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2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21화(821/1105)
821회
85. 공작님과 성검 part.2 (1)
“에드나 씨. 밖에 계신 이단 심문관 님께서 안을 보지 못하도록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쳐 줄래요? 방음 마법도 펼쳐 주면 더 좋고요.”
“네, 네?! 아, 알겠어요.”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뜨자 에드나가 마법진을 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악마는 허공에 그려지는 마법진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휴마누스가 성검을 포기할 생각으로 신의 사자인 내게 사과를 건넸다고 착각한 걸 테다.
그리고 차마 이단 심문관이 보는 앞에서 악마에게 항복할 수 없어서, 에드나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뭐, 그래도 절반은 맞았다고 봐야 하나? 휴마누스가 성검을 손에서 놓기는 할 거니까.’
휴마누스가 내게 사과한 진짜 이유.
그건 세르펜스에게 성검을 건네줄 생각이기 때문이다.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바닥났다는 게 조금 걸리기는 하나, 성검에는 신성력 증폭 기능이 있다.
그러니 악마에게서 벗어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다.
‘문제는 어느 회차의 세르펜스가 튀어나오느냐, 이거지.’
기왕이면 성검펜스가 나와 줬으면 좋겠다.
한 번 경험해 봤으니까.
어떻게 녀석을 대해야 할지도 알고, 아주 어쩌면 저번에 나왔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타락펜스보다는 성검펜스가 성검을 더 잘 다루지 않겠어?’
더군다나 저번에 보았던 성검펜스의 신위를 떠올려 보면, 타락펜스보다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성검의 주인] 속 타락펜스는 항상 휴마누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의 세르펜스와 달리 각성 이벤트 같은 것도 겪지 않았을 테고.최종 결전 때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마왕의 힘을 가로챈 덕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연 타락펜스가 순순히 우리에게 협조해 줄까?’
현재 세르펜스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다른 회차의 인격이 나온다고 해서 신성력과 체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니, 여차하면 휴마누스가 강제로 성검을 뺏으면 그만이다.
하나 악마를 눈앞에 두고, 유일하게 쌩쌩한 전력인 휴마누스가 괜한 일에 힘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에드나가 마법진을 완성했다.
탁, 탁, 탁, 탁. 창문이 하나하나 닫히고, 촤르륵 소리를 내며 커튼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푸른 마력이 공간을 넓게 감쌌다.
“밖에서 안을 보지 못하게 가린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거늘···. 어지간히도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악마가 가르치듯 말하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우리를 한껏 조롱했다.
그러나 배움을 얻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닌 놈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오만하게 굴며 적에게 시간을 주면 반격을 당하게 된다는 진리를 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휴마누스를 바라보았다.
세르펜스에게 성검을 전달해 주는 게 목표라는 사실을 들킨다면, 악마는 바로 녀석의 목숨을 끊어버릴 테다.
휴마누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회는 딱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휴마누스도 아는 거겠지.
“자, 성검의 주인이여! 어서 성검을 버려라!”
“정히 그러길 바란다면야···.”
휴마누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성검을 단단히 다잡은 후, 세르펜스를 향해 힘껏 던졌다.
성검은 무사히 세르펜스에게 전달되었다. 전달되기는 했는데···.
“으아악! 대체 어디다가 던지는 겁니까?!”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본인도 이게 무식한 방법이었다는 걸 아는지, 휴마누스가 자괴감 어린 표정으로 내 눈길을 피했다.
나는 그를 잠시 노려보다가 성검에 복부가 꿰뚫린 세르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이 쿨럭 하고 기침과 함께 울걱 피를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보니 휴마누스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하지만 휴마누스라고 좋아서 세르펜스의 복부에 성검을 꽂은 건 절대 아닐 테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직접 다가가서 세르펜스의 손에 검을 쥐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악마의 망토에 붙잡혀 팔을 움직일 수 없는 녀석에게 성검을 확실하게 전해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겠지.
덤으로 작은 소득도 있었다.
자기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피에 성검이 닿는 게 꺼림칙했는지, 악마가 세르펜스의 전신을 꽁꽁 감싸고 있던 망토를 대부분 거두었다.
이제 세르펜스는 상반신의 절반 정도만 묶인 채, 복부부터 그 아래로는 자유를 되찾았다.
팔도 팔꿈치 아래쪽은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왜 이런 멍청한 짓을···?”
“내가 성검을 포기하더라도, 악마인 네가 세르펜스를 살려준다는 약속을 지킬 리가 없으니까.”
휴마누스가 악마의 물음에 대답하며 초조하게 세르펜스의 모습을 살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세르펜스는 조금 전 피를 토한 이후로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성검펜스든 타락펜스든. 이젠 누구라도 상관없다.
빨리 성검을 뽑아 악마에게서 벗어나 주었으면 좋겠다.
“푸하하하하! 악마의 손에 죽게 놔두느니 직접 죽이겠다는 건가? 정말 대단한 우정이군그래?”
“······.”
“아니면 이자가 제 몸에 박힌 성검을 뽑아들어, 직접 내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서 이런 짓을 저지른 건가?”
악마의 떠보는 말에 휴마누스가 움찔거리며, ‘네 말이 정답이다.’라고 행동으로 답해 주었다.
그 반응을 본 악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놈들도 진짜 성검의 선택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나? 하긴 신의 사자가 곁에 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그래봤자 보다시피 프라시더스는 이미 힘을 다한 상태다.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에게 성검을 건네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지? 성검의 보조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성검을 놓아 버렸으니, 나에게 매우 유리해졌구나! 하하하하! 나름 머리를 쓴 모양이지만, 무척이나 어리석은 판단이 아닐 수가 없···군···?”
세르펜스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성검의 손잡이를 잡은 순간.
잘난 척하며 으스대던 악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성검이 세검 형태로 변화하며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낸 까닭이다.
그 빛에 닿는 것조차 두렵다는 듯, 악마는 세르펜스를 내동댕이치고 멀찍이 물러나 피의 망토를 몸에 둘렀다.
“세르펜스! 지금 치료해 줄게!!”
휴마누스가 그렇게 외치며 바닥에 쓰러진 세르펜스를 향해 뛰어갔다.
아무리 녀석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다치게 한 것이 미안했나 보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세르펜스를 치료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제가 치료했으니 괜찮습니다.”
성검펜스인지 타락펜스인지 모를, ○○펜스가 성검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상처를 고의로 방치하던 성검펜스의 모습이 떠올라, 혹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출혈도 멎은 듯하고 안색에도 이상이 없는 게 정말로 치료를 마친 모양이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 쟤 표정이 왜 저래?’
녀석은 휴마누스더러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는데, 감정이 없는 존재가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보고 따라 하는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세르펜스의 기나긴 연기 인생을 떠올려 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 어어···. 그래? 다치게 해서 미안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를 구하기 위함이었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너···.”
지금 이 상황에 관해 질문하기는커녕 다 알고 있다는 듯 대답하는 ○○펜스의 반응에, 휴마누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뒷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적을 눈앞에 두고 태평한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악마가 망토를 채찍 형태로 바꾸어 두 사람을 향해 휘두르며 고함쳤다.
○○펜스는 분명 휴마누스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서 공격을 피하려던 것 같은데, 휴마누스가 방향을 틀어 녀석에게 따라붙었다.
“세르펜스! 나 싸워야 하니까, 이만 성검을 돌려주지 않을래?”
“네?”
“‘네?’가 아니잖아. 많이 지쳤을 텐데 내게 성검을 돌려주고 쉬는 게 낫지 않겠어?”
“성검이 있다면 혼자서 저 악마를 처치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노력해 봐야지. 아 참! 그리고 곧 있으면 아니마가 도착할 거니까, 둘이서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으음···.”
“정 불안하면, 네가 리에나의 결계 안쪽에서 쉬면서 신성력을 회복시키고 나서 도와주는 게 어때?”
휴마누스는 악마의 공격을 피하는 와중에도, ○○펜스를 쫓아다니며 성검을 돌려달라고 설득했다.
그에 ○○펜스는 고민하는 척 굴며 딴청을 부렸다.
어딜 어떻게 봐도 성검을 돌려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대체 쟤 뭐야···?’
갑자기 낯선 환경에서 정신을 차렸으니 혼란스러울 법도 하건만.
저 ○○펜스는 지나치게 침착해 보였다.
그 태도를 보고 있자니, ‘혹시 성검펜스가 저번에 나왔을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다시 나온 건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 성검펜스는 순순히 성검을 반납하고 떠나긴 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몸을 차지하고 났더니 생각이 바뀌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분위기나 눈빛이 성검펜스와는 딴판인데···?’
성검펜스는 그래도 눈을 보면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감정이 우울감이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반면에 이번에 나온 버전의 세르펜스는 눈에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 지금으로서 확실한 건···. 저 녀석이 성검과 접촉하고 난 뒤로도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게,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이었다는 거?’
오고 가는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고 나서 움직이기 시작한 게 틀림없다.
낯선 곳에서 눈을 뜨니 배에는 성검이 꽂혀 있고 악마가 자신을 붙잡아두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냉정한 계산이 가능한지 실로 의문이다.
“성검을 돌려주면 귀찮아질까 봐 우선 둘을 떼어놓으려 했는데···. 이게 더 귀찮군. 그냥 한꺼번에 처리해야겠어.”
○○펜스의 의도를 추리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악마 놈이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속내를 떠들어댔다.
마치 자신에게도 신경을 써달라는 듯이 말이다.
자꾸만 예상 밖의 행동을 보이는 ○○펜스가 신경 쓰이긴 하나,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저 악마를 처치하는 거다.
그러니 ○○펜스가 얌전히 성검을 반납하고 돌아가 줬으면 좋으련만.
“세르펜스, 어서 성검을 돌려줘!”
“성검이 있어도 저 악마를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본인의 입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고 싸워보지도 않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잖아!”
간절한 휴마누스의 부탁에도 ○○펜스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녀석은 어색하게 꾸며내던 표정을 지워버리고 무심한 눈길로 휴마누스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본 순간, 어떠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성검의 주인] 속, 마왕펜스가 죽어가며 휴마누스를 바라보던 시선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나는 비로소 모든 의심과 가능성을 지워버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은 타락펜스가 분명하다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이 상황에서 성검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동료와 분열을 일으키는 꼴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성검과 함께 죽어라!”
보기 좋다면 계속 지켜보기나 할 것이지.
악마 놈이 피의 망토를 쐐기 형태로 변형시켜 타락펜스와 휴마누스를 향해 내질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는지, 두 사람에게 피의 창을 각각 쏘아 보내어 도주로를 막았다.
이번에는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휴마누스가 방패에 신성력을 밀어 넣었다.
창과 쐐기가 방패 앞에 생겨난 커다란 막에 부딪혔다.
리에나가 신경 써서 만든 결계도 저 쐐기가 들이박자마자 바로 금이 갔건만.
급하게 신성력을 밀어 넣었을 뿐인데도 방패 앞에 생겨난 막은 끄떡없는 걸 보니, 과연 템빨이 좋긴 좋구나 싶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피의 창이 용사의 무구 힘으로 생성된 보호막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가, 보호막을 피해 옆으로 돌아서 타락펜스와 휴마누스에게로 쏘아졌다.
“휴마누스! 저 창 유도 기능이 있어요! 잡아서 신성력을 불어넣어 터트려야···, 하는데···?”
조금 전 타락펜스가 성검을 손에 쥐자 당황했던 악마처럼.
나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의문문으로 말을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타락펜스가 가볍게 휘두른 성검에 닿자마자, 창이 핏물로 변하여 촤아악 쏟아져 버린 까닭이다.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가득 담아 검을 휘둘렀을 땐 튕겨 나가는 게 고작이었건만.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