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1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19화(819/1105)
819회
84. 공작님과 살롱 (17)
“아까운 내 피!!”
악마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치며 세르펜스를 멀리 밀쳐냈다.
세르펜스가 비틀거리는 사이, 성수병 주변을 제외한 나머지 피들이 솟구치더니 악마에게로 몰려들었다.
성수가 더 섞여들기 전에 피를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밥 트리오가 열심히 성수병을 던져준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넓은 면적의 피가 바닥에 남아있었다.
그만큼 피를 흡수하지 못한 게 원통했던 걸까?
어찌나 알뜰살뜰하게 피를 긁어모아 갔는지, 성수가 뿌려지지 않은 부분의 카펫은 피 얼룩은커녕 물기 하나 없이 보송보송했다.
“세 분 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자, 잘한 겁니까···?”
내 칭찬에 밥 트리오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본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실감이 안 되나 보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저 악마 놈은 휴마누스가 거의 도착했을 즈음, 피를 모조리 흡수해서 그간 소모했던 힘을 단번에 회복한 뒤. 곧바로 세르펜스를 끝장내 버렸을 겁니다. 그래야 휴마누스가 더 충격을 받아서 제대로 싸울 수 없을 테니까요.”
“아! 그래서 피를 흡수하지 못하도록···.”
“네, 그렇습니다! 저 놈은 고위 악마라 성수를 직접 끼얹어 봤자 큰 피해를 줄 수는 없겠지만,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피에 성수가 섞여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일 테니까요. 성수를 뿌려놓으면 흡수하지 못할 줄 알았죠!”
나는 밥 트리오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제서야 밥 트리오의 얼굴에서 어리둥절한 기색이 사라지고 자부심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무서운 악마와 싸우는 데 한 몫 거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나 보다.
“내가 피를 흡수할 줄 알았다는 건 그렇다 칠 수 있지만,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것까지 간파했다고?!”
일부에 불과할지라도 피를 흡수하여 힘을 회복한 까닭일까?
일행들의 견제를 받으며 세르펜스와 싸우면서도 여유가 있는 건지, 악마가 밥 트리오와 내 대화를 엿듣고 반응했다.
그냥 무시할까 하다가, 잘하면 놈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
“다들 싸우는데 혼자서 구경이나 하며 멍하니 서 있을 수만은 없잖아? 전투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는 일행들을 대신해서 머리라도 굴려야지.”
윈스톤과 리에나와 대련을 하다가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건 전투 중에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것을 본능에 맡기고 몸이 가는 대로 검을 휘두르기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더라.
상대방이 어디를 노릴지 예측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따른 상대의 반응도 대비해야 했다.
내 공격에 적중했을 때, 공격을 막았을 때, 흘렸을 때, 피했을 때.
혹은 상대가 몸을 비틀어, 목표했던 지점이 아니라 다른 곳에 공격이 들어갔을 때.
그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며 몇 수 앞을 내다봐야만 했다.
‘그리고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한 번의 실수가 패배와 직결되니 더욱 맹렬히 머리를 굴려야 하지.’
대련만 해도 이러한데 생사가 걸린 전투라면, 긴장감으로 머리가 굳어서 더더욱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질 테다.
게다가 싸우다가 힘들다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체력 분배도 해야 하고.
“신의 사자로서의 역할은 끝났고, 그저 입만 살아서 남을 도발할 줄만 아는 괴상한 놈이라더니···. 싸울 능력도 없으면서 괜히 함께 다니는 게 아니었구나!”
“알고 있는 미래 지식을 다 전달한 건 맞지만, 나를 몇 번이나 스카우트하려던 주제에 평가가 너무 야박하네! 마왕이 나에 대해 그리 말하든?”
“그동안 모인 네 언행을 토대로 분석해서 나온 결론이다! 그리고 호칭을 똑바로 해라, 마왕이 아니라 마신 테네브리오 님이시다!”
나를 향해 열을 올리고 있음에도 악마는 여전히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틈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화풀이를 하느라 동작이 커져서 생긴 틈을 세르펜스가 노리고 검을 찔러 넣어도, 망토가 꿀렁거리며 움직여서 전부 막아버렸다.
‘저놈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예상했던 거지만, 역시나···.’
가볍게 놀아주는 건 끝이라며, 앞으로는 제대로 싸우겠다는 식으로 떠들어 댔던 건 페이크였나 보다.
바닥의 피를 전부 흡수하지 못했는데도 놈은 나와 대화를 나누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휴마누스가 도착하는 타이밍에 맞춰, 세르펜스를 죽인다는 계획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대화를 이었다.
“얼씨구?! 너희가 언제부터 마왕을 그렇게 불렀다고 그런 요구를 해?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악숭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너희 악마들도 마왕을 마왕이라 불렀잖아!”
“그, 그건···!”
정곡을 찔렸는지 악마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며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말싸움에 집중하느라, 여유롭게 흘러가는 전투 따위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르펜스가 놈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악마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급히 몸을 틀었으나 공격을 완전히 회피하지는 못했다.
세르펜스의 검은 놈의 흉통에 틀어박혔다.
놈이 ‘허억!’ 하고 들이마시는 숨에 바람 소리가 섞인 걸 보면, 심장은 꿰뚫지 못했어도 폐에 구멍이 난 듯하다.
악마 놈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에베베베, 할 말 없대요! 정곡 찔렸대요! 그래서 당황하느라 칼에 찔렸대요!’ 하고 실컷 놀려댔을 테다.
하지만 놈은 아직 본 실력을 내지 않았다. 괜히 자극해서 좋을 건 없으니 조용히 있기로 했다.
“네놈들이 감히···!”
칼침을 놓은 건 세르펜스 하나인데, 어째서인가 악마는 복수의 인물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악마의 망토가 큰 폭으로 펄럭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피의 파도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리에나가 급히 결계를 펼쳐 우리 일행과 밥 트리오를 보호했다.
보나 마나 악마는 사제에게 치료를 받으려 할 텐데, 이래서야 기회를 틈타 사제를 처리하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멍하니 서서 결계 너머에서 꿀렁거리는 검붉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피가 압축되어 있던 거야···?’
살민숭들 외에 다른 악숭이들도 피를 제공했나 보다.
이 악마가 소환된 건 공국 전쟁 전이니까, 그때 사람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도 있을 테고.
“어···, 저 피에 휩쓸리면 죽겠죠? 죽으면 피가 나올 테고···.”
“죄송해요, 동시에 결계를 여러 개 펼치기에는 신성력이···.”
탓하려던 건 아니었건만.
밀려드는 피의 파도를 막아내느라 힘에 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안색을 한 리에나가 내게 사과를 했다.
“됐어요. 살민숭도 심민숭도 어차피 악숭하는 놈들이니까, 놈들을 구하지 못한 게 무슨 대수겠어요?”
“하지만 악마가 그들의 피를 흡수한다면···.”
“어차피 악마는 타이밍을 봐서 놈들의 피를 흡수할 예정이었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힘만으로 악마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놈은 일부러 우리를 봐주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상황만 봐도 알잖아요?”
“······.”
내 말에 리에나가 말없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잡았다.
속으로 룩스메아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나 보다.
그 기도가 무색하게도 피의 파도가 걷히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서 있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세르펜스는 결계를 펼쳐 무사한 듯했지만, 악숭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놈들은 미라처럼 바짝 마른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와중에도 성수와 섞인 피는 내버려 둔 걸 보니, 악숭이들 몸에 성수 주사를 놔주지 못한 것이 한스럽기까지 했다.
‘계속 피를 보고 있어서 그런가···? 속이 메스껍고, 몸이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세니어에서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춥고 식은땀이 났다.
“저하···! 괜찮으십, 크윽···!!”
밥기사가 자신의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무시하며 밥을 흔들어 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밥은 축 늘어진 채 눈을 감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밥시종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냥 컨디션 난조로 몸이 무거워진 게 아니었나 보다.
악마가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며 우리를 오시하고 있었다.
“커헉!”
갑자기 ‘퍽!’ 하는 타격음이 들려오더니 밥기사가 쓰러져버렸다.
아직 리에나가 결계를 걷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깜짝 놀랐으나, 범인은 윈스톤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윈스톤이 밥기사를 기절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버티기 힘들면 차라리 기절해 있는 편이 낫소.”
“···구속구를 풀어줬으면 함께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공연히 악마에게 피만 제공하는 꼴이오.”
밥기사가 들으면 슬퍼할 소리였으나 사실이다.
악마가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도 피를 토할 정도면, 전투 중에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 얘기 말고 서로 유언이라도 주고받는 게 더 생산적일 텐데?”
돌연 악마가 엄청난 존재감을 표출하며 주인공 일행을 몰아붙이지만, 결국에는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엑스트라 악당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해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계획이 바뀌었으니까. 네놈을 제외한 모두를 죽여버리고, 성검의 주인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네놈을 고문하며 기다리기로!”
“나를?! 대체 왜?!”
“그래야 너도 고통스럽고, 프라시더스도 절망하며 죽을 테니까!”
그렇게 외치며 악마가 멀찍이 서 있는 세르펜스를 향해 팔을 뻗었다.
망토가 꿀렁거리며 끝부분이 쐐기 모양으로 변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세르펜스를 향해 날아갔다.
– 콰앙!
세르펜스가 늦지 않게 결계를 펼쳐 막았다.
피에 마기까지 섞었는지 검붉은 쐐기에 검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그런 게 반복해서 결계를 내려치니,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불어넣어 결계를 복구하려 해도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악마의 행동을 저지하고자 밖에서 화살과 단검이 날아왔다.
하지만 망토의 일부분이 튀어나와 모조리 쳐냈다.
대체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얼른 지워버렸다.
“자기가 여유 부리며 장난치다가 다친 거면서! 얻다 대고 화풀이야?!”
“그런 소리를 하며 도발하면, 내가 너부터 죽여줄 거라고 생각하나? 크하하하! 거기서 계속 떨면서 내가 프라시더스 놈을 죽이는 모습이나 감상해라!”
“아,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까 놀리기라도 할걸! 그럼 그 순간만이라도 개운했을 텐데!”
“으하하하! 더 후회하고 좌절해라! 그리고 절망해라!”
악마가 미친 듯이 처 웃으며 세르펜스의 결계를 쾅쾅 내리찍었다.
쾌락에 젖어든 악마의 얼굴을 본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놈을 기쁘게 할 뿐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에드나 씨! 아니마에게 연락해서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 좀···. 아니, 빨리 와 달라고 재촉해 주세요!”
“네, 네!”
에드나가 언제 가슴에 달아놓은 건지 모를 브로치 형태의 통신기를 매만지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력석이 점멸하다가 파랗게 빛나며 아니마의 목소리를 뱉어냈다.
{ 언니? 무슨 일이야? 싸우는 중 아니었···. }
“빨리 와! 지금, 엄청 큰일이···.”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아니마의 목소리를 듣자 울컥한 건지, 에드나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그리고 악마의 웃음소리와 쾅쾅거리며 결계를 내리찍는 소리도 전달되고 있으니.
제아무리 휴마눈새라 하더라도 심각성을 눈치채고 더 속도를 낼 테다.
그래도 더 서두르라는 뜻을 전달하지 않고서는 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할 것 같다.
“휴마누스! 악마가 세르펜스를 죽이려는데, 너무 강해서 아무도 못 막아요!”
{ 지금 갈게. }
{ 으앗! 나, 나도 언니 구해야 하는데! }
아무래도 휴마누스가 아니마를 버려두고 혼자 튀어 나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