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4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50화(850/1105)
850회
86. 공작님의 납치 (18)
“그래서 어떻게 할래? 약속할 거야, 말 거야?”
“하겠다. 한 달 뒤에 성검을 반납할 터이니 그때까지 나를 다정히 대하며 애정을 다오.”
“좋아, 그럼 잠깐 얼굴 좀 내밀어 봐.”
내가 가까이 오라는 손짓과 함께 그렇게 말하자, 타락펜스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녀석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살짝 물을 묻힌 뒤, 녀석의 입술에 묻은 피를 톡톡 닦아냈다.
이런 내 행동에 타락펜스는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듯 생긋이 눈을 휘며 웃었다.
아주 사소한 친절에 불과하건만. 지나치게 좋아해 주니까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손을 거두고 포크를 집어 들며 말했다.
“다 됐어, 이제 얼른 먹고 나가 놀자!”
너무 오래 방치한 탓인지 음식은 다 식어 있었다.
그러나 음식이 막 도착했을 때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달 뒤 타락펜스가 약속을 지킬지 어떨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녀석에게 다정히 대해 주기로 결심한 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덕택이다.
우리는 식은 음식을 다 먹고 빈 그릇들이 담긴 카트를 복도에 꺼내놓은 뒤, 여관 밖으로 나왔다.
까눌레 매장에 가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종류별로 사고 다른 디저트 가게에도 들렀다.
관광객이 없어 노점이 열리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덕분에 여유롭게 길거리를 노닐며 한적한 도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손이 잡혀있긴 했으나 타락펜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주도하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숨통이 좀 트였다.
물건을 사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공간 주머니를 대놓고 쓸 수 없어서, 쇼핑백을 들고 다녀야 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런 번거로움조차 쇼핑하는 기분이 나서 즐거웠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질 때 즈음 여관으로 돌아왔는데, 외출을 꺼렸던 타락펜스가 은근히 아쉽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재밌었다, 그치?”
“으음···.”
내 물음에 타락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를 쫓는 일행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을 생각하면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되지만, 내심 또 나가 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쇼핑백을 내려놓고 타락펜스의 뒤통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고 나서 쇼핑한 간식들을 정리했다.
보존 기간이 짧거나 모양이 흐트러질 위험이 있는 건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당장 먹을 까눌레와 자두 주스는 꺼내 놓았다.
나머지는 내일 떠날 때 손에 들고 갈 예정이라 쇼핑백째 위장용 가방 옆에 두었다.
정리를 마치고 나자, 타이밍 좋게 여관 주인이 쟁반을 들고 방에 찾아왔다.
쟁반에는 얼음이 든 통과 빈 접시와 빈 컵. 그리고 디저트용 포크와 나이프, 머들러가 올려져 있었다.
올라오면서 부탁했던 물건들이다.
나는 여관 주인에게 팁을 건네준 뒤 쟁반을 받아 들고 방문을 닫았다.
‘···근데 타락펜스 쟤는 뭐 하는 거야?’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나는 타락펜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녀석은 멀뚱멀뚱 방 한가운데에 서서 자신의 뒤통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걸까? 설마 내가 머리를 쓰다듬은 이후로 계속 저랬나?
나는 가볍게 혀를 내두르며 빈 잔에 얼음을 담고 자두 주스를 따랐다.
그리고 머들러로 휘휘 저으며 타락펜스를 불렀다.
“준비 다 됐으니까, 와서 먹어.”
부르니까 쪼르르 와서 의자에 앉는 녀석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입에 재갈을 쑤셔 넣던 그 살벌한 사람과 동일인이 맞나 싶다.
나는 타락펜스에게 시원해진 자두 주스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 내 몫의 음료를 준비했다.
얼음이 녹으며 밍밍해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한 모금 마셔 보니 다행히도 달고 맛있었다.
이 정도면 타락펜스도 마음에 들겠지.
‘조용히 먹기만 하긴 뭐 하니까, 무슨 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얘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회차의 진짜 결말을 비롯하여 궁금한 것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못 물어보겠어.’
타락펜스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얘기를 입에 담게 된다면, 현재펜스 또한 자연히 알게 될 테다.
나는 그 녀석에게 [성검의 주인] 내용을 전달하면서 최대한 순화된 표현을 쓰려고 애썼다.
하지만 타락펜스는 절대로 그리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자신의 잔혹한 면을 강조하며 내 반응을 유심히 살피려 들겠지.’
그런데도 물어볼 생각을 완전히 접지 않은 건, 언젠가 휴마누스가 그 기억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보지 못하도록 막을 거다.
하지만 휴마누스의 뜻이 강경하다면 어쩔 수 없다.
마왕이 2회차 때보다 신에 더 가까워졌으니까.
그런 주제에 쪼잔하기 짝이 없어서, 놈은 휴마누스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경험을 쌓을 기회를 차단해 버렸다.
단 한 번의 경험조차 아쉬울 때다.
심지어 그 경험이 마왕의 힘을 다루는 마왕펜스와의 전투라면, 더더욱 포기하기 어려울 터.
‘차라리 기억을 보기 전에 얘기해 줘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돕는 게 낫지···.’
그래서 고민이다.
이걸 물어봐도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언급을 삼가야 하는 건지.
“선우.”
톡, 톡.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타락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내 음료 잔 바로 옆에 녀석의 손이 놓여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러 손을 뻗어서 나와 가까운 곳을 두드린 거다.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는 건가?”
마치 걱정이라도 하는 듯한 그 물음에, 짧은 순간 현재펜스의 모습이 녀석에게 겹쳐 보였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가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녹색 눈동자는 독이라도 품은 것처럼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에 떠오른 감정은 나를 향한 걱정이 아닌 독점욕이었다.
“지금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대상이 현 시간대의 내가 아니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자신에게 애정을 쏟아주기로 약속했으면서, 현재펜스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거냐고 따지는 거다.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딴생각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래도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겠지.
“딴생각을 한 건 미안한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 행여 내가 그 녀석을 떠올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런 것까진 간섭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 생각은 내 자유잖아?”
“한 달이라는 기간을 둔 만큼, 나는 선우가 온전히 내게만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그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는 것 아닌가?”
타락펜스가 억울하다며 따졌다.
녀석이 정말로 한 달 뒤 성검을 반납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짠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그러겠노라 대답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녀석은 지금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애정이 퐁퐁 솟아나는 샘물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야. 그때그때의 감성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어.”
“그래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잖은가?”
“아도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우선 나를 존중하는 태도부터 갖춰야 해.”
“선우가 내게 애정을 주는 건, 나를 없애고 현 시간대의 나를 돌려받기 위한 조건 아니었나?”
타락펜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 눈빛은 반짝인다기보다는 번들거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고, 마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을 티 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반응은 뭐지?”
“갈 길이 멀구나 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내가 아도르에게 아무리 애정을 쏟아 주려 해도, 아도르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
“내가 선우의 애정을 거부하고 있다는 뜻인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도 들었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러나 반쯤은 그 말이 맞다.
“모든 감정은 상호적인 거야. 그냥 가만히 받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사랑이란 건 말이야 받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해. 아도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도르를 위해 하는 행동들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거야.”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사랑해 줘도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해.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상상 속의 사랑을 원하게 되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진심으로 아도르를 대하더라도, 정작 네가 내 애정을 ‘당연히 받아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아도르, 너는 내 진심 어린 애정을 영영 느끼지 못할 거야.”
“······.”
타락펜스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한 것 같지는 않으나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어쨌거나 내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긴 했다는 거니까.
“내가 아도르에게 보내는 선의와 애정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나를 존중해 줘. 그리고 내가 아도르에게 건네는 감정을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해 줘. 비록 내가 먼저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아도르를 대하는 내 마음에 거짓은 없어. 너도 알잖아? 내가 현재의 세르펜스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려 한 건, 아도르 네 삶을 봤기 때문이라는 거.”
“선우의 진심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긴 했잖아?”
“···그건 인정하겠다.”
타락펜스가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을 조금쯤은 바꿔먹은 것 같다.
개선의 여지가 보였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니 칭찬을 해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녀석의 머리 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손목을 까딱거렸다.
타락펜스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내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내밀었다.
“이건 아도르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으니까 주는 상이야.”
나는 타락펜스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의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졌다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엉망이 된 머리칼을 정돈할 생각조차 못 하고, 타락펜스는 가만히 굳은 채 눈만 끔벅거렸다.
방금 뭐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다.
“혹시 누가 머리 만지는 거 싫어?”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으음···. 기분이 이상해서···.”
그렇게 말하며 내가 쓰다듬었던 부분을 매만지는 걸 보니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긴 타락펜스도 세르펜스니까. 당연히 쓰담쓰담을 좋아할 줄 알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까눌레를 살짝 잘라서 맛을 봤다.
자를 때 나이프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 제법 단단한 것 같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입에 넣어 씹어 보니 적당히 바삭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면서 속 부분은 촉촉하고 쫄깃해서 한 번에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까눌레를 제대로 구울 줄 아는 매장이구나 싶다.
“이야, 이거 맛있네! 아도르도 어서 먹어 봐!”
“아···! 그러겠다.”
타락펜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까눌레를 한입 크기로 잘라 입에 쏙 넣었다.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며 꼭꼭 씹어 먹는 게, 녀석도 속으로 이 놀라운 식감에 감탄하는 듯했다.
입안에 든 것을 다 삼켰는지 타락펜스가 이번에는 자두 주스로 손을 뻗었다.
한 모금 마신 뒤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는 걸 보니 음료도 마음에 드나 보다.
“그런데 선우. 그래서 아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아까 같은 질문을 했을 때와 달리, 타락펜스가 독기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번에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질문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