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4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45화(845/1105)
845회
86. 공작님의 납치 (13)
“하는 김에 다른 근거지들도 적으면 안 될까? 여기서 먼 곳들만. 우리가 하나씩 깨부수러 다니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릴 텐데, 도중에 악숭이들이 눈치채고 이삿짐 챙겨서 떠나버리면 큰일이잖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아니, 왜?! 아도르는 악숭 세력의 참모 같은 거 아니었어? 그럼 아군의 위치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잖아.”
악숭 세력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되어 악숭이 놈들도 서로의 위치를 모른다.
그러니 제아무리 타락펜스라 할지라도 놈들의 모든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었겠지.
그래도 녀석은 악숭 세력의 작전권을 쥐고 있었으니, 최소 절반가량은 알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근거지 위치는 대륙 각국의 힘이 약화됨에 따라, 악마 숭배 세력의 영향력이 강화되어 새로이 자리 잡게 된 장소가 대부분이다. 헌데 현 대륙의 상황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잖은가?”
“아···.”
“교육 시설은 오래전부터 유지되어온 장소이니 지금도 그대로겠지만, 다른 장소들은 그렇지 않다. 거기에 선우가 교단에 알린 정보들까지 제외한다면, 우리가 가 볼 만한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타락펜스의 설명에 나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러한 것을.
그래서 나도 [성검의 주인]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을 교단에 알릴 때, 마왕이 계시를 도청하니 어쩌니 하는 거짓말을 덧붙이지 않았던가.
“에휴,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고 얘기가 나온 김에 묻는 건데, 마왕이 소환된 장소는 어디야?”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소환이 진행될 거다.”
“나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그렇군.”
그렇게 대답한 타락펜스는 편지지를 곱게 접어 편지 봉투에 넣고, 스틱형 실링 왁스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왁스가 녹아 뭉글뭉글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타락펜스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왕 소환은 대신전 중앙 홀에서 진행되었다.”
“뭐?!”
내가 놀라거나 말거나.
타락펜스는 태연하게 심지에 붙은 불을 ‘후-.’ 하고 불어 꺼트린 뒤,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스탬프로 녹은 왁스를 지그시 눌렀다.
대신전 중앙 홀이면 선택의 날 예식이 이루어진 장소일 터인데.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이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녀석의 반응에 내가 다 멋쩍어졌다.
‘하긴 그 시기에 제국은 망하고 산맥 결계는 깨져서 마물이 넘쳐나다 보니, 제국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으니까···.’
악숭 세력이 무언가를 꾸미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마왕펜스는 그냥 본인이 직접 휴마누스를 찾아가서 싸움을 걸었지만.
만약 진짜 마왕이 10초 컷 당하지 않고 무사히 소환되었다면, 제국의 황성을 마왕성으로 개명하고 그곳에서 휴마누스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내친김에 궁금한 거 하나 더 물어봐도 돼?”
“그리도 나에 관해 알고 싶은가?”
“응!”
“그럼 물어봐라.”
사실 이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내일 계획을 짜야 한다.
나는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타락펜스는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지새웠다고 하니 얼른 재워야지.
그래서 나머지는 천천히 물어보고 방금 나왔던 주제와 관련된 것부터 질문하기로 했다.
“마왕의 힘은 대체 어떻게 가로챈 거야?”
“본래 마왕은 내 몸을 그릇으로 사용하여 소환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마왕의 힘만 내게 흘러들어 오도록 마법진을 조금 수정했다.”
설치형 마법진은 특수하게 제작된 마법 시약을 이용하여 그리는 것이긴 해도, 재료만 있다고 그리거나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력으로 시약을 움직여 마법진을 그리고 지정한 위치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수정할 때도 비슷한 방식이고.
그런데 마법사도 아닌 타락펜스가 마왕 소환 마법진을 손봤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세르펜스’의 몸을 탐낸 건 열불이 나긴 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세르펜스의 얼굴은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신의 영역에 다다른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으니까.
어디 그뿐이랴?
꾸준히 관리해온 신체 또한 강하고 아름답다.
마왕은 신이 되고자 했으니.
신성하기 그지없는 세르펜스의 미모를 이용해 사람들을 홀려 자신을 숭배하게 하는 게, 본체로 소환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판단한 게 틀림없다.
뭐, 악숭 사제를 생각하면 세르펜스의 신성력도 탐한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 부분은 대충 결론이 났으니, 마법진 수정에 관해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아도르는 마법사가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마법진을 수정한 거야?”
“마력을 밀어내는 성질을 지닌 ‘레펠로’를 이용해 일부 문자 혹은 획을 무효화하여, 문장과 구조를 바꾸었다.”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실제로 성공해냈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다른 존재도 아닌 무려 마왕을 소환하는 마법진이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구조를 갖췄을 것이 분명하다.
새로 덧씌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지우는 것만으로 결괏값을 바꿔버리려면, 마법에 정도껏 해박하지 않고서야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와···, 세르펜스는 신성력이 없었어도 대마법사로 이름을 날렸겠는데?’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대마법사 세르펜스라니 나쁘지 않다.
에드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우리 애는 진짜 천재니까 아니마보다 훨씬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됐겠지.
하지만 그냥 후방에서 마법만 쓰기엔 녀석의 뛰어난 신체 능력이 너무나도 아깝다.
만일 세르펜스에게 신성력이 주어지지 않았고 대륙의 재앙이 예견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대륙 최초의 마검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으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왕에게 세례명을 거짓으로 알려준 것도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머릿속으로 ‘마검사 세르펜스’의 위풍당당한 자태를 상상하는데, 타락펜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양심 없는 마왕 놈이 타락펜스에게 세례명을 알려달라고 졸랐었나 보다.
그보다 가짜 세례명이라니.
녀석이 자신의 세례명으로 무슨 단어를 골랐을지 무척이나 흥미가 동했다.
“나도 가짜 세례명 알려 줘! 궁금해!”
“별걸 다 궁금해 하는군.”
타락펜스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째서 이런 걸 궁금해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래도 내가 자신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봐 주는 게 좋았던 건지, 굳이 묻지도 않는 얘기까지 하며 친절히 응답해 주었다.
“처음에는 아트록스나 아바루스, 앙귀스, 아볼레오 등의 단어를 고려했다. 하지만 신이 지어준 이름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과격하여 의심을 살까 봐, ‘아베로(Aberro)’라고 알려 주었다.”
“아베로라면···?”
“길을 잃다 혹은 방황하다라는 뜻이다.”
1회차의 성검펜스와 2회차의 타락펜스를 모두 알고 있는 마왕이라면,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녀석과 어울리는 단어다.
문득 현재의 세르펜스는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지금 들을 수 없다.
“내게 물어볼 건 이게 다인가?”
“일단 오늘은?”
“선우는 시간을 들여 느긋하게 상대를 알아가는 것을 선호하나 보군. 그런 것도 나쁘진 않지.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야 많으니까.”
“그냥 빨리 계획 세우고 자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그래도 어제 밤이 새도록 선우에게 질문한 나와 비교하면 느긋한 편이지.”
타락펜스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알면 참을성을 좀 길러보는 게 어떠냐고 톡 쏘아붙이려다가 말았다.
선택의 날이 오기 전까지 인내하고 또 인내하다가, 결국 터져버린 결과물이 타락펜스였으니까.
인내심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잡담은 그만 하고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려 줘.”
“교육 시설을 제외하면 여기가 가장 가깝다.”
타락펜스가 가리킨 곳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다.
아무리 빨리 날아가도 이삼일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다.
목적지를 확인했으니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내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맛집과 관광지 정보 등을 잔뜩 메모해둔 까닭에 굉장히 꼬질꼬질했지만, 보는 데 지장은 없다.
타락펜스가 그 메모들을 읽었는지, ‘지도에 뭘 적어둔 건가 했더니···.’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곳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경로상에 마침 적당한 지역이 눈에 띄었다.
“그럼 가는 길에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자! 이 도시에 식사가 끝내주는 여관이 있대!”
“으음···,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군.”
“어차피 교단에 편지를 붙이려면 사람 사는 곳에 가긴 해야 하잖아?”
“밤중에 몰래 우체국에 잠입하여 우편물 사이에 편지를 끼워 넣을 생각이었다.”
“나를 데리고?”
“못 할 것도 없지.”
“유능해서 차~암~ 좋겠네!”
나는 타락펜스에게 빈정거리며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삐쳐 있을 수는 없다.
내게는 꼭 도시에 들러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타락펜스의 의식 너머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세르펜스를 생각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타락펜스를 설득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어물어물 말을 꺼냈다.
“쟁여 둔 음식 중, 디저트류를 제외하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그래. 여관에 묵으면 우리가 떠나기 전까지, 고기와 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를 잔뜩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잖아.”
빵과 샐러드가 있으니 적당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지.
매일 그런 것만 먹었다간 영양실조에 걸리기 딱 좋다.
그리고 영양실조는 신성력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성력은 먹을 수 없으니까.
“그런 거라면···, 알겠다.”
“좋아! 그럼 거기서 하룻밤 묵는 김에, 새벽 일찍 일어나서 근처 까눌레 전문 매장에 가서 줄 서자!”
“···음?”
타락펜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현재펜스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고, 일행들과 다 함께 줄을 서자고 제안했을 텐데.
그리고 윈스톤이 산 까눌레까지 자기가 먹었겠지.
“여기서 1인 1개 선착순으로만 판매하는 한정 까눌레가 있는데 장난 아니게 맛있다나 봐! 선착순 메뉴 말고 다른 것도 다 맛있다니까 이것저것 왕창 사자!”
“다른 메뉴들도 맛있다면서, 꼭 줄까지 서서 한정 메뉴를 사야 하는 건가?”
“물론이지!! 쫓기는 처지라서 내키지 않는 건 이해해. 하지만 그걸 먹어보지 못하고 죽으면 인생의 절반을 손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여행안내 책자에 쓰여 있었단 말이야! 아도르는 살아생전 못 먹었으니까 이제라도 먹어야지!!”
“······.”
내 열띤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뜩잖은 기색이다.
이 방법만큼은 안 쓰려고 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야겠다.
나는 엎드려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쳐 온몸으로 분함을 표출하며 곡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이고!! 고기랑 치즈도 못 먹는데, 한정 까눌레까지 못 먹는 삶이라니! 절반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손해 보게 생겼네! 서러워서 어떻게 사나!!”
“아, 알겠습니다. 줄을 설 테니 진정하십시오.”
다 큰 성인인 내가 본격적으로 떼를 쓰기 시작하자 당황했는지, 타락펜스가 존댓말을 쓰며 내가 원하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그럼 이제 양치하고 자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