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화(9/1105)
9회
3. 공작님과 기차여행 (1)
드디어 첫 주말이다.
그 사이 자문회도 한 번 더 다녀왔다.
‘어차피 치고받고 싸울 거면서, 처음 한 시간은 왜 점잔을 빼는 거지?’
아마 한 명이 필리버스터로 시동을 걸면 나머지가 그 한 명을 응징하면서 시작하는 게 관례인 듯하다.
거기에 세르펜스가 친절히 덧붙여준 설명에 의하면 신성력, 마력 등을 모두 배제하고 순수 육체적 능력만으로 겨뤄야 한다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파일철 처리되지 않은 서류 낱장에만 국한되며, 일체의 무기 사용을 금한다고···.
‘천하x일 무술x회세요? 아니, 왜 회의에 전투 룰이 있는 거죠? 전투 민족이세요?’
이런 건 더는 ‘회의’라 지칭할 수 없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내 표정에 세르펜스가 현장에 신성력 보유자가 많아서 안전이 보장되어 괜찮다고 말해줬다.
‘그게 중요한 건가? 안전이 문제가 아니잖아! 이 나라는 미쳤어!’
벙찐 얼굴로 그를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니, 세르펜스가 수줍은 표정으로 이런 말도 했다.
“사실 전에 프그누토백작께서 제게도 권유를 하셔서.”
‘권유할 게 따로 있지?’
“어쩔 수 없이 딱 한 번,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걸 또 참여해?!’
“결국 저 혼자 남아서···.”
‘양민학살!!’
“으음···. 좀 부끄럽습니다.”
‘······.’
어쩐지 아무도 세르펜스를 건들지 않더라니, 그 뒤에 이런 배경이 있었을 줄이야.
그냥 챔피언 우대였나보다.
‘다시 한 번 최후의 1인이 나오면 그땐 세르펜스와 겨루게 되는 걸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얻어야 할 정보는 그딴 게 아니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짐만 싸 들고 와서, 퇴근 후 남아있는 공작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메리에게 약속했던 간식거리도 건네주었다.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가게의 생크림 케이크를 사다 줬더니 몹시 기뻐하더라.
‘세르펜스가 그녀의 반 만큼이라도 단순했다면 좋았을 텐데.’
내 맘대로의 의역일지라도, 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 세르펜스가 하는 말의 본의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해서 참으로 당황스럽다.
특히 자문회 건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런 권유 정도는 무시하라고!’
착한 척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어떻게든 상대를 배려하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계속 퍼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건가?’
어쨌든 너무 대놓고 캐묻고 다니면 의심스러울 것 같아, 그들과 친해지며 은근슬쩍 운을 띄우는 작전으로 나가기로 했다.
‘···가, 세르펜스의 선행에 관한 이야기와 그 찬사만 잔뜩 들었네.’
그걸 곧이곧대로 다 귀 기울여주면 나까지 세르펜스의 열혈 신도로 세뇌당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적당히 한 귀로 흘려가며 그들의 말을 끊어내었다.
가만 듣고 있자니, 웬만한 도쟁이들보다 더한 회유력이다.
우선 시녀들 쪽에 먼저 접근했으나, 그 시절에 근무하던 시녀들은 대부분 이미 은퇴하고 없는 모양이다.
‘아니, 왜 그 흔한 유모조차 없는 거지?’
부엌 시녀 중에는 10년 넘게 근무한 사람도 몇 남아있긴 했다.
그러나 거의 부엌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그 시절 있었던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벌레 사건처럼 사용인들이 보는 장소에서 대놓고 일어났던 일은 흘러 들어갈 법도 한데···.’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을 봐서는 입단속을 잘했거나. 아니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세르펜스가 더 어릴 때 일어났던 일이라는 거겠지.
‘뭐, 사실 세르펜스가 과거에 겪은 일에 대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가 당한 일 따위 상관없다는 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 정보를 캐물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물어보고 다니는 것은, 그냥 그들이 왜 그 상황을 방치했는지 알고 싶다는 개인적 호기심일 뿐이다.
‘실제로도 그들에게 주로 물어본 건 현재의 세르펜스에 관한 것이고.’
애초에 그의 과거를 알고 싶다면 한스라거나, 나이 든 행정관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알면서도 묻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순순히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충심이 세르펜스가 아니라 프라시더스 가문 자체를 향하기 때문.’
경계하며 세르펜스에게 일러바치는 정도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 생각하여 몰래 처리하려 하거나,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내려 고문을 한다거나···.
‘으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그러므로 나는 프라시더스 공작가에 충성하는 사람 대신.
지금의 공작인 세르펜스 개인에게 호의를 가진 시녀와 시종들만 주야장천 붙잡고 다니는 거다.
나중에 잭에게 ‘공작님은 대체 몇 살 때부터 그렇게 훌륭하셨나’를 주제로 운을 띄워, 성장 배경이 궁금하다며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 넌지시 부탁해볼까?
‘그런데 세르펜스는 어째서 그들을 계속 곁에 두고 있는 거지?’
남들이 모르는 과거를 알고 있으려니, 대신 다른 의문이 생긴다.
일단 의문은 접어두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세르펜스와 가까워질 만한 계기다.
‘보좌관이라 계속 곁에 붙어 다닐 테니 시간이 지나면 친해지겠지?’
···따위의 생각을 했다간, 휴마누스 꼴 못 면한다.
함께한 시간만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면, 휴마누스는 옛날 옛적에 세르펜스의 절친이 되는 데 성공했어야 한다.
내가 그보다 유리한 조건은 세르펜스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 정도?
지금의 그가 거짓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휴···.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없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짐들을 마차에 실었다. 무려 프라시더스 공작가 문장이 그려진!
주말에 짐을 마저 옮기러 집에 들를 예정이라 하니, 세르펜스가 내어준 거다.
사람이 어쩜 이다지도 상냥할 수 있을까? 정말 천사나 다름없···.
– 짝─!
오른손으로 내 뺨따귀를 내려쳤다. 위험했다.
‘사상감염이란 게 이런 건가?’
요즘 가뜩이나 세르펜스의 과거를 동정하면서, 그의 선행에 관한 얘기를 듣고 다닌 탓일까?
스톡홀름 증후군 증세라도 나타나는 건가 싶다.
그래도 스스로 이렇게 자각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나?
‘세르펜스는 나쁜 놈이다! 이중인격이다! 설정충이다!! 이런 서스펜스!’
나는 속으로 세르펜스를 욕하며, [성검의 주인]에 묘사되었던 그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소름은 돋았지만 세르펜스가 더는 천사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차를 빌려 타는 주제에 그 주인을 욕하고 있으려니, 양심의 가책이 조금 밀려왔지만 어쩌겠는가.
정신을 똑바로 붙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목적을 잊지 말자.
공작저에 도착하여 짐들을 모두 올리고 났더니, 어느새 점심때가 훌쩍 넘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옮겼어야 했는데 첫 주말이라는 생각에 늦잠을 잔 탓이다.
‘점심시간은 이미 지났고···.’
원래 주말엔 늦잠 자고 한 끼만 대충 때우는 거라 자위했다.
그렇다고 저녁까지 기다리긴 출출하니, 포피나에게 찾아가 뭔가 먹을 게 없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녀는 메리의 룸메이트로, 현재 32살인 10년 차 부엌 시녀라 했다.
그 때문에 둘째 날 점심시간 때 식당에서 만나지 못했었지만, 요 3일간 정보를 모으러 다니다 메리의 소개로 친해지게 되었다.
‘요리 잘하는 사람과 친해지면, 자다가도 음식이 굴러들어오는 법이지!’
주방에 도착해보니, 점심의 설거지를 막 끝낸 듯한 모습이었다.
두건을 쓰고 있는 일반 시녀들과 달리, 부엌에서 일하는 시녀들은 위생모를 써서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 넣고 있었다.
이 때문에 뒷모습 만으론 구분해서 불러내기가 어려워, 주방에 들어가 모두에게 인사하며 포피나를 찾았다.
“보좌관님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식사 때를 놓쳐서···. 혹시 뭔가 먹을 게 있나 싶어서 와봤습니다.”
겸연쩍게 웃으며 그리 말하니, 포피나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내게 계란을 건넨다.
“잠깐 기다려봐요, 내가 먹을만한 걸 좀 가져올 테니.”
“감사합니다.”
친절한 사람이다.
포피나가 권해준 의자에 앉아, 그녀가 건네준 계란을 이마에 내리쳤다.
– 파삭─.
“···왜 날계란인 거죠, 이거?”
이마에서부터 줄줄 흐르는 날계란의 끈적함을 느끼며, 배신당했다는 눈빛으로 포피나를 바라보았다.
마주 바라보는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뺨에 멍이 드셨길래. 거기다 문지르시라고 드린 건데, 그걸 왜···?”
···너무 세게 때렸나?
어쩐지 안쓰럽게 쳐다본다 했더니, 어디서 맞고 오느라 밥도 못 먹은 거라 생각했나 보다.
포피나가 건네준 젖은 행주로 얼굴과 옷에 튄 계란을 대충 닦아내고 있으려니, 그녀가 곧 애플파이를 가져다주었다.
“누구한테 맞은 건가요?”
“아뇨, 그냥···. 정신 좀 차리려고 제가?”
내 말에 포피나가 여전히 믿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알았어요, 말하기 힘드시다면 굳이 캐묻진 않을게요.’라 말하며 날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세르펜스도 그렇고, 포피나도 그렇고. 왜 다들 내 말을 믿지 않는 걸까.
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 신용 없어 보이나?
“그런데 보좌관님은 이런 거 좋아하시나 봐요?”
“애플파이요?”
내 질문에 포피나가 고개를 저으며, ‘그냥 단 음식이나 디저트류?’라고 말했다.
“그런 편이죠. 이것도 아주 맛있네요.”
식사용으로는 담백한 쪽의 빵이 더 잘 어울리고 물리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그런 류의 빵만 먹고 있자니, 원래 세계에서 즐겨 먹던 빵들이 떠올랐다.
파리에서 온 척하지만, 사실 국내산인 프랜차이즈 빵집만 들어가도 기름기 좔좔 흐르는 달고 짠. 자극적인 빵/과자류 일색이다.
역시 한국인이라면 맵, 단, 짠. 이 모든 자극적인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잘됐네요! 앞으로 차를 내갈 때 쿠키나 파이 같은 것도 곁들여 드릴까요? 가끔 저희끼리 먹으려고 굽긴 하는데, 만들 일이 많지 않으니 실력이 죽을 것 같아서 말이죠.”
“예?”
그래도 되는 거였나?
세르펜스도 차만 마시는데 보좌관이 그래도 되는 건가 싶어 물어보니,
“사실 공작님께선 간식 같은 건 전혀 안 드시거든요. 그나마 드시는 식사도 간이 거의 안 되어 있고···. 요리하는 입장에선 요리할 맛이 별로 안 난달까요?”
···라고 그녀가 답변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음식 같은 건 없으시다고 들었는데.”
“그럼 자극적인 음식을 싫어하시나 봐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면서, 포피나가 손뼉 치며 좋아했다.
‘아니 도대체가···. 세르펜스 이 녀석은 취미도 없어, 좋아하는 것도 없어? 게다가 잠도 적게 자고, 먹는 음식도 심심해. 대체 무슨 맛으로 인생을 사는 거지?’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재미 자체를. 그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해 본 것이 아닐까?
‘에이, 설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래, 충분히 가능한 얘기야.’
인내심을 기른다고 고문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온 그였다.
절제와 자제심을 기르겠다든가, 자극적인 것에 빠져들면 안 된다든가. 그딴 개소리를 하며, 세르펜스를 몰아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죽고 난 지금까지 지켜오다니···.’
정말 그런 거라면, 세르펜스. 너는 천하에 둘도 없는 답답한 녀석이다!
“···그런데 공작님의 식단은 누가 짜는 겁니까?”
“딱히 메뉴를 누가 정해주시는 건 아니에요. 이전에 공작부인께서 도련님, 그러니까 전 공작부인과 현 공작님이요. 어쨌든 그분의 식사는 늘 그런 식으로 준비하면 된다고 들었어요.”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맵, 단, 짠 세 가지를 농도 조절하면서 적당히 먹이다 보면 뭔가 하나는 걸려들겠지.
‘원래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