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4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47화(847/1105)
847회
86. 공작님의 납치 (15)
성문 앞에는 두 명의 경비병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우리의 짐가방을 풀어 내용물을 검사했고, 그러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나와 타락펜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것 참···, 오랜만에 오시는 여행객이군요.”
위조 신분증을 앞뒤로 꼼꼼히 살펴보던 경비병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며,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 말 속에는 악숭이가 무서워서 다들 몸을 사리는데, 너희는 왜 다른 도시까지 와서 싸돌아다니느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우리를 의심하며 떠보는 거다.
“죽기 전에 먹지 못하면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보게 된다는 한정 까눌레를 노리고 왔습니다! 지금이라면 여행객이 없을 테니 선착순에 들기도 쉽겠죠!”
“아! 그 까눌레가 목적이시라면야 인정합니다.”
내가 비장한 목소리로 목적을 밝히자,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저 경비병은 그 한정 까눌레를 먹어본 적이 있나 보다.
하기야 이 지역 명물인 데다가 요즘은 여행객이 없어 줄도 짧을 테니, 비번일 때 사 먹을 만도 하지.
“어이, 톰. 가방에서 뭐 이상한 물건 나왔어?”
“아니오! 없습니다!”
입맛을 다시던 경비병이 가방 검사를 맡은 경비병에게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하게도 아무 이상 없다는 내용이었다.
“확인 끝났으니, 이제 가방을 챙겨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한정 까눌레를 사러 온 거라면 인정하겠다더니.
경비병은 정말로 다른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고 순순히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대체 이 사람은 까눌레에 얼마나 진심인 건지 의문스러운 한편, 한정 까눌레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나는 경비병이 들쑤셔 놓은 가방을 대충 정리해서 입구를 닫으며, 타락펜스에게 말을 붙였다.
“있지, 우리 여관 가서 점심 먹고 난 후에 까눌레를 사러 가는 게 어때? 오늘 간식으로 먹게!”
“일반 품목이라면 내일 새벽에 줄을 서는 김에 같이 사겠다고 하지 않았나?”
“뭐 어때? 오늘도 사고 내일 또 사면 되지! 그리고 겸사겸사 다른 가게들도 구경하자!”
“······.”
타락펜스가 침묵했다.
새벽 일찍 줄을 서는 것도 겨우 허락한 마당에, 여기저기 쏘다니자는 내 의견이 탐탁잖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여관방에 가만히 처박혀 있을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닌 힐링이니까.
“오! 좋은 생각입니다. 그 한정 까눌레를 먹고 난 후 다른 까눌레를 먹으면, 괜히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니까요. 그러니 다른 까눌레의 맛도 제대로 즐기시려면 오늘 상시 판매 제품을 먼저 사드시고, 내일 한정 제품을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까눌레 마니아 경비병이 적절한 타이밍에 지원 사격을 해 왔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가방을 들쳐메려다가 생각을 바꿔 타락펜스에게 떠넘기며 말했다.
“들었지? 경비병님도 저렇게 말씀하시잖아. 그러니까 사러 가자!”
“······.”
“까눌레 먹으러 여기까지 온 건데 뽕은 뽑아야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며 타락펜스를 올려다보니, 후드 아래로 묘한 눈빛을 한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본 목적은 따로 있지 않으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걸 테다.
하지만 그 얘기를 경비병들 앞에서 차마 할 수 없었는지, 결국 알겠다며 내 계획에 동참해 주겠다는 패배 의사를 밝혔다.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타락펜스의 손을 잡아끌며 당당히 성문을 통과했다.
그런 우리를 향해 경비병이 환영 인사를 했다.
“우리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 곳까지 발걸음을 하신 만큼 한정 까눌레 구매에 꼭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전에는 새벽 4시부터 기다렸어야 했는데, 요즘은 여행객이 없어서 6시에 가셔도 여유롭게 사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경비병님!”
일단 큰 목소리로 그렇게 화답하긴 했지만, 나는 경비병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녹록한 사람이 아니다.
지원 사격이 고맙기야 했으나 타락펜스가 내게 두 번이나 기회를 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내일 새벽 까눌레 선착 구매에 무조건 성공해야만 한다.
“저 경비병은 우리의 경쟁자야. 그러니 5시에 출발해서 5시 30분까지 가게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삼자.”
나는 타락펜스의 귀에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타락펜스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이미지 따윈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여기 어때 보여?”
성문 앞을 지키고 선 경비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을 때, 나는 타락펜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타락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평화롭지 않아?”
“···그렇군.”
녀석이 이해할 수 있게끔 다시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비록 경비병이 까눌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검문을 좀 대충 하는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치안이 제대로 정비된 큰 도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여행객은 없었으나 그만큼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물론 깊게 파고들면 수입이 줄어든 현지인들의 고충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평온한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며 이따 들를 만한 가게들을 눈으로 물색하고 있는 그때.
“그게 끝인가?”
타락펜스가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녀석이 대체 무슨 대답을 바라고 이런 질문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게 끝이었기에 달리 할 말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끝인데, 왜?”
“···거짓말.”
“엥?”
“나를 탓하려고 그런 말을 꺼낸 거잖는가.”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내가 ‘이 평화로운 풍경을 네가 다 망쳤어.’라고 비꼬는 줄 알았나 보다.
그런 거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심 녀석이 이 풍경을 보고 무언가 느끼길 바라긴 했으니까.
“자기가 잘못한 걸 알기는 아나 봐?”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아니까 한 거다. 선우도 눈치채고 있었잖은가?”
타락펜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입가에 작은 조소가 걸려 있었다.
자조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나 그 미소에는 나를 도발할 의도가 분명하게 깔려 있었다.
‘얘는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혼나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대체 왜 이러나 모르겠다.
나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가까이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작은 목소리로 세르펜스의 세례명을 입에 올렸다.
“아도르는 내게 잘 보이고 싶은 거야, 아니면 밉보이고 싶은 거야? 태도를 확실히 밝혀 줘.”
“잘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하잖은가?”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해?”
“나는 잘 모르겠으니 선우가 정의를 내려다오.”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황당해진 것도 잠시.
녀석의 표정에서 기대감이 읽혔다.
황당함은 사라지고, 감정에 서툰 타락펜스라면 진심으로 저런 소리를 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더군다나 녀석은 나와 현재펜스가 나눈 필담이 적힌 종이도 보았다.
그중에는 내가 타락펜스에 관해 이래저래 추측해 본 내용도 있었다.
그러니 나라면 본인도 모르는 제 심리를 파악했을 거라고 결론 내린 거겠지.
‘얘는 내가 추측한 게 맞는지 틀린지 어느 쪽인지도 모를 거야, 아마.’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위라도 하듯 녀석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런 짓을 해 봤자 튀어나온 입술을 꾹 눌러서 넣어주거나 잡고 비틀어 줄 생각은 없다.
녀석의 현재 심리를 대신 정의해 줄 생각도 없고.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가 되자!”
“···스스로 생각하라는 뜻인가?”
“응.”
“그냥 선우가 나를 이끌어 주면 안 됩니까?”
“나는 자기 주도 학습을 선호하며, 아이가 능동적인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사람이라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타락펜스와 맞잡은 손이 갑자기 아파왔다.
이 불효자 녀석이 고의로 손아귀에 힘을 준 까닭이다.
길 한복판에서 소리을 지르면 사람들이 몰릴 게 뻔하다. 나는 비명을 억누르며 타락펜스에게 말했다.
“내 양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가.”
“돌아가다니, 어디로?”
“그야···.”
순간 고통을 잊을 정도로 정신이 멍해졌다.
그동안 돌아간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실상 사라지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아니, 사라지라는 말이 거북해서 돌아간다는 표현을 쓰고 있었으니까.
타락펜스의 면전에 대고 무(無)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매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물거리고 있노라니 손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졌다.
내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가만히 땅만 내려다보며 얼마나 걸었을까?
타락펜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 이 여관이 맞는가?”
녀석이 길을 잘못 들었을 리는 없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말에 불과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간판을 확인하고 여관에 들어갔다.
간만에 찾아온 손님을 격렬하게 반기는 여관 주인에게 식사를 주문하고, 우리는 열쇠를 받아 3층에 있는 특실로 향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잠깐 씻고 올게.”
나는 위장용 짐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으며 말을 꺼냈다.
점심을 먹고 나가서 돌아다닐 생각이긴 하지만, 요 며칠 제대로 못 씻은 데다가 악몽에 시달린 탓에 땀이 많이 나서 찝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락펜스는 내가 도망갈 기회라도 엿보고 있는 줄 아는지, 먼저 욕실에 들어가서 안을 살피고 나왔다.
“환기를 위한 작은 창문이 있더군. 그곳으로 나갈 수는 없겠지만, 쪽지 정도는 던질 수 있을 테니 아공간 주머니는 맡기고 들어가라.”
“내 아공간 주머니를 지니고 있으면, 편지를 멋대로 읽게 될 것 같아서 돌려준 거 아니었어?”
“최대한 참아보겠다. 정히 불안하면 빨리 씻고 나오던지.”
타락펜스가 내게서 강제로 아공간 주머니를 뺏어가며 일방적으로 말했다.
그러고도 불안했는지 몸수색까지 해가며 필기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욕실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자유를 침해당하는 기분에 불쑥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씻는 것까지 허락을 받아야 해? 이럴 거면 그냥 문을 활짝 열어놓고 씻으라고 하던가!”
“나름대로 선우를 존중하여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 선우가 그러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존중할 생각도 없으면서 잘도 저런 소리를 한다.
나는 녀석을 잠시 흘겨봐준 후, 타락펜스가 주머니 검사를 마친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가져온 옷이 물에 젖지 않도록 수납장에 넣어 놓고, 입고 있던 옷을 벗는데 멍든 양어깨가 거울에 비쳤다.
“으···.”
무심코 손가락으로 멍을 톡 건드려보니 찌르르 통증이 느껴졌다.
치료를 하려면 타락펜스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었다.
이 멍을 만든 게 바로 타락펜스고, 조금 전에도 손을 꽉 잡아서 내게 고통을 줬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녀석이 나를 다치게 한 후, 어째서 치료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지 짐작되는 바가 있어서다.
내가 자신에게 의지하길 바라는 만큼. 그리고 녀석이 내게 매달리는 만큼.
나도 자신에게 의지하고 매달리길 바라서, 내가 직접 치료를 해 달라고 부탁해 오길 기다리는 걸 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녀석의 손에 다치고 치료받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는 장난감처럼 생각하게 될까 봐. 나를 지금보다 더 함부로 대할까 봐.
그게 걱정되었다.
‘지금 내 취급이 이런데···. 걔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기구한 인생을 살다가 남들처럼 정이라는 것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애원하는 아이에게 사라지라는 소리를 해댄 게 마음에 걸렸는데.
미안한 마음이 쏙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