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0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09화(809/1105)
809회
84. 공작님과 살롱 (7)
나는 어떻게든 공깃밥···. 아니지? 공깃 가면을 벗어버렸으니, 이제 공깃은 빼고 그냥 밥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나는 어떻게든 밥뿐만이 아니라 밥시종과 밥기사까지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신경 써 주고 있었는데.
“이건 배신입니다! 가면 무도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제게 먼저 친구 하자고 제의해 주셨잖습니까? 저는 그때 저하를 시작으로 인맥을 넓혀나가며, 사업 투자금을 유치하고 승승장구하며 대부호가 되는 꿈까지 꿨는데···! 왕자 저하께 우정이란 이리도 얄팍한 감정이었습니까? 가면 무도회에서도 그러시더니, 어떻게 두 번이나 저를 배신할 수가 있어요?!”
“너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알만한 분이 뭔 소립니까? 귀족들 사이에서 친구란 결국 사업 파트너일 뿐이잖아요. 그래서 왕자 저하도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사람만 골라 사귀셨으면서.”
“······.”
내 지적에 본인의 교우 관계를 되돌아보며 인생을 헛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밥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러다가 주먹을 꽉 쥐고 결의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래, 난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지. 비정한 왕실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이곳을 탈출해야겠어. 나는 악마 숭배 세력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 온 게 아니니까.”
자못 비장하게 말했지만, 아무튼 자신은 도망가야겠다는 뜻이었다.
“누구는 악마 숭배 세력에게 이용당하려고 개처럼 짖기까지 한 줄 아십니까?! 저도 아등바등 살았다고요!”
“너를 완전히 버리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탈출에 성공하면 왕실의 기사들을 동원하여 반드시 구해주겠다. 당연히 신전에도 신고할 거고. 그때까지 저들의 사상에 감화되지 말고 버텨라.”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어차피 너는 개가 될 생각이었으니, 조련 같은 걸 당해도 상관없잖아? 나는 그런 거 절대 못 견뎌!”
뭐, 그럴 것 같긴 하다. 밥은 자신의 욕망으로 ‘생존’을 꼽았으니까.
고문을 당하다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바로 악숭 세력에 붙을 것 같다.
심지어는 본인도 그것을 잘 아는 듯하다.
악숭 세력에게 붙잡히면 그들에게 이용당할 거라고 확신한다는 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을 의사가 전혀 없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악마를 1층으로 불러들일지 대충 방향성이 잡혔다.
“상관이 없기는 왜 없습니까?! 저는 누님만의 개가 될 생각이었지, 악마 숭배 세력의 개가 되는 건 계산에 없었다고요! 사상과 신앙을 강제로 바꾸기 위한, 중대한 임무를 신입인 누님에게 온전히 맡길 리가 없잖습니까? 누님이 저를 조련하는 동안, 다 같이 지켜보며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겠죠! 지금 저더러 다수의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상태로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하라는 겁니까?!”
“그렇다고 둘이서 함께 그런 짓을 당할 수는 없잖은가?”
“왜 없어요? 혼자보단 둘이 외롭지 않고 더 좋을 것 같은데?”
내 발언이 악숭 귀족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린 걸까?
여기저기서 ‘어머···!’라든가 ‘오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별다른 말없이 감탄사만 내뱉었을 뿐인데도, 그들이 몹시나 솔깃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절대로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이다.
그래도 밥은 내가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우리 둘 다 붙잡히면 구조 요청은 누가 하고?”
“그래서 혼자 도망가시겠다? 와, 이기적인 거 봐! 완전 악마 숭배자 체질이시네! 이 기회에 그냥 개종하시는 게 어때요?”
“어떻게 그렇게 심한 욕을 할 수가!”
“진짜 체질에 맞으시는 것 같아서 권유한 겁니다.”
나는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밥이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러자 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악숭 체질이 부끄러워졌나 보다. 아니면 욕을 먹어서 화가 난 거든가.
“그렇게 따지자면 너는 어떻고? 조국의 안녕을 위해서든,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서든. 나를 탈출시키는 것이 합리적이거늘, 혼자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할 수 없다며 나를 붙들고 늘어지고 있잖은가? 너야말로 악마 숭배자가 되기에 적합한 것 아니냐?”
“어떻게 그런 말을···!”
나는 밥에게 화를 내는 척하다가 고의로 멈칫했다.
그다음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잠깐 생각에 잠긴 것처럼 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어···.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뭐?”
“저희가 악마 숭배자가 체질이라면 그냥 악마 숭배자가 되면 되잖아요. 그런데 뭐하러 반항을 해서 몹쓸 짓을 당해야 합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 왕자 저하 그렇고 그런 취향이죠?”
“이런 상황에서 그딴 농담을 해야겠어?!”
“농담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절대 아니야!!”
억울해 미치겠다는 듯, 밥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꽥 질렀다.
악숭이들에게 둘러싸인 이 상황에서 한가롭게 취향 변호나 하고 있다니. 참 태평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마는 거지 왜 화를 내고 난리람? 아무튼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이렇게까지 겁먹고 도망가려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는 저자들이 어째서 악마를 숭배하는지, 마왕이 정말 마신이 된 건지, 이 살롱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악마 숭배 세력은 어떤 단체인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런 건 세간에 퍼진 이야기만 들어도···.”
“저 사람들은 그 얘기를 못 들어서 악마 숭배자가 된 것 같습니까?”
“이단이 될만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얘기를 듣고도 악마를 숭배하길 택한 거겠지.”
“그것도 그렇네요. 하지만 우리도 악마 숭배가 적성에 잘 맞을지도 모르잖아요.”
내 말에 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계속 ‘너, 너어···. 너···!’ 하고 말을 더듬으며 나를 삿대질 하는데, 아무래도 황당함이 지나쳐 말문이 막혀버린 모양이다.
버퍼링에 걸린 듯한 밥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는 우리를 포위한 악숭이들을 죽 둘러보며 말했다.
“저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니까, 우선 일일 체험을 신청하겠습니다! 평소 여러분께서 살롱에 모여서 뭘 하는지 구경하게 해 주세요!”
“너, 너···! 어느 가문의 누구야! 당장 가면 벗어 봐!”
“제가 미쳤다고 지금 왕자 저하 앞에서 가면을 벗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한 공범자가 되기 전까지는 싫어요!”
악숭이들에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밥의 버퍼링이 끝나버렸다.
나는 손으로 가면을 단단히 붙잡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가면을 사수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 이이···! 악마 숭배자 같으니!”
“아직은 아니니까 앞에 ‘예비’를 붙여주세요!”
“미친 또라이 새끼!”
“그건 부정 못 하겠지만, 지적은 하겠습니다! 말 곱게 쓰세요. 왕족씩이나 되어서 말본새가 그게 뭡니까? 평소에 질 나쁜 친구들이랑만 어울리니까 그렇죠! 이제라도 저처럼 쓴소리도 하는 좋은 친구를 사귀는 걸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이 양심 없는 놈! 쓰레기! 예비 악마 숭배자!”
예비를 앞에 붙여달라고 내가 말하긴 했지만, 진짜로 붙여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건만.
말을 참 잘 듣는구나 싶다.
“그래서 왕자 저하는 예비 악마 숭배자 안 할 겁니까? 그럼 오늘 일일 체험할 때, 왕자 저하께서 조련 당하시는 걸 구경하게 되려나?”
“자, 잠깐만!”
“왜요?”
“그게···. 생각이 바뀌었어. 일단 나도 좀···, 지켜보고 나서 판단할래.”
밥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굴러가는 건 눈동자뿐만이 아니라 두뇌도 마찬가지겠지.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기사 하나만으로 퇴로를 뚫는 건 어려워 보이니까, 일단 지켜보다가 기회를 노릴 생각인가 보다.
여기까지는 내가 바라던 대로다.
이제 문제는 악숭이들이 우리의 일일 체험 신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인데···.
“저는 반대입니다. 한 번 도망가려고 했던 자들을 어떻게 믿고 그냥 둡니까?”
“맞아요! 마신 테네브리오 님의 뜻에 따르겠다며 우리를 속이고, 교단에 신고하러 갈지도 모르잖아요.”
“게다가 재미도 못 보고···. 왕족을 조련해 보고 싶은데···.”
마지막에 사심 가득한 발언을 한 자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둘은 나름대로 논리적인 이유를 내세웠다.
예상했던 바다.
앞서 기분을 맞춰주다가 도망가서 신고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일일 체험 따위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그래서 한 가지 안전장치를 걸어뒀지.’
그 안전장치란 바로. 악숭 무리에 자연스럽게 껴있는 에드나다.
내가 괜히 악숭 귀족들의 가학성을 자극하면서까지, 에드나가 내 조련을 맡게 될 거라는 얘기를 흘린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은 대본에 없었지만, 배우로서의 재능을 싹 틔우기 시작한 에드나라면 분명 잘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 저기···. 그, 그러니까 일일 체험을 시켜주는 게 더 X 같, 좋을 것 같아요.”
에드나가 ‘ㅎ’ 받침을 ‘ㅈ’으로 잘못 발음했다가, 실수를 깨닫고 발음을 고쳐서 다시 말했다.
악숭 귀족들의 시선이 에드나에게로 향했다.
공격적이고 경계를 띤 눈빛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다.
에드나가 자신들과 동류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고서야 저런 눈빛은 나올 수가 없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다가, 끝끝내 기회를 잡지 못해서 절망한다거나···. 거짓말로 조련 당하는 걸 모면한 줄 알고 안심했는데···. 결국 그런 짓을 당하게 돼서, 공포에 질린다거나···. 그런 표정, 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에드나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에드나가 환희에 젖어서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그러게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신입분 말대로 하죠, 그게 더 즐거울 것 같아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저들이 거짓말을 하든 안 하든, 저희가 판단하기에 저들이 개종하지 않은 것 같다면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흐음···. 그러고 보니 테네브리오 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조련을 받더라도 진리를 깨닫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사제님의 가르침을 듣게 한 뒤에 조련을 시작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죠.”
먼저 나서서 반대 의견을 꺼냈던 세 악숭 귀족이 의견을 뒤집었고, 여론은 일일 체험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판을 깔아놓은 건 나지만, 악숭 귀족들을 설득한 건 오롯이 에드나의 공적이다.
한때는 일루미나티의 유일한 연기 구멍이던 에드나가 이렇게나 훌륭하게 성장하다니!
밀려드는 감동을 억누르고자 애쓰고 있는 그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저들을 전부 묶어두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기사들이 오러를 쓰지 못하도록, 마력 구속구를 채우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대로 무사히 넘어가는 건가 했건만. 악숭 귀족들 사이에서 최악의 의견이 나왔다.
고작 밧줄 따위로는 세르펜스를 제약할 수 없고 푸로르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다. 윈스톤은 오러를 못 써도 순수 근력이 장난 아니고.
그러니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나···.
‘저번에 지하실에서 그 누구도 세르펜스를 억압할 수 없다고 말해 두긴 했지만, 남이 밧줄로 묶으려고 들면 역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무섭겠지···?’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는 건 투기장에서 굴렀던 윈스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당시에 자신을 구해줬던 세르펜스가 곁에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다르다.
녀석은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당한 거니까.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묶어야 하나?’
세르펜스는 성검과 접촉 후, 내게 묶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지하실에서 손목에 수갑을 채울 때도 얌전히 있었고.
나라면 절대로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기에 안심할 수 있었던 거겠지.
하는 수 없이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일일 체험이니까, 제 시종은 제가 묶어보면 안 될까요?”
“주, 주인님?!”
세르펜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빛 속에서 작은 안도를 느낄 수 있었다.
내 판단이 옳았다는 증거다.
비록 나를 바라보는 푸로르와 리에나의 눈동자가 흔들리긴 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내 이미지 따위가 아니니까.’
우리 아이 정신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에드나는 베일을 쓰고 있어서 어떤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러는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나를 도와주었다.
“그···런 것도 괜찮겠네요. 직접 누군가를 묶어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묶일지 상상하고···. 그다음에 묶이면···, 더 부끄럽겠죠!”
“어째서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해 봤을까요?! 대단해요!”
“오오! 저도 나중에 꼭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정말 대단한 신입이 들어왔군요!”
악숭 귀족들이 에드나를 향해 찬사를 쏟아냈다.
열심히 책을 읽으며 그런 취향에 관해 예습해 둔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