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2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24화(824/1105)
824회
85. 공작님과 성검 part.2 (4)
변성력의 치료 능력도 확인했으니 이제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타락펜스는 사제의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성검을 들어 올렸다.
또 사제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하면 끝낼 때도 되지 않았어요? 확인할 건 다 확인한 것 같은데.”
나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어내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는 타락펜스의 연기 놀음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녀석의 의식 너머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을 세르펜스를 염려해서 그런 거다.
처음 암흑가에 방문했던 날.
지상과 연결된 동굴에서 나는 세르펜스에게 호언장담했다.
만일 녀석의 잔인한 행동을 목격하더라도, 내가 녀석을 무서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잠시 놀랄 수는 있으나 마음이 진정되면 다가가겠노라고.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한 말은 절대 아니지만···.’
세르펜스는 타락펜스를 자신의 본성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겁먹거나 꺼리는 기색을 보인다면 큰 충격을 받게 될 테다.
타락펜스가 사제의 몸에서 성검을 빼내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녀석이 눈을 슬쩍 내리깔며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무기질 같은 이질적인 눈동자가 긴 속눈썹에 가려지니, 조금은 살아있는 사람다워 보였다.
“죄송합니다. 동료 성직자들을 죽인 거로도 모자라, 신께서 내리신 소중한 이름을 마왕에게 바친 주제에. 그 죄의 무게를 인지하지 못하고 반성은커녕 자신을 변호하고, 자비를 갈구하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순간 자제심을 잃었습니다.”
현재펜스를 연기하는 것치고 너무 우리의 눈치를 안 보는 것 같더라니.
지적이 들어오면 어떻게 변명할지 미리 생각해 둔 모양이다.
내게 존댓말을 쓴 순간 우리를 속이는 건 이미 글러 먹었지만 말이다.
‘아니지, 애초에 속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눈이 완전 죽어있는데?’
눈새눈새라면 ‘성검을 잡으면 다른 회차 인격이 나오는 거 아니었어?’ 하고 헷갈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면 다들 평균 이상의 눈치를 지녔으니 진작 알아챘으리라.
지금 나온 건 성검펜스가 아닌 또 다른 회차의 세르펜스이며, 현재펜스의 자리를 노리고 연기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번에 나온 세르펜스의 인격이 협조적이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이가 하나도 없고, 다들 긴장된 표정으로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으음···, 신의 사자께서는 이런 제 심정을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 혹시 이자를 용서하기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악마는 신의 사자가 곁에 있다고만 말했지, 그게 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타락펜스는 정확하게 그 존재가 나라는 것을 알아챘다.
녀석이 알고 있는 리셋 시점은 선택의 날일 테다.
그 이전에 죽었던 보좌관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미심쩍은데, 무력도 없으면서 이런 위험한 장소까지 따라오고.
방금 에드나가 통신을 받아도 되는지 내게 확인을 받았으니.
그러한 정보를 토대로 내가 신의 사자라는 결론을 내린 거겠지.
그리고 자신이 다른 회차의 인격이란 사실을 숨기고자 그 얘기를 들먹인 것일 터.
정말 작정하고 우리를 속이려 한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녀석 딴에는 자신의 성격을 고려하여 나를 대하고 있다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기야 타락펜스도 몰랐겠지.
‘우리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말을 놓는 사이일 줄은.’
지금 당장 타락펜스에게 그러한 사실을 말하며, 연기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으나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닐 테다. 그러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성검을 들고 튈 수도 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현재펜스를 연기하며 우리들 사이에 섞여들려 하고 있었다.
그 의도를 모르는 이상 녀석이 쓴 가면을 함부로 벗겨 낼 수 없다.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신의 사자인 내 말에 따르려는 것 같으니, 일단은 이대로 두고 보는 게 좋겠다.
“저도 딱히 저 사람을 용서할 생각은 없어요. 피해자는 따로 있는데 제가 뭐라고 용서하고 말고 합니까? 다만 세르펜스가 걱정돼서 그럽니다.”
“제가 걱정을 살 만한 행동을 했습니까···?”
“무방비한 사람에게 고통 주고 그러는 거, 괴롭잖아요.”
“···그렇기는 하나 대의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하지 않았다면 교단의 성직자 중 누군가가 했을 겁니다. 더구나 이자를 신전까지 이송하는 데에는 많은 품이 들고, 심문 결과를 기다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잖습니까? 그러니 이 자리에서 제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의라는 말을 운운하면 ‘아, 그렇구나.’ 하며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녀석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안쓰러움이 왈칵 밀려드는 한편, 이 녀석 또한 세르펜스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그리고 신의 사자께서 말리지 않으셨더라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끝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사제가 방금 새로 생긴 상처를 치료하다 말고 끙끙 앓는 모습을 보고, 변성력을 전부 소모했다는 걸 눈치채서 그런 거면서.
뻔뻔하게도 그런 소리를 잘만 한다.
상처를 내는 건 이제 그만 하겠다는 타락펜스의 말에, 사제가 화색을 띠며 안도하는 게 보였다.
타락펜스는 사제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혹, 이자에게 질문하실 것이 있습니까?”
“다른 사제들의 행방이라거나, 기타 악숭 세력의 정보에 관해 알고 싶긴 한데···. 어차피 저놈은 아무것도 모르겠죠.”
악숭이들이 사제에게 바라는 건, 엉터리 교리를 떠들어대는 것과 다쳤을 때 치료해 주는 것뿐일 테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작전 같은 걸 알려줬을 리가 없다.
이곳에 온 것도 위치를 알려 줘서 제 발로 찾아왔다기보다는 그냥 끌려온 거겠지.
“그런데 대체 뭘 확인하려는 거길래 이런 걸 묻는 겁니까? 신성력이나 오색 빛 기운을 밀어 넣고, 죽는지 보려고요?”
“일반적인 신성력을 지닌 자에게 이자가 말하는 ‘어둠의 신성력’이라는 것을 사용했을 때,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면 뻔하지 않습니까. 굳이 확인해 볼 것도 없이 절명할 겁니다.”
“그럼 어떤 걸 확인하려고요?”
“치료를 받은 이후,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신성력으로? 아니면 오색 빛 기운으로?”
“이자는 신의 힘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자세히 살펴보려면 신성력을 써야 합니다.”
결국 죽이겠다는 뜻이다.
그것도 신성력으로 온몸을 헤집어 긴 고통을 주면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잠시 안도했던 사제의 얼굴이 사색을 띠었다.
“그, 그냥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편안히 죽을 수 있게 해주세요···.”
자신에게 베풀어질 자비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지, 사제는 더 이상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사제는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지 오래다.
하지만 편안한 죽음을 바란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살민숭들은 그저 과격한 취미 생활을 즐기며 악마에게 피를 제공했을 뿐, 누군가의 목숨을 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자들의 죽음이 안타깝게 여겨지진 않았다.
그자들은 본인의 의지로 악숭 세력을 택했으니까.
악숭이들이 피가 아닌 사람을 제물로 바치길 바랐다면, 기꺼이 죄 없는 이들을 잡아다 바쳤을 테니까.
그러나 사제는 악숭 세력에 납치된 피해자다.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악숭 세력에 붙었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 했던 동료 성직자들을 죽였으니 그 죄가 깊긴 하나, 생존을 위해 떠밀려서 한 행동이다.
‘실질적으로 죄를 저지른 건 사제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제 쪽이라니···.’
사제를 이곳에서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건, 교단에 데려가 봤자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을 걸 아는 까닭이다.
그러니 변성력에 관한 정보만 얻고 바로 목숨을 거두는 게 서로 좋은 일이지 않을까.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사제가 동료 성직자들을 죽인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떠들어 댄 주장과 똑같잖아···?’
생각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엉켰다.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다.
속이 울렁거리고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것을 토해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때마침 들려온 타락펜스의 물음 덕택이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음색이 무색하게도 질문을 건네는 그 목소리가 묘하게 메말라 있었다.
진심으로 걱정해서 묻는 말이 아니라 그저 학습된 반응을 보인 것뿐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위로가 되었다.
세르펜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을 테니까.
그 목소리가 닿은 것 같아서.
“괜찮아요. 그보다 저렇게 얘기하는데, 그냥 듣죠? 괜한 힘 쓰지 말고. 어차피 회복된 신성력의 양도 얼마 안 될 텐데. 아, 설마 악숭 사제가 신성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변성력을 전부 소모하게 한 겁니까?”
“그런 이유도 있긴 했습니다. 아무튼 신의 사자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타락펜스의 말에 사색으로 질렸던 사제의 얼굴에 약간의 혈색이 돌아왔다.
사제는 변성력에 관해 아는 대로 설명했는데, 그의 말을 들어보는 쪽을 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에 관한 것 말고도 축복과 버프에 관한 얘기도 있었던 까닭이다.
“어둠의 신성력은 그 대상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공격 용도로 쓰는 게 아니더라도요···. 제가 축복을 내리니 사람들이 마약에 취한 듯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만약 제가 어둠의 신성력을 더 불어넣었다면, 아마 뇌가 녹아서 죽었을 겁니다. 신체를 강화하는 것도···. 일반 신성력보다 몇 배나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강화했던 신체 부위가 망가져 버립니다. 치료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아, 그리고 다친 곳을 치료할 때 말인데요. 까딱 잘못하면 환부가 부풀어 오르다가 갑자기 터져버려서···.”
“······.”
대충 요약하자면 부작용을 막아주는 한계선이 사라졌다는 건데, 얘기를 들을수록 미친 것 같다.
마왕 그 새끼는 대체 뭘 만들어 낸 건지 모르겠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보다 마왕을 섬기겠다고 맹세까지 한 주제에, 이렇게 정보를 줄줄 말해버려도 괜찮은 겁니까?”
“예? 그분에 관한 정보도 아니고 제 능력을 말하는 것뿐인데, 문제가 되나요? 그렇게 따지면 저는 신 룩스메아 님을 저버렸을 때도 별일 없었는데···.”
“···문제없으면 됐어요.”
계약으로 엮인 게 아니라서 마인들보다 제약을 덜 받는 거려나?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얘기 끝나셨으면, 이만 이자를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타락펜스가 현재펜스라면 절대로 내게 하지 않을 질문을 했다.
나는 녀석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외면하지 않고 눈에 새겼다.
이 세상에 오고 난 뒤.
수많은 죽음을 봐 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지는 죽음이었다.
“저기 있잖아, 세르펜스. 끼어들기 뭐 한 분위기라 가만히 있었는데, 성검 다 썼으면 이제 슬슬 돌려주지 않을래?”
먹먹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휴마누스의 눈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