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5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56화(856/1105)
856회
86. 공작님의 납치 (24)
그 당시 타락펜스는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녀석이라면 자신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답’을 알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악숭이를 따라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후후후···, 괴로워 보이는 표정이군.”
타락펜스가 희열에 찬 웃음을 흘렸다.
내가 ‘세르펜스’의 인생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연민하며 가슴 아파하는 게 퍽 기쁜가 보다.
얘기를 꺼내길 잘했다며 좋아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본래의 화제를 다시 꺼냈다.
“지금이 웃을 때야? 아도르, 너 아직 혼나는 중이거든?”
“으음···. 선우는 내가 저지른 죄를 복수로 인정해 줄 생각은 없겠지?”
애초에 복수심에 사로잡혀 대륙을 비탄으로 몰고 갔던 것도 아니면서, 타락펜스가 괜한 질문을 던졌다.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떠보며 무언가를 확인받는 듯한 말투다.
녀석 또한 자신의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걸 알고서 저러는 걸 테다.
“응, 절대 없어. 네게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무고한 이들 또한 있었다는 걸, 너도 이제는 알잖아?”
“선우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타락펜스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까눌레 경비병처럼 좋은 사람. 그리고 녀석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공작저 사람들.
그런 선하고 무고한 이들까지 녀석이 저지른 거대한 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복수든 살기 위한 발버둥이든. 아니면 그냥 ‘죄’를 저지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든.
타락펜스는 선을 넘어도 아득히 넘었다.
‘그래도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는 않는구나?’
하기야 타락펜스라고 ‘악숭 세력에 가담하여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니면 안 된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자신이 이미 죄를 저지른 까닭에 기회를 주지 않는 거냐고, 내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기도 하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고도 그런 짓을 저지른 걸 테니 부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예상했던 것보다 얌전하긴 했다.
좀 더 ‘복수’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나를 혼란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롤링 페이퍼를 읽어 공작저 사람들의 진심을 확인하고, 까눌레 경비병을 보고 이 대륙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덕분에.
애초에 ‘복수’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니, 그런 이유였으면 좋겠다.
“······.”
타락펜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며 조용히 침묵했다.
이미 저질러 버린 잘못은 돌이킬 수 없고, 남을 탓하거나 합리화할 수도 없으니.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린 거다.
나는 녀석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문을 열었다.
“아도르. 앞으로는 네 감정이 너를 괴롭히려 들면, 폭력적인 수단으로 표출하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내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서운함과 섭섭함이 몰아쳐 분노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에도.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워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이 찾아와도.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불안해지더라도.”
“···얘기하면 방금처럼 나를 동정해 줄 텐가?”
“그뿐이겠어? 이해하려 노력하고 위로해 줄게.”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을 땐?”
“같이 고민하며 답을 찾아줄게.”
내 대답을 들은 타락펜스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녀석이 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을 때가 바로 지금인가 보다.
“어디 보자~, 우리 아도르가 왜 이런 표정을 지을까? 아도르는 내게 심술만 부렸는데, 내가 아도르를 계속 아껴주니까 고맙고 미안해서 이러는 거려나?”
“으음···, 그런 것 같다. 선우는 나를 이리도 따뜻하게 대해주며 나를 존중하고자 꾸준히 노력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선우의 자유의사를 통제하여 그 따스함을 독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나 해서 고맙고 미안하다.”
정답을 맞혔다고 좋아해야 할지, 그러면 안 된다고 당장 훈육에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녀석을 칭찬해 줘야 할지, 갈등하게 된다.
짧은 고민 끝에 마지막 소견을 채택하기로 하고 타락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말로 표현하자.”
“···혼내지 않는 건가?”
“원래 오래 굶주리면 식탐이 많아지는 게 당연하잖아? 아도르는 그저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싶을 뿐이란 걸 아는데 어떻게 혼낼 수 있겠어?”
정신적 공허와 신체적 허기는 구분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그 두 가지가 비슷한 성질을 띠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무언가를 채워야만 벗어날 수 있다거나. 이미 가득 찼는데도 굶주렸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서, 계속 갈구하게 된다는 점이 매우 흡사하다.
그만 먹으라고 음식을 뺏어 봤자 식탐만 더 커질 뿐이니, 말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선우, 이 끝 모를 허기를 채워주십시오.”
“그쪽 허기는 금방금방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일단은 다른 허기부터 채우는 게 어때?”
아공간 주머니에서 한정판 까눌레를 꺼내며 그리 말하자, 타락펜스가 굶주린 표정을 지우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한정판 까눌레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음료 등을 꺼내어 간식 먹을 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잠깐, 어째서 한정판 까눌레를 하나만 꺼내고 다시 넣는 거지?”
“난 일반 까눌레를 먹으려고. 아직 안 먹어 본 맛들이 남아있잖아.”
“그럼 나도 오늘은 일반 까눌레를 먹고, 한정판은 다음에 선우가 먹을 때 같이 먹겠다.”
타락펜스가 한정판 까눌레가 올려진 접시를 내게 반납하며 말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주길 바랐건만.
간식 먹는 순서까지 나를 따라 하려 들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면 한정 까눌레는 언제 먹을 거냐는 질문을 매일 듣게 될 테니, 이 녀석에게 내 계획을 얘기해 줘야 할 성싶다.
“내 몫의 한정판 까눌레는 현재펜스가 돌아오면 그 녀석에게 줄 거야. 그러니까 아도르는 그냥 지금 먹도록 해.”
“고기와 치즈도 못 먹는데, 한정판 까눌레까지 못 먹게 하느냐며 서러워할 땐 언제고···.”
“아니, 뭐···. 고기와 치즈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먹을 수 있게 될 테고, 한정판 까눌레는 나중에 다시 사 먹으러 와도 되잖아?”
“처음부터 한정판 까눌레를 먹을 생각이 없었던 거로군. 현재의 나에게 그것을 먹이고 싶어서 나를 속인 거였나?”
“그게, 그러니까···.”
나를 바라보는 타락펜스의 눈초리가 가늘어지며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래도 내 의견을 절대 굽힐 수 없다.
현재펜스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타락펜스와 둘이서 한정판 까눌레를 전부 홀라당 먹어버릴 수 있겠는가?
안 그래도 힘들고 외로울 텐데, 먹을 것 가지고 더 서럽게 할 수는 없다.
따끔거리는 시선을 애써 느끼지 못한 척하며, 일반 품목 중 하나인 얼그레이 까눌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허기가 더 밀려드는 것 같다.”
“그럼 아도르도 어서 먹어.”
“······.”
타락펜스가 나를 계속 노려보는 한편, 한정판 까눌레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결국 한정판 까눌레의 유혹에 넘어갔나 보다.
하긴 루비 초콜릿으로 코팅된 까눌레 본체 위에, 초콜릿에 절반가량 담갔다 뺀 딸기가 올라간 그 모습은 내가 봐도 맛있어 보이긴 했다.
실제로도 맛이 끝내주는지, 타락펜스가 ‘으음···.’ 하고 감탄 섞인 비음을 흘렸다.
하지만 얼굴에 떠오른 불만은 걷힐 기미조차 없다.
그런 녀석을 달랠 겸, 버킷 리스트 하나를 해결해 주기로 했다.
“아도르, 아까 온전한 네 것을 가지고 싶다고 했지? 내가 줄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선우를 주는 건가?”
“조사가 틀렸잖아. 나를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주겠다고!”
“으음, 내가 잘못 들었나 보군.”
청력도 뛰어난 녀석이 그걸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타락펜스는 시치미를 뚝 떼며 능구렁이처럼 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은근한 기대를 드러내는 게 기분이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뭘 주겠다는 거지?”
“편지.”
“···현 시간대의 내가 아니라, ‘나’에게 편지를 써 주겠다는 건가?”
“응. 아도르를 위해서 쓴 편지라면 온전한 네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쓰는 김에 필담도 나눴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나와 현재펜스가 나눈 필담이 정답게 느껴져서 무척이나 부러웠나 보다.
누가 대화를 엿듣는 것도 아닌데, 말로 해도 되는 걸 굳이 손으로 써야 하는 게 좀 번거롭긴 하지만.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그냥 맞춰주지 뭐!’
* * *
♠
일행들 가운데 2회차의 세르펜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건, 선우와 세르펜스 본인을 제외하면 나밖에 없었다.
선우는 세르펜스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다.
하나 그렇다 한들 무력 앞에서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연약한 일반인이다.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를 끝까지 지켜 줬어야 했다.
‘필히 그래야 했거늘···.’
나를 탓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
그것도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말이다.
‘이래서야 대상만 달라졌지 2회차의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한 꼴이지 않나···?’
조금은 성장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그저 죄의식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발버둥치기만 했을 뿐, 제자리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약한 나 자신에게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
선우라면 혼자서도 세르펜스를 잘 다독여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선우가 우리에게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2회차의 내가 마주했던 세르펜스는 무척이나 위험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현재의 세르펜스와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만약 그 잔인함이 선우를 향한다면···.’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니다.
두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 혹여 단서가 남아 있을까 싶어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방을 뒤져 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단서뿐만이 아니라 응당 그곳에 있어야 할 물건들까지도.
방 안에 남아있는 물건이라고는 천장의 갈고리에 씌워진 고깔모자뿐이었다.
가죽 끈이 달린 침대가 사라진 건 이해할 수 있다.
멀쩡한 침대를 꺼내야 하는데 자리가 없으니, 선우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치운 걸 테다.
그 둘이 사라지기 전, 잠깐 방에 들렀을 때에도 이미 그 침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침대는 넘어간다 하더라도, 서랍장 위를 장식했던 채찍들이 전부 사라진 건 이상했다.
게다가 모든 서랍이 텅 비어 있었다.
다른 방의 서랍에는 온갖 기괴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하필 두 사람이 머물렀던 방의 서랍만 비어있다는 건 지나치게 공교롭다.
‘선우를 납치하면서 그 방의 물건들은 대체 왜 챙겨간 거지?’
안 좋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선우가 정신적으로 강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이제껏 크게 다친 적이라고는 바다에서 발목이 부러졌던 게 유일했다.
그런 사람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다면 쉽게 무너져내릴 거다.
‘그렇게 되기 전에 하루빨리 선우를 찾아서 구출해야만 해.’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출판등록: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광로139번길 11, 1103호
E-mail : [email protected]
ISBN :979-11-89786-03-8
© 별볆볆별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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