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80화(880/1105)
< 87. 공작님의 버킷 리스트 (21) >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진행하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에일리히의 굳은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고, 원흉인 타락펜스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저 녀석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낯빛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 게 혹시 반성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겠지.
반성을 할 거라면 진작에 했을 테니까.
에일리히에게 혼날 것을 대비하여 변명을 짜내고 있는 거라면 모를까, 타락펜스가 이제 와서 내게 한 짓을 반성할 것 같지는 않다.
침묵 속에서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일부러 뭉그적거리며 테이블 위를 치웠다.
그러나 치운다고 해 봤자 고작 빈 도시락통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는 것뿐이다. 시간 끌기 효과는 미미했다.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소스 한 방울 튀지 않은 깨끗한 테이블 위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으려니, 에일리히가 그만하라는 듯 손수건을 뺏어가며 말했다.
만약 지금 내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상한 에일리히라면 억지로 내게서 답을 들으려 하지 않겠지.
하지만 내가 타락펜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짓을 당했다고 생각하여, 걱정을 더욱 키워나갈 테다.
결론이 나왔다.
그냥 말하자, 그게 좋겠다.
“그게···. 에일리히 님도 아시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제 비위가 좀 약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 녀석이랑 법숭이 연구실에 갔다가···.”
나는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 법숭이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제대로 설명한 건 딱 거기까지다.
그곳에 다녀온 직후 타락펜스가 신성력으로 내 감정을 좌지우지했던 건, 당연히 생략했다.
다음날 아침, 문제의 미트 파이를 꺼낼 때도 신성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 또한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돼서 별생각 없이 미트 파이를 먹으려고 반으로 자른 순간, 하필이면 법숭이 연구실에서 본 동물의 사체들이 떠오르지 뭡니까? 그래서 그 이후로 고기가 징그러워 보이고, 치즈 냄새가 역하게 느껴져서···. 못 먹게 됐어요.”
“······.”
“근데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아는 맛이 더 끌리는 법이라고, 고기랑 치즈가 얼마나 맛있는지 뻔히 아는데 설마하니 평생 이러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먹을 수 있게 될 겁니다.”
“후우─···.”
깊고 긴 한숨을 내쉬는 에일리히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나는 괜찮으니 안심하라고 말한 거였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왠지 뻘쭘해져서 소심하게 한 마디 덧붙여 보았다.
“저 진짜 괜찮은데···.”
“그렇게 자신을 속이려는 겁니까? 선우 님 상태는 객관적으로 봐도 정상은 아닙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에일리히가 나를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비통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나를 설득하고 말겠다는 그 말투에 속에서 무언가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나라고 지금 내 상태가 정말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괜찮지 않으면요? 그걸 인정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더 나빠진다면 모를까. 제가 힘들어하면 이 녀석이 위로라도 해줄 것 같아요? 아, 위로를 해 주긴 하더라고요. 저를 걱정해 주는 게 아니라, 더 위태로워지도록 흔들어서 자기에게 의지하도록 수작을 부려서 문제지.”
내가 옆에 앉은 타락펜스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에일리히가 흠칫 놀라며 녀석을 쳐다봤다.
놀라서 크게 뜬 두 눈이 ‘그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지금은 무너질 수 없어요. 이 녀석은 저를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영영 일어나지 못하도록 주저앉히려 들 게 뻔하니까. 그런 짓을 해 봤자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은 얻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저를 손아귀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며 좋아하겠죠. 그렇기에 저는 괜찮다고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버텨야 합니다. 이 녀석이 지금보다 더 비뚤어지지 않으려면. 그리고 제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요!”
“선우 님, 괜찮···. 으음···.”
가슴 속에 꾹꾹 눌러담았던 말을 꺼내다 보니, 말과 함께 숨겨두었던 울분까지 튀어나왔다.
그 탓에 급격히 감정이 격해져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말았다.
내 갑작스러운 외침을 듣고, 에일리히가 반사적으로 괜찮으냐고 물어 오려다가 움찔하며 말끝을 삼켰다.
* * *
[◇]“위로해 주려 하지 마세요.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이 녀석과 단둘이 되면 버티기 힘들어질 것 같으니까.”
어째서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선우의 표정이 점점 자책감에 물들었다.
절대 꺼내서는 안 될 말을 저도 모르게 쏟아내 버리고 말았다는 듯,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입이 원망스럽다는 듯.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설마 나를 걱정하는 건가? 자신이 한 말을 듣고 내가 상처받을까 봐?’
이 와중에도 나를 걱정해 주다니 이 얼마나 헌신적인 애정이란 말인가.
가슴이 너무 벅차오른 나머지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손으로 말려 올라간 입꼬리를 가리는데, 문득 이렇게 좋아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는 자신이 망가지면 내가 원하는 ‘진심 어린 애정’을 베풀 수 없게 될 거라 말했다.
그런데 지금 선우는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쉬어가지 않으면 더 빨리 지치는 법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백부란 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뭇거리는 선우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어차피 선우가 거절할 테니 굳이 막아설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찰나, 선우가 괴로움에 신음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내게는 기대기 싫어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대며 울음을 터트리는 건가?’
너무나도 쉽게 타인을 의지해 버리는 그 모습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선우는 나의 착하고 어진 벗이다. 오직 나만의 벗이어야 한다.
그런데 선우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지했다.
내가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우를 되찾아 오고 싶다.
하지만 강제로 두 사람을 떼어 놓아 선우를 내 어깨에 기대게 한들, 그가 내게 의지할 것 같지 않다.
그는 내게 위로받길 원치 않았으므로.
‘저렇게나 간절히 위로를 바라고 있었으면서···.’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선우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위로가 필요하지만, 내 존재는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
애초에 그를 괴롭게 한 원흉이 나였으니.
나는 선우가 망가지는 걸 원치 않는다. 정말로.
그를 내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린다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저 높은 곳에서 동정이라도 베풀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 주고자 충동을 억누르고 양보했다.
최근에는 그에게 전혀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선우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나를 향해 다정한 눈빛을 보내오며 장난을 걸어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가 내게도 고양이처럼 울어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럼 선우가 즐겁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어주겠지.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선우가 진심으로 밝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이제껏 보아온 선우의 웃음은 전부 억지웃음이었다.
선우가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보였던 건 딱 한 번뿐이다.
신성력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운 상태일 때, 현 시간대의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얘기하며 웃었던 게 전부다.
심지어 그마저도 ‘나’를 향한 웃음이 아니었다.
당시 선우는 나를 ‘나’로 보지 않고 현 시간대의 나와 혼동했다.
‘그래도 그 웃음이 곧 나를 향할 거라는 믿음에 즐거웠었는데···.’
지금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위로받고 싶었지만, 선우는 나를 위로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나와 닮은 외양의 사람에게 기대어 울며 위로를 받고 있었으므로.
선우의 말에 따르자면, 겉모습만큼은 확실히 나와 닮은 백부는 조카를 사랑해 마지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사랑하는 조카의 소중한 사람을 해치려 드는 악인이니까.
나보다는 선우를 위로하는 게 우선이겠지.
바로 옆에서 선우의 울음소리와 내 백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건만.
그 무엇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었다.
이 저택으로 오면서 내가 바랐던 건 이런 상황이 아니다.
선우가 가족에게 쓴 편지 내용처럼, 백부가 현 시간대의 내게 쓴 편지 내용처럼.
따뜻한 문장들이 오로지 ‘나’를 위해 배열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것이 활자가 아닌 음성이 되어 귓가에 들려오길 바랐다.
지금 선우에게는 나뿐이니, 그런 상황이 오면 선우도 경쟁적으로 내게 다정히 대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했다.
하지만 내가 바란 것은 모두 헛된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뭐가 잘못됐길래? 대체 왜, 뭐가 문제지? 도대체···.’
멍하니 앉아있는 사이, 선우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백부는 그의 붉어진 눈가를 어루만지며 신성력을 사용했고, 선우는 가만히 치료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머쓱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까지 했다.
현 시간대의 내가 사라져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슬 잘 준비를 해야 하니까, 내 방에 가서 씻고 올게.”
“······.”
“걱정하지 마. 내게 도망갈 생각이 없다는 거, 이젠 잘 알잖아? 나는 내 방 욕실에서 씻고, 아도르 너는 이 방 욕실에서 씻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얼마나 좋아?”
선우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말을 맞춰 달라고 사정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내가 씻는 동안 자신에게 수갑을 채울까 봐, 내 백부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걱정을 사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겠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나는 이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거울이 ‘잘못된 것’의 모습을 비췄다.
모두 내가 문제였다.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선우가 나를 고쳐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그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이것도···, 알고 있던 거로군.’
선우는 내가 자신을 완전히 주저앉히려 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아주 살짝만 흔들려고 했을 뿐이다.
선우가 나를 버팀목으로 삼아 기댈 수밖에 없도록.
현 시간대의 나보다 지금의 나를 더 의지하게 되도록.
그런데 선우는 내게 기대느니 아예 부러져버리는 게 낫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 눈을 피해 휘청거렸다.
현 시간대의 나와 나눴던 필담을 읽어보면, 이렇게까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도리어 나를 동정하며 이해하려 했다. 한데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원인이 내게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내게 한 행동에 비하면, 내가 선우에게 한 건 그다지 심한 짓도 아니지 않나? 나는 아버지께 더한 짓을 당하고도 그분의 애정을 간절히 바랐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선우는 너무 연약했다.
이대로 가면 선우가 완전히 내게서 마음을 거둘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아버지께서 절대로 나를 사랑해 줄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