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2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22화(922/1105)
< 90. 공작님과 마인들 (8) >
“저어···, 그럼 시온 님의 말씀을 전하러 바로 가 보겠나이다.”
화난 티를 낸다는 게 조금 과했던 걸까?
레베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분위기상 빨리 교단에 보고를 올려 소문에 관한 문제를 처리해야 할 성싶은데, 예의상 내가 권한 음식도 먹어야 하니까.
그 사이에서 타협을 본 결과가 바로 저것이리라.
“도시를 지날 때 잠깐 멈춰 달라고 할 테니까, 그때 내리는 게 더 낫지 않아요? 내려서 달리는 것보다 그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기차가 향하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쪽에 더 가까운 도시가 하나 있나이다. 지금 내려서 그곳으로 달려가면, 이대로 기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약 한 시간가량 단축할 수 있사옵니다.”
어디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막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퍼지기 시작한 소문을 잠재우는 일이다.
고작 한 시간 빨리 움직인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소문을 퍼트리는 이들을 잡아들여 조사하려면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텐데, 뭐하러 고생을 사서 합니까? 지금은 쿠키라도 드시면서 쉬세요. 쿠키가 싫으면 차라도요. 세계수 잎 차는 호불호 없이 아주 맛있으니까.”
“마음이 급하실 터인데 이런 배려라니···! 참으로 감사···.”
“됐고! 얼른 드시기나 하세요.”
“예에, 그럼 감사히 먹겠나이다.”
도중에 말을 끊은 보람도 없이 결국 감사 인사를 듣고 말았다.
레베카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나는 쿠키를 입에 문 채 창밖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탄식했다.
불길한 예감이 든 까닭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 소문은 좀처럼 가라앉히기 힘들 것 같지 않아? 여태까지 악숭이들이 퍼트렸던 다른 소문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번에는···.”
“휴마누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말을 사리고 있을 뿐이지.”
나는 눈치 없이 입을 연 휴마누스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불길한 예감은 이미 그의 입을 통해 구체화 된 후였다.
휴마누스의 말대로, 이번 소문은 특히나 더 빠르게 전파되며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뿌리내릴 테다.
‘왜냐하면 그 소문이 진실이길 바라는 이들이 아주 많을 테니까.’
악마의 계약을 끊어 무시무시한 마인을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고, 성검의 주인도 더 강한 사람으로 교체되었다는 게 이번 소문의 요지다.
폭주 마인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고 악마까지 날뛰는 이 상황에, 어찌 그런 소문을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기뻐하며 자신이 들은 소문을 고스란히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겠지.
그리고 진실을 알려 주어도 귀를 막고 소문을 끝까지 믿으려 할 게 뻔하다.
“그게 다야?”
씁쓸한 기분을 단맛으로 이겨내고자 쿠키를 오독오독 먹고 있는데, 휴마누스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눈으로 그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아차 하며 그 의문을 입에 올렸다.
눈빛 대화가 안 통하는 상대라는 걸 떠올린 까닭이다.
“그게 다냐니, 뭐가요?”
“눈치 없다며 놀릴 타이밍인 것 같았는데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길래···?”
“휴마누스가 싫어하는 줄 알고 이제 그만 놀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즐기고 계셨던 겁니까?”
“···응?”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놀려 줄 테니까 아쉬워하지 마세요.”
“자, 잠깐.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런 거 아냐!”
휴마누스가 다급한 표정으로 손까지 내저어가며 자신의 취향을 부정했다.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진짜 그런 거 아닌데···.’ 하고 중얼거렸다.
진짜 놀림받고 싶어서 일부러 저러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놀리는 재미가 지나치게 쏠쏠하다.
“계속 놀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니까, 태도를 분명하게 해 주세요.”
“지금보다 뭘 더 어떻게 분명히 하라는 거야?!”
그냥 정색하며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 안 할 텐데.
휴마누스는 괴로워하는 모션을 취하기만 할 뿐 놀리지 말라고는 안 했다.
오랜만에 휴마누스를 놀리며 쿠키를 하나둘 집어 먹다 보니 어느새 접시가 비었다.
레베카도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놀이를 관전하며 내가 준 쿠키를 전부 먹어 치웠다.
쿠키를 다 먹은 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이제 레베카가 가져온 제비꽃 설탕 절임으로 입가심을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병을 막 집어 든 순간.
창밖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악마가 또 소환된 거다.
“어휴!”
나는 한숨을 크게 내뱉은 뒤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악마가 소환되든 말든 먹을 건 먹어야 하니까.
코 끝을 간지럽히는 향긋한 꽃 내음을 맡으며 잠시 기다리니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꽃송이들 크기가 제각각이네?’
손목 스냅으로 유리병을 든 손을 까딱거리자 병 속 내용물이 들썩거리며 뒤섞였다.
그렇게 찾은 왕건이를 꺼내어 세르펜스에게 건네고, 나머지 인원에게는 대충 잡히는 대로 주었다.
마지막으로 내 것을 꺼내 든 그때.
“방금 악마가 소환되었는데···.”
레베카가 얼떨결에 양손으로 받아든 제비꽃 설탕 절임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래도 된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얌전히 앉아있는 걸 보면, 이번 악마 소환도 먼 곳에서 이루어진 걸 테니까.
‘당장 악마와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처음 보는 새로운 간식을 맛보는 것 정도는 해도 되잖아?’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이전에 소환된 악마가 설치고 있는 프뤼네 왕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뭔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악마가 소환되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당장 해결 못 할 문제를 신경 쓰느라, 음식을 못 먹고 잠을 설치면 우리만 손해니까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설탕에 절인 제비꽃을 입에 넣었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고, 향긋한 꽃냄새와 풋내가 뒤섞인 오묘한 느낌이다. 이런 게 바로 보라색 맛이란 걸까?
내가 그렇게 제비꽃 설탕 절임의 맛을 곱씹는 동안, 레베카는 내 말을 곱씹다가 느닷없이 탄성을 내뱉었다.
“아···! 현기가 담긴 말씀 잘 들었사옵나이다. 저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셔서 감사하옵나이다.”
“네, 뭐···. 아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보라색 향을 풍기는 유리병의 뚜껑을 닫고 상자에 다시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째로 아공간 주머니에 넣은 후.
아공간 주머니를 원래 있던 자리. 그러니까 세르펜스의 안주머니에 보관했다.
이런 내 행동이 이상해 보였는지 레베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 아공간 주머니는 휴마누스에게 빌려 줬거든요. 아무래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권력과 명예, 돈을 모두 갖춰도 구하기 어렵다는 귀물을 그리 쉽게 양보하시다니! 교황 성하께서 시온 님을 존경한다 말씀하신 이유를 알겠나이다.”
“···그 외에 슈테판 님이 저에 관해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주아주 특별하고 귀한 분이시니, 자신보다도 시온 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여기며 최대한 극진히 모시라는 명을 받았나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천사의 영혼이 어쩌고 하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만 않았을 뿐, 눈치껏 알아채라고 힌트를 뿌린 수준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만큼 눈앞의 이단 심문관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 테다.
정신 건강을 위해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계시는 언제 받으시는 것이옵니까?”
“계시? 혹시 악마가 소환된 장소에 관한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에.”
“지금까지 신호가 오지 않는 걸 보면, 이번에는 계시가 없나 본데요?”
“예에···? 어째서 그리 확신하시나이까?”
“그야 신께서는 우리의 성장을 바라시잖아요. 자신이 제시해 준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우리가 지혜를 모아 답을 찾고 스스로 나아가길 희망하며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나는 그간 파악한 룩스메아의 성격을 들먹거리며, 계시를 받을 수 없는 이유를 둘러댔다.
룩스메아의 종을 자처하는 이단 심문관이 듣기에도 제법 그럴듯했던 걸까?
레베카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떠넘기고자. 그리고 악마 소환 장소에 관한 답도 들을 겸, 나는 세르펜스에게 말을 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똑똑이 공작님은 답을 찾아냈으려나~?”
“으음···. 그저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번에도 프뤼네 왕국에서 악마가 소환되었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번에도 프뤼네 왕국인가?
답이 나왔으니 이제 그것에 맞게 이유를 만들어 가져다 붙일 차례다.
“왜 그렇게 생각해?”
“제물을 많이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마들에게 있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우리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잖은가? 그러니 새로 소환된 악마와 힘을 합쳐 우리와 맞서 싸우려 하지 않을까 한다.”
세르펜스의 얘기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둘이 한 장소에서 소환되었다면 역시 그런 이유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불쑥 새로운 걱정이 떠올랐다.
“만약에 악마를 하나 더 소환할 수 있는 제물이 모이면···.”
“프뤼네 왕국에서 소환하겠지.”
“······.”
그쯤 되면 프뤼네 왕국도 우리도 무사하긴 힘들 것 같다.
이제는 악마가 둘이 되었으니 제물을 모으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터.
우리도 더 서둘러야···하는데 이미 서두를 수 있는 만큼 서두르는 중이었다.
“부디 프뤼네 왕국이 잘 버텨줘야 하는데···. 혹시 교단 말고, 주변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건 없어요?”
“바스툴 왕국과 펠로 왕국. 그리고 테라룸 왕국에서 지원 병력을 보냈다고 하나이다.”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던진 질문이었다.
[성검의 주인]에서는 옆 나라가 악마에게 짓밟히든 말든, 관여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으니까.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세상이 변했구나···?’
내가 아는 이야기 속에서 펠로 왕국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쭉 답이 없었고, 테라룸 왕국은 일찍이 멸망했다.
바스툴 왕국은 베일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왕실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으며, 오른 뒤에는 자국을 지키는 병력도 모자라 파병은 꿈도 못 꿨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베일은 왕성에서 근무하는 병력을 제외하면, 별다른 인명 손실 없이 혁명에 성공하여 왕위에 올랐다.
테라룸 왕국은 쏟아지는 마물에 짓밟히지 않아 여전히 건재했으며 펠로 왕국은···.
‘살롱에서 밥을 만나서 교단에 맡긴 거 말고는 딱히 바뀐 게 없지 않나?’
솔직히 펠로 왕국이 어째서 병력을 보낸 건지 잘 모르겠다.
주변 국가가 그러니까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병력을 보낸 건가?
그 점이 궁금하여 레베카에게 물어보니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왕세자 자리에 오른 1왕자의 입김이 반영된 결과이옵니다.”
“펠로 왕국의 1왕자라면 밥의 형이요?”
“예에. 감히 왕국 내에서 불온한 모임을 열어 왕실을 능멸하고. 고귀한 왕족까지 살해한 자들에게 복수해야 한다며, 왕실의 인원을 설득하였다 들었나이다.”
“밥이라면 살아있잖아요?”
“하나 그 사실을 아는 건 왕세자뿐이지 않사옵니까?”
“······.”
얘기를 들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으나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거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