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6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68화(868/1105)
868회
87. 공작님의 버킷 리스트 (9)
* * *
이 세계에 와서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이면 항상 현재펜스가 내게 신성력을 써 줬다.
즉, 나는 이제껏 숙취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에 술을 과도하게 마시면 숙취가 찾아온다는 진리를 간과하고야 말았다.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와인을 연거푸 들이켠 결과.
아침에 일어나자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나는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엄청난 두통과 어지러움에 드러누워 오전 내내 끙끙 앓았다.
타락펜스는 달가운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런 나를 간호했다.
그래도 간호 자체는 지극정성이었기에 점심때가 되자 그럭저럭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녀석은 내가 편지에 적었던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디저트 쇼핑을 겸한 관광을 즐겼다.
그러고 나서 여관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타락펜스는 침대로 쏙 들어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아픈 곳 하나 없는 녀석을 간호하며 하루를 마무리 지을 때까지, 나는 어제 녀석과 나눴던 대화에 관하여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하루였다. 함께 한 것이 응석꾸러기 야옹펜스가 아니라 타락펜스였다는 점만 빼면.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우리는 까눌레를 샀던 도시에서 그러했듯,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성문을 통과해 도시를 빠져나갔다.
이후의 행동 또한 그때와 비슷했다.
적당히 도시와 멀어지고 나서 타락펜스에게 몸을 의탁한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악숭 은신처를 정리하고 나면, 한동안은 이동에만 힘써야 한다.
‘그것도 무려 일주일씩이나 말이지···.’
베카 왕국은 대륙의 동남부에 있었고, 이다음에 가야 할 곳은 대륙 서남부에 있는 아레나 왕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국가 사이에는 신성 루멘 제국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존재했다.
“거기까지 가는 데에만 시간이 한참이나 걸리는데, 제국 너머에 있는 악숭 은신처는 그냥 교단에 맡기면 안 돼?”
“아레나 왕국에 있는 건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악마 숭배 세력의 주요 거점 중 하나다.”
이제껏 쳐들어간 악숭 은신처는 자잘한 곳뿐이었다. 그렇기에 남은 장소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그런데 2회차 때 이사를 하지 않은 주요 거점이 하나 있었나 보다.
“거긴 왜 안 옮겼대?”
“규모가 매우 커서 옮기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내부자가 발설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이 두 번째. 그리고 여차하면 적을 유인하여 죽일 수 있도록, 함정을 매우 잘 갖추어 놓았다는 게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유다.”
이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는데 절대 교단에 맡기면 안 되는 이유를 들어버렸다.
신성력 억제제를 만들 수 있는 악마를 처치하긴 했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신성력 억제제까지 전부 처리한 건 아니다.
심지어 얼마나 남았는지 그 수량조차 모른다.
상황이 이러한데 침입자 방비가 잘 되어 있는 곳에 교단의 성직자들을 보낸다는 건, 그들을 악숭 사제로 만들어 보라고 선물을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다.
‘교단 측에서 생각 없이 그냥 쳐들어갈 리는 없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건 막을 수 없을 테다.
반면에 타락펜스는 그곳의 함정을 모두 꿰고 있을 테고, 신의 힘까지 멋대로 가져다 쓰는 실력자이니 위험할 일은 없을 터.
그렇다고 걸리는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저기, 아도르?”
“말해라.”
“규모가 엄청 크다면서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어? 도망치려는 놈들도 무진장 많을 텐데?”
“신의 힘으로 주변 일대에 결계를 펼치면 도주를 막을 수 있다.”
“룩스메아의 힘을 그렇게 막 끌어다 써도 돼? 양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라며.”
“효율적으로 잘 조절하여 쓸 터이니 걱정하지 마라.”
“······.”
남의 힘을 멋대로 가져다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아예 안 하나 보다.
황당함이 밀려든 탓에 그만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타락펜스가 슬그머니 터무니없는 소리를 꺼냈다.
“그보다 제국을 경유하는 길에 공작저에 한 번 들릴까 하는데 선우의 의견은 어떠한가?”
“미쳤···!”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타락펜스에게 미쳤냐고 물어볼 뻔한 걸, 급히 입을 틀어막아 도중에 멈출 수 있었다.
타락펜스가 제정신이 아닌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이 녀석의 입을 통해 재확인받고 싶진 않다.
나는 진정하고자 애쓰며 머릿속으로 아레나 왕국과 베카 왕국의 위치를 대략 떠올려 보았다.
여기에서 아레나 왕국으로 가려면 제국을 지나야 하는 게 맞기는 하나, 일직선 경로상에 ‘수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먼 거리를 돌아가자니?
그 얘기에 따지고 싶은 마음보다 의아함이 더 컸다.
“이유가 뭔데?”
“나의 백부라는 자가 내게 쓴 편지를 읽었다.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다.”
롤링 페이퍼 외에도 내가 현재펜스에게 쓴 편지가 있을까 봐,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도 ‘편지’를 전부 꺼내어 확인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에일리히가 보낸 편지를 발견한 거겠지.
행적을 숨겨야 하는 와중에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에일리히의 존재를 좋은 쪽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비록 ‘백부라는 자’라는 표현에서 어마어마한 거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에일리히가 쓴 편지를 읽고 난생처음으로, 진짜 ‘가족의 정’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게 아닐까 한다.
‘그런데 과연 에일리히 님이 타락펜스를 보고도 이상함을 눈치 못 채실까?’
어림도 없다.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숨기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결론만이 나왔다.
그도 그러할 게 타락펜스는 현재펜스를 흉내 내려 했으나 휴마눈새조차 속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전직 이단 심문관이자 가족인 에일리히를 속인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
더군다나 에일리히 곁에는 알타르 이단 심문관도 함께 있으며, 타락펜스의 허리춤에는 성검이 걸려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녀석을 공작저로 데려가면 안 된다.
‘정말 안 되는데···.’
현재펜스가 에일리히에게 얼마나 빠르게 마음을 열었는지를 생각하면, 쉬이 반대의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빠르냐고 의문을 표할지도 모르나, 세르펜스치고는 굉장히 빠른 편이다.
이단 심문관을 은퇴하고 가문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에일리히의 청에도,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권하기만 했을 뿐.
거절 한 번 안 하고 수락해 주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진짜 가족’을 가지고 싶었던 걸 테지.
현재펜스와 에일리히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과 어색함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흐르는 건 두 사람이 서로를 아껴서 조심하느라 그렇게 된 거다.
타락펜스도 분명 편지를 읽으며 그걸 눈치챘을 거다.
“하아···, 역시 안 되는 건가?”
한숨과 함께 힘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타락펜스의 표정을 확인하니 대단히 상심한 기색이다. 괜히 확인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움이 몰아쳤다.
머리로는 이러면 안 된다고 판단을 내렸으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알···았어. 그럼 몰래 잠입해서 에일리히 님만 보고 오는 거다?”
“정말 허락해 주는 건가?!”
말을 꺼내면서도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 싶어 회의감이 든 것도 잠시.
기대 가득한 타락펜스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났더니 옳은 판단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응. 그 대신 에일리히 님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납치하면 안 돼!”
“혹시 지금 질투하나?”
“뭔 소리야? 질투란 단어가 여기서 왜 튀어나오는 건데?”
느닷없이 뭔 놈의 질투 타령인지 모르겠다.
나는 녀석의 황당무계한 말을 무시하고 에일리히를 납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프라시더스 가문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사람이 에일리히라서, 자리를 비우면 공작가의 업무가 마비된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과거 악숭 세력이 에일리히를 노렸던 전적이 있어, 갑자기 사라지면 조용히 넘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말 그대로 만나보고 싶다는 것일 뿐이니 걱정하지 마라. 선우 이외에 다른 사람을 납치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실은 그다지 다행스럽지 않았다.
녀석이 에일리히를 납치하지 않겠다고 하긴 했지만, 아직 다른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으니까.
타락펜스는 잠입 실력도 뛰어나고 공작저의 비밀 통로도 꿰뚫고 있을 테니, 몰래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다.
에일리히에게 다른 회차에 관해 설명해야겠지만, 이 녀석의 타락 사실만 얘기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성검펜스라고 우기면 그런가 보다 하시겠지.
문제는 에일리히를 밀착 경호 중인 알타르 이단 심문관이다.
알타르는 ‘천사의 영혼’ 설을 알고 있는 성직자 중 한 명이니, 내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키면 따르기야 하겠지만.
“눈에 ‘사랑스러운 내 조카’ 콩깍지가 씐 에일리히 님과 달리, 알타르 님은 이단 심문관 특유의 예리한 눈썰미로 아도르가 타락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도 있어. 그러니 알타르 님을 피해서 에일리히 님을 만나야 하는데….”
“그때 가서 상황을 보고 알아서 접선하겠다.”
하기야 우리가 공작저에 잠입했을 때, 에일리히와 알타르가 어디서 뭘 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계획을 짜 봤자겠지.
나는 타락펜스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 생각하며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선우가 보기에 나의 백부라는 사람은 어때 보이는가?”
“엄청 좋은 사람이야. 이단 심문관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조카에게는 무척이나 다정다감한 분이시지.”
그간 내가 보아온 에일리히의 행보에 관해 타락펜스에게 알려주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얘기를 마무리 짓고 땅에 내려와 하네스를 풀고 있는데 불쑥 궁금증이 일었다.
“참! 그러고 보니 아도르가 살던 시기에 에일리히 님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당시에는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긴 그러고 보면 현재펜스도 에일리히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했다.
아마도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조사하지 않은 걸 테다.
“마지막까지 대신전에 남은 사람이 교황뿐인 건 맞아?”
“그러하다.”
타락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에일리히는 먼발치로나마 조카를 지켜보고자, 고문을 집중적으로 익혀 제국 수도에 있는 대신전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 에일리히가 제국이 몰락할 때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수도를 떠났을까? 타락펜스가 그 주동자라는 걸 뻔히 알면서?
‘그랬을 리가 없지.’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이지만.
타락펜스가 악숭이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은 더 이상 교단에 머무를 수 없다며 은퇴한 게 아닐까 싶다.
혹은 누군가는 타락펜스의 죄를 짊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따라 본인을 처벌해 달라 자진했거나.
답을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건만.
괜히 관심을 가졌다가 기분만 뒤숭숭해졌다.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출판등록: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광로139번길 11, 1103호
E-mail : [email protected]
ISBN :979-11-89786-03-8
© 별볆볆별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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