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6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67화(867/1105)
867회
87. 공작님의 버킷 리스트 (8)
“어째서 말이 없지?”
내가 한동안 말없이 안주와 와인만 축내고 있자 타락펜스가 의문을 표했다.
먼저 술을 마시자고 제안할 땐 언제고, 지금 내게 화젯거리를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건가 싶어 떨떠름해졌다.
“갑자기 술자리가 마련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는 게 없어서 생각 중이야.”
“나는 선우가 내게 묻고 싶은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묻고 싶은 거야 많지. 많은데···.”
“그럼 물어보면 되잖은가?”
타락펜스가 속 편한 소리를 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쉰 뒤 잔에 남은 와인을 원샷했다.
텅 빈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붉은 액체가 도로 차올랐다. 와인이 절로 샘솟은 건 당연히 아니고 타락펜스가 채운 거다.
녀석은 와인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여상한 투로 말을 꺼냈다.
“그렇게나 ‘결말’을 듣는 것이 겁나는가?”
“···혹시 내가 신성력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그런 말도 했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받아 놓고, 결말을 각색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냐며 ‘작가’를 욕하긴 했다.”
나도 참 진짜 별소리를 다 했다.
친구와 싸우고 나서 어른에게 고자질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울면서 타락펜스에게 매달려 솔레르티아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민망해져서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붉어졌군. 고작 와인 한 잔에 취한 건가?”
“취한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그런 거거든?”
“부끄럽다니, 무엇이?”
“울면서 남의 뒷담과 하소연을 늘어놓았다는 게 좀···.”
“그다지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었으니 걱정하지 마라.”
원인 제공자가 저런 소리를 해 봤자 위로가 되기는커녕 얄밉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와인을 홀짝거리며 나를 향해 싱긋이 눈웃음을 짓는 게, 작정하고 나를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녀석을 노려보며 꼬치에 꿰인 과일을 쏙쏙 빼먹었다.
‘그보다 마침 얘기가 나온 김에 지금 물어보는 게 좋으려나?’
어차피 언젠가는 들어둬야 할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말을 꺼내는 게 낫겠지. 속이 타면 바로 들이켤 수 있는 술이 앞에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에 타락펜스가 생명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면, 녀석의 입을 통해 그 시기의 얘기를 듣는 건 몹시 어려워질 테다.
회피 성향이 강한 녀석이니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얘기를 아예 삼갈 수도 있다.
혹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교묘하게 비틀어 말하거나.
어찌저찌 진실을 끌어낸다 하여도 착잡할 것 같다.
녀석이 죄책감에 짓눌려 힘겹게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는 모습은 그닥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멀쩡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얘기를 꺼내는 건, 그거대로 별로다.
“아도르는 자기가 저지른 죄와 자신의 최후를 말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어차피 끝난 일이기도 하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된 사건이잖은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문제성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타락펜스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녀석이 먼저 2회차의 결말을 언급하더라니.
“당연히 있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도르는 자신이 저질렀던 짓과 그에 따른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
“선우가 궁금해하는 ‘결말’에 관한 것이라면, 결과까지는 모른다. 나 또한 죽었으니까.”
타락펜스의 말에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지나간 ‘또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마지막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녀석 말고도 더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아니,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예비 빙의자에게 정보 전달 역할을 맡은 솔레르티아가 ‘각색’까지 해 가며, [성검의 주인]을 마무리 지었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확인을 받고 나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도르, 네가 죽은 이후의 일이라면 세계수에게 대충 들었어. 그러니까 네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전투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줘.”
“세계수가 그 일을 어떻게 알지?”
내가 얘기하지 않은 내용이 있기는 했나 보다.
하기야 그때의 나는 타락펜스가 유도하는 대로 떠들어 댔을 거다.
그러니 녀석이 궁금해하지 않을 만한 말은 꺼내지 않았겠지.
“알고 보니 세계수가 성검에 기록된 정보를 읽을 수 있더라고.”
“그럼 세계수에게 물으면 되었던 것 아닌가?”
“그때 들었던 내용만으로도 무진장 충격적이어서, 다른 걸 물어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 특히나 휴마누스 앞에서는 더더욱.”
“대체 무슨 얘기를 들었기에?”
“네가 죽고 휴마누스가 온전한 성검의 주인이 되어, 1회차를 떠올렸다는 얘기.”
“그게 끝인가?”
타락펜스가 눈을 깜박거리며 영문을 몰라 했다.
나야말로 녀석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휴마누스가 어떤 이유로 성검의 주인이 되었는지 이젠 알잖아. 1회차에서 외롭게 죽었던 너를 위해 성검의 주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너를 외롭게 둔 탓에 네가 타락해버렸고 끝내 제 손으로 죽이기까지 했어. 그 직후에 모든 기억을 찾은 거야. 대체 누가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어?”
“그자가 그 정도로 나를 아꼈다고?”
“······.”
대체 얘는 휴마누스가 자신에게 거듭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뭘 느낀 걸까?
아니, 느낀 게 있기는 한 걸까?
도저히 황당함을 금치 못하겠다.
나는 잔에 담긴 와인을 절반가량 마시고 후우─, 긴 숨을 내쉰 뒤 다시 얘기를 꺼냈다.
“아무튼 그래서 다른 건 묻지 못했어. 그러니까 네가 얘기 좀 해 줘.”
“대강 예상하고 있을 텐데?”
“그래도 확실하게 듣고 싶어.”
“그자도 나처럼 혼자로 만들었다. 이거면 대답이 되는가?”
역시나 성검 일행은 전부 이 녀석의 손에 죽었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남아 있었건만.
그 희망마저 짓밟혀 버렸다.
심지어 표현 마저도 휴마누스를 향한 적의가 느껴져, 성검 일행이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분명 곱게 죽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머릿속이 복잡하여 잔에 남은 와인을 전부 들이켰다.
그러자 타락펜스가 다시 잔을 채웠다.
“아도르, 너도 마셔.”
내 말에 타락펜스가 순순히 와인을 원샷하고 빈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 잔에 와인을 따랐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유지스는 1회차 때 네 곁에 있어 줬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그런데’가 아니라 ‘그래서’다. 이전의 삶에서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을 보고 난 이후, 나는 손에 넣어 본 적도 없는 것을 상실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내게 화살이 겨누어질 때마다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늘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타락펜스가 메마른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잔을 기울였다.
녀석이 얼마나 고독했을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떤 말로도 그 마음을 위로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도로 비워진 녀석의 잔에 와인을 다시 채우고 내 잔을 들어 올려 건배를 청했다.
챙그랑, 맑은소리를 내며 두 개의 와인잔이 부딪혔다.
우리는 말없이 잔을 또 비워냈다.
알코올이 정화되지 않도록 신성력을 조절하고 있는 걸까?
타락펜스의 얼굴에 옅은 붉은빛이 올라왔다.
검을 쓰는 자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희고 고운 손가락이 와인잔을 매만졌다.
“나는 황태자가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다. 내 존재의 이유라 할 수 있는 ‘성검의 주인’ 자리에 이어,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최소한의 온정까지도.”
“그래서 휴마누스를 혼자로 만든 거야?”
“···아마도?”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먼저 세우고 행동에 옮긴 것이 아니라,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랬던 건가 보다.
타락펜스의 행동은 정말 잘못되었다.
아무리 질투와 박탈감에 시달렸다고 한들,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비난할 수 없었다.
이미 ‘세르펜스’라는 존재에게 정을 주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선하게 살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수도 없이 고통받아야 했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곁에 한 사람만 있어 주어도 세르펜스는 고귀하게 빛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빛을 잃어버린 타락펜스가 더없이 측은했다.
“아도르는 후회하는 일 같은 거 없어?”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후회할 일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
선택의 날, 현재의 세르펜스는 타락펜스와 다른 선택을 내렸다.
하나 이 녀석의 눈에는 현재펜스가 택한 길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떠한 길도 보이지 않았을 테다.
성검의 주인으로서 대륙을 구원한다는 유일하다고 믿어온 길이 사라진 탓에,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나 보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선우라면 얼마든지 물어도 좋다.”
“혹시 일부러 휴마누스에게 져 줬어?”
“매번은 아니고 절반 정도?”
나는 최종 결전을 말한 거였는데 예기치 못한 비사까지 들어버렸다.
잠깐 당황하긴 했으나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2회차에서 타락펜스가 휴마누스에게 밀렸던 건, 강자와의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장비 차이가 극심했기 때문이니까.
‘그런데 1회차의 기억을 엿보는 것으로 부족한 경험을 아무도 모르게 충당했다는 거지? 그럼 실질적인 문제는 장비 빨 뿐이었겠네?’
게다가 휴마누스에게도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성검을 완벽히 다룰 수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장비 차로 생긴 격차를 실력으로 메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마지막 전투는···.”
“일부러 졌다.”
“이거 야단났네, 진짜 마왕은 대체 얼마나 센 거야?!”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강하다. 그러니 선우가 나를 신으로 만들어다오. 그것 말고는 이길 방도가 없다.”
타락펜스가 절망적인 소리를 해댔다.
이 녀석이 ‘아도르’라는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되는 것보다, 평범하고 아무 능력도 없는 내가 기연을 만나 힘을 얻어 신이 되는 게 더 빠르겠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마왕을 이길 방법이 타락펜스를 신으로 만드는 것밖에 없다면, 대륙 멸망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어째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거지? 좀 더 자신감을 가져 봐라.”
“아도르는 진짜 자신이 ‘아도르’란 이름에 걸맞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술기운 때문인지 생각이 여과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말해놓고 아차 싶었으나 다행히도 타락펜스는 내 말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선우는 현 시간대의 내가 ‘아도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걔는 잘 어울리지.”
“나도 그렇게 만들어 주면 되잖은가?”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지?”
“네가 ‘아도르’라는 이름에 담긴 뜻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
타락펜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화가 난 건가 싶어 순간 긴장했으나, 다행히도 고민하느라 그런 거였다.
나는 조용히 안도하며 파운드 케이크를 깨작거렸다.
“으음···, 선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아도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그 단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잖아? 계속 생각해 봐.”
“그냥 선우가 알려다오.”
“계속 알려주고 있는데, 아도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야.”
“······.”
오늘도 어김없이 타락펜스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 앞에 가져다 대자, 냉큼 받아먹고는 헤실거렸다.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출판등록: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광로139번길 11, 1103호
E-mail : [email protected]
ISBN :979-11-89786-03-8
© 별볆볆별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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