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4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44화(844/1105)
844회
86. 공작님의 납치 (12)
“아도르, 내가 너에게 뭘 해주면 현재펜스를 돌려 줄 마음이 생길 것 같아?”
나는 결의를 다지며 질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진 물음일 뿐 기대는 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라고 딱 잘라 대답하겠지.
그러한 내 예상과는 달리 어째서인지 타락펜스는 곧장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점점 기대감이 차올라 온몸이 긴장되었다.
주먹을 꽉 말아쥐고 언제쯤 녀석의 입이 열릴까 기다리길 수 분.
타락펜스가 [성검의 주인] 속 묘사처럼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회를 포기하고 싶진 않지만···. 혹시 모르지. 미련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애정을 선우가 내게 베풀어 준다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그러니까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열심히 둥개둥개해 달라는 뜻이다.
타락펜스를 어르고 달래는 것쯤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현재펜스에게 항상 하던 거니까.
하지만 문제는 타락펜스가 과연 만족할 수 있느냐다.
심지어 ‘미련이 생기지 않을 정도’라는 조건까지 달렸다.
‘나와 3년을 함께 보낸 현재펜스조차, 아직까지 애정에 목말라 하며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는데. 집착으로 똘똘 뭉친 저 녀석을 대체 어떻게 만족시키라는 거야?!’
현재펜스를 돌려줄 생각 따윈 없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자신과 계속 거리를 둘 테니까 머리를 쓴 것이 분명하다.
내가 작은 가능성에 매달리며 최선을 다해 자신을 아끼고 보듬어 주길 바란 거겠지.
그 속셈을 알고 나니 정말 얄밉다 못해 괘씸해 죽겠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다.
나중에라도 내가 언제쯤 성검을 반납할 거냐고 따질까 봐, 안전장치도 주렁주렁 달아 놓았다.
미련이 남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놓은 거로도 모자란 것인지.
혹시 모른다든가 그런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든가, 그런 불확실한 가정까지 덧붙였다.
행여나 만족감을 느끼더라도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내가 그딴 함정에 넘어갈 것 같아?”
“으음, 아쉽군. 그냥 넘어와서 내게 정을 붙여버렸다면, 더 이상 현 시간대의 나를 찾지 않게 되었을 텐데.”
“아니, 아무리 정이 들어도 그럴 일은 없어. 이번 생은 아도르 네게 주어진 기회가 아니라, 현재펜스의 삶이야. 그러니까 반드시 돌려줘야만 해.”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타락펜스가 팔짱을 끼며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녀석의 눈을 마주 보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래도 키 차이 때문에 여전히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높이 차가 줄어든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을 빼앗지 마.”
“빼앗고 말고 할 게 있는가? 나 또한 세르펜스인 것을.”
“현재펜스가 선택의 날에 너와 다른 선택을 한 이상, 지금 이 삶은 온전히 그 녀석의 것이야.”
“그 선택은 선우가 내 곁에 있었기에 생긴 변화일 뿐이다.”
곁에서 이끌어 줄 어른이 없어서, 외로운 방황 끝에 잘못된 길로 빠져버렸던 아이가 딱 잘라 말했다.
안타깝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번 생은 현재펜스의 것이다. 이것만은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
“아도르, 네 삶은 이미 끝났잖아.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여.”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삶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포기하지 않고 아도르가 그러고 싶어질 때까지 매일매일 설득할 거야.”
“무슨 말로 설득하든 소용없을 거다. 이런 부질없는 논쟁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내가 제시한 조건에 기대를 걸어보는 건 어떠한가?”
“됐거든?!”
그렇게 빽 소리를 지르며 부정하긴 했지만, 타락펜스의 말대로 하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타락펜스가 만족할 때까지 애정을 쏟아주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는 설득할 수 없어.’
녀석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조건 ‘이 삶은 내게 주어진 기회다.’라는 의견만 고수하고 있다.
설득을 하려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즉, 타락펜스를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오늘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할 일이나 생각해 보자.”
“우리의 내일을 기약하자는 건가? 마음에 드는군.”
“헛소리하지 말고 저리 가서 앉아.”
“헛소리는 아니었지만, 알겠다.”
타락펜스가 순순히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비록 내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려고 시도하긴 했지만.
나는 방심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자리에 앉아 입을 뗐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어제 흑마법사의 연구실에 다녀와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힘들어했으면서, 또 그런 곳에 갈 생각인가?”
사과는 안 했으나 미안하긴 했는지, 타락펜스가 괜찮겠냐고 물어 왔다.
이제까지 실컷 강압적으로 굴어 놓고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나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을 머릿속에 새기며, 살짝 느슨해질 뻔했던 경계심을 도로 단단히 붙들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힘들었던 건 아도르가 나를 무서운 상황에 방치했기 때문이거든?”
“···알겠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선우가 무서워하지 않게 잘 지켜주겠다. 나를 자연스럽게 의지할 수 있도록.”
“어디 얼마나 잘 하는지 지켜보겠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될 수 있는 한 엄중한 표정으로 타락펜스를 째려보았다.
이런 내 진지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무겁게 받아들인 것만은 아닌 게 틀림없다.
나를 보며 타락펜스가 즐겁다는 듯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린 게 그 증거다.
‘타락펜스도 저런 식으로 웃을 수 있었구나···.’
비웃는 것도 아니고, 광기에 찬 웃음도 아니다.
현재펜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순수한 웃음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녀석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저지른 죄를 제대로 마주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웃지만 말고 어디 갈 건지 빨리 얘기나 해.”
“우후후. 보채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혹시 지도를 가지고 있는가?”
“내 지도가 있긴 한데 이것저것 메모가 많아서,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게 나을걸?”
“메모?”
“이따 얘기해 줄게.”
타락펜스의 시선이 잠시 내 아공간 주머니가 있는 곳을 향하긴 했지만, 녀석은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깨끗한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무슨 지역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전부 외운 현재펜스가 굳이 지도를 챙겨 들고 다니는 건, 나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작전이나 이동 루트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아마 타락펜스가 지도를 찾은 것도 같은 이유겠지.
설명펜스 기질은 어디 가는 게 아닐 테니까.
내 예상대로 타락펜스는 지도를 펼치자마자,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한 곳을 가리켰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악마 숭배 세력의 근거지는 여기다.”
“거기도 법숭이 연구실이야?”
“검사들을 양성하는 곳 중 하나다.”
내 물음에 타락펜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시선을 내려 녀석의 손끝이 가리킨 곳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지도를 보아하니 일부러라도 찾아갈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은 첩첩산중이다.
검숭이 교육시설이 저런 곳에 있다는 걸 확인하니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양성소라면···, 악숭이들에게 세뇌 당하며 검술을 배우는 아이들이 대다수겠네?”
“그러하다.”
타락펜스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아챈 듯했으나 자세한 이유까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런 녀석을 내버려 두고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런 교육 시설들은 룩스메아 교단에 맡기자. 악숭 세력의 주축인 법숭이들은 마법에 자질이 있지 않은 이상, 후대 악숭이로 키울 아이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게다가 당장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경계도 별로 삼엄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아?”
“허술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교단이 준비만 잘 한다면 역으로 당할 수준은 아니긴 하다.”
“그럼 해당 지역에 있는 국가의 협조까지 받으면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겠네?!”
“그렇긴 하다만···.”
타락펜스가 나를 미심쩍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교단과 연락을 취하여 일행들이 우리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주고자,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줄 아나 보다.
“그곳에서 세뇌받는 아이들은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교정의 여지가 있잖아. 따지고 보면 피해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교단의 성직자들이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사회화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나는 타락펜스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다.
오해가 풀렸는지 타락펜스의 눈가에 들어간 힘이 살짝 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바뀐 건 아니다.
탐탁지 않아 하는 녀석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
답이 없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 보다.
나는 손깍지를 껴서 가슴 앞에서 모아 잡아 절실함을 더욱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타락펜스가 조심스럽게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알겠다···고 하면, 선우는 내게 애정을 줄 건가?”
무언가 조금 애매하지만, 이 정도면 긍정적인 대답이라고 치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녀석의 질문에 답했다.
“애정은 무언가의 대가로 제공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애정을 준다고는 약속할 수 없지만,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는 할 수 있어.”
“그게 끝인가?”
“알았어, 알았어! 오늘 밤 잠잘 때 10분간 토닥토닥 해 줄게.”
나는 두 손을 들어 패배를 시인하며 보상을 내걸었다.
이 정도면 애정을 바라는 녀석도 만족하겠지.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토닥토닥이라면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아닌가? 나를 10분간 두드리겠다는 뜻인가?”
“비슷해.”
“으음···.”
타락펜스가 토닥토닥을 사전적 정의로만 받아들이며, 잠자리에 든 사람을 두드리는 것이 어떻게 보상이 될 수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녀석이 나를 이상한 취향으로 또 오인할까 봐 우려스럽다.
“아도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는 건데, 아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일단 받아보면 알 거야! 현재펜스도 좋아했어!”
“이해는 잘 안 가지만···.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럼 교단에 보낼 편지부터 작성해야겠군.”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에 편지지랑 편지 봉투 있어!”
타락펜스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편지 세트를 꺼내고, 펜을 쥔 후 다시 한번 내 눈치를 살폈다.
왜 저러나 골똘히 생각해 봤는데 짐작 가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내가 일행들에게 단서를 주려 한다는 오해가 완전히 풀린 게 아니었나 보다.
손을 내저어 그만 눈치 보고 어서 편지나 쓰라는 의사를 전하고 나서야, 녀석이 본격적으로 편지 쓰기에 돌입했다.
슬쩍 곁눈질로 살펴보니, 교육 시설의 위치와 아이들의 사회화를 도와 달라는 내용이 잘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