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5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53화(853/1105)
853회
86. 공작님의 납치 (21)
타락펜스 앞에서 사람들이 성검 일행을 욕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좋을 건 없다.
당장은 나와 한 약속도 있으니 얌전히 굴겠지만,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다.
대륙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성검을 놓기 직전에 대뜸 나를 죽이려 할 수도 있다.
‘역시 이딴 세상은 망하는 게 옳다. 선우도 이런 곳에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라.’ 따위의 말을 하면서.
“꼭 공격을 당해야만 해를 입나?”
안도할 새도 없이, 또 부정적인 얘기가 튀어나왔다.
조금 전 ‘대륙은 언제쯤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하고 탄식했던 그 목소리다.
아직은 대놓고 성검 일행을 욕한 것도 아니고, 악숭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래도 기분 좋게 까눌레 사 먹으러 온 사람들 앞에서, 그런 불안한 소리를 할 필요는 없잖아?’
대체 누가 자꾸 불안감을 조장하는 건지 얼굴이라도 봐 놔야겠다.
나는 한쪽 발만 크게 옆으로 내디뎌서,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뒤에 선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마침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어 불만을 늘어놓았기에 누군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은 몇 달째 적자라고. 아이가 까눌레를 너무 먹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이 사러 나오긴 했는데, 하아···. 차라리 마왕이 빨리 소환돼서 얼른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네···.”
“마왕이 빨리 소환됐으면 좋겠다니요?!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설마하니···.”
쿠키를 전부 나눠준 건지, 빈 쟁반을 든 경비병이 앞치마 차림과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병이 먼저 나서주었으니,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조용히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설마하니 뭐? 내가 악마 숭배자라도 된다는 거야? 나는 그저 성검의 주인이 마왕과 싸워 이기면 다 끝나는 일이니까, 그렇게 말한 것뿐인데?”
“아무리 갑갑해도 그렇지, 할 소리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마왕 소환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거야 알지! 하지만 전 대륙 각지에 숨어 사는 악마 숭배자들을 모두 찾아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잖아? 어차피 마왕 소환을 막을 수 없다면, 빨리 싸움을 마무리 짓는 게 낫다는 소리지! 그리고 혹시 누가 아는감? 마왕이 소환되고 난 후에는 제물이 필요 없어져서, 악마 숭배자들이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도 사라질지.”
경비병의 말에 불만 많은 중년 남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마왕은 얌전히 대륙 관광이나 다니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악마들은 사람을 비탄에 빠트리는 걸 유흥으로 아는 족속들이고, 마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성검의 주인과 싸울 준비도 해야 하니 악마들을 더 소환하려 들겠지.
마왕이 나서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하면, 희생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늘어날 게 뻔하다.
“그런데 현 성검의 주인이 과연 마왕을 이길 수 있을까요···? 듣자 하니 결계도 제대로 못 만들어서, 성검의 주인 내정자라 불렸던 프라시더스 공작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
어디선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얼거리는 것에 가까운 작은 소리였으나, 들리지 않을 수준은 아니다.
그저 악숭이들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여론에 휩쓸린 사람이려나?
어쩌면 앞서 불만을 떠들어댄 중년 남성과 함께, 바람잡이 노릇을 하는 2인조 민숭이일지도 모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자세를 원위치시키고 타락펜스에게 바짝 붙어 귓속말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녀석도 내 귀에다 대고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어쩌길 바라나? 저들을 잡아다 고문이라도 할까?”
“그건 참아줘.”
“후후, 당신이 그러길 바란다면야.”
낮은 웃음을 흘리는 녀석의 행동에 하마터면 지금 이 상황이 재밌느냐고 따질 뻔했다.
지금 옆에 있는 게 2회차가 아닌 현재의 세르펜스였다면 좋았을 텐데.
비교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가만, 그건 남과 비교할 때만 해당되는 사항인가? 아이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건 괜찮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타락펜스와 현재펜스는 인격이 달라서 좀 애매하다.
일단 이 문제는 접어두고, 타락펜스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상체를 옆으로 내밀어 상황을 살펴보려는 그때.
“이 사람들이 진짜! 얌전히 보호받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경비병이 씩씩거리는 목소리로 화를 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의외였다.
내가 까눌레를 사러 왔다고 하니 별다른 의심 없이 검문을 가볍게 통과시켜 줬으면서.
새벽 일찍 줄까지 서서 까눌레를 사러 온 손님에게 화를 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업이 경비병이라서 지켜지는 쪽이 아니라 지키는 쪽에 이입을 한 거려나?’
공사 구분을 잘한다고는 못 하겠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이 자리에 휴마누스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걸 알면 굉장히 기뻐할 텐데.
“소,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해도 돼?!”
“그래요, 이래서야 무서워서 어디 까눌레를 먹으러 오겠어요?”
“당신네들 아니어도 우리 집 까눌레를 먹고 싶어서 줄 서는 사람은 널렸어!”
막 도착한 손님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경비병을 힐끔거리며, 앞에 선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묻고 있나 보다.
“장사를 이따위로 해도 돼?!”
“아저씨, 내 직업이 뭔지 잊었어? 사회의 혼란을 조장한 죄로 감옥에 가서 조사받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건 직위 남용···.”
“아니면 교단에 신고해 줄까? 이단으로 의심된다고?”
더 이상 손님을 손님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 경비병이 중년 남성에게 반말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고 나서 휴마누스의 실력이 못 미덥다고 말했던 여자 손님을 노려봤다.
“에라이, 퉤! 까눌레 따위 안 사 먹고 말지!”
“까눌레를 파는 곳이 여기뿐인 것도 아니고···.”
두 명의 진상이 투덜거리며 줄에서 이탈하여 각자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경비병은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남아있는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접으며 사과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솔직히 저도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요, 아침 일찍부터 그런 뒤숭숭한 얘기는 나도 듣고 싶지 않았다우.”
“우리가 까눌레를 사러 왔지, 남의 불만을 들으러 왔나?”
사람들이 경비병의 편을 들어주며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정말 화기애애하고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전 원래 그 아저씨 싫어해요. 우리 가게 단골이라 자주 와서 술을 마시는데, 매번 잔뜩 취한 채로 방금처럼 불길한 소리를 해대거든요. 그 사람만 왔다 하면 화제가 항상 그런 쪽으로 흘러가니, 듣고 있으면 괜히 불안해져서 밤에 잠도 안 온다니까요?”
“어···? 그러고 보니 아까 집에 간 그 아가씨도 전에 성검의 주인을 욕하는 걸 봤던 것 같아.”
갑자기 목격담이 속출했다.
하기야 까눌레 사려고 줄을 서다가 느닷없이 사회에 불만이 생겨났을 리 없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고,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떠들고 다녔겠지.
휴마누스를 욕하는 여론은 대세라 할 수 있으니, 맞장구쳐 주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을 테니 평소에는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거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도, 한 번 이상 휴마누스를 비난한 적 있는 사람이 꽤나 많을 테고.
그래서일까?
다들 집에 간 두 사람을 욕하기만 할 뿐. 당장 교단에 신고해야 한다는 과격한 소리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떳떳하니까 마음껏 의심할 수 있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오늘 하루 힘차게 살아보려 하는데, 거기다 대고 불만을 쏟아내는 건 평범한 반응이 아니다.
중년 남성은 원래 성격이 뒤틀린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젊은 여성은 걱정이 지나치게 많고 비관적인 성격일 수도 있고.
‘하지만 가게 분위기를 좌우할 정도라면 남자 쪽은 뒤를 캐 볼 만한데? 여자 쪽은 목격담이 애매하지만···. 끼어든 타이밍을 생각했을 때, 남자가 민숭이라면 여자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게다가 중년 남성은 까눌레를 사러 오는 것도 부담된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술을 자주 마신다는 엇갈린 증언이 나왔다.
물론 재정난에 시달리며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많다.
그러나 남성은 알코올 중독자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자식을 생각해서 까눌레를 사러 이 새벽에 나올 정도로···.
“···어라?”
“하하하, 다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죄와 감사의 의미로 쿠키라도 하나씩 더 가져다 드릴 테니 잠시만···.”
“잠깐, 잠깐만요!!”
나는 가게로 들어가려는 경비병을 급하게 붙잡았다.
방금 내가 떠올린 생각대로라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 것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자신을 붙잡은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경비병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방금 집에 간 그 남자, 아이가 있는 거 확실해요?”
“네, 확실합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제가 사람을 잘 기억하거든요. 전에 아이와 함께 까눌레를 사러 온 적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냐는 듯 경비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상대가 면식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저는 그 사람을 처음 보는 거라 평소 행실이 어떤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한번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출근해서 확인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할까 봐 신경 쓰였던 건지, 경비병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작게 속닥였다.
하지만 내일은 너무 늦다.
“악마를 숭배하는 자 중에는 자신의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
“만약 그 사람이 악마 숭배자라면···, 방금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조사당할 것을 대비해 무언가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르니 신전에 들러 성기사들이랑 같이 가세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경비병이 두건과 앞치마를 벗어서 땅에 내동댕이치며 답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뛰어가려다가 급하게 되돌아오더니, 가게 문을 벌컥 열고 내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기다리는 분들 쿠키 하나씩 더 갖다 드려! 난 급한 일이 생겨서 이따 저녁 늦게 돌아올게!”
“···뭐? 어디 가는데?! 야!!!”
가게 안쪽에서 당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으나, 경비병은 이미 저 멀리 뛰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서 내 눈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싶다.
그런데 하필이면 옆에 있는 사람이 타락펜스다.
심지어 녀석의 허리춤에는 성검이 걸려 있었고, 성직자 중에 성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테일러한테는 눈새눈새가 선물한 거라고 둘러댔지만, 지금 그 변명을 쓴다는 건 이 녀석이 ‘세르펜스’라는 것을 광고하는 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녀석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계속 ‘버킷 리스트’에 관해 생각해 봤는데, 혹시 목록의 최대 개수가 정해져 있나?”
모든 상황을 파악했을 게 분명한 타락펜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태도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