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1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16화(916/1105)
< 90. 공작님과 마인들 (2) >
* * *
최대한 빨리 악마를 처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로를 일직선으로 잡은 것이 문제였을까?
우리가 마을이든 도시든 거쳐 갈 때마다 어김없이 폭주 마인이 튀어나왔다.
제국으로 넘어올 때까지 우리가 폭주 마인과 마주친 횟수는 다섯 번이다.
다섯 번이라 하면 고작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마주친 횟수일 뿐.
죽음의 위기 앞에서 엉겁결에 계약을 받아들인 이들까지 포함하여, 처치한 폭주 마인의 수를 세어 보자면 거의 스물에 다다랐다.
이 세상은 TV 방송이나 인터넷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지라.
마인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속삭임은 악마의 거짓말이니,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빠르게 퍼져 나가지 못한 탓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의 이동 속도가 소문을 앞지른 까닭이기도 했다.
어지간하면 폭주 마인의 처리는 교단과 각국의 기사들에게 맡길 예정이었지만, 가까이에서 사건이 터지면 나서지 않기도 뭐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이 매우 약하여 빠르게 해치울 수 있다는 점이다.
폭주 마인 정도로는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당분간은 폭주 마인과 마주칠 일은 없겠지?”
“역에 도착해도 멈추지 않고 이대로 국경까지 갈 예정이니, 악숭 세력의 방해만 없다면 그리되겠지.”
세르펜스가 내 물음에 그리 대답하고는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폭주 마인과 한동안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예상하고, 세르펜스가 ‘역’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우리가 기차에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철도 회사는 모두 각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즉 휴마누스의 권력을 이용하면, 적어도 제국 내에서는 기차를 자가용처럼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공기업이라 해도 기업은 기업이니까, 아무 때나 기차를 통째로 빌리는 짓은 못할 테다.
최소 반년 전에는 미리 공지하여 예약을 비워 놔야 한다.
‘하지만 기차 운행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지금은 다르지.’
각 나라가 빠르게 철로 복구 작업에 착수한 건, 어디까지나 식량을 비롯한 각종 자원을 운송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치솟는 물가를 잡고 경제가 안정되어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될 테니까.
여행객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고, 실제로도 기차를 타려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기차표 예약조차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휴마누스의 이름으로 철도 공사에 미리 편지를 보내어, 기차를 한 대 준비해 두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원래대로라면 기차 한 대당 하나씩밖에 없는 특실 칸을 떼 와서, 줄줄이 연결하는 짓도 가능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탄 기차는 운전실이 있는 선두 차량 뒤로, 직원들이 머무는 칸과 네 개의 특실 칸을 매달고 달리는 중이었다.
첫 번째 특실 칸은 남자들이, 세 번째 특실 칸은 여자들이 쓰기로 정했다.
중간에 있는 두 번째 특실 칸은 다 함께 모이는 장소였으며, 맨 끝 칸은 마법사들의 연구를 위한 공간이다.
지금 나와 세르펜스가 차를 마시는 이 공간은 그중에서도 두 번째 특실 칸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 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아, 도저히 모르겠다!”
성검을 세워 든 채로 끙끙거리던 휴마누스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외쳤다.
타락펜스보다 강할 것으로 추정되는 마왕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자신이 룩스메아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성검을 뽑아들더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겠나 보다.
“대체 2회차의 너는 어떻게 신의 힘을 자유자재로 빌려다 썼던 걸까?”
휴마누스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르펜스에게 조언을 듣고자 질문을 던진 게 아니라 그저 한탄을 내뱉은 것뿐이리라.
그도 그러할 것이 타락펜스가 몸을 차지했을 때, 녀석의 의식이 깨어 있었다는 사실을 휴마누스는 몰랐으니까.
‘게다가 타락펜스가 룩스메아의 힘을 멋대로 끌어다 쓸 수 있었던 건, 마왕의 힘을 가로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당초 가르치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고민하는 휴마누스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건지, 세르펜스가 입을 열었다.
“다른 존재의 힘을 빌리려 애쓰기보다, 스스로 능력을 갈고닦는 편이 더 이롭지 않겠습니까? 만일 마왕과 결전을 치를 때 신의 힘이 필요하다면. 볼타 산맥의 결계를 펼칠 때나 세계수를 치료했을 당시 그랬던 것처럼, 신께서 어련히 힘을 내어주실 겁니다.”
“하지만 막상 그때 가서 내가 신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어떡해? 게다가 신께서 직접 힘을 내어준다면 내 맘대로 출력을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잖아. 신께서 내어주실 수 있는 힘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휴마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대꾸했다.
룩스메아에게는 남은 힘이 얼마 없다.
하나 마왕은 단숨에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한꺼번에 힘을 몽땅 끌어다 써 버리면, 남은 것은 패배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겠지.
“그러니 더더욱 휴마누스 개인의 실력을 키워야만 합니다. 신의 힘으로 마왕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그래도 저번처럼 내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악마가 나타났을 때 대비책이 될 수 있잖아.”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이 아닌 것에 의지하다 보면 실력이 늘지 않고, 가장 필요할 때에 신의 힘이 고갈 될지도 모릅니다.”
세르펜스가 표정을 굳히며 다소 날카롭게 말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휴마누스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아마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불안해서 그렇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타락펜스가 그 난리를 친 까닭에, 여차하면 세르펜스에게 성검을 넘긴다는 선택지도 사라졌으니.
또다시 이겨낼 수 없는 강한 적이 나타나면···.
“아, 그게 문제였던 거려나?”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작은 중얼거림에 불과했으나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그 소리를 놓칠 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란히 내게로 향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2회차의 휴마누스는 어떠한 위기가 닥쳐도 직접 부딪혀서 이겨냈잖습니까? 하지만 지금의 휴마누스는 의지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혼자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왔을 때,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어디 나쁘지 않기만 할까?
부담감을 떨쳐내고 안정을 얻을 수 있으니 긍정적인 효과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휴마누스가 자신의 능력 밖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세르펜스가 해 왔다는 거다.
휴마누스가 일부러 세르펜스에게 떠넘긴 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세르펜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나 눈앞에 가야 할 길을 가로막은 거대한 문이 있고, 주머니 안에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문 너머로 가기 위해 열쇠부터 꺼내 드는 건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어째서 몸으로 부딪혀 문을 부수지 않았느냐며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다.
“휴마누스가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 전. 세르펜스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을 때, 녀석이 뭐라고 말하며 거절했는지 기억하고 계시죠?”
“으응···. 지금 상태로 함께 다니면, 내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되어 성장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던 거로 기억해. 그러니 적어도 자신과 엇비슷한 실력을 쌓고 난 뒤에 다시 제안해 달라고 했었는데···.”
휴마누스가 힐끗 세르펜스를 곁눈질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자괴감에 시달리는 듯한 그 모습에 안쓰러움이 밀려들었으나, 위로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휴마누스는 그렇게 굳어 있었고 나와 세르펜스는 침묵을 지켰다.
“후우─···.”
기나긴 한숨이 휴마누스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듯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고, 미처 검집에 넣지 못했던 성검을 갈무리했다.
“둘 다 조언해 줘서 고마워.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봐. 스스로 이겨내려는 노력부터 해야 했는데 쉬운 길만 택하려고 했어.”
“그럴 수도 있죠. 원래 사람은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결심했었잖아. 강해져서 성검의 주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겠다고. 그래서 세르펜스가 더 이상 불합리한 책임을 지거나, 부정적인 여론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그런데 내가 약하고 부족한 탓에 또다시 세르펜스에게 부담감을 안겨주고 말았어.”
어떻게든 위로해 보려고 했으나 그다지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휴마누스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착잡한 시선으로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방금 그가 언급한 부담감이란, 아마도 세르펜스가 신이 되겠다고 선언한 걸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자신이 마왕은커녕 악마조차 쓰러트리지 못하여 애를 먹고 있으니.
세르펜스가 신이 되겠다는 아득히 높은 목표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비록 눈치 없는 휴마누스였으나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정도를 넘어 부정할 여지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잠깐만요, 휴마누스. 갑옷은 갑자기 왜 벗는 겁니까?”
“용사의 무구는 내 실력이 아니잖아. 나보다도 강한 적을 상대하면서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악마와 싸울 땐 당연히 착용할 생각이지만. 당분간 용사의 무구와 성검은 쓰지 않을 거야.”
극단적인 소리를 내뱉은 휴마누스가 막 벗은 갑옷과 방패를 내려놓더니, 뒤쪽 칸으로 넘어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아공간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휴마누스는 그 안에 갑옷과 방패를 쑤셔 넣고, 검을 한 자루 꺼낸 뒤에야 아공간 주머니의 입구를 조였다.
곧 휴마누스의 허리춤에는 성검과 함께 방금 꺼낸 검이 걸렸다.
자세히 보니 내가 예전에 그에게 빌려 줬다고 해야 하나, 세니어가 생겨서 쓸모가 없어져 그냥 줘 버린 검이었다.
세르펜스가 황궁에서 챙겨온 맞춤 제작 검은 타락펜스와 싸울 때 부러져 버렸으니, 저걸 쓸 생각인가 보다.
“제가 휴마누스에게 의지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용사의 무구와 성검을 두고 한 소리는 아니었거든요?”
“알아. 하지만 도구에 의지하는 것도 의지는 의지잖아.”
휴마누스가 일말의 머뭇거림조차 없이 단호히 대답했다.
뜻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타겟을 바꿔 세르펜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쟤 저대로 둬도 돼?”
“진작에 저렇게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예전에는 성검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급선무였잖은가.”
“성검 말고 용사의 무구는?”
“······.”
그만 좀 따지라는 듯 세르펜스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진작에 저렇게 해야 했다는 생각을 최근에 떠올린 것일 뿐, 예전부터 쭉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