 일인가?’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이번 연극의 총감독이자 사실상 메인 작가 역할도 겸하는 유지스를 쳐다보았다.
유지스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유지스가 한마디도 안 했네?’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걸까?
언제나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던 유지스가 저러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지스? 무슨 일 있어요?”
“있죠, 그것도 아주 큰 일이···.”
다행히도 주변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생각에 깊이 빠진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유지스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운 탓에, 안도보다는 긴장이 더 크게 느껴졌다.
설마 내가 놓친 것이 있는 걸까?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일···? 그게 뭔데요?”
“제가 여기 계신 분들보다 오래 살아오긴 했지만···. 저, 그쪽 취향에 관한 지식이 없어요! 그래서 에드나의 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건 비단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닐 테다.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 사이로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하는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긴장이 탁 풀려서 허무함마저 느껴졌다.
‘그, 그래. 대본은 중요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유지스의 마음이 아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애드리브가 난무하는 연극이라 할지라도, 지표가 되어주는 대본이 없으면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까.
나는 고뇌하는 창작자 유지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를 소개해 주기로 했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그라면 기본 지식 정도는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
“휴마누스, 유지스가 대본을 작성하는 데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대요.”
“응?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
“그쪽 지식에 관해 잘 알잖아요.”
“선우,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휴마누스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 말에는 부정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일행들은 이미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마누스의 반경 1m 거리 밖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것도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심지어 세르펜스 이 녀석은 나를 들고 이동했다.
놀라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함께 싸워온 동료인데 다들 너무하다.
나는 세르펜스의 팔을 툭툭 쳐서 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알죠. 휴마누스는 그런 취향이 아니라는 거. 설령 그런 취향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휴마누스를 멀리하지 않을 겁니다. 휴마누스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압적으로 구는 사람이 아니며, 저는 절대 그런 짓에 동의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저는 휴마누스를 믿는다는 얘기죠. 고마워하셔도 됩니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나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휴마누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내 행동에도 휴마누스의 구겨진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하나도 안 고마워! 그런 얘기를 그렇게 다정한 표정으로 하니까, 다들 진짜로 내가 그런 취향인 줄 알잖아!”
“앞에 ‘설령’이라고 말했잖아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취향이 아니라는 거 안다니까요? 휴마누스는 그냥···. 음···. 그래요. 호기심이 왕성했던 것뿐이겠죠.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있으니까. 게다가 휴마누스는 갑갑한 황실에서 태어났으니, 가끔 일탈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냥 지식을 습득하는 정도로만 그치다니 정말 장해요.”
“어째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야?! 나 진짜 그런 거 몰라! 찾아본 적도 없어!”
명명백백한 정황 증거가 있거늘, 휴마누스가 계속 발뺌했다.
세르펜스는 ‘그런 취향’에 관한 얘기를 휴마누스에게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숨겨진 지하실에서 내가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며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녀석은 이제 자신을 방치할 거냐고 물었다.
‘휴마누스가 알려준 게 아니라면, 세르펜스가 방치플 따위를 어떻게 알겠어?!’
두족류 손질 방법을 몰라서 고생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세르펜스라고 세상 모든 지식을 꿰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은 필시 세르펜스에게 ‘완벽한 귀족으로서의 소양’과 ‘성검의 주인으로서 악숭 세력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만 가르쳤을 터.
세르펜스에게 그런 쪽의 지식을 알려줄 만한 인물은 휴마누스가 유일하다.
휴마누스가 알려준 게 아니라면 직접 조사를 해 봤다는 뜻이 되는데, 이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전대 공작의 교육을 가장한 학대 커리큘럼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와중에?
순진하고 순수한 세르펜스가 ‘그런 취향’에 관해 조사한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라.
의심의 여지는 없다. 범인은 휴마누스가 분명하다.
“민망한 건 알겠지만, 협조 좀 합시다. 유지스가 대본 쓰는데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잖아요.”
“선우야···,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진짜 모른다니까?”
“세르펜스에게 다 들었어요. 휴마누스가 자신에게 그런 취향에 관해 가르쳐 줬다고.”
내 말에 휴마누스가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표정에 떠오른 억울한 감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성검 때문에 그를 연기자로 데뷔시킬 수 없다는 게 통탄스러울 정도다.
“에스피 영애와 카놀라 영식에 관한 일화를 얘기하며, 이 세상에는 때리고 맞는 행위를 통해 애정을 주고받는 이들이 존재한다고···. 제게 말씀하셨잖습니까.”
“아! 그 사건! 엄청 유명했지. 시녀들이 떠들고 다니는 걸 듣고···, 너에게 말해주긴 했는데···. 그래도 그건 그냥 떠도는 소문을 전달한 것뿐이잖아! 자세히는 안 알아봤어!!”
세르펜스의 말에 휴마누스가 무심코 동조했다가, 싸늘해지는 주변의 반응에 서둘러 말을 바꿨다.
아무래도 끝까지 잡아뗄 생각인가 보다.
어쩔 수 없으니 휴마누스에게 자문하는 건 포기해야겠다.
“뭐···, 그래요. 그렇다고 쳐 줄게요. 하기야 동성만 있는 자리도 아니고, 이성도 많은데 그렇고 그런 취향 얘기를 솔직히 하기는 껄끄럽겠죠. 황태자이자 성검의 주인으로서 휴마누스의 체면도 있을 테고···.”
“가면 무도회용 대본을 짰을 때처럼, 이단 심문관에게 관련 자료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어떨까 한다.”
자신에게 이상한 지식을 주입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챙기는 걸까?
일행들이 휴마누스를 몰아세우기라도 할까 걱정되었는지,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리며 의견을 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이긴 하다.
“성직자인 테일러에게 자꾸 이상한 서적을 구해다 달라고 하기 뭐해서, 어지간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역시 그 수밖에 없겠죠?”
“말은 바로 해야지. 이전에 우리가 그 이단 심문관에게 요구했던 건 어디까지나 연애 서적이었다. 이상한 외설 서적이 아니라.”
“그것도 그렇네요.”
세르펜스의 말이 옳았다.
이상한 19금 소설을 구해온 건 테일러의 잘못이지, 우리의 요구 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자는 우리와 함께 가면 무도회에 다녀왔잖은가? 사정을 이해하고 있을 터이니, 별말 없이 관련 서적을 구해다 줄 거다.”
“그렇겠죠.”
“그리고 기왕 그런 서적을 구할 거라면, 벤트리온 가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게 좋겠지.”
대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는 것조차 인물 설정과 엮어버리다니.
역시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연기와 함께 살아온 자답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세르펜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세르펜스···. 우리 벤트리온 자작 부인에게는 무슨 보상을 해 주는 게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