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2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28화(828/1105)
828회
85. 공작님과 성검 part.2 (8)
“기사로서의 저의 사명은 루블리크 저하를 지키는 것입니다. 비록 오늘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이런 부족한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저하의 새 인생을 곁에서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저하···, 아니, 밥 님을 따라가고 싶어요!”
밥기사와 밥시종이 앞으로의 인생도 밥과 함께하겠다며 나섰다.
아랫사람이 이렇게나 잘 따르는 걸 보면 상관으로서 밥의 인품이 썩 훌륭했나 보다.
자신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두 사람의 말에 감동했는지, 밥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어차피 한 명이나 세 명이나 신분을 조작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그 일을 하는 건 내가 아니다.
저렇게 사이좋은 세 사람을 갈라놓는 것도 뭐하고.
“그럼 테일러 님, 저 세 분을 신전에 데려가서 새로운 신분을 마련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가시는 길에 땅에 심어 뒀던 민숭이들도 뽑아가 주시고, 조사단을 꾸려서 데려와 주세요.”
“예? 혹시 저, 저만 가는 겁니까?”
“저희는 사건 현장을 지키고 있을게요.”
“아! 그렇군요, 누군가는 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음, 음.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올 테니 쉬고 계세요.”
테일러는 쉬지도 못하고 일거리만 잔뜩 떠안게 되었는데도, 불만을 드러내기는커녕 깨달음을 얻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단 심문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순수한 모습이다.
사건 현장이 어쩌고 하는 건 테일러와 밥 트리오를 쫓아내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괜히 속인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쉬지도 못하게 계속 일을 시켜서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가면서 밥 트리오랑 같이 나눠 드세요.”
나는 타락펜스의 손을 잠시 놓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도시락 네 개와 차게 식혀 놓은 세계수 잎 차가 든 병을 꺼냈다.
테일러는 그간 우리와 지내면서 세계수 잎 차를 종종 얻어 마셨다.
그 덕에 세계수 잎 차를 바로 알아봤는지, 테일러가 귀한 것을 내어주어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했다.
그러고는 가는 길에 실어야 하는 민숭이라는 커다란 짐들을 고려하여, 제일 큰 마차를 골라 밥 트리오를 태우고 떠났다.
“다들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지만···. 일단 저녁 준비부터 할게요.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배가 고프면 사람은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 대화가 삐거덕대며 엇나가기 십상이다.
나는 타락펜스를 슬쩍 곁눈질로 살피며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타락펜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후드를 푹 눌러쓴 채로 가만히 있었다.
평소라면 후드를 확 젖혀버리고 표정을 살폈을 터이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아까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려 했을 때도 내 손길을 피했으니까.
손을 잡는 것까지는 허락했으나 얼굴 가까이 손을 뻗는다면 또 피하겠지.
어쨌거나 녀석이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니 그냥 식사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에드나에게 별장 내부의 상태에 관해 들었는지 아니마가 피를 치우러 가긴 했지만, 그곳에는 피가 몽땅 빨려나가 바짝 마른 채 죽어 있는 시체가 수두룩했다.
살민숭들의 신상을 파악해야 하니 시체까지는 치우지 못할 터.
미이라나 다름없는 시체들 옆에서 무언가를 먹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이유로 오늘 식사는 야외에서 진행해야 할 성싶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식탁과 의자를 꺼내 놓았다.
산속의 별장 마당에서 저녁을 먹는다면 바비큐 파티가 제격이나, 지금은 그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꿩 대신 닭으로 세르펜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던, ‘미트볼 토마토 리소토’가 든 도시락을 인원수대로 꺼냈다.
세르펜스가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나와의 추억 때문이지만, 미트볼이 입에 잘 맞았던 것도 한몫했다.
타락펜스라고 입맛이 다르지는 않겠지.
숟가락과 포크와 물잔 등을 꺼내어 테이블 세팅을 마쳤을 때.
아니마가 세르펜스의 검과 검집을 손에 들고 별장에서 나왔다.
그녀는 피 한 방울 묻지 않고 말끔해진 물건들을 내게 넘긴 후 에드나의 옆에 꼭 붙었다.
에드나가 아니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모습을 보니, 벌써 세르펜스가 그리워졌다.
나는 아니마에게 건네받은 세르펜스의 물건들을 타락펜스에게 건넸다.
녀석은 검을 뽑아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버리고는 검집에 성검을 꽂고 허리춤에 찼다.
“이리 와서 앉아.”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타락펜스를 부르자 녀석이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세르펜스가 아닌 타락펜스가 몸을 차지했지만, 식탁에 모여 앉는 자리 배치는 평소와 똑같았다.
녀석의 양옆에 나와 유지스가, 맞은편에는 휴마누스가 앉았다.
다른 일행들도 평소에 앉던 대로 제 자리를 찾았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세르펜스 네가 성검을 잡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으니까 후드 벗고 편하게 있어도 돼. 굳이 연기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고.”
“···괜한 짓을 하셨습니다.”
타락펜스가 푹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기며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꺼냈다.
다시 존댓말로 돌아온 거야 초창기의 세르펜스도 말투가 오락가락했으니, 그러려니 싶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다.
자신이 연기를 그만두면 큰일이 벌어질 거라고 경고라도 하는 건가?
순간 그런 의문이 떠올랐으나 다행히 그런 의미로 한 얘기는 아니었다.
“아까 그자의 부탁을 들어준 것 말입니다. 기껏 보호하여 살려둔 일반인, 그것도 왕족을 사망 처리 하다니···. 고작 셋밖에 되지 않는 인원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찌 대륙을 지킬 수 있겠느냐며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질 겁니다. 정히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면 하다못해, 그자가 이미 이단에 물들어 손 쓸 도리가 없었다는 명분이라도 지어냈어야 합니다.”
“난 또 뭐라고···.”
별거 아닌 이야기였다.
설마하니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밥의 부탁을 들어준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심지어는 밥도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염치없는 부탁이라고 말했던 거고.
“어차피 멋대로 떠들어 댈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꼬투리를 잡아서 비난하려 할 거야. 가령 악마를 처치했다는 결과보다, ‘이제야’ 악마를 처치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이래저래 욕먹는 게 똑같다면 기껏 지켜낸 사람이 애먼 곳에서 허무하게 죽지 않도록, 작은 부탁 하나 들어주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런 이유로 그자의 부탁을 들어주신 겁니까?”
“뭐, 그렇지.”
“으음···, 신의 사자께서 뜻이 확고하신 듯하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타락펜스가 꼭 다음번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굴었다.
당장 그것을 지적해 봤자 녀석이 내게 반발심을 드러낼 뿐이다.
나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겠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일단 호칭부터 정정하기로 했다.
“신의 사자가 아니라, 유선우. 그게 내 이름이야. ‘유’는 성이니까 그냥 선우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선우 님.”
“님은 빼도 돼.”
“그보다 앞서 말씀하신 바에 따르자면 성검의 주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세르펜스의 목소리로 ‘선우 님’이라고 불리자 굉장히 어색해서 몸이 비비 꼬였다.
하지만 이어진 타락펜스의 말 때문에 어색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현재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떠본 거야?”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타락펜스가 정중한 말투로 사과했지만, 그 속에 진심은 담겨있지 않았다.
하물며 그런 게 아니라는 부정 또한 없었다.
과연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녀석의 얼굴을 훔쳐보며 귀를 파닥거리던 유지스가 굳은 얼굴을 했다. 귀의 움직임도 멈췄다.
지금 취향 따위를 찾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나 보다.
“저는 선우가 세르펜스를 잘 길들여 놓은 줄 알았는데···.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유지스는 못 보셨겠지만, 이 녀석 현재펜스인 척 연기하다가 들켰어요.”
“아···. 그야 들키겠죠. 대체 누가 자신이 그런···.”
유지스가 탄식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의 자신에 관한 정보가 궁금했는지 타락펜스가 유지스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뒷말을 들을 수 없었다.
돌연 유지스가 화들짝 놀라더니 다른 말을 꺼낸 까닭이다.
“잠깐만요! 어째서 그런 연기를···? 설마, 세르펜스의 몸을 그대로 차지하려고···, 그런 건가요···?”
“네. 그러다 들키니까 자신은 성검의 주인이었는데 마왕에게 패배했다면서, 본인보다 약한 휴마누스에게 절대 성검을 넘길 수 없다며 우기는 중이에요.”
“성검의 주인이었다고요? 하지만 저번에 보았던 세르펜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요···?”
“그럴 만도 하죠. 다른 인격이니까.”
“하지만···.”
유지스는 말끝을 흐렸지만, 생략된 말은 너무나도 뻔했다.
휴마눈새가 알아챌 정도로 말이다.
“아! 맞아. 아까는 다른 얘기를 하다가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3회차고 2회차에서 성검의 주인이 된 건 나잖아? 1회차의 세르펜스는 성검의 주인이었지만, 쟤랑은 다른 인격이고···. 그런데 어떻게 성검을 그렇게나 잘 다룰 수 있는 거야?”
2회차를 아는 까닭인가, 녀석이 성검의 주인이었다고 거짓말 한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휴마누스는 오로지 타락펜스가 성검의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만 의문을 품었다.
‘그보다 2회차에서 성검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 같은 건 없는 건가?’
다른 일행들은 타락펜스에 관한 걸 몰라도, 계속 거짓말을 하며 우리를 속이려 드는 걸 보고 말을 최대한 삼갔다.
녀석의 꿍꿍이속을 알지 못하니 내게 온전히 맡긴 거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타락펜스를 알고 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모든 걸 들켰으니 어쩔 수 없다며 타락펜스가 막 나갈까 봐 불안해서.
그러나 타락펜스는 휴마누스의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남 얘기처럼 반응했다.
“그쪽이 성검의 주인이 된 게 두 번째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세상이 다시 시작된 걸 보면···, 당시에는 제가 성검에 아예 접촉하지 못했나 봅니다.”
“네 얘기 아니야? 왜 모르는 척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성검의 주인으로서 홀로 마왕과 맞서 싸우다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쪽의 말에 따르자면 저 다음에 한 번의 실패가 더 있었고, 지금이 그 직후···. 아닙니까?”
“···어?”
타락펜스의 뻔뻔한 거짓말에 휴마누스가 당황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그럴 만도 하다.
만약 저 녀석이 현재펜스를 연기하며 몸을 빼앗으려 들지 않았다면.
모든 감정을 잃은 듯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외로움만은 놓지 못하여 동료를 바란다는 티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세계수에게 지금이 3회차라는 사실을 확인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도 혼란스러워하며 녀석이 하는 말이 사실일까 긴가민가 고민했을 테다.
“···일단 밥부터 먹고, 세르펜스는 이따 나랑 면담 좀 하자.”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말고. 이 미트볼 토마토 리소토는 현재의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거든. 그러니까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
좋아한다는 마음 자체를 허락받지 못했던 녀석이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빤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