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89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897화(897/1105)
< 89. 공작님과 식사 시간 (5) >
대체 언제부터 깨어있던 걸까?
나는 엉거주춤 의자에서 떨어진 궁둥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그래도 세르펜스는 내 손목을 놓지 않았다. 힘을 주어 잡은 건 아닌지라 가볍게 손을 털기만 해도 쉽게 떼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차갑게 식은 그 손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세르펜스에게 잡히지 않은 오른손으로 힘없는 녀석의 손을 겹쳐 잡았다.
겹쳐진 손을 시작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겨 녀석의 팔을 타고 올라 얼굴에 이르렀다.
울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아니, 당연히 울고 있을 줄 알았건만.
“···안 우네?”
“사과할 때는 울지 않기로 선우와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울면 선우는 나를 위로해 주느라 자신의 문제를 덮어버릴 거잖는가?”
목이 잠겼는지 세르펜스가 평소보다 톤이 내려간 목소리로 조용조용 얘기했다.
그래도 다정한 내용과 부드럽고 잔잔한 이 말투는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토록 돌려받고 싶었던 현 시간대 세르펜스의 것이 분명했다.
울지 않을 거라면 다른 시기의 세르펜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맑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미안하다. 내가 2회차의 나를 잘못 판단했다. 내가 얼마나 탐욕적일 수 있는지, 나 자신에 관해 무지했다. 설마하니 선우에게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알았다면 성검을 쥐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 텐데···.”
눈앞의 녀석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하필이면 시선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던 터라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네가 자진해서 성검을 잡은 게 아니었잖아. 더군다나 그때 2회차의 인격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넌 악마에게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 그런 건 내가 싫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 그렇게 됐을 거다.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확정 지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나는 이 녀석을 영영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수도 없이 가정해 보았다.
정말 끔찍한 상상이었다.
“세르펜스. 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 내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선우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전부 보았는데···. 내 손끝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선우의 몸에 들어가 어떠한 작용을 일으켰는지 전부 아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타락펜스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감각을 공유했나 보다.
죄책감에 짓눌린 까닭인지 녀석이 고개를 더욱 깊게 숙였다.
나는 그림자를 만들어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손으로 걷어 주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겹친 손을 떼면, 기껏 온기가 스며들어 따뜻해지기 시작한 녀석의 손이 도로 차가워질 것 같아서.
궁여지책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있는 힘껏 후우욱-, 길게 입바람을 불었다.
청은빛 머리칼이 흔들리고, 세르펜스가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유리알처럼 맑은 녹색 눈동자가 내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게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이제야 녀석이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반가움을 전하고자 내가 입을 열려는 그때.
“선우, 혹시 고기를 먹은 건가···?”
“앗! 입 냄새 죄송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것보다 정말로 그걸 먹었나?”
기분이 더러울 만도 하건만, 세르펜스는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기쁨과 기대를 드러냈다.
그래도 나는 민망했다.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할 예정이긴 했지만, 냄새로 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건만.
편지를 읽기 전에 양치부터 할 걸 그랬다.
세르펜스가 깨어나면 밥을 먹이고 나서, 가벼운 디저트라도 함께 먹을 생각으로 밀어뒀다가 이게 웬 쪽이람?
나는 앞으로 양치를 자주자주 하자고 다짐하며 세르펜스의 물음에 대답했다.
“눈 감고 있으니까 에드나 씨가 먹여 줬어.”
“···안 보이면 먹을 수 있는 건가?”
“응.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눈을 뜬 상태로도 먹을 수 있게 되겠지?”
“다음 식사 때부터는 내가 먹여주겠다.”
내가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건 녀석의 잘못도 아니건만.
타락펜스가 행한 일에 죄책감을 느꼈는지 세르펜스가 식사 도우미를 자청했다.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다. 또다시 에드나에게 음식을 받아먹으면 아니마에게 원한을 살 게 뻔하니까.
“그래 주면 나야 좋지.”
“걱정했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해결되어서 다행이군. 혹 치즈도 먹을 수 있는가?”
“그건 아직.”
“으음···, 그렇군.”
세르펜스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꿈속에서 지난 회차의 기억에 시달리다가 막 깨어난 직후인데도. 심지어 지난 한 달여간 타락펜스의 인격에 밀려 무력함을 느꼈을 텐데도.
자신이 느꼈던 혼란과 괴로움을 뒤로하고, 내 상태부터 살피는 녀석의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고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까웠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녀석이 얼마나 간절하게 손을 뻗고자 했을지 알 것 같아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도 내게 닿을 수 없다는 사실에, 녀석은 얼마나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껴야 했을까?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남긴 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기뻐하고 싶군.”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는 곱게 눈을 휘며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수심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한 것도 잠시.
답은 금방 나왔다.
“고마워, 아도르.”
“그 이름은···, 으음···.”
“반응이 왜 그래? 네 세례명이잖아?”
“하지만···.”
세르펜스가 탐탁지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타락펜스를 ‘아도르’라고 불렀다는 걸 알기에, 세례명으로 불리는 게 꺼림칙해졌나 보다.
심지어 이 녀석은 타락펜스가 한 짓과 내 반응을 전부 1인칭 시점으로 지켜봤을 테다.
‘내가 아도르라는 이름을 입에 담으며, 이러지 말아달라 간곡히 애원하고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도 봤겠지···.’
그러니 세르펜스가 세례명으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만도 하다.
따로 불릴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니, 굳이 세례명으로 불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나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이 녀석이 ‘아도르’라고 불렸을 때 기뻐하던 모습을 기억하니까. 그리고 그 이름에 얽힌 추억도 있으니까.
세르펜스가 그 이름을 없는 셈 치는 건 내가 포기할 수 없다.
“네가 ‘아도르’라고 불리는 게 거북할 거라는 건 알아. 그래도 어쨌거나 ‘아도르’는 네 세례명이잖아? 2회차의 세르펜스가 네 몸을 차지하려고 했을 때, 내가 반감을 느끼면서도 그 녀석을 ‘아도르’라고 부른 건···. 내게 있어 ‘아도르’는 오직 너 하나뿐이라서야. 그 이름으로 부른다 해도 내가 그 녀석과 너를 동일시 한다거나, 네 대체재로 생각하게 될 일은 결코 없으니까. 그래서 2회차의 너를 ‘아도르’라고 부를 수 있었어.”
“···그랬던 건가?”
“응. 그런데 네가 그 이름을 거부하면, 내가 네게서 ‘아도르’라는 이름을 빼앗아 간 것 같잖아. 심지어 세례명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존재에 새겨진 정의’라며?”
“으음···.”
세르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고민에 잠겼다.
나는 그런 녀석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했다.
고민에 잠겨도 유지되는 맑은 눈빛과 광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한 표정.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기보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답을 내리고자 노력하는 태도까지.
이 녀석의 모든 것이 그리웠다.
“아도르.”
“···그래.”
“돌아와서 기뻐.”
“나도 이렇게 다시 선우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나와 세르펜스는 마주 보며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
이렇게 아무 고민 없이, 마음 편히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배고프지 않아? 에드나 씨가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뒀으니까, 나가서 먹고 와.”
“그냥 선우의 아공간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먹으면 안 되는가?”
“미트볼 토마토 리소토도 있는데?”
“하지만 그건 선우의 앞에서 먹을 수 없잖은가. 지금은 선우와 대화를 더 나누고 싶다.”
“알았어, 그럼 내가 눈을 가리고 있을게.”
“···뭐?”
눈을 가리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한 게 조금 전이건만.
어째서인가 세르펜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고 묻는 듯한 얼굴이다.
“그동안 부실한 식사를 해 온 건 네 몸도 마찬가지잖아.”
“예전에는 훨씬 더 부실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몸을 유지했으니 괜찮다···고 말하면 선우는 싫어하겠지···?”
“나는 그냥 세르펜스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어. 그거 다 먹고 나면 간식도 줄게. 한정판 까눌레, 먹고 싶었지?”
“간식까지 내걸 정도로 내게 미트볼 토마토 리소토를 먹이고 싶은 거라면···, 알겠다.”
“좋아! 그럼 잘 다녀와!”
“그 전에···.”
세르펜스가 말을 온전히 끝맺는 대신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녀석의 시선을 눈으로 좇아 도착한 곳은 바로 내 손목이었다.
놔 달라는 뜻일까 봐 녀석의 손등을 덮었던 손을 치웠다. 그래도 녀석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니 망설임 가득한 세르펜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할 말 있어?”
“내가 선우에게 신성력···을 써도···, 되겠는가?”
“아까 휴마누스가 신성력을 써 줘서 괜찮은데?”
“그래도···, 아니, 으음···. 그렇군. 괜찮다면야···.”
나는 정말 몸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괜찮다고 한 거였는데,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세르펜스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거두어갔다.
스르륵 손목 위를 가볍게 쓸듯이 떨어져 나가는 그 손길에서, 서러움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감정이 느껴졌다.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거지? 그럼 그렇게 해. 딱히 거부감이 들거나 하진 않으니까.”
“···미안하다.”
“사과하지 말래도?”
“그럼, 음···. 고맙다?”
“응, 그거면 돼.”
나는 그렇게 답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세르펜스도 나를 보며 살포시 웃어 보인 후 내 몸에 신성력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손목을 통해 흘러들어온 따스한 기운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몸 안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타락펜스가 다루는 신성력은 몸속과 머릿속을 강제로 헤집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반면에 세르펜스가 다루는 신성력은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느낌이다.
신성력이 딱히 머리 쪽으로 향한 것도 아니건만, 평온한 기분이 드는 건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일 거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신성력이 빠져나갔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군.”
“그렇다고 말했잖아. 것보다 안대 있어? 네가 미트볼 토마토 리소토를 가져오기 전에 눈 가리고 있게.”
“있···긴 하다. 2회차의 내가 챙긴 물건 중에···.”
타락펜스가 악숭 살롱에서 온갖 구속용 물품들을 챙긴 것 같길래, 혹시나 하고 찔러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세르펜스가 주섬주섬 아공간 주머니에서 가죽 안대를 꺼냈다.
예상이 맞아서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었는데도 전혀 기쁘지가 않다. 이것들 말고 다른 건 뭐가 있느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