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1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16화(816/1105)
816회
84. 공작님과 살롱 (14)
“우리는 당신을 예비 신입으로 받아들여 줬는데, 감히 악마님께 반기를 들다니!”
“이 배신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악숭 귀족들이 팔팔 뛰며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댔다.
전투는 기사들에게 맡겨놓고 뒤에 물러서 있는 주제에 나불나불 입만 살았다.
악마가 나를 죽이려고 한 걸 빤히 봤으면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그럼 나더러 얌전히 목을 내놓고 죽으라는 건가?
반박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윈스톤에게 들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느라 아공간 주머니의 입구를 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자칫 실수로 아공간 주머니를 놓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대참사다.
“바로 무기를 꺼내줄 테니까 조금만 버텨 봐요!”
“내 검은 나중에 꺼내도 괜찮소. 그보다···, 큭!”
오러를 두른 악숭 기사의 주먹을 피하느라 윈스톤의 말이 끊겼다.
그래도 윈스톤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파악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악마와 싸우는 세르펜스에게 무기를 건네주고, 자동 방어 기능이 있는 세니어를 꺼내어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겠지.’
기습으로 악마의 당황을 이끌어 낸 것도 잠시뿐.
어느새 상대방에게 쫓기며 거리를 벌리고자 애쓰는 쪽은 세르펜스가 되어 있었다.
잠시 눈을 뗀 그 짧은 시간 만에 형세가 뒤집혀버린 거다.
나는 겨우겨우 세르펜스의 검을 꺼내어 윈스톤에게 넘겼고, 윈스톤은 그걸 바로 세르펜스에게 던졌다.
악마가 날아오는 검을 쳐내려 했으나, 세르펜스는 용케도 놈을 저지하고 검 손잡이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악마의 손톱에 스쳐 녀석의 가면에 금이 가고 말았지만.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무기와 가면을 교환했다고 생각하면 남는 장사다.
나는 안도하며 서둘러 세니어를 꺼냈다.
갑자기 생겨난 신성 결계가 나와 윈스톤을 감싸자, 사방팔방에서 윈스톤을 압박해오던 악숭 기사들이 당황스러워했다.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윈스톤의 검을 꺼내어 그에게 건넨 뒤.
다시 세르펜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니어의 버프를 받아 동체 시력이 향상되어, 바쁘게 움직이는 녀석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지금은 검을 든 덕분에 악마의 손톱을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었으나, 무기 없이 싸우는 동안 악마의 공격을 여러 번 허용한 것일까?
옷 이곳저곳이 찢긴 상태였다.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찢어진 옷이 벌어져, 그 사이로 붉은 핏자국이 번진 하얀 살결이 얼핏얼핏 보였다.
녀석이 입고 있는 게 흰옷이었다면 붉은 피로 얼룩져서 금방 티가 났을 텐데.
하필 드레스 코드 때문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서 눈치채는 게 늦었다.
그래도 상처는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치료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 기운은···, 성검의 주인이 다가오고 있는 건가?!”
여유롭게 세르펜스를 몰아붙이던 악마가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했다.
에드나가 아니마에게 연락해서 빨리 휴마누스와 이곳으로 와 달라고 얘기한 모양이다.
나는 슬쩍 곁눈질로 에드나의 동태를 살폈다.
상황 중계라도 하는 건지, 에드나는 법숭이가 펼친 방음막 안에서 브로치 형태의 통신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푸로르는 밥 트리오를 방음막 근처로 옮기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악숭 시종들이 옆에서 도움을 주었다.
밥은 악숭 세력이 펠로 왕국을 집어삼키기 위한 단초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는 줄 아는가 보다.
‘에드나가 성검의 주인을 불러들였다는 것도 모르고···.’
내심 밥 트리오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놓았다.
그러던 그때, 나를 들고 있던 윈스톤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악마의 손톱이 세르펜스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지는 모습을 목도한 까닭이다.
반사적으로 녀석을 돕고자 튀어 나가려다가, 마력 구속구를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한 거겠지.
오러도 못 쓰는 상태로 악마와의 싸움에 참전해 봤자 짐만 될 뿐이니까.
다행히도 세르펜스는 뒤로 크게 물러나며, 누구의 도움 없이 악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하지만 금이 가서 내구도가 간당간당했던 가면은 지척에서 휘둘러진 손톱이 만들어낸, 작은 충격파조차 견디지 못했다.
가면이 쩍 하고 쪼개지더니, 그 조각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세르펜스의 고운 얼굴이 드러나자 악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력 수준을 보고 설마설마했건만. 때마침 성검의 주인이 다가오는 것 하며, 그런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는 인간은 흔치 않을 테니···. 네놈이 바로 그 프라시더스구나!”
“······.”
악마의 말에 세르펜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신성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려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염색약의 마력이 신성력에 밀려나며 세르펜스의 머리카락이 청은색으로 돌아왔고, 악마는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여유롭게 녀석의 검을 피했다.
그러다가 돌연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덜컥 동작을 멈췄다.
“잠깐만···. 네놈이 프라시더스라는 건, 목덜미를 물어 달라며 감히 나를 희롱했던 변태 놈은···. 설마 신 룩스메아의 사자였나···?”
이번에도 세르펜스는 악마의 말을 무시하며, 우두커니 서서 나를 쳐다보는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대로 큰 부상이라도 당하면 좋을 텐데.
악마는 빠르게 제정신을 되찾고 손톱을 휘둘러, 신성력 가득한 세르펜스의 검을 튕겨내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신의 사자여! 내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덜미든 어디든 원하는 대로 물어 주겠다! 그러니 이 자와 함께 신 룩스메아를 등지고, 마신 테네브리오 님을 모실 생각은 없는가?”
“나는 남에게 물리는 취향 따위 없거든?!”
“그런데 아까는 왜···.”
“그냥 세르펜스가 기습하기 좋게 그쪽을 유인하려고 아무 말이나 한 게 당연하잖아!”
“거짓말은 그만두고 욕망에 솔직해지거라! 기대가 박살 났으니 책임져 달라고 말했을 때, 나는 네 진심을 느꼈다!”
악마의 말에 세르펜스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악마 따위가 하는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해를 사기 전에 빨리 해명에 나서야겠다.
나는 가면을 벗어 던지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심은 진심인데, 물리지 못해서 아쉽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거든?! 악마가 내 피를 마시려고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 순간, 세르펜스가 놈에게 기습을 가하는 걸 기대했는데 악마 놈이 자꾸 빼니까 답답해서···!”
“아까는 정체를 들킬까 봐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애초에 악마를 도발하면 안 되잖은가! 그러다 정말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거지?”
“그야, 세르펜스가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믿고 있다는 내 대답에 세르펜스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가 도로 엄격하게 굳었다.
그런 입에 발린 말에 누가 넘어갈 줄 아느냐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혼낼 거리가 있거든?! 아까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변성력 축복에 당해보고 싶다고 한 거야?!”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적의 새로운 능력을 파악해 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잖은가?”
“만약 무슨 부작용 같은 거라도 있으면 어쩔 건데!”
“부작용이 있더라도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다.”
“변성력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면서 그걸 어떻게 확신해?!”
“으, 으음···.”
변성력에 부작용이 있는지도 모르고, 만약 부작용이 있더라도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 또한 모른다.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다면 괜한 위험은 무릅쓰지 않는 게 낫다는 내 의견에 명분이 있다.
그 결과 세르펜스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다물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녀석을 한바탕 혼내주고 싶었지만, 시도하기 전에 내 허락을 구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사서 이번만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훈계하려는 그때.
악마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검의 주인이 올 때까지, 나를 붙잡아 두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 작정인가?”
그런 생각이 없잖아 있었지만, 대놓고 긍정하기는 뭐해서 나와 세르펜스는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침묵하는 우리 둘을 보며 악마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었다.
시간 끌기 작전을 눈치채 놓고도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조용히 구경만 하다니.
강자의 여유가 느껴져서 긴장되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잠입한 듯한데, 성검의 주인을 떼어놓고 왔다는 건 내가 도망이라도 칠 줄 알았나 봐?”
“같이 왔어도 도망 안 쳤을 거야?”
“작전상 후퇴는 했겠지.”
미친 뻔뻔함이다.
악마의 발언에 어처구니가 집을 나갈 뻔했으나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지금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고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다는 건, 휴마누스가 오기 전에 세르펜스를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느긋함일 테니까.
아직 에드나와 푸로르와 리에나는 신입 악숭이인 척하는 중이고, 기척을 숨긴 유지스와 테일러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악마가 우리의 전력을 오판하여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악마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건 세르펜스 뿐이고 나머지는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세르펜스가 패배하는 순간 우리는 악마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성검의 주인이 도착했을 때 네놈들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면 꽤 볼만한 표정을 짓겠지? 때를 맞춰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이런 위험한 작전을 짰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좌절하려나? 크크큭!”
악마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그리 말하며, 다리를 살짝 굽혀 자세를 낮추고 손톱을 세웠다.
금방이라도 세르펜스를 향해 달려들 기세다.
그에 세르펜스는 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얼굴에 긴장이 역력한 거로 보아, 가짜 흡혈귀 악마가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강한 편인가 보다.
“아무리 시간을 끄는 목적이라고는 하나,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오만하고 어리석구나. 하긴 성검도 없이 이만한 실력을 갖췄으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할 만도 하지. 성검의 주인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가볍게 놀아주는 건 이제 끝이다. 각오 단단히 해라.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탁, 악마가 바닥을 박차 순식간에 세르펜스와 거리를 바짝 좁혔다.
마치 탄환이 쏘아져 날아가는 듯한 움직임이다.
그때 ‘쨍-!’ 하는 맑은소리가 울리더니 에드나를 감싼 흑마력 방음막이 깨졌다.
그와 동시에 ‘촤르륵-!’ 하고 커튼이 걷혔으며, 창문도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전투가 시작되고, 에드나가 마법으로 창문을 여는 건 사전에 얘기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창문에 시선이 팔리지 않고, 악마와 세르펜스 사이에 내리꽂히는 푸른 마력의 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악마의 정수리를 꿰뚫을 생각으로 에드나가 예측 샷을 날린 모양이다.
창문을 여는 게 늦다 싶더니, 기습까지 덤으로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그 공격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막혀버렸다.
그저 패션이라고 생각했던 악마의 망토가 진득한 액체처럼 꿀렁꿀렁 움직여, 방패처럼 놈의 머리 위를 덮어버렸다.
마력의 창은 망토에 가로막혀 버렸고 악마는 그대로 세르펜스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