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5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55화(855/1105)
855회
86. 공작님의 납치 (23)
타락펜스가 억지로 내 팔다리를 떼어내면서까지 나를 겁줄 리는 없다.
그랬다간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는 변명 따윈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 테니까.
‘하지만 이 자세로 혼내는 건 역시 좀 그렇겠지···?’
위엄이 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혼내는 사람이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면 타락펜스도 혼란스러울 테다.
그렇다고 혼내는 걸 나중으로 미루자니, 그때 가서 녀석이 제대로 반성할 것 같지가 않다.
“아도르, 내려가서 얘기하자.”
“그냥 이대로 가면서 얘기하면 안 되는 건가?”
“응, 안 돼.”
단호하게 말한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타락펜스가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내심 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어쩌나 걱정했건만,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충동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건 여전하지만,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 건가?’
녀석도 나름대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살짝 누그러졌다.
무슨 말로 타일러야 타락펜스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노라니, 금세 지면이 가까워졌다.
타락펜스가 착지한 곳은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무성한 들판이었다.
나는 녀석을 붙잡고 있던 팔다리의 힘을 풀고 땅에 내려섰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폭신함이 무척이나 기껍다.
탁자와 테이블을 꺼내는 대신에 피크닉 매트를 꺼내어 펼친 뒤, 자리에 앉으며 타락펜스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했다.
타락펜스가 매트에 앉아 나를 마주 보았다.
태도는 고분고분했으나 눈빛이 문제다.
어째서인가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기대감이 묻어났다.
혹여 나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나 싶어 얼굴을 매만져 내 표정을 확인해 보았다.
아무 이상 없이 화난 표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선우의 애정이 담긴 벌과 반성 후 주어질 상?”
과연 녀석을 혼내도 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대답이다.
밀려드는 아연함에 나는 잠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정신을 다잡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하기야 타락펜스는 애정이 결여된 교육과 학대를 받으며 자라왔고, 그 교육 과정 속에 녀석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애정을 담아 혼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니.
그런 기대를 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설교를 잘 듣고 행동 교정에 힘을 써 주기까지 하면 참 좋겠지만.
타락펜스는 충동적인 기질이 강하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아도르, 네가 화가 났던 건 이해해. 아이가 보호자의 첫 순위가 되고 싶어하는 건 본능이니까. 게다가 지금 아도르에게는 나밖에 없는데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 많고, 심지어 자신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순간적으로 욱할 수도 있지.”
나는 고개를 내려 타락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전부 내 말대로라는 듯 녀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높은 곳에서 나를 그냥 놔 버리면 어떡해? 물론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낚아챌 수 있으니까 그런 짓을 한 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섭섭한 게 있다면 말로 풀 생각을 해야지.”
“놓기 전에 말을 바꿀 기회를 줬었다. 그런데 선우가···.”
“남 탓 하지 마. 지금 잘못한 건 아도르, 너니까.”
나는 타락펜스의 말을 끊어버렸다.
아이의 말을 끊는 건 그리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지만, 녀석의 억지 주장을 얌전히 들어줄 수는 없다.
그도 그러할 게 타락펜스는 남의 생각을 멋대로 주무르는 데 이골이 난 녀석이다.
한 번이라도 흔들리면 녀석의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최대한 엄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하며 말했다.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겠다고 위협하는 건, 기회를 준 게 아니라 협박했다고 표현하는 게 보통이야.”
“나는 그걸 기회라고 배웠다. 내가 아버지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 언제나 가혹한 폭력이 뒤따랐다. 그다음에는 늘 ‘기회’가 주어졌고, 또다시 아버지께서 만족하실 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더한 고통이 찾아왔지.”
어린 세르펜스가 안타까웠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무력하게 어른의 말에 따라야만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로 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강자이자, 그 힘으로 타인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간 학살자다.
‘그보다 전부터 느꼈던 건데···.’
이제까지는 마음에 여유가 없고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내가 착각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느꼈던 그게 맞는 것 같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리는 현재펜스와 달리, 타락펜스는 그 단어를 너무나도 쉽게 내뱉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겨낸 건 절대 아닐 테고.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무뎌진 걸까? 아니면 두려움을 느끼는 감각이 고장 나 버린 걸까?
그 또한 아니라면 자신이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보다 더 잔혹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이 의문을 꺼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방금 떠오른 의문들을 일단 구석으로 치워 놓고 지금 녀석에게 해야 할 말을 했다.
“아도르가 그 사람을 원망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네 불행을 그자의 탓으로 돌린다 해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 하지만 본인이 저지른 행동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해서는 안 돼. 자신이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고 해서, 남에게 똑같은 고통을 줄 권리 따윈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아.”
“혹시 선우는 지금 내가 사람들을 죽였던 것을 지적하고 있는 건가? 상공에서 선우를 놓아 버렸다고 혼내는 게 아니라?”
“그걸 꼭 구분 지어가며 혼내야 해? 어차피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잖아.”
내 말에 타락펜스가 눈썹을 찡그리며 심기 불편한 티를 냈다.
조금 전까지 내게 혼나고 나서 반성하고 상을 받을 거라며 대놓고 기대했던 주제에.
귀에 거슬리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기분 상해하는 게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내 행동이 온전히 내 잘못이라면, 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했던 거지? 계속 희생했어야 하나? 성검의 선택을 받았던 그 시기의 나처럼?”
“아니, 아도르는 타인의 불행이 아니라 본인의 행복을 추구해야 했어.”
“······.”
뭐라고 더 따질 줄 알았는데, 타락펜스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녀석의 눈빛이 가라앉는가 싶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급작스런 변화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왠지 기다려 줘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녀석이 입을 뗐다.
“그 얘기를 더 일찍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고작 한 문장에 불과했으나 그 말은 커다란 울림이 되어 내 가슴을 아프게 두드렸다.
화를 내는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녀석의 목소리에서 짙은 미련과 슬픔이 느껴졌다.
일부러 내 동정심을 자극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선우의 말이 맞다. 나는 타인의 행복을 망가트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인지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걸 끝내는 것뿐이었다.”
“그걸 언제 깨달았는데···?”
“무슨 수를 써도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을 때.”
정확한 시기를 말해준 건 아니었지만, 얼추 짐작할 만한 실마리는 있었다.
[성검의 주인] 후반부에서 녀석이 점차 감정을 잃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아마도 그즈음에 자신의 바람을 알아챈 게 아닐까 한다.
정말 그런 거라면 늦어도 너무 늦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오랜 세월이 걸릴 정도로, ‘행복’이란 것이 녀석에겐 너무 어렵고 막연한 무언가였나 보다.
‘그런데 녀석이 방금 한 말은···. 행복을 단념하고 불행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죽기 직전에 행복해질 기회가 주어지길 바랐다는 거지?’
그 정도로 간절한 것을 왜 그렇게 늦게 깨달았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차마 따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그랬어?”
“질문을 하려거든 구체적으로 해 줬으면 한다.”
“아도르가 제국을 장악하려 한 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
“으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어중간한 답변이 돌아왔지만, 이는 타락펜스가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는 까닭이다.
부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긍정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 진짜 질문을 꺼내야 할 순서다. 막상 물어보려고 하니 긴장한 것인지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 말을 꺼냈다.
“그런데 암흑가에서 조작된 정보가 나왔을 때는 왜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았던 거야? 그러고 나서 악마 숭배 세력에 들어가 버린 건 대체 어째서고?”
“짐작하는 바가 있는 것 아니었나?”
“아도르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어.”
“······.”
타락펜스가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 상태로 녀석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거렸고, 나는 말없이 계속 기다렸다.
이런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녹색 눈동자가 눈꺼풀 너머로 숨어버렸다.
나는 눈을 감은 녀석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자료가 조작된 것임을 증명한다 해도 소용없다고 판단했다. 그걸 다른 사람들이 믿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잖는가? 애초에 자료 같은 건 그저 구실에 불과했을 뿐이다.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미 내 본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악독하고 흉악한 것이 내 본성이니, 결국에는 들킬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맞이할 최후였기에 그냥 받아들이려 했던 거다.”
내가 짐작했던 것과 얼추 비슷한 이유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낯설고 어색하다는 듯, 타락펜스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실눈을 떠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억지로 쥐어짜는 대신 가만히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타락펜스의 입술이 다시 열렸고···.
“그 후 악마 숭배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건···. 마왕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서다.”
“···뭐?!”
나는 깜짝 놀랐다.
1회차의 기억을 보고 대륙을 향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거나, 삶에 미련이 남았다거나, 대충 그와 비슷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건만.
상상도 못한 말이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갑자기 마왕은 왜?”
“나를 찾아온 악마 숭배자가 말하길···. 마왕의 말에 따르면 내가 성검의 주인 내정자가 된 건, 선택의 날 전까지 진짜 성검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라 했다. 그리고 성검의 주인에게 처단 당하여, 그자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내 마지막 쓰임이었다고 덧붙였지.”
“그 말을 믿었어? 휴마누스랑 싸우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그땐 1회차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봤을 거 아냐?”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내가 성검의 선택을 받는 장면을 보긴 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근거가 불충분했으니까.”
“······.”
“더욱이 그 기억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 나는 성검의 주인으로서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여 폐기되었다는 게 되어 버리잖는가?”
즉 녀석은 자신이 쓸모를 다하지 못하여 룩스메아에게 버려진 것인지.
아니면 휴마누스를 위해 룩스메아에게 이용당하다 희생된 것인지 확인하고자, 악마 숭배 세력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출판등록: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광로139번길 11, 1103호
E-mail : [email protected]
ISBN :979-11-89786-03-8
© 별볆볆별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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