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4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43화(843/1105)
843회
86. 공작님의 납치 (11)
‘계속 대륙을 구원하려면 자신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길래, 그 부분을 파고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봤는데···.’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턱도 없었다.
대륙 구원이 어쩌고 하는 얘기는 어디까지나 현재펜스의 자리를 가로채기 위한 핑계일 뿐.
타락펜스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대륙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이런 얘기를 굳이 꺼냈던 건, 녀석이 나중에라도 물러날 마음이 생겼을 때 미련을 남기지 않았으면 해서다.
그래서 가볍게 말을 꺼내 놓고 안 통하면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 기본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부분에서 멋대로 끝낼 수 없었다.
흐름을 타고 오다 보니 도달한 게 지금 이 상황이다.
어제 내 발목을 붙잡았을 때처럼 또 폭력적인 수단을 쓸까 봐 걱정스럽긴 하지만.
아니, 어깨를 세게 붙잡고 있으니 반쯤은 이미 그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 건 잘 된 거지.’
어차피 똑같은 세르펜스니까, 현재펜스든 자신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녀석은 3회차와 내가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집착하는 걸 테다.
‘단 한 번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무언가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 타락펜스가 내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있는 건, 나를 위협하기 위한 행동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정신을 무너트릴 생각 따윈 없었다는 얘기도 사실이었을 테고.
“내가 무서워서 말을 못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나를 돌려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나? 아니면 현 시간대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라도 하고 있나?”
타락펜스의 얼굴에 떠오른 초조함이 짙어진 만큼, 녀석의 손아귀에 더 많은 힘이 실렸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윽! 아도르, 아파···!”
“아픈 게 싫고, 강제로 정신을 제어 당하는 것도 싫다면.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면 된다. 나를 다정하게 대해 다오. 내게도 애정을 베풀어 달란 말이다···!”
이 녀석은 알고 있을까?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며 정신을 제어하려 드는 것은.
그리하여 상대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게 강요하는 건, 전 프라시더스 공작이 세르펜스에게 한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 일단 이것 좀 놓고···.”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내게 선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베푼다는 건, 당연하고 말고를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받아본 적도 없는 것을 어찌 당연히 여기며, 감사를 표할 수 있겠는가?!”
“아윽···! 놓는 게 싫으면, 적어도 살살···.”
“······.”
나를 내려다보는 타락펜스의 눈동자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녀석의 얼굴도 괴로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도르···. 이, 이러지 마. 이런 건 너도 괴롭잖···, 아악!!”
타락펜스의 아귀힘이 살짝 약해지는가 싶더니, 돌연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더 강해졌다.
결국 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러고 나서야 타락펜스가 손아귀 힘을 풀었다.
그래도 녀석의 손은 계속 내 어깨에 올려져 있었고 욱신거리는 통증 또한 여전히 남았다.
“그래, 나도 선우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자칫 선우에게 미움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 행동이 잘못된 것도 안다.”
“알면서 대체 왜···.”
“선우가 나를 한계로 내몰고 있잖은가. 그러니 내가 이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다오. 대륙을 배반한 내 행동을 이해해 주었던 것처럼.”
언제 소리를 질러댔냐는 듯, 타락펜스가 부드러운 음색으로 조곤조곤 말했다.
어젯밤에 내가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아도르가 대륙을 배반했던 것을 이해한다.’라는 소리는 했을 리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바스툴 왕국에서 세르펜스와 필담을 나누던 중, 그런 얘기를 적었던 것 같다.
“이해는 하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도,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꽉 붙들었던 거잖아?”
나는 어깨에 올려진 타락펜스의 손등에 손을 겹치며 말했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에 환희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녀석의 손을 잡고 어깨에서 떼어내자, 환희가 걷히고 의문이 떠올랐다.
“이해한다는 게 꼭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야.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았으면 하지 말았어야지. 아까도 말했잖아.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진심을 내어줄 수 없다고. 강요로 얻어낸 다정함과 애정은 가식과 거짓일 뿐이야. 그런 건 너도 원하지 않잖아?”
“섣불리 단언하지는 마라. 혹시 아는가? 선우가 계속 나를 밀어낸다면 그런 것조차 절실히 바라게 될지.”
타락펜스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가당찮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머리도 좋은 녀석이 어째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회할 거야. 거짓된 온정은 기만에 불과하고, 아도르 네가 그걸 모를 리 없으니까. 자신을 상처입힐 만한 짓은 시작도 하지 마.”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엄하게 말하자, 타락펜스의 입가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녀석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행동을 했다.
대체 왜 저러나 싶어 이유를 물어보려는 찰나.
돌연 녀석이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지금 나를 걱정해 준 겁니까? 내가 저지른 행동에 내가 상처 입을까 봐?”
“어, 음···. 그, 글쎄? 내가 그랬나?”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눈동자를 굴려 시선을 피하며 일단 부정하고 봤다.
절대 타락펜스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겠노라 작정한 건 아니었지만, 녀석을 다정하게 대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선우가 받아야 할 고통보다, 결과적으로 내가 상처받는 것을 더 우선하여 걱정했지.”
“아도르 네가 착각한 거 아닐까? 난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잡아떼지 마라.”
“아, 그래! 걱정했다, 왜! 내가 그랬다면 아도르 네가 뭐 어쩔 건데!”
“감사하겠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다. 입에서 ‘엥?’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설마 내가 현재펜스는 선의를 받으면 감사할 줄 안다고 말한 것 때문에 이러나?
어처구니가 없어 내가 멍하니 눈만 끔벅거리자 타락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우, 고맙다. 나는 선우를 아프게 했는데, 이런 나를 걱정해 주어서.”
“···잘못했다는 사과는 안 해?”
“사과하면 앞으로도 나를 다정하게 대하며 애정을 베풀어줄 건가?”
타락펜스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한 일에 보상을 바라지 말라고 얘기하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세르펜스의 성격을 떠올려 보면, 녀석이 보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보상이 아니라면 애정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되는대로 갖다 붙인 거겠지.’
그렇게 타락펜스의 언행을 분석하고 났더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나 보다.
“됐어, 그냥 사과 안 받고 말래.”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애정을 줄 건가? 방금처럼 걱정을 살 만한 행동을 하면 되나?”
“일부러 그러기만 해 봐. 애정을 주기는커녕 눈도 안 마주칠 테니까.”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알려다오.”
아무래도 타락펜스는 방법론 예찬론자인가 보다.
무슨 말만 하면 방법을 알려 달라는 얘기로 빠지니, 대화가 계속 한 자리에서 뱅뱅 도는 것 같다.
이 지겨운 ‘어떻게’와 ‘방법’ 소리에서 벗어나려면 뭔가 수를 쓰긴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방법을 알려주면, 내가 말한 대로 할 거야?”
“당연하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얘기하지 않을 거야.”
“어째서지?”
방법을 알려줄 것처럼 굴어놓고 말을 바꾸자, 타락펜스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변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내가 말한 방법을 그대로 따르는 건, 아도르가 선택의 날 이전에 살아왔던 삶과 다를 게 없으니까.”
“···나를 생각해서 말하지 않겠다는 거로군.”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면?”
“······.”
나는 타락펜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이유를 만들어내려고 해도 마땅한 게 없었으니까.
“선우는 정말 다정하군.”
“아, 젠장.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될 것도 없잖은가?”
어째서 안 되는지 뻔히 알면서 타락펜스가 뻔뻔한 소리를 내뱉었다.
뻔뻔하게 구는 현재펜스에게 속으로 뻔뻔펜스란 별명을 붙여주며, 그 녀석의 볼을 꼬집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뜬금없이 과거의 일이 떠오르는 걸 보니 벌써 그 녀석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나 보다.
“아도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더 늦기 전에 휴마누스에게 성검을 반납하는 게 어때?”
“···늦는다는 게 어떤 의미지?”
타락펜스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거절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 우선 질문을 통해 내 의도부터 파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걸 테다.
“너와 내가 서로에게 정이 들면 늦어.”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 마지않는 일이다.”
“아니, 그때가 되면 너는 내게 한 짓들이 후회되어 괴로워질 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돌아가.”
“또 나를 걱정해 주는군.”
“아니···, 그 얘긴 이제 그만 하자.”
이번에는 타락펜스만 걱정한 게 아니라 내 걱정도 했으니, 당당하게 ‘아니거든?’ 하고 부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차마 ‘정이 들고 나면 아도르와 이별할 때 슬퍼질 것 같아.’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년간 나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 그동안 자신을 그리며 울어달라는 녀석에게 이런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 말을 들으면 타락펜스는 어떻게 해서든 그때까지 아득바득 버틸 게 분명하다.
“아무튼 그러니까 빨리 성검 반납하러 가자, 응?”
“싫다.”
“아, 왜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가혹한 교육도 애정만 담겨있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런데 내가 고작 후회로 인한 괴로움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나?”
“그건 다른 고통이야.”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괴로워하고 있으면 선우가 나를 걱정해 줄 테니까. 하루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
타락펜스가 기대하다 못해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과연 이 녀석을 설득해서 돌려보낼 수 있긴 한 건지 의문스러워졌다.
정에 굶주린 상태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나 예상치를 까마득히 웃돌았다.
‘얘가 이 정도인 줄 알았다면 아무리 위태로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세르펜스에게 성검을 넘기게 두지 않았을 텐데···.’
불쑥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곧바로 지워버렸다.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그땐 진짜 어쩔 수 없었으니까. 세르펜스가 죽는 것보다야 지금 이 상황이 낫다.
적어도 다시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으니까. 이게 최선이었다.
내가 타락펜스를 어떻게든 설득하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막막하기 그지없지만, 좀 더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타락펜스의 자아가 튀어나오더라도, 나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거라고 현재의 세르펜스가 말했으니까.
그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