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2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27화(827/1105)
827회
85. 공작님과 성검 part.2 (7)
휴마누스는 일일이 밥 트리오의 이마를 짚어가며 그들을 치료했다.
황금색 신성력이 빛을 발했고, 그럴 때마다 ‘으으···.’ 하는 신음과 함께 한 명씩 눈을 떴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멍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 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들의 모습에 휴마누스가 황태자 모드로 입을 열었다.
“악마라면 처치했으니 이제 안심해도 된다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성검의 주인이시여! 살려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특이한 머리카락 색 덕분인지, 밥은 단박에 휴마누스를 알아보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고는 제 시종과 얼싸안고 이제 살았다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밥기사는 기뻐하는 밥을 바라보며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그들에게 앞으로는 이런 위험한 모임에 참석하지 말라고 경고할까 했으나, 지금은 그냥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만끽하게 놔두기로 했다.
이런 일을 겪었으니 굳이 경고를 받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하며 살겠지.
“저희 왔어요~!”
마침 타이밍 좋게 민숭이들을 잡으러 갔던 세 사람이 돌아왔다.
유지스는 후드를 푹 눌러쓴 타락펜스를 자세히 살피다가, 나와 손을 잡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른 인격의 세르펜스를 벌써 길들여 놓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오판이었으나 정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니 일단은 넘기자.
“언니이~!!”
아니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제 언니의 품으로 돌진했는데, 에드나와 쑥덕거리며 대화를 나누더니 돌연 마법을 펼쳤다.
푸른 마력이 퍼져 나가며 주변의 피 웅덩이가 전부 흙으로 덮였다.
풀 냄새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드는 게 거슬리니, 에드나가 아니마에게 치워달라고 부탁했나 보다.
덕분에 내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테일러의 보고를 듣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임무를 마쳤다는 말과 달리, 별장에 돌아온 건 세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민숭이들은 어쩌고 세 분만 오셨어요?”
“어차피 그자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고, 어, 아는 것도 없잖아요···? 그래도 재판을 거쳐 심판을 내리긴 해야겠지만···. 음, 구태여 품을 들이면서까지 별장으로 데려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한데 모아 놓고 목만 내놓은 채 땅에 묻어 놨습니다.”
민숭이들의 행방을 물으니 테일러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리며 놈들을 여기로 데려올 필요는 없다는 말에 긍정하고 있는데, 이상한 문장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스러워 ‘네?’ 하고 되묻자, 테일러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냥 바, 밧줄로 나무에 묶어 두려 했는데···. 아니마 님께서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밧줄은 끊고 달아날 수 있다고···. 네, 그렇게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법으로 안전하게 그자들을 땅에 묻어 주셨습니다. 친절하게도.”
테일러가 해맑게 웃으며 아니마의 업적을 칭송했다.
대체 언제부터 사람을 산 채로 땅에 묻는 일에 안전을 운운할 수 있게 된 걸까?
이단 심문관인 테일러는 민숭이들에게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보다.
아니마는 놈들의 인권보다, 한시라도 빨리 할 일을 마치고 에드나를 보는 것을 더 중요시한 걸 테고.
악숭에 앞장서며 사람을 죽인 놈들이라면 모를까.
민숭이들은 기껏해야 잔심부름이나 하던 자들인데 너무 과한 것 같다.
유지스는 두 사람을 말리지 않은 건가 의문이 들었다.
“옆에 푯말을 세워, 그들이 악숭이라는 사실과 이단 심문관이 회수할 예정이라고 적어 놓았어요. 게다가 티에라가 감시하고 있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의문을 담아 쳐다보니, 유지스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티에라는 유지스와 계약한 흙의 정령 이름이다.
아무래도 아니마와 테일러를 말리기는커녕 유지스 또한 옆에서 거들었나 보다.
과거 암흑가 장악에 적극 찬동했던 것도 그렇고, 가만 보면 유지스도 은근히 과격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저 그보다, 세르펜스 님께서 들고 계신 검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테일러의 물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척 너스레를 떨며, 미리 설정해 두었던 ‘휴마누스의 우정템’ 얘기를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테일러는 휴마누스를 눈새 보듯 쳐다볼 뿐. 성검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
“아! 참고로 이 녀석이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는 건, 악마에게 붙잡혔던 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겠다길래 가려준 겁니다. 에드···, 아니···. 누님은 오늘 맡았던 배역 설정이 부끄러워서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거고.”
“세르펜스 님은 그 강한 악마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잘···. 훌륭히 버텨 주셨어요. 그,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그렇게 된 건, 악마가 신의 사자님을 공격하려고 하니까···. 시온 님을 보호하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잖, 거잖아요? 그러니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이단 심문관이면서, 별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테일러가 내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타락펜스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악숭하는 놈들에겐 가차 없는 이단 심문관이지만, 아군에겐 참 상냥한 성직자가 아닐 수가 없다.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하다는 사과에 당황한 것인지, 나를 지키려다 악마에게 붙잡혔다는 말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테일러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자는 나와의 약속 때문인지.
타락펜스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그런 타락펜스를 대신하여. 혹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현재펜스를 대신하여, 테일러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세르펜스가 고맙대요. 그리고 휴마누스가 올 때까지 자신이 버틸 수 있었던 건, 테일러 님과 유지스가 후방에서 지원해 준 덕분이라네요. 그러니까 사과는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합니다.”
“그, 그런···, 다정도 하셔라···! 과연 신의 사자께서 마, 많이 아끼실 만도 합니다.”
타락펜스는 입도 벙긋 안 하고 내가 혼자 떠들었는데도, 테일러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세르펜스가 한 말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이상했는지 타락펜스의 고개가 슬쩍 옆으로 기울었다가 본래의 각도를 되찾았다.
“아! 그, 그리고···. 에···, 그···. 마법사님의 희생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제발 그냥 잊어주세요!”
테일러의 공치사에 에드나가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저 반응으로 보건대 최소 한 달가량은 연기의 ‘연’ 자만 나와도 민망함에 몸부림 칠 것 같다.
그 덕분에 테일러와 밥 트리오의 관심이 에드나 쪽으로 넘어갔다.
“아···! 그런데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상황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저희는 정말 결단코 이곳이 그런 곳인 줄 몰랐습니다!”
밥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에드나를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다 말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소리쳤다.
살아남았다는 흥분으로 뜨거워졌던 머리가 이제야 식고 뒤늦게 걱정이 밀려들었나 보다.
바짝 긴장한 밥의 모습에 테일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지, 진정하세요. 성수를 뿌리며 저희를 도와주셨던 거, 저도 다 봤습니다. 그러니, 음, 아마 교단 측에서 보상을 내리지 않을까 합니다.”
보상이라는 말을 듣자, 옛날 옛적에 교단으로부터 받았던 명예 휘장이란 이름의 기념 배지가 떠올랐다.
나야 항상 세르펜스와 붙어 다니는 터라 쓸모도 없고, 되려 악숭이들에게 정체가 들킬까 봐 아공간 주머니에 처박아 놨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밥은 보상을 거부하며 의외의 부탁을 해 왔다.
“보상은 괜찮습니다. 그 대신 혹시 가능하다면···, 제가 운 나쁘게 사건에 휘말려 악마 숭배자들에게 죽었다고 발표해 주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주제에, 이런 부탁을 하는 건 너무 염치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저는 다시 왕실로 돌아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간곡한 말에 테일러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 결정에 따를 생각인가 보다.
내게 붙은 천사 설정도 모르면서, 아무리 신의 사자라고 한들 외부인인 내게 이런 결정을 맡기다니.
교황이 모든 권한을 내게 위임하겠다고 언질해 두기라도 한 걸까?
“앞으로 남은 인생을 교단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살아가도 좋습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 편히 살 수만 있다면···.”
내가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말이 없자, 안달이 났는지 밥이 다시 한 번 부탁해 왔다.
그 모습에서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친형인 1왕자는 어쩌고?”
“형님이라면 제가 없어도 잘하실 겁니다.”
“그게 아니라, 1왕자에게도 본인이 살아있다는 걸 비밀로 할 생각이냐는 뜻으로 물어본 겁니다.”
“그, 그건···.”
밥의 확고한 결심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자신의 죽음에 1왕자가 슬퍼할 것이 걱정되나 보다.
혈연이라는 것 말고도 함께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며 서로에게 기대어 왔을 테니, 우애가 굉장히 돈독했던 모양이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1왕자에게 밥의 결정을 알리는 겁니다.”
“밥···? 제 이름은 루블리크인데···.”
“새 신분으로 살 거면 이름부터 바꿔야죠. 지금 이 순간부터 밥의 이름은 밥입니다.”
사실 밥을 그냥 밥이라 지칭한 건 단순한 말실수였지만, ‘밥’을 이름으로 삼아도 문제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테일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신의 사자께서 내린 이름이 어쩌고 하며, 밥에게 영광으로 알라고 했다.
저런 건 프레이 신관이나 할만한 짓인 줄 알았건만.
세르펜스가 주책을 부렸던 게 아니라, 성직자들은 원래 다들 주책맞은 성격인가 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동생이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1왕자가 기뻐한다면 서로서로 좋은 일이니 아무 문제 없을 테고. 반대로 이건 배신이라면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뛴다면야 뭐. 절연했다고 생각하며 새 신분으로 살아가면 되겠죠.”
“그 말씀은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는 겁니까···?”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니라, 저희를 도와준 것에 적당한 보상을 책정한 겁니다. 성수를 뿌린 것 말고도, 누님의 그런 취향 캐릭터 설정에 밥이 지대한 공헌을 했거든요.”
“제가요? 그 설정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라기보다, 믿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밥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문득 그런 취향에 관한 얘기에 학을 떼던 밥의 모습을 떠올랐다.
자세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대뜸 부정부터 하고 싶을 만하다.
“가면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아무튼 그 설정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요. 아무도 우리의 정체를 의심하지 못하였고, 악숭 일일 체험 신청도 받아들여진 데다가, 세르펜스를 묶는 걸 제가 담당할 수 있었으며, 저희가 축복을 받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 모두. 누님이 악숭 귀족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낸 덕분입니다!”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껴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건데, 악숭이니 민숭이니 하는 건 대체 뭡니까?”
“악숭이는 악마 숭배자, 민숭이는 민간인 악마 숭배자의 줄임말입니다.”
“······.”
밥이 할 말이 대단히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기껏 기다려 줘도 입을 꾹 다문 채 속에 있는 말을 내어 놓지 않았다.
괜히 내 심기를 거스를까 봐 입조심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