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0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03화(903/1105)
< 89. 공작님과 식사 시간 (11) >
“서, 선우···? 진정해라. 뭔가 오해가 있었던 듯하다.”
당혹으로 물든 세르펜스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 나만 할까. 당혹스럽기로 따지면 내가 더 하다.
갑자기 두려움은 밀려들지, 내가 가장 의지하는 녀석은 나를 밀어내려 하지.
이렇게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용한 수준 아닌가?
“오해? 무슨 오해?”
“나를 무서워하라는 뜻에서 한 말은 결단코 아니었다. 단지 그런 일이 있었으니 나를 무서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게 그거잖아···!”
“내가 잘못했다, 말실수를 해버렸군. 미안하다. 그래도 선우에게서 나를···, 음···. 뺏어가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세르펜스가 미묘한 부분에서 버벅거리며 변명했다.
아니,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긴 할 테다. 세르펜스가 자진하여 나와의 연을 끊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은 나를 몹시 애착하고 있으니까.
자신을 내게 떠안겨주려 하면 그리했지 그 반대의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다.
‘잠깐, 정말 안 하는 거 맞아?’
이 녀석은 한때 나를 본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때 당시 녀석에게는 오직 나밖에 없었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게 부모가 곧 세상이듯, 당시의 세르펜스에겐 내가 그러했다.
그런데도 나를 놓아주고자 했다.
내가 가족을 너무 그리워해서,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이제는 나를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낼 방법까지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 두려움을 어떻게 달랠 수 있지?’
타락펜스와 함께하며 있었던 일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에서 겪은 일들은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
괜히 얘기를 꺼냈다간 그대로 입원행이다.
상담을 할 수 없으니 아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겠지.
게다가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나는 이 상태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추가로 떠안아야 한다.
물론 이곳에 남아도 그리워할 대상이 존재하기는 하나 이쪽은 익숙해졌다.
더군다나 가족들은 안전하기라도 하지, 이곳에서 연을 맺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중에서도 세르펜스는 특히나 위험하다.
마왕의 1순위 섭외 대상이자 제거 대상이니까.
하물며 정신까지 여린데 곁에 내가 없다면, 나를 제 손으로 떠나보낸다면 녀석은 급속도로 무너져 내릴 게 뻔하다.
‘두려움에, 그리움에, 걱정과 불안까지 더해지면 과연 내가 혼자 버텨낼 수 있을까?’
나는 두 손으로 세르펜스의 손을 간절하게 붙들었다.
하얗게 질린 내 손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공포에 지배당하는 기분이다.
신성력의 도움을 받고 싶을 정도로 아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꾹 참고 세르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럼···. 왜 이 타이밍에 손을 놔 버렸던 건데?”
“선우가 나를 무서워할 것 같아서 접촉을 삼가려던 것뿐이다.”
“지금은 너와 떨어지는 게 더 무서워···!”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세르펜스가 야속하여 눈가에 열이 올랐다.
씩씩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세르펜스를 노려보는 그때,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게 잡힌 양손 중 한쪽만 빼내어 내 어깨를 감쌌다.
“알아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선우가 바라지 않는 한, 다시는 선우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 그러니 용서해다오.”
“응···, 용서할게. 대신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나는 녀석의 몸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머리 위에서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왔고, 어깨를 감쌌던 손은 토닥거리는 손길로 변했다.
그 다정한 손길에도 서러움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조용히 있지만 말고 뭐라도 얘기해 줘.”
“내가 없는 동안 잘 버텨줘서 고맙다. 정말 고생했고, 수고 많았다. 이제는 내가 계속 곁에 있어줄 터이니 안심해라. 다시는 선우를 떼어 놓으려는 듯한 행동을 하지 않고, 그런 말 또한 하지 않겠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세르펜스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육체가 동일한 까닭에 타락펜스의 것과 똑같은 목소리였으나 음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 녀석의 음색이 겨울을 닮았다면 세르펜스의 음색은 봄을 닮았다.
따스하고 포근한. ‘세르펜스’의 세 자아 중 유일하게 ‘아도르’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그제야 요동치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도르에게 물어볼 게 있어.”
“편하게 얘기해라.”
“2회차의 네가 억지로 내게 세니어를 쥐여 주고···, 그···, 그걸 강요했을 때 말인데. 그 녀석이 도중에 그만둔 거, 혹시 아도르가 그런 거야?”
차마 ‘살인’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여 대충 얼버무려 말했다.
그래도 세니어라는 단서가 들어갔으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세르펜스가 헷갈릴 일은 없을 테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숨기며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음···, 아마도···? 그땐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던지라 잘 모르겠다. 잠시 몸의 통제권을 가져왔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신은 없다. 그 뒤로 몇 번이고 시도해 봤지만, 몸을 되찾기는커녕 설득을 위한 대화조차 불가능했으니.”
세르펜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낙담하며 좌절을 겪었을 녀석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못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녀석에겐 무척이나 미안한 일이나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신의 경지를 넘볼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타락펜스에게서, 한순간이나마 몸을 되찾다니···.’
그것도 나를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일념으로.
세르펜스만 곁에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 때문일까?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들뜬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분명 통제권을 되찾았던 게 맞을 거야. 그 이후에 2회차의 네가 갑자기 너를 의식하며, 현 시간대 자신의 자아가 계속 의식을 유지하는지 물어봤잖아. 그리고 그때 들렸던 침음이 묘하게 익숙했거든.”
“나도 선우를 지킬 수 있어서 기쁘다.”
동문서답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녀석이 내가 내뱉은 말보다 내 감정에 집중하여 나온 결과일 테다.
“있지, 세르펜스.”
“그래, 나는 여기 있다.”
“다시는 성검을 잡지 마.”
“알겠다.”
“아, 아니다. 죽을 위기에 처하면 잡아야 해. 네가 죽으면 안 되니까.”
“으음···, 그러도록 하지.”
세르펜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다음에도 타락펜스가 나오면 그땐 몸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또다시 내가 안 좋은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몰라 불안한 것일까?
불안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그 대신···, 어떤 회차의 자아가 나오든 네가 밀쳐내고 자리를 지켜. 알겠지?”
“노력해보겠다.”
“노력 가지고는 안돼.”
“반드시 그렇게 해 보이겠다.”
“응, 약속했으니까 꼭 지켜야 해.”
“내가 선우와 한 약속을 어길 리가 없잖은가.”
세르펜스는 억지 같은 말을 일일이 받아주며 내 기분을 맞춰 주었다.
지나치게 책임감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 정도는 나도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지난 한 달여간 정말 외롭고 힘들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고요히 가라앉은 적막 속에서, 세르펜스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위로의 말들을 조곤조곤 늘어놓았다.
긴장이 탁 풀리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대로는 잠들겠다 싶어서 기대었던 머리를 바로 세웠다.
“세르펜스는 내가 일행들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아니다. 때로는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일들이 존재하잖은가. 더구나 선우는 아직 그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였으니, 억지로 그 모든 일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너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지하라며?”
“단지 선우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길 바랄 뿐이었다. 만약 선우가 그리했더라면, 휴마누스도 선우에게 모든 것을 말하라며 밀어붙이진 않았을 거다.”
“······.”
내가 정말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상처 많은 이 아이가 남의 상처를 섣불리 헤집을 리가 없건만.
이런 간단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휴마눈새도 하지 않을 짓을 해버렸다.
“미···, 아니. 고마워, 세르펜스.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
“그렇다니 다행이군.”
“이제 슬슬 씻고 자자.”
나는 세르펜스의 손을 잠시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욕조를 꺼내어 물을 채웠다.
이 정도 양의 물을 데우려면 발열석 한 개로는 턱도 없다.
그렇다 해도 팔팔 끓는 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적당히 발열석을 대여섯 개가량 퐁당퐁당 던져 넣었다.
점점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물을 내려다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성별도 같으니, 커다란 대중탕 사이즈의 조적 욕조였다면 그냥 같이 씻었을 텐데.
아무리 세르펜스가 아들 같은 존재여도 작은 욕조에서 맨살을 부대끼는 건 좀 그렇다.
“먼저 씻을래?”
“피로가 많이 쌓였을 텐데, 선우가 먼저 씻고 쉬어라.”
“아니야. 나는 할 일도 있고···. 어차피 혼자서는 잠들지 못할 것 같으니까, 세르펜스가 먼저 씻어.”
“으음···, 알겠다.”
세르펜스가 욕조 쪽으로 향했고, 나는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에일리히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다.
현 시간대의 세르펜스가 돌아왔다는 이 기쁜 소식을 그에게도 알려줘야 하니까.
타락펜스. 그러니까 2회차의 세르펜스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떠나기로 마음먹고, 휴마누스와 일행들을 한 차례 단련시킨 뒤 성검을 반납했다는 것을 시작으로.
휴마누스의 각성 사실과 돌아온 세르펜스가 얼마나 의젓한 자세로 나를 달래 주었는지.
그러한 내용들을 막힘없이 술술 적어 나갔다.
편지를 다 쓰고 펜을 내려놓았을 무렵, 세르펜스는 간단히 목욕을 마치고 욕조에 새로운 물을 받아 놓기까지 했다.
좀 더 욕조에서 몸을 뭉개며 반신욕을 즐겨도 됐을 텐데.
이미 다 씻고 옷까지 갈아입은 녀석에게 다시 물에 들어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 나는 아무 말 없이 욕조에 몸을 담갔다.
이제 큰 걱정거리도 사라졌으니, 물속에 덩그러니 앉아서 밀려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려 애쓸 필요가 없다.
나는 뜨끈뜨끈한 물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을 마음 편히 즐겼다.
그러면서 시선은 세르펜스를 좇았다.
녀석은 자신이 모랫바람을 뒤집어쓴 상태로 누워있던 침대 이불을 들춰 보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내가 벗어 놓은 옷가지들 사이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찾아서 내 침대를 꺼냈다.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가 다 되었다. 기특한 녀석의 모습에 미소가 번졌다.
잘 준비를 마친 세르펜스가 다음으로 한 행동은 내가 막 적은 편지를 읽는 거였다.
어차피 녀석더러 읽어 보라고 펼쳐둔 것이었기에 딱히 제재하지는 않았다.
편지를 다 읽은 녀석이 펜을 들어 무언가 덧붙여 적었다.
“뭘 쓴 거야?”
“추신.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적었다.”
세르펜스가 그렇게 답하며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넣고 밀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