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1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19화(919/1105)
< 90. 공작님과 마인들 (5) >
“끄, 끄으윽···!!”
세르펜스가 고요히 눈을 감은 채 신성력을 발휘하자, 마인이 고통 가득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만약 천으로 입을 막아두지 않았더라면 분명 비명을 내질렀을 테다.
마인이 고통스러워 하는 건 자신의 기운과 상극인 신성력이 몸 안에 파고들어서일까?
아니면 세르펜스가 ‘계약’을 건드린 까닭일까? 혹은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놈에게 고통을 선사한 존재가 세르펜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러할 게, 세르펜스의 얼굴이 어디 보통 신성하고 아름다워야지···.’
청순가련한 미모를 자랑하는 녀석이 찬연한 은빛 기운이 맺힌 손을 내밀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자의 신체에 얹은 그 고고한 자태란.
마치 병자를 치료해주는 성자처럼 보여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꿈틀거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마인이 알면 억울할 노릇이나, 그렇게 보이는 것을 어쩌겠는가?
집중하느라 살짝 찡그려진 세르펜스의 미간까지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물론 그리므 시 최고 거장인 무르카라는 이름의 드워프 화가가 오더라도, 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겠지만.
그렇게 감탄을 연발하고 있을 때.
“세르펜스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요?”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금 질문을 던진 유지스를 비롯하여 모든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세르펜스의 모습을 감상하며 넋을 놓는 바람에, 그들이 기차에 오른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이리라.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작은 흔들림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기차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기차가 움직이는 걸 보니 일행들이 기차에 탄 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닌 모양이다.
끊어진 철로 문제도 잘 해결된 것 같고.
“앗, 놀랐나요? 미안해요.”
“아뇨, 괜찮습니다. 것보다 세르펜스가 뭘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죠?”
일행들도 다 모였겠다, 나는 가볍게 운을 뗀 후 휴마누스에게 말했던 것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째서 세르펜스가 계약을 끊어 보겠다고 나섰는지.
만약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일반적인 주교급 성직자가 행할 수 없다면, 폭주 마인에게는 써먹지 못한다는 얘기와 그 이유까지.
“그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군요.”
리에나가 씁쓸한 목소리로 나직이 한탄했다.
폭주 마인이 된 이들을 구하고 싶긴 하나 그러다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면, 폭주 마인들을 구한 의미가 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계약을 끊는 방법을 알아낸 세르펜스는 더 큰 재앙을 몰고 온 원흉으로 몰려, 엄청난 비난을 듣게 되겠지.
‘···그냥 세르펜스가 실패해 버렸으면 좋겠네.’
여러 방면으로 가정하며 고민할수록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애초에 녀석이 악마의 계약을 끊는 데 실패해 버리면, 이런 걱정조차 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나는 대단한 영웅도 무결한 성인(聖人)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지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소중히 여기는 내 주변인의 안위가 훨씬 더 중요했다.
– 빠직, 빠직···.
돌연 무언가에 균열이 생기며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발생지는 마인의 목에 걸린 마력 구속구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세니어가 빛을 발하며 신성 결계를 펼쳤다.
거의 동시에 마력 구속구에 생겨난 균열이 벌어지더니, 결국 ‘째애앵-!’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마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나 그 어느 것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찬란한 은빛 신성력이 그것들을 감싸고 억눌렀으므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까만 기운이 점차 사그라졌다.
“어떻게 됐어?”
“으음···, 실패했다.”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신성력을 거두어들이며 머쓱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어차피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니 세르펜스도 시작하기 전에 실패를 언급했던 거고.
더욱이 나는 내심 녀석이 실패하길 바랐으므로 아무런 유감이 없다.
“처음 하는 거니까 그럴 수도 있지, 뭐.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으니까 너무 부담 갖진 마.”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세르펜스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순수한 모습에 괜스레 양심이 콕콕 찔린다.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마인을 살펴보았다.
호흡을 한다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여야 하건만. 놈은 죽었는지 그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죽은 마인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세르펜스가 성화를 피워올려 놈의 시체를 불태웠다.
마기를 받아들인 부정한 육신은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성화에 타서 사라졌다.
하나 평범한 천에 불과한 옷과 금속 조각들은 바닥에 남았다.
세르펜스는 옷가지들을 주워다 객실 구석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버리고, 금속 조각은 따로 챙겨 두었다.
마력 구속구는 ‘레펠로’라는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악용될 여지가 있는 만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그 금속 조각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꺼낸 별도의 주머니에 담아서 품 안에 넣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나는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왜 거기다가 보관해?”
“2회차의 내가 이 금속을 이용하여 마법을 파훼했노라고 선우가 얘기해 주었잖은가. 마법에 관한 지식을 쌓아온 건 나 또한 마찬가지이니, 언젠가 기회가 오면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세르펜스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본래 알던 사실을 나에게 들었노라 거짓말을 해댔다.
그래도 이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기에 별말 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또한 중요한 건 녀석의 거짓말이 아니라 그 외의 내용이다.
‘안 그래도 강하던 녀석이 점점 먼치킨이 되어가네···?’
최종 보스였던 공작님이 내 손에 길들여져 아군으로 돌아서자, 주인공인 성검의 주인보다 월등히 강해져 버린 상황에 나는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므로 그냥 놀라워하며 혀를 내두르기로 했다.
“와아···. 그래. 네가 최고다, 최고!”
“앞으로 더욱 분발하겠다.”
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세르펜스가 쑥스럽다는 듯 에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손을 앞으로 뻗었고, 세르펜스는 당연하다는 듯 조르르 다가와서 머리를 낮췄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바라는 대로 해 줄 생각이 없다.
머리를 쓰다듬는 대신 뺨을 가볍게 꼬집어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꼬집었던 부위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저녁 먹자.”
“아! 맞다! 선우 쟤, 이젠 고기랑 치즈 먹을 수 있어!”
저녁 얘기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는지 휴마누스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의 발언에 일행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다들 나를 걱정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또 와 닿아서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선우 씨, 저 말이 진짜예요?! 이제는 치즈 냄새를 맡아도 역하지 않고, 고기도 직접 보면서 먹을 수 있어요?”
“네, 아까 짐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건데, 진짜 괜찮더라고요.”
“와! 정말 잘 됐네요!”
“에드나 씨 덕분입니다. 그동안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장 기뻐한 건 역시 에드나였다. 나는 그녀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에드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가 다시 육류와 치즈를 먹기까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다.
그러니 감사 인사를 몇 번 거듭 해도 모자라다.
“그럼 앞으로 식사 준비는 전적으로 직원분들께 맡겨 둬도 괜찮겠네요!”
기차에는 기관사 외에도 청소와 같은 다양한 편의를 봐 주는 직원도 몇 명 타고 있었다.
그들에게 식사는 우리끼리 알아서 챙겨 먹을 거라고 얘기를 해 두었는데, 하루도 안 가서 말이 뒤집혀 버렸다.
다소 불평이 나올 수도 있으나 그래 봤자 우리의 귀에는 닿지 않을 테다.
식사 준비는 원래 그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황실 측에서 보너스를 꽤 지급한 거로 알고 있다.
더욱이 휴마누스와 세르펜스가 누구던가?
신성 루멘 제국의 황태자와 공작이다.
본래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시킨 것도 아닌데, 어찌 감히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낼 수 있을까.
“식재료를 전달하며 얘기하고 올게요. 오늘 저녁은 최고의 만찬으로 준비해 달라고!”
에드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쪽에 있는 직원 칸으로 향했다. 아니마도 쭐레쭐레 그 뒤를 쫓았다.
이렇게 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식사 준비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걸 보아, 내색은 안 했으나 그동안 상당히 힘들었나 보다.
얘기를 마치고 돌아온 에드나는 식사가 준비되길 기다리는 동안, 마법 연구를 하겠다며 아니마와 함께 맨 뒤칸으로 향했다.
다른 일행들도 짧은 시간을 쪼개어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유지스는 또 속사(速射) 연습을 하려는 건지 기차의 지붕 위로 올라갔고, 리에나는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에 들어갔다.
윈스톤과 푸로르는 악숭이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유지스와 마찬가지로, 기차 지붕에 올라가 대련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직후이기도 하고 대련은 금방 끝내기 어려운 까닭일까?
두 사람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명상에 잠겼다.
“나도 명상이나 할까···?”
휴마누스가 멀뚱멀뚱 눈을 끔벅거리다가 중얼거렸다.
신의 힘을 끌어다 쓰는 방법을 익힌다는 목표가 사라진 까닭이다.
그런 그에게 세르펜스는 새로운 과제를 내 주었다.
“명상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다른 것을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다른 거?”
“제가 만든 결계를 통과하여 안에 든 물건을 가져가 보십시오.”
세르펜스가 적당한 크기의 장식품을 하나 골라 신성 결계로 그것을 감쌌다.
타인의 신성력에 간섭함으로써 신성력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그 힘을 섬세히 다루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사람이 신성력을 다루는 방식을 자세히 관찰하며 그것을 배우고.
객관적인 눈으로 신성력 그 자체를 살피어, 운이 좋다면 근본적인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는 수련 방법이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리에나가 같은 방법으로 휴마누스에게 가르침을 내렸다.“네가 만든 결계를 내가 어떻게 통과해?!”
“적당히 난이도 조절을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르펜스의 말을 달리 해석하자면, ‘적어도 이 정도 결계는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과연 휴마누스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세르펜스가 펼친 결계에 손을 얹고 수련에 돌입했다.
다들 굉장히 바빠 보인다.
자투리 시간조차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여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기차에서 내리고 나면 도시락을 왕창 사 둬야겠네.’
일행들이 수련에 집중하고 쉴 땐 확실히 쉴 수 있도록 말이다.
아공간 주머니에 비축해둔 음식들이 아직 꽤 남았지만, 아홉이나 되는 대인원이 먹다 보면 금방 축날 테다.
특히 윈스톤과 푸로르, 휴마누스는 그 체구와 근육량에 걸맞게 식사량이 상당하니까.
‘그러고 보면 체격을 생각하면 세르펜스도 많이 먹어야 할 텐데···.’
식사가 아니라 간식으로 필요한 열량을 채우는 건가 싶다가도, 간식을 먹기 전에는 대체 어떻게 저 건장한 몸을 유지한 건지 실로 미스터리다.
녀석 정도의 능력자는 에너지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건가?
나는 그런 한가로운 생각을 떠올리며, 아공간 주머니 속 짐을 옮기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부지런을 떤 덕분인가 다행히 직원들이 음식을 가져오기 전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빈 아공간 주머니를 휴마누스에게 건네주려던 그때, 세르펜스가 그것을 가로챘다.
“결계 안에 넣을 물건으로는 이것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세르펜스는 결계 속에 들어있던 장식품을 빼내고 아공간 주머니를 쏙 넣었다.
그로 인해 휴마누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