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9화(89/1105)
89. 공작님의 생일 (2)
“출장 갔던 사람이 왜 살이 쪄서 돌아온 거야?”
“그게, 어쩌다 보니···?”
여행 중 일정의 대부분은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으니, 활동량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
기차에서 내렸을 때조차, 먹으러 가거나 기차에서 먹을 간식을 사러 갔다.
말을 타고 이동할 때는 세르펜스에게 완전히 몸을 내맡기고 늘어져 있었으니, 승마를 통한 운동 효과 따위는 조금도 얻지 못했다.
안 찌는 게 이상한 환경이다.
“공작님은 그대로시던데···. 대체 혼자 얼마나 편하게 놀다 온 건데?”
제온의 말대로였다.
내가 찌는 동안에도, 세르펜스와 유지스는 조금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였다.
‘이게 바로 기초 대사량의 차이인가···.’
그것을 간과해버렸다.
거기에 더해, 유지스는 엘프라는 종족 보정을 받았을 테고, 세르펜스는 세르펜스 보정을 받았겠지.
평소와 같은 둘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더니, 나 또한 아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늦어 있더라.
“그래도 이 정도면 문제 될 정도는 아니잖아?”
“왜 문제가 안 되는데? 지금 입고 있는 옷이야 편하고 널널하니 괜찮겠지만···.”
“······.”
저번에 세르펜스가 사줬던 옷들은 맞춤복이라, 여유가 별로 없었다.
‘한동안은 옛날 옷들을 꺼내 입어야 하나···?’
보나 마나 한스가 또다시 공작가 보좌관으로서 체면이 어쩌고 하며, 고깝게 볼 것이 분명하다.
“···어서 빼기나 해.”
“으, 응···.”
급하게 찐 살이니, 세르펜스와 수련하다 보면 금방 빠지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동생이 태어난 후 취직할 거라 하지 않았어?”
“그랬었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계속 살 얘기를 할 수는 없었기에, 화제도 돌릴 겸 그에게 질문했다.
늦을 거란 얘기는 선택의 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가?
‘그래서 아직 세르펜스가 공작저에 붙어있을 때, 일을 시작하려던 건데···.’
하필이면 제온이 공작저에 다녀간 후, 내가 윈스톤에 관한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러한 탓에, 정작 제온이 왔을 때 나와 세르펜스가 나란히 자리를 비워버리게 된 거다.
‘어차피 성검은 휴마누스가 받을 테니, 지금이든 4월 이후든 세르펜스는 마찬가지로 공작저에···있으려나?’
어째서 그럴 거라 생각했던 걸까.
성검을 받지 않더라도, 그 동료가 될 가능성은 왜 배제한 거지?
‘그야 [성검의 주인]에서 그러했으니까.’
이제까지는 휴마누스가 성검에게 선택을 받고. 그러고 나면 세르펜스는 짐을 털어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만 집중해왔다.
그보다 더 이전.
막 시온의 몸에 들어왔을 때는, 잘 구슬려서 회개만 시켜놓으면 자기가 알아 잘하겠거니 생각했다.
‘···응?’
어째 그 뒤가 없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최종적으로 평화로워진 대륙을 맞이한다는 목표는 있었으나 중간 과정이 없었다.
‘세르펜스가 다 내려놓고, 황제에게 사직서라도 던진 후 은퇴를 한다면 모를까···.’
뭔가 일을 맡긴 할 거다.
그게 공작으로서의 일이라면, 당연히 나도 지금처럼 쭉 그의 옆에 붙어있을 수 있겠지만.
‘만약 성검 파티에 들어가게 된다면?’
[성검의 주인] 속 그와 현재의 그는 분명 달라졌다.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가 휴마누스의 동료가 된다면 큰 힘이 되겠지.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
나 자신에게 ‘대체 내가 거길 따라가서 뭘 어쩔 건데?’라는 의문을 던지게 될 정도로,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세르펜스를 혼자 보내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옆에 유지스를 딸려 보낸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불안했다.
‘···그 이전에. 어째서 원작에서의 그는 성검 일행의 초기 멤버로 들어가지 않은 거지?’
악마 숭배 세력에서 경계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휴마누스는 그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함께할 것을 제의받았겠지.’
선택의 날을 기준으로 그가 삐뚤어져 버리기 시작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성검이 휴마누스의 손에 쥐어지자마자, ‘내가 갖지 못한다면 전부 부숴버리겠어!’를 외친 건 아닐 테다.
‘과연 그것을 세르펜스가 거절한 것이 맞긴 할까?’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세르펜스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고, 버림받지 않으려 발버둥 쳤을 테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본인이 자처해서라도 동료로 들어가려 했어야 마땅하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왜지?’
당장 떠오르는 가능성은 두 가지.
선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 여러 의심을 받은 탓에, 동료로 가는 것 자체를 주변에서 반대했거나.
혹은, 성검의 주인으로서 휴마누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주변에서 그를 의도적으로 배척했다던가.
‘세르펜스가 인성 논란에 휩싸였다면, 휴마누스는 실력 논란에 휩싸였다고 해야 하나···?’
세르펜스는 너무 강했다.
성검의 주인 자격을 가진 후보자들 가운데,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그런 그를 밀어내고 선택을 받았으니, 그런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던 것이다.
‘신 룩스메아의 선택에 인간의 개입이 불가능하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실력 논란을 넘어, 온갖 추문에 휩쓸리는 건 세르펜스가 아닌 휴마누스였을거다.
소설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가 성검의 선택을 받고 암흑가의 악마 때문에 제국에 돌아오기까지의 약 1년간.
그동안 있었던 세르펜스의 드러난 행적은, 그가 제국을 집어삼키기 위한 계략을 꾸미는 모습뿐.
그가 죽어가며 남긴 회상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매도당하며 인간성을 의심받았다는 내용뿐.
‘그게 말이 돼? 세르펜스를 존경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세르펜스가 인식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프그누토 백작만 해도 세르펜스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던가. 인격뿐만이 아니라 그의 검술까지도 우러르지 않았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세르펜스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을 터···.
‘그런데, 그걸 막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이상하다.
아무리 선택의 날 실망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지.
‘네가 뭔데 우리 고귀하고 아름답고 강인하신 공작님을 욕해?!’ 따위를 외치며, 그들의 머리채를 잡아챌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이상했다.
세르펜스의 능력과 비교하고, 그 자질을 의심하는 자들 때문에 휴마누스가 얼마나 부담을 느끼고, 걱정하고, 불안해했던가.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선택된 이유가 있을 거라, 자기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라는 식의 전개가 펼쳐지며, 휴마누스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성검의 주인]에서 묘사되었다.
‘대륙의 모든 인간이 모두 까기 인형도 아닌데, 이 둘을 다 같이 까는 건 이상하지 않나?’
누군가 있다. 무언가 있다.
그것은 성검의 주인으로서 불안정했던 휴마누스의 입지를 다져주기 위한 대륙 측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세르펜스를 흔들고 깎아 내려서, 추락시키려 했던 악마 숭배 측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둘 다일 수도.’
단순히 지키려 했던 자들에게 버림받은 배신감이라던가, 과거의 기억이 끄집어내진 탓에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겪었다거나.
그뿐이라 생각했었다.
‘빌어먹을 [성검의 주인], 뭐 이리 까도 까도 계속 나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다.
휴마누스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를 믿어주고 독려해주고 함께 나아가 줄 동료가 있었고.
세르펜스는 그 이전부터 그래 왔던 것 이상으로, 철저히 고립되었다. 거짓된 그의 모습조차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그것조차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뒤에서는 그들을 위협에 몰아넣고, 앞에서는 그들을 돕는 척 의지하게 하여서.
제국을 자신의 손아귀에 붙들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스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네.’
이게 맞는 추측인지, 아니면 유지스처럼 나 또한 소설을 쓰고 있는 것뿐인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악마 숭배자들만 경계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땐 정말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그를 데리고 어디 한적한 곳에서 은거해야 한다.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말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만들던가···.’
씨앗이 있어야 싹이 트는 법이다. 의심의 씨앗 자체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수작질 같은 건 할 엄두도 안 나게.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갑자기 신 룩스메아가 강림이라도 해서,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 빼애액─!}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확실한 건지도 모르고, 그렇다 하더라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참, 제온아.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한다는 걸 까먹었네.”
“응? 무슨 말?”
“취업 축하한다고.”
“···어, 그래. 고마워.”
제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나는 이만 일 하러 갈 테니까, 푹 쉬어.”
“가기 전에, 온 김에 이거나 하나 써줘.”
“······?”
나가려는 그를 멈춰 세웠다.
그는 이제 막 공작저에 들어온 참이지만, 일단은 공작저 식구.
‘적어도 한스보다야 낫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서랍을 열어서 종이 두 장을 꺼내어, 그중 한 장에 간략한 설명문을 적었다.
사실 설명문이라 할 것도 없었으나, 세르펜스도 그렇고 한스도 그렇고···.
‘이 공작저에서는 뭐가 됐건, 입 밖으로 낸 순간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어 버리니까.’
비밀로 할 거면 글로 써서 보이는 게 낫다.
뭔가를 써달라더니 본인이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자, 그 내용이 궁금했는지 제온이 다가와 기웃거렸다.
“···작은 형?”
“왜?”
“형도 공작저 식구 다 됐구나 싶어서···? 그, 그래. 물론 공작님은 좋은 분이시지.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야.”
내용을 본 제온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는 걸까?’ 따위를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3주 차면 공작저 특유의 신고식을 받고 있거나, 그 이후겠지.’
신고식이라 쓰고, 아이돌 입덕 영업이라 읽는다.
더군다나 내가 워낙 잘 받아줘서, 아마 동생인 제온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을 테다.
“네가 아직 월급을 못 받아서 그래.”
“···그렇게나 많이 줘?”
“내가 괜히 첫 달을 제외하고, 매달 250씩 보내는 게 아니야.”
“혹시 몇 줄 이상 써야 한다는 그런 거 있어?”
사실 빚만 아니었더라면, 더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혹했는지, 제온의 표정이 급변하며 내가 들고 있던 펜과 빈 종이를 뺏어가며 물었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아니다. 기본 서류 용지 규격을 준수하며, 한 페이지 내에서 적어 줄래?”
“···그, 그래.”
본래 롤링 페이퍼라는 게 간단히 몇 줄 정도만 쓰는 게 기본이나, 공작저의 사람들에겐 그 정도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평소 공작저 사람들이 세르펜스를 덕질하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세르펜스가 공작이 된 후, 공작저에서 맞이하는 생일은 이번이 처음이잖아?’
매달 마지막 주는 항상 공작령에 내려갔으니, 그럴 수밖에.
다만 이번은 성검의 선택을 주관하는 대신전이 수도에 있었기에, 공작저에서 머물게 된 것이다.
‘완전 축제 분위기 아냐?’
공작이 되고 난 뒤로 생일 파티는 한 번도 열지 않고 거부해 왔으니, 이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축하의 말 한마디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크다.
‘우선 공작저 쪽은 내가 어떻게 하면 되고···.’
문제는 휴마누스 였다.
자칭이래도 그가 세르펜스를 친구라 여기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세르펜스의 진면목을 알게 되어도, 사과하고 반성을 하면 했지···.’
그를 미워할 만한 성정은 못 된다.
또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둘 사이에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하지만 그래 봬도 그는 황태자라서, 내가 함부로 만남을 청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세르펜스의 이름을 팔아서 만나자니, 주객전도가 돼버리고···.’
그 때문에 유지스에게 건넨 종이에는 이번 계획과 함께, 휴마누스에게도 롤링 페이퍼를 받아다 달라는 부탁을 적어 놓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열다섯 때였나? 그때 내 생일 선물로 작은 형이 사줬던 커프스단추 잃어버렸어···. 미안.”
“···뭐?”
“그게···. 수도에 올라올 때, 마음 다잡는다고 착용하고 왔었는데. 도착하니 사라져있더라, 진짜 미안해!”
제온이 정갈한 글씨체지만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종이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팔을 들어 올리느라 재킷 아래로 슬쩍 드러난, 그의 셔츠 소맷부리에 무언가가 반짝인다.
분명 나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눈에 익었다.
생일 선물. 커프스단추.
거기다 시각적으로도 명확한 단서가 있으니, 기억을 떠올리기도 쉬웠다.
“···네가 그걸 생일 선물로 받은 건 18살 때. 성인 기념으로 카론 형이 사줬던 거 아냐? 그리고 지금 네 소매에 달린 그건 뭔데?”
“아, 이거? 잃어버리고 나서 몰래 똑같은 거로 산 거야. 하지만 역시 양심에 찔려서,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얘기한 건데···. 작은 형이 아니라 큰 형이었나?”
그렇게 말하며, 카론에게는 자신이 말할 테니 비밀로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버렸다.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지만, 제온의 표정은 안도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뭐야, 쟤···. 지금 날 시험한 거야?’
아무래도 요 3주간, 공작저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의심을 품었었나 보다.
어쩌면 나에게 자신의 형이 맞냐고 물었던 것도···.
‘그래도 마지막 표정을 보면, 당장은 넘겼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시온이 수도에 올라온 이후로 고향에 한 번도 안 내려갔으니, 그동안 성격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해 준 거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