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5화(85/1105)
85. 공작님과 비밀 결사 (2)
“······.”
“······.”
잠시 대화가 끊겼다.
그러는 중에도 형체 없는 화살은 이리저리 쏘아졌고, 그때마다 다양한 마법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저렇게 당당히 말하는 거지?’
짐작 가는 게 전혀 없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가장 처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시온님의 태도였어요.”
···이거 일 났네.
정말 나 때문에 들킨 거라면, 세르펜스에게 이번에야말로 혼이 날테다.
‘그런데 어떻게 혼나는 거지?’
예전이야 [성검의 주인]에 나왔던 타락펜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레 겁을 먹었으나, 지금은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항상 혼낼 듯 말 듯 하다가, 결국에는 ‘이번만은 넘어가 주겠다.’로 귀결되었으니.
‘왜 사춘기 청소년이 투덜거리며, 반항 같지도 않은 반항 하는 모습만 떠오르지?’
일부러 화난 티를 팍팍 내며 문을 ‘쾅-!’ 닫아놓고, 너무 세게 닫은 게 아닌가 전전긍긍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건 좀 아닌가?’
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호위 도련님 버전으로 유지스 앞에서 어떤 행동을 했던가.
다른 건 어떻게든 덮어주려 노력하겠으나, 청부 살인 의뢰가 어쩌고 한 것은 도저히 커버가 안 된다.
“너무 격이 없으시잖아요?”
“···겨우? 그냥 우린 친한 것뿐입니다! 친구 같은 상하 관계!”
“하지만 가끔 위아래가 뒤집혀 보이는걸요?”
이건 필시, 세르펜스가 너무 내 말을 잘 들어서···.
“형이라 부르라 하시질 않나, 툭툭 쳐서 자리를 비켜달라 하시질 않나···. 그 외에도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례한 모습을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시잖아요?”
“그, 그게··· 공작님이 호구라서 그래요!”
– 팅···. 쉬이익─!
방금의 맥빠진 소리로 짐작하건대, 활시위를 한 번 놓친 듯하다.
다행하게도 바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쏘아 보냈길 망정이지. 잘해놓고 끝에 다 와 가서, 몇 명 놓칠 뻔했다.
“무, 무례한 건 넘어가더라도. 종종 돌봐야 하는 존재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시는 건···.”
“일에 치여 사시느라 제 몸을 돌보려 하시지 않으니, 보좌관으로서 대신 봐 드리는 겁니다.”
“야시장은요? 그런 곳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보이시던데···. 필시 무언가 비밀 임무가···!”
“공작으로서의 위치 때문에 참고 사시는 것뿐. 결국에는 그저 24살의 평범한 청년에 불과합니다. 원래 이 나이대 인간 남성은 노는 걸 좋아합니다.”
사실 나이를 떠나,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노는 게 제일 좋아!
“모든 게 다 위리디아님의 착각이었던 겁니다. 사실은 일루미나티라는 비밀 결사 단체도 실존하지 않는 환상 속 단체고요.”
“···뭐, 좋아요. 허술한 답변뿐이지만, 그건 넘어갈게요. 진짜 결정적인 단서는 따로 있으니.”
마지막 질문인가 보다.
뭐가 나올지는 몰라도, 대충 둘러대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다음에 세르펜스와 상의해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투기장 쪽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모양이고···.’
밖으로 도망 나오는 사람도 더는 없어 보인다.
마침 은신 마법도 슬슬 풀려가니, 이제 몰래 내려가면 되려나?
“어째서 시온님은 ‘페르센트’라는 가명은 어색해하시면서, ‘세르펜스’라는 본명은 익숙하게 부르시는 거죠? 게다가 그분도 그것에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으셨죠.”
“그, 그건 공작님께서 호구라서! 가끔 제가 하극상, 아니 장난으로···.”
“그렇다면 그분은 어째서 당신에게만 ‘당신’이라는 호칭을 혼용해서 쓰는 거죠?”
“···네?”
···뭐야, 그게?
“저는 그런 식으로 불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공교롭게도 ‘그’ 호위 기사에게도 마찬가지로.”
뭐야,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남을 부를 때 특정 대명사 표현을 섞어 부르는지, 아닌지. 그딴 거 알 게 뭐야.
‘다른 건 잘 숨겨놓고, 대체 왜 그런···. 설마···?’
분명 세르펜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는 의미다.
덧붙여, 유지스만 콕 집어서 배척하는 게 아니라, 나만 콕 집어서 특별 취급하는 거겠지.
왜냐하면···.
“시온님 외에는 제대로 된 인격체 취급을 안 하시는 것처럼···.”
“······.”
그녀의 말이 맞을 거다. 정확하게 짚었다.
‘대화 상대를 ‘당신’이라 부르는 거야, 뭐···.’
야야 거리거나, 너너 거리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것 아니던가.
그 때문에 무심코 간과하고 넘어가 버렸으나···.
‘나 말고는 없었던 거구나.’
진짜 세르펜스를 끄집어내어, 연기가 아닌 대화를 끌어낸 것은.
“그 반응을 보니, 눈치채지 못하셨던 거군요.”
“······.”
“그렇다는 건, 실제 성격이 호위 쪽에 가까운 건가요?”
“······.”
난 최선을 다했다.
이건 도무지 덮을 방도가 없었다.
‘저렇게 명백한 증거를 어떻게 반박해?!’
이건 세르펜스가 잘못한 거다.
아니, 그가 얼마나 감정에 미숙한 어린아이인지 알면서도···. 내 잘못도 있다.
보호자로서 좀 더 관심을 갖고, 대인 관계까지 신경 써 줬어야 했는데.
‘다른 이들을 짐이라 여기고 있는 건 알았지만, 사람 취급조차 안 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장 먼저 눈치챈 이가 유지스라는 것이다.
‘호위 도련님 쪽에도 호감을 표하던 그녀였으니···.’
이제 와서 그를 꺼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그의 이름을 알아내겠다고 하더니, 그녀는 기어코 그것에 성공했다.
상대에게 직접 듣는 대신, 상대의 정체를 추리해 내는 방법으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그는 그저 외로웠을 뿐입니다. 타인을 깔보거나 그런 게···.”
“알아요. 투기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가련히 여겨, 그렇게 슬퍼하시던 모습을 보았는데. 당연히 그럴 리 없잖아요.”
그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치자.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 추켜세워지며, 완벽을 강요당하는···.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고 계셨던 거겠죠. 그러한 탓에 책임을 강요당하고, 모든 이들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겠죠.”
이건 정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켜야 할 인간들의 어두운 면을 보고 염증(厭症)을 느끼고, 신물이 났겠죠. 그럼에도 자신은 그런 자들까지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로 인한 괴리감에 고통스러워했겠죠. 호위 기사의 모습일 때 보였던 냉혹한 면은 바로 이 때문이겠죠. 이해할 수 있어요.”
암흑가를 지배하여 악을 통제한다는 식의 얘기를 입에 담았던 그녀다.
당연히 이해하겠지.
물론 세르펜스가 그런 이유로 냉혹함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대한 괴리감에 고통스러워한 것은 사실이다.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숨기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니. 그것은 너무 슬픈 일이에요!”
이런 얘기는 나 말고, 세르펜스 본인에게 직접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다, 시온님을 만나게 된 거겠죠.”
“···네, 맞습니다.”
“당시 시온님 또한 홀로 악마 숭배자들을 쫓으며 정신적으로 지쳐가던 중이셨고요.”
“예, 그것도 맞···?”
“그러던 중, 우연히 공작님을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고.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시온님이기에,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던 그분의 고독을 알아챌 수 있었던 거겠죠.”
어쩐지 잘 나간다 했다.
오늘도 그녀는 한 편의 소설을 써 내려갔다.
「
처음에는 그를 따르던 이들도 있었다.
그는 영민한 두뇌와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포용력을 모두 갖췄지만, 신체적으로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였다.
싸움을 이어나갈 때마다, 그를 지키기 위해 하나둘 목숨을 잃어갔다.
시온은 더이상 동료를 만들지 않기로 다짐했다.
외로운 싸움이 이어졌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몸으로, 혼자 싸워나가는 것은 무척이나 요원한 일.
그는 오늘도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수도의 그늘진 골목에 숨어들었다.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그를 지탱해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그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댔다.
그러다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던 자를.
자신과 달리,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결국, 그는 혼자였다.
그를 거친 전장으로 떠미는 손만 있었을 뿐, 정작 그를 잡아 주는 손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
하지만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르펜스는 외로움에 사무쳤지만, 그 감정이 외로움이란 걸 몰랐다.
하지만 시온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강한 무력은 가졌지만, 정신적으로 내몰리고 결핍되어 있었음을.
그리고 생각했다.
‘나라면, 저들처럼 모든 짐을 그에게 떠넘기지 않을 텐데.’
거듭하여 생각했다.
‘그라면, 나를 지키면서도 ‘그들’처럼 쉽게 목숨을 잃지 않을 텐데.’
결국은 깨달았다.
둘은 서로 닮은 듯 전혀 달랐고, 그 때문에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음을.
+ + +
시온은 그의 보좌관이 되어, 세르펜스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할 리 없던 그였기에, 그는 계속해서 시온을 밀어냈다.
“이제까지 공작님이 만났던 사람들이 잘못된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만은 당신을 돕고 싶다는 얘깁니다.”
·
·
·
시온의 판단은 옳았다.
세르펜스의 무력은 굳건하여,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더는 동료를 잃는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여전히 외로워 보였다.
‘어째서?’
그제야 깨달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뒤를 받쳐 줄 신하가 아닌,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나아갈 동료였음을.
“우리 단체 하나 만들까요? 단체라 해도 거창한 건 없고, 그냥 지금처럼 둘 뿐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내세울 그럴듯한 이름이라도 있으면 폼나잖아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럼 제 마음대로 수장은 저. 공작님은 제 보좌관으로 정하겠습니다.”
“···네?”
세르펜스는 시온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정해졌으니 못 물러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는 시온의 표정을 본 후에야, 그것이 저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세르펜스는 피식 웃었다.
“그럼 단체명은 무엇으로 정하시겠습니까?”
“일루미나티(ILLUMINATI). 우리는 대륙의 어둠을 걷어낼 한 줄기의 광명(光明)이 되는 겁니다.”
“···너무 거창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더 멋지잖습니까!”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 사이에 놓은 작은 촛불 하나가, 방 안의 어둠을 몰아내었다.
」
“그렇게 두 분은 지금에 이르게 된 걸 테죠. 때로는 공작과 그 보좌관으로. 때로는 악과 싸우는 비밀 조직의 수장과 그 보좌관으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며, 동등한 입장에서 마주 볼 수 있는 친구로서···! 그렇게 서로를 지지해주고 있었던 거겠죠!”
그녀가 장대한 대서사시를 읊는 동안, 세르펜스는 이미 제 할 일을 마치고 올라와 있었다.
기절한 투기장 관계자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자료까지 윈스톤에게 넘긴 후다.
“···이건 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도중부터 들은 터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왜 자신이 내 보좌관이 되어있냐며, 설명을 촉구하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낸들 알겠냐···.’
쓸데없이 세세하게, 내가 단원을 늘리지 않으려 하는 것에 대한 개연성까지 끼워 넣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런 창작의 세계로 이끈 것일까.
‘[성검의 주인]에 나온 유지스는 이러지 않았···.’
아니다.
원작에서도 사건의 조짐이 있었을 때.
가장 먼저 예리하게 알아채거나, 여러 방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유지스였다.
‘···나 때문이야?’
내 행동들을 이 세계의 상식에 맞춰서 끼워 넣다 보니, 창작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번에···. 암흑가에서 그런 말을 해서 죄송해요. 그런 분이 아니신데, 그때는 제가 잘 몰라서 실언을 해버렸네요. 공작님은···,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신은 암흑가의 ‘암’자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꾸며낸 세르펜스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대관절 무슨 짓을 했길래,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것인지 당장에 실토하라는 눈빛이다.
“괜찮아요, 다 알아요. 더는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요!”
“미리 말해두건대, 저 때문에 들킨 거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실수했어요.”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더 이상의 연기는 통하지 않음을 직감한 세르펜스가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