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3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38화(838/1105)
838회
86. 공작님의 납치 (6)
* * *
법숭이 연구실까지 대여섯 시간 걸린다는 게, 날아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한 건 줄은 몰랐다.
아직 날이 밝아 신성력 날개의 빛이 두드러지지 않고, 건물이 작은 점처럼 보일 정도로 높은 고도로 날았으니 목격자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우리를 쫓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꽤나 대담한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뭐, 개목걸이를 한 채로 대로변을 걷는 것보다야 눈에 안 띄겠지만.’
이럴 거면 개목걸이 같은 건 뭐하러 채웠는지 모르겠다.
잠시 땅에 내려서 간식을 먹을 때와 법숭이 연구실에 도착한 이후를 염두에 둔 거려나?
이딴 것에 이유를 찾아 붙여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다.
나를 처량하게 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내게 비행 능력 같은 건 없으니 방금까지 경계했던 타락펜스에게 덜렁 들려야만 했다.
그 상태로 법숭이 연구실까지 날아가는 동안, 현재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보도 전달해야 했고.
‘그래도 나에 관한 것이나 현재펜스에 관해 자세히 얘기하라고 강요 안 한 게 어디야?’
어차피 대륙의 정세는 조금만 조사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숨기거나 거짓으로 속여야 할 이유가 없다.
나를 대하는 타락펜스의 태도가 매우 아니꼽긴 하지만, 어색하게 침묵 속에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물론 대여섯 시간 동안 떠들어 댈 정도로 대륙의 정세에 빠삭한 건 아닌지라.
간식 시간부터는 은근슬쩍 오늘의 간식을 설명하는 척 화제를 틀어, 이제껏 방문했던 디저트 가게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요즘 악숭이들 때문에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 보니, 문을 닫거나 생산 품목을 줄인 가게가 많아서 너무 아쉽더라.”
“그거 아쉽겠군.”
“응, 그러니까 나중에 대륙이 평화로워지고 나면, 가나안 대륙의 관광지들을 순회하며 맛집 탐방을 다닐 생각이야!”
“나와 함께?”
“어···, 절반은 그렇다고 쳐 줄게. 그보다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어?”
“거의 다 왔다. 여기부터는 걸어가는 게 좋겠군.”
타락펜스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고도를 낮춰 부드럽게 착지했다.
운전대를 잡은 게 현재펜스가 아닌 타락펜스긴 해도, 세르버스와 같은 운행사답게 세르항공의 탑승감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짧은 감상평을 떠올리며 나는 땅에 내려서서 주변을 살폈다.
그냥 숲이라는 것 외에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이곳에는 위험한 함정이 없지만,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타락펜스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이 세니어라는 걸 확인한 순간 생각보다 손이 더 빨리 움직였다.
혹여 타락펜스의 마음이 바뀔세라, 나는 세니어를 꼬옥 끌어안았다.
“내 귀엽고 멋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세니어!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오래 기다려야 하나?”
가드 부분에 박힌 신성석에 뺨을 비비며 세니어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타락펜스가 끼어들었다.
나는 머쓱함을 느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제야 녀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목줄도 했겠다 멋대로 끌고 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중하네?’
의아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 것을 바랐느냐는 답이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나무들 사이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끼가 잔뜩 낀 동굴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나와 딱 붙어서 걷는 게 좋을 거다.”
타락펜스가 목줄 손잡이를 왼손목에 끼운 뒤,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 손이 내 발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던 것을 떠올리면 별로 잡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 녀석이 좋게 말할 때 따르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 같기도 하다.
손목은 발목보다 가늘고 약하니까.
나는 타락펜스의 손을 잡고 동굴로 따라들어갔다.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가자 동굴 바닥이 점차 아래로 경사졌다.
타락펜스가 띄운 신성력 구체의 빛 덕분에, 미끄러운 이끼를 밟고 넘어지는 일 없이 비탈길을 내려갈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발밑을 살피며 조심조심 걷다 보니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의문이 든 그때, 타락펜스가 벽을 향해 은빛 신성력을 두른 성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이 벽에 박히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튀어 오를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챙강!’ 하는 소리가 울렸다.
앞길을 가로막았던 돌벽이 유리처럼 깨져서 바닥에 쏟아지는가 싶더니, 작은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양옆의 벽과 천장을 따라 그려진 마법 문자와 바닥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퀘퀘하고 역한 냄새가 훅 밀려들었다.
“욱···! 이게 무슨 냄새야···?!”
무언가 부패한 듯한 냄새였는데 나도 모르게 코를 막으며 반 발짝 뒤로 물러나 버렸다.
냄새가 무척이나 고약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 앞으로 나아가면 안 될 것 같다.
“세니어도 있으니까, 난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런 위험한 장소에 선우를 혼자 둘 수는 없다.”
저 안에 있는 법숭이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인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내 의견은 묵살되었고, 위험인물의 손에 이끌려 새까만 어둠이 도사리는 굴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고약한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으···!”
반쯤 녹아내린 동물의 사체에 나는 진저리를 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곧장 눈을 감은 덕분에 사체를 목격한 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인상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법숭이의 ‘실험실’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에드나의 실험실이나 솔레르티아의 스크롤 제조 공방 같은 걸 떠올리면 안 됐던 거다.
“보는 게 괴로우면 눈을 감고 내게 의지해서 걸어도 된다.”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쩐지 아까부터 묘하게 태도가 정중하더라니. 내가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유도하여, 경계심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작전이었나 보다.
나는 세니어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으며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시야 구석에 어떤 동물의 것인지 모를 뼈와 사체가 언뜻언뜻 보였지만, 그것들을 밟거나 타락펜스에게 기대어 걷는 것보다 낫다.
“일부러 나를 이런 곳에 데려온 거야?”
“흑마법사의 실험실은 대개 이런 식이다. 실험 대상이 인간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라.”
따지는 내 말에 타락펜스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2회차 때 이곳의 주인은 동물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해댄 모양이다.
나는 입만 벙긋거려서 내가 아는 모든 욕을 소리 없이 뇌까렸다.
“제, 젠장···!”
이건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다. 타락펜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도 아니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이마에 ‘나는 법숭이다.’라고 써 붙인 듯한 행색의 사람이 낭패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일부러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고 동물들만 몰래 잡아들였는데, 프라시더스 공작과 신의 사자가 이곳을 대체 어떻게 알고···!”
법숭이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더니 냅다 동굴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벽면에서 검은 마법진들이 빛을 발했다.
침입자가 온 것을 알아채고 정체를 확인하러 나왔다가, 타락펜스를 발견하고는 미리 설치해 둔 마법진을 발동시키고 도망친 것이다.
– 쿠르릉···!
불길한 진동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찍찍거리는 소리가 천장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들이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그 속에서 쥐 떼가 튀어나오고, 퍼덕거리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박쥐가 날아들었다.
크기가 크고 색이 검은 거로 보아 전부 마물인 듯하다.
내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타락펜스가 나를 들어 올려 어깨에 얹고 뛰었다.
쥐와 박쥐 소리 사이로 퍽, 퍽 하고 둔탁한 소리가 더해졌다.
자세 때문에 나는 뒤를 보고 있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닥과 벽면에 막 죽은 쥐와 박쥐의 시체가 생겨났으니까.
타락펜스는 날아오는 박쥐를 넓게 펼친 신성 결계로 쳐내어 길을 열고, 발밑의 쥐는 발로 차거나 밟아 터트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 쿵, 쿵!
천장에서 돌이 떨어졌다.
빌어먹을 법숭이 놈이 도망치며 발동시킨 게 동굴을 무너뜨리는 마법진이었나 보다.
나는 두 손으로 세니어를 놓치지 않게 꽉 붙들고 눈을 감았다.
“동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우읍···. 괘, 괜찮은 거 맞아?!”
몸이 들썩거리는 탓에 말이 뚝뚝 끊겼다.
속이 울렁거리며 토기가 밀려드는 게 멀미를 하는 것 같다.
아니면 부패한 시체의 썩은 내가 역해서거나, 주변에 널린 시체들 탓에 비위가 상해서거나.
“동굴 전체를 무너뜨리는 마법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 출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하기야, 아무리 악독한 법숭이라 하여도 침입자와 함께 죽는 마법을 설치해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열심히 연구한 실험 자료를 빼내고 자신이 도망칠 길 정도는 만들어 뒀겠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바닥의 진동이 거세지며 덩달아 흔들림이 강해진 까닭에, 자칫 잘못하여 혀를 깨물어 버릴까 봐.
어쩔 수 없이 세니어를 잡고 있던 손 중 하나를 떼서 타락펜스의 옷을 움켜잡았다.
그랬더니 몸이 덜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만 참아라, 곧 안전해질 테니.”
여러 소음 속에서 타락펜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뻔히 아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목소리가 다정하게 느껴져서 분했다.
“설치해둔 함정들을 전부 발동시켰는데 벌써 따라잡다니!”
법숭이의 외침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퍼엉!’ 하고 폭발음이 들렸다. 놈이 마법을 쓴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후 ‘크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타락펜스가 놈의 숨통을 끊어 놓았나 보다. 그러고 나서도 녀석은 나를 내려놓지 않고 계속 달렸다.
여전히 쿠르릉 하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걸 보면 아직 안전하지 않은가 보다.
타락펜스의 어깨 위에 얹어진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고 반대로 길 수도 있다.
“이곳은 안전하긴 하지만, 눈은 뜨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보기에 썩 좋은 광경은 아니니.”
안전 지대에 도착했는지 타락펜스가 나를 내려놓았다.
콰르릉 무너지는 소리는 멀찍이서 희미하게 들렸고,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은 미약했다.
“그럼 나가서 내려 주던가.”
“흑마법사의 연구 자료를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된다고 생각하나?”
“···아니.”
“전부 폐기하고 올 테니,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라.”
개목걸이에 연결된 줄이 살짝 당겨지는가 싶더니 이내 느슨해졌다.
그리고 타락펜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손으로 더듬어 확인해 보니 줄이 아래로 축 늘어진 게 아니라, 바닥과 수평으로 뻗어 있었다.
어딘가에 줄을 묶어 놓은 모양이다.
“굳이 묶어놓지 않아도 도망칠 생각은 없는데···.”
“······.”
무심코 불평을 흘렸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어 세니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