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5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60화(860/1105)
860회
87. 공작님의 버킷 리스트 (1)
묶여있지 않아도 온몸이 결리고 쑤셔서 도무지 깊이 잠들 수가 없다.
밤새 잠을 설쳐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는 타락펜스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어젯밤 머물렀던 악숭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이 오두막 주인은 평범한 약초꾼인 척, 외진 산속에 자리를 잡고 살던 민숭이 겸 악숭 세력의 정보원으로 어제 죽었다.
프뤼네 왕국에서 세작 노릇을 하는 이들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분석 및 정리하고,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악숭이에게 보고를 올리는 일을 맡았다나?
정보원치고 그리 심지가 굳은 인물은 아니었다.
타락펜스가 성검으로 몇 번 찌른 후. 고통스러워하는 놈을 신성력으로 회복시키며, 제대로 된 고문은 시작도 안 했다고 위협하니 질문을 하기도 전에 정보를 줄줄 흘렸다.
자신의 역할과 정보를 모아둔 지하실로 내려가는 방법, 그리고 그 정보들을 가져온 악숭 세작들의 정체 등등.
‘진짜 고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정보를 말해줘서 참 다행이었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곳에 찾아온 세작 중 ‘마탑의 배신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혹시나 싶어 어제 온종일 타락펜스와 지하실의 자료를 읽어 봤으나, 관련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마탑이 있는 프뤼네 왕국의 정보를 모아 놨다길래 잔뜩 기대했건만···.’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비행 중 보조 안전벨트가 되어 줄 하네스를 착용했다.
일반 벨트를 이리저리 엮어서 임시 안전장치를 만들까 했는데, 마침 타락펜스가 악숭 살롱에서 챙긴 물건 중에 하네스가 있었다.
출처가 출처이니만큼 꺼림칙하긴 했으나 뭐니뭐니해도 안전이 최우선이다.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을 만큼, 질기고 튼튼한 가죽끈으로 잘 만들어진 장비가 있으면 써먹어야지.
“끈을 너무 느슨하게 조인 것 아닌가?”
먼저 하네스 착용을 마친 타락펜스가 예고도 없이 끈을 확 잡아당겼다.
멍든 부위가 조여지며 찾아온 통렬한 아픔에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심지어 눈물도 찔끔 나온 것 같다.
“아도르, 너···! 일부러 그랬지?!”
“그저 도와주려던 것뿐이다. 선우가 내게 안전을 맡길 수 없다며 착용한 것인데,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지만, 멍든 부위가 아파서···.”
“아픈 게 문제라면 내게 치료를 부탁하면 될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선우는 역시 이런 걸···.”
“안 즐겨! 안 좋아해!”
나는 빽 소리를 질러 타락펜스의 말을 끊어 먹은 뒤, 이를 악물고 하네스 끈을 몸에 딱 맞게 조정했다.
내가 생각해도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 같아서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타락펜스가 썩어들어가는 내 표정을 빤히 들여다보며 코웃음을 흘렸다.
“그런 취향이 아니라면 어째서 내게 치료를 부탁하지 않는 거지?”
“치료받아 봤자 뭐 하겠어? 어차피 또 이렇게 될 텐데. 나를 대하는 아도르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치료를 부탁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래도 요 며칠간은 잘 대해주지 않았나? 선우가 자처한 결박 이외의 일로, 내가 선우에게 위해를 끼친 적은 없다.”
온몸에 난 멍을 생각하면 반박하고 싶었으나 녀석의 말도 썩 틀린 건 아니다.
까눌레를 먹으며 폭력적인 수단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말자는 얘기를 나눈 후.
타락펜스는 화났을 때 내 신체 일부를 꽉 움켜쥐며 완력을 행사하는 대신, 최대한 말로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아파하는 꼴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집착의 대상인 내 아픔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거로 보아, 타락펜스는 그 누구의 아픔도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거겠지.
2회차 때 자신이 죽이고 고문했던 이들과 바로 어제 죽였던 민숭이는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어린 날 자신이 느꼈던 아픔조차,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됐고, 얼른 갈 준비나 하자. 다음 목적지는 베카 왕국이라며? 거기로 가려면 테라룸 왕국을 지나쳐야 하니까, 국경을 두 번이나 넘어야 하네?”
“선우를 들고 가야 하니, 이틀에서 삼 일 가량 걸릴 거다. 더 속력을 내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타락펜스가 나를 배려하느라 일부러 속력을 덜 내고 있다며 생색을 냈다.
일부러 공중에서 나를 놓아 버리려 했던 녀석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 봤자다. 고맙기는커녕 아니꼬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척하며 말을 돌렸다.
“알고 있어. 먼 길이 될 테니까 서두르자.”
“그래, 알겠다.”
타락펜스가 카라비너를 하네스의 금속 링 부분에 걸어서, 나와 자신이 착용한 하네스를 하나로 연결했다.
카라비너는 암벽 등반용으로 쓰이는 고리이니만큼 내 몸무게를 지탱하긴 충분하다.
이것 또한 악숭 살롱에서 가져온 거라고 타락펜스가 말했다.
문득 방 천장에 걸려있던 갈고리가 떠올라 껄끄럽긴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출발하겠다.”
내가 자신이 아닌 도구에 의지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하늘로 떠오르며 타락펜스는 굳이 팔로 내 몸을 받쳤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듯한 녀석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가죽끈이 몸을 파고드는 게 덜하기도 하고 안전성도 올라가서 내버려 두었다.
“어제는 지하실에 쌓인 자료를 읽느라 바빠서 미처 못 물어봤는데, 테라룸 왕국에는 악숭이 거점이 없어?”
“음? ‘그때’는 드워프들이 모두 죽고 없었는데 몰랐나?”
“모두?!”
“멸망한 제국과 맞닿은 국경에서는 마물들이 밀려들고, 강하고 튼튼한 무기를 원하는 인간들까지 몰려드니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공들여 만든 소중한 작품을 자격 없는 이들에게 강탈당하고, 자신은 꼼짝없이 무기를 생산할 때까지 고문당하게 생겼으니. 드워프들이 내릴만한 판단이란 뻔하지 않은가?”
테라룸 왕국이 무너졌다는 건 [성검의 주인]에서도 언급된 사실이다.
방금 타락펜스가 말했던 멸망 원인도 나오긴 했다.
개인은 악숭이들이 판치는 위험한 시기에 본인의 안전을 도모하거나, 그러고자 하는 이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치우고자.
그리고 국가는 악숭 세력의 이간질로 발발한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드워프제 무기를 노리고 테라룸 왕국에 몰래 숨어들어 도둑질하거나, 침탈하려는 자들이 넘쳐난 탓에 테라룸 왕국이 망했다고.
그 내용을 읽었을 때는 별생각 없었다.
어차피 분량 없던 종족 하나를 작가가 정리했구나, 그런 무미건조한 감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이 현실이다.
그것을 인지한 상태로 타락펜스의 말을 듣고 났더니 보이지 않았던 게 보였다.
‘나라만 유지하지 못했을 뿐,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산속 어딘가에 숨어 지낼 줄 알았는데···.’
드워프들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이들에겐 절대 그 어떠한 것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하물며 그 소중한 작품을 빼앗으러 온 자들에게 무기를 내어주는 건, 죽기보다 싫었겠지.
“무기를 전부 녹이거나 부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무기뿐만이 아니다.”
타락펜스가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술 계통에 종사하던 드워프들도 난다 긴다 하는 인간 장인보다 금속을 잘 다루며, 예술 작품은 돈이 되니까.
그들 또한 자신의 작품들을 망가트리고 생을 마감했나 보다.
그렇게 제국처럼 주인 없는 땅이 된 테라룸 왕국 지역을 악숭이들이 차지한 걸 테고.
“아도르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나 봐?”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아냐, 됐어.”
내가 백날 떠들어 봤자 타락펜스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나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대화를 끊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타락펜스와 함께한 지난 일주일간, 소소하게 즐거워하며 웃음 지은 적이 있긴 하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필담도 나누고 종종 타락펜스와 장난도 쳤다.
녀석은 매일 자기 전에 토닥토닥을 해 달라며 요구했고, 간혹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쓴 편지를 받고 어린애처럼 좋아하기도 했고.
그럴 때면 ‘내가 되찾고 싶은 세르펜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대화를 더 나누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처럼 괴리감이 찾아왔다.
타락펜스는 내가 애지중지 길러 온 순수한 그 아이가 아니었다.
힘들면 자신에게 기대 달라며 나 대신 울어주었던, 내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었던 친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 사실이 더 선명하게 와 닿아서 서글퍼졌다.
“흑마력이 느껴지는군.”
타락펜스의 목소리에 나는 머릿속에 가득 찬 우울한 상념을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 아래를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내 시력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눈에는 뭔가 보이는 건지 들킬 위험이 있다면서 고도를 더 높여버렸다.
세르펜스였다면 알아서 시력 향상 버프를 걸어 주었겠지만, 타락펜스에게 그런 친절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내게는 다행한 일이다.
치료도 부탁하지 않고 버티는 마당에, 내 ‘감각’을 타락펜스 맘대로 조절하도록 맡기고 싶지는 않으니까.
“뭘 본 거야?”
“흑마력이 느껴지는 자들이 짐마차로 무언가를 옮기는 광경?”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안 될까?”
“평범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로 보아 납치인 듯하다.”
거리가 이렇게나 먼데 그런 걸 느끼다니.
신의 경지를 코앞에 둔 타락펜스라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세르펜스라면 다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악숭이가 사람을 납치하는 현장을 잡고도 그런 걸 궁금해할 시간은 없으니 넘어가자.
“쫓아가자!”
“지금의 나를 사람들 앞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것 아니었나?”
“그렇지만 사람들이 납치당하는 걸 막을 수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저들에게 내 정체를 알리지 않고도 도울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게 뭔데?”
“교단의 성직자인 척하면 된다.”
타락펜스의 말을 듣자마자 ‘신관 프레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프레이는 도도하고 오만하며 에인젤 주교를 제외한 이들에겐 냉랭한 성격이니, 타락펜스가 연기해도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으리라.
게다가 현재펜스 버전 프레이를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의심할 수 없겠지.
“설마 프레이를 연기하려고?”
“그렇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납치된 사람들은 아도르가 세르펜스라는 걸 모르겠지만···. 악숭이들이나 우리 일행들이 그 소문을 들으면 눈치챌 텐데? 행적을 숨기고 싶은 거 아니었어?”
“소문이 퍼질 즈음이면 우리는 베카 왕국에 있거나, 그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중일 테니 상관없다.”
뻔뻔스런 타락펜스의 거짓말에 기가 차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이 녀석이 정말로 우리가 떠난 후에 소문이 퍼지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제 기분 나쁜 악숭이 은신처가 아니라 고급 여관에 방을 잡고 편히 쉬었을 거다.
“퍽이나 그러하겠네.”
“사실 나도 선우와 ‘설정 놀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
“그거 버킷 리스트야?”
“그렇다.”
웬만하면 우리가 단독 행동을 한다는 걸 악숭 세력에 알리고 싶진 않다.
하지만 좋은 일을 하면서, 타락펜스의 버킷 리스트도 달성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어차피 사람들을 구하기도 해야 하고.
“반드시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에인젤과 프레이 말고 새로운 설정을 구상해 보는 게 어때?”
“안 된다.”
“왜?! 남이 쌓아 놓은 서사를 가져다 쓰는 것보다, 우리 둘만의 서사를 새로 쓰는 게 아도르도 재밌지 않겠어?”
“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성기사보다 무력 수준이 뛰어난 신관’이 같은 시대에 둘이나 있을 수는 없잖은가.”
타락펜스에게서 어엿한 설정충의 싹이 보인다.
아무래도 천부적인 재능 같은 건가 보다.
“그것도 그러네? 심지어 둘 다 뛰어난 미색을 갖췄다면 더더욱 말이 안 되긴 해.”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타락펜스가 납치범 악숭이들의 마차를 천천히 쫓아가는 동안, 나는 녀석에게 에인젤 주교와 프레이 신관에 관한 설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출판등록: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광로139번길 11, 1103호
E-mail : [email protected]
ISBN :979-11-89786-03-8
© 별볆볆별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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