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01화(901/1105)
< 89. 공작님과 식사 시간 (9) >
이제 세르펜스와 단둘만 남았으니 예의 ‘그것’을 꺼낼 차례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의 입구를 열고, 우선은 방음 스크롤부터 한 장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세계수 잎 차가 든 병과 찻잔, 접시 등등. 간식을 먹을 때 필요한 것들을 꺼내고 있자니, 세르펜스가 방음 스크롤을 가져가서 찢었다.
가만히 있기 뭐해서 간단한 거라도 도우려는 건가 보다. 참으로 기특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누가 키운 아이인지, 정말 잘 컸다니까?’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공간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예의 그것.
그러니까 세르펜스에게 식사를 마치면 주기로 약속했던 ‘한정판 까눌레’를 꺼냈다.
루비 초콜릿으로 코팅되어 달콤해 보이는 분홍 몸체에, 큼직한 딸기가 올라간 그 모습은 다시 봐도 맛있어 보였다.
사실 아까 전부터 이걸 꺼내어 세르펜스에게 먹이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지라 휴마누스가 있을 땐 차마 꺼내지 못하겠더라.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간식을 뺏어 먹을 성격은 아니지만,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면 내심 서운할 테니까.
내가 까눌레를 꺼내어 접시에 옮겨 담는 동안에도 세르펜스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알아서 세계수 잎 차를 두 개의 잔에 따라서 하나를 내 앞에 스윽 밀어 놓았다.
타락펜스는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했고, 세르펜스도 처음에는 그러했었는데.
‘이런 게 바로 올바른 가정 교육의 효과라는 거겠지.’
감격할 일은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르펜스는 한 차례 더 나를 감동케 했다.
녀석이 까눌레를 반으로 잘라서, 본래 그것이 들어있던 작은 상자에 옮겨 담아 나에게 건넸다.
“이, 이거···. 나 주는 거야?!”
“선우도 먹지 못했잖은가.”
“그렇긴 하지만, 이거 엄청 맛있을 텐데···?”
“그러니 선우와 나눠 먹고 싶다.”
“이 작은 걸 반으로 나누면 입가심거리도 안 될 텐데···.”
“나중에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그때 둘이서···. 아니, 다 함께 사 먹으러 가면 된다.”
지금 세르펜스가 ‘다 함께’라고 말한 건가?
도무지 내 귀를 믿을 수가 없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세르펜스를 바라보니, 녀석이 쑥스럽다는 듯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가 보다.
“세르펜스, 잠깐 이리 와 볼래? 아니다, 그냥 내가 가야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있는 세르펜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뒤통수를 마구 쓰다듬었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느낌이 무척이나 기껍다.
간식 준비를 도운 것과 까눌레를 반띵한 것까지는 감동스러울지언정,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교성 없는 녀석의 입에서 ‘다 함께’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건 다르다.
경천동지의 대사건이다.
나와 둘만 있는 걸 가장 좋아하던 녀석이 유지스를 받아들이고, 윈스톤과 휴마누스를 인정하더니.
이제는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다 함께’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아이고, 우리 공작님! 못 본 사이에 정말 많이 자랐네!!”
“음, 으음···, 선우를 돕고 싶어서···. 여러모로 고민했다.”
더 칭찬해 달라고 조르듯이 세르펜스가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노곤노곤한 목소리로 말하며 으음거리는 걸 보아하니, 오랜만에 받는 폭풍 쓰담을 한껏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애써 의연하게 굴고 있지만, 역시나 많이 힘들었겠지.
힘들어 하는 나를 보며 돕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져 말랑해진 기분이다. 약간 저릿저릿 한 것 같기도 하다.
녀석이 짠하면서도 고맙고 기특하여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진 까닭이다.
나는 그러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세르펜스의 머리를 더 쓰다듬다가 놓아주었다.
“아···, 벌써 끝났나?”
한참을 쓰다듬은 것 같은데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 걸까?
세르펜스가 아쉬움을 뚝뚝 흘리며 내 옷자락을 마지못해 놓아 주었다.
이런 부분은 여전히 어린아이 그 자체인지라 피식거리는 싱거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녀석의 정수리를 두어 번 토닥여준 후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일단 먹고 나서 얘기하자.”
먹으면서 대화하자고 하기에는 반쪽짜리 까눌레의 양이 너무 적었다···는 건,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실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평화롭고 기분 좋은 분위기를 좀 더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대화를 뒤로 미룬 거다.
세르펜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먹겠다.”
“나도 잘 먹을게.”
우리는 서로에게 본인 몫의 한정판 까눌레를 양보한 것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무슨 스테이크라도 먹듯이 우아한 동작으로 반쪽짜리 까눌레를 작게 썰어 먹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입을 오물거리며 음미하는 모습으로 보아 정말 맛있나 보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크를 하나 더 꺼냈다.
찻잔은 두 개 꺼냈지만, 나까지 이걸 먹게 될 줄은 몰랐던지라 꺼내놓은 포크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그냥 맨손으로 집어먹었을 터이나 지금은 위생상 좀 그렇다.
타락펜스가 전투 중에 모래바람을 맞은 탓에, 세르펜스는 모래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던 까닭이다.
그런 녀석의 머리를 미친 듯이 쓰다듬었으니 내 손이 깨끗할 리가.
‘평소라면 에드나 씨에게 마법으로 해결해 달라고 했을 텐데···.’
슬슬 마력이 회복되고 있을 테니 이따 부탁해볼까 하다가, 어쩌면 피곤해서 일찍 잘 수도 있으니 그만두기로 했다.
애초에 이럴 때를 대비하여 욕조를 챙겨 들고 다닌 거다.
‘게다가 반신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면 잠도 잘 올 테니 일거양득이지!’
나는 속으로 내 계획성에 찬사를 보내며, 까눌레와 그 위에 올라간 딸기를 작게 잘라 포크로 콕콕 찍어서 한 번에 입에 넣었다.
겉을 감싼 루비 초콜릿이 바삭하고 부서지는가 싶더니 사르르 녹았다.
살짝 새콤한 단맛이 혀에 스며들 것처럼 입안을 점령하는가 싶은 그때, 잘 익은 딸기의 상큼한 과즙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이 디저트의 주인공은 루비 초콜릿도 딸기도 아닌 까눌레였다.
촉촉하면서도 쫀득한 까눌레가 초콜릿과 딸기의 강렬한 맛을 받아들이며, 한층 더 고급진 풍미를 선사했다.
과연 죽기 전에 못 먹으면 손해 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법한 맛이다.
“캬~! 이런 게 바로 행복이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으며 감탄을 터트렸다.
타락펜스와 갑자기 헤어진 건 몹시 슬펐으나 세르펜스를 마주하니 그 기쁨이 훨씬 컸다.
오랜만에 좋은 친구 겸 잘 키운 자식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니, 기분이 좋다 못해 들떴다.
그래서 그런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알코올 성분은 없는데···?”
내 감탄사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세르펜스가 차를 홀짝이고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졸지에 주정뱅이 취급을 당했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까눌레를 또 한 입 먹었고 세르펜스도 다시 먹는 데 집중했다.
“잘 먹었다. 정말 맛있더군.”
“그치? 나중에 꼭 사러 가자.”
내 몫의 한정판 까눌레를 안 먹고 남겨두길 잘했다.
만약 타락펜스가 먹을 때 같이 먹었으면 이토록 맛있게 먹지는 못했을 거다. 그때는 입맛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나는 뿌듯함을 느끼며 찻잔만 남겨두고 테이블 위를 깨끗하게 치웠다.
이제는 다시 대화를 나눠야 할 때다.
하지만 조금 전 행복했던 시간의 여운을 좀 더 느끼고파, 목이 마르지도 않은데 찻물을 들이켜 입에 잠시 머금고 있다가 꿀꺽 삼켰다.
“그럼 다시 얘기를 나눠 볼까?”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던가?”
“응. 아까 세르펜스 네가 했던 얘기에 관한 건데···.”
“으음···. 2회차의 나 또한 선우에게 미움을 받는 것보다, 선우가 무너지는 것을 더 두려워할 거라는 얘기 말인가?”
세르펜스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내가 궁금해 한 부분을 정확하게 맞췄다.
기본적으로 이 녀석의 눈치가 뛰어난 덕도 있지만, 나에 관한 이해도가 높고 내게 맞춰주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걸 테다.
이 녀석이 내 의도를 바로바로 맞추는 건 늘 있었던 일이건만.
그런데도 새삼 고맙고 기꺼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떨어져 있어 봐야 상대방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하나 보다.
“그거 진짜야?”
“내가 멋대로 추측하여 지어서 말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2회차의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그게 궁금한 건가?”
어찌나 정확하게 딱딱 맞추는지 과연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르펜스가 어서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길 기다렸다.
그러자 녀석은 나를 빤히 응시하다가 돌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래?”
“선우가···, 그 시기의 내게 자꾸만 심력을 쏟는 것 같아서···.”
“혹시 질투해?”
“그럼 안 하겠는가? 내가 설득할 때에는 고집불통이더니, 이전 회차의 나를 언급하자마자 마음을 돌렸잖은가?”
설마 그러겠느냐는 마음으로 가볍게 찔러 본 거였는데.
그게 정답이었는지 세르펜스가 진심으로 울컥해 하며 투정을 부렸다.
자꾸만 내가 타락펜스를 감싸고 돌아서 서운하던 와중에, 즐겁게 까눌레를 나눠 먹고 난 후 또 그 녀석 얘기를 꺼내니 서러워졌나 보다.
“애초에 그 회차의 너와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그 녀석의 의견을 좀 더 중요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야. 그 이외의 일에는 언제나 아도르 네가 최우선이야.”
“······.”
“내가 ‘아도르’로 받아들인 ‘세르펜스’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너뿐인 거 알지?”
“정말이지···. 선우, 당신은···.”
대답이 없는 게 혹여 ‘아도르’를 또 타락펜스로 잘못 해석한 걸까 봐, 내가 급히 설명을 덧붙이자 세르펜스가 새침하게 눈을 흘겼다.
표정은 뾰로통해 보여도 화가 풀린 게 틀림없다.
내가 웃으며 테이블 위로 손을 내밀자, 녀석이 슬그머니 내 손바닥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나는 두 번째여도 좋으니, 앞으로는 선우 본인을 최우선으로 여겨다오.”
“아유, 우리 공작님은 말도 예쁘게 하는데 얼굴은 더 예쁘네?”
“순서가 바뀐 것 아닌가?”
“세르펜스의 얼굴이 보통 예뻐야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얼굴을 앞에 두고, 어떻게 다른 것을 더 예쁘다고 표현할 수 있겠어?”
“음, 선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세르펜스가 인정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에 바다 젤리 케이크를 보고 내가 예쁘다고 했을 때.
녀석이 ‘언제는 내가 제일 예쁘다더니.’ 같은 말을 중얼거렸던 건, 바다를 닮은 그 케이크를 먹고 싶지 않아서 투정을 부렸던 게 아니었나 보다.
그때도 지금도 세르펜스는 진심이었다.
‘호외요, 호외! 자신의 얼굴이 예쁜 줄 모르겠다던 우리 공작님이 달라졌어요!’
나는 [속보 : 프라시더스 공작, 드디어 자신의 미모를 인정] 따위가 적힌 종이를 마구 뿌려대는 상상을 떠올렸다.
그것을 읽고 ‘아니, 그럼 이제까지 몰랐단 말이야?!’ 하고 놀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덩달아 머릿속에 그려졌다.
“뭔가 이상한 상상을 떠올린 표정이군.”
“앗, 유지스가 옮았나 봐!”
“조사를 잘못 쓴 것 아닌가?”
“맞게 썼는데? 유지스가 유지스 하는 걸 옮은 거니까. ‘~에게’가 아니라 ‘~가’라고 하는 게 맞아.”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나도 선택의 날에 우스꽝스러운 난장판을 보며 그대를 떠올렸으니.”
저 말인즉 내가 우스꽝스럽다는 뜻인가?
선택의 날 벌어진 난장판이라면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건이다.
본인이 휴마누스를 희생시켜 만든 작품을 보며 어째서 나를 떠올렸다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