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3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31화(931/1105)
< 90. 공작님과 마인들 (17) >
* * *
10월의 끝자락을 놓아주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프뤼네 왕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신전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전장이 된 곳은 마탑이 자리한 베리타 영지라고 했다.
‘여러 도시들을 급습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하며 제물을 모으는 것보다, 마법사들이나 지원 온 기사 등. 제물로서 가치가 높은 자들을 한데 모아 처치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려나?’
의문이 들어 몇 시간 전에 마주쳤던 마인에게 질문해 봤지만, 제대로 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놈의 입이 특출나게 무거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는 게 없었던 탓이다.
하기야 세르펜스가 악마의 계약을 해제함으로써, 정보 발설에 걸린 금제를 풀 수 있다는 걸 악숭이들도 모르지 않을 터이니.
마인에게 정보다운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오늘은 신전에서 묵는 거죠?”
에드나가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질문해왔다.
지금은 늦은 밤이었으니,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차 물어본 것일 테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제야 에드나가 본론을 꺼냈다.
“혹시 보육원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 에드나의 얼굴은 근심이 먹구름처럼 잔뜩 낀 상태였다.
엘로윈 보육원의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그런 걸 테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까지 에드나와 함께 발을 동동 구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희와 관련이 있는 곳이니, 아마 교단 측에서도 예의 주시하며 잘 보살피고 있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국경을 통과하여 도시에 도착한 이후에는 말에서 내려 조용히 걷고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말을 타고 속력을 내다간 사고가 나기에 십상이며, 지금은 늦은 밤인지라 사람들의 잠을 방해할까 조심스러웠던 까닭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거리의 분위기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막 국경을 넘은 참이니 마탑까지 가려면 며칠 더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우울함과 삭막함이 감돌았으며, 어딜 가나 무장한 기사와 병사들이 돌아다녀 흉흉함이 더해졌다.
심지어 늦은 시간인지라 병사들의 손에 횃불이 들려 있던 까닭에 스산함마저 느껴졌다.
‘이러니 걱정하지 않고 배겨?’
지금이야 악마들과 악숭이들이 마탑 앞마당에서만 설치고 있긴 하지만, 언제 다른 도시로 눈길을 돌릴지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을 터.
이는 곧 폭주 마인이 생겨나기 딱 좋은 환경이란 뜻이다.
병력을 곳곳에 퍼트려 놓은 건 폭주 마인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일 테고.
돌아다니는 순찰대는 각각 기사 하나에 병사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폭주 마인을 하나 처치하는데 일반 기사 셋 혹은 성기사 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들만으로는 폭주 마인을 처치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 다른 순찰대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금세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성직자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려 있긴 했다.
그러나 신전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기에, 거리를 걸을 때에 비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으음···, 신전의 규모에 비해 성기사의 숫자가 적군. 전장으로 차출된 건가···?”
우리를 회의실까지 안내한 신관이 물러나자마자, 세르펜스가 감상을 내놓았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말대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겐 기운을 감지하여 건물에 있는 사람의 수를 파악하는 능력이 없으니, 녀석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딱히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는 순찰대 중에 성기사가 없었다는 건 떠올릴 수 있었다.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밤늦게 찾아와서 저희야말로 죄송하죠.”
“죄송이라니, 그런 말씀 마시지요. 여러분이라면 늦은 밤이 아니라 꼭두새벽에 오셔도 됩니다. 제집처럼 언제든 편안하게 들러주십시오.”
잠시 후 이 신전 지부의 주교가 회의실에 도착했다.
자다 깬 건지 아니면 반대로 바쁜 일이 있어서 며칠 밤을 새운 건지, 아주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주교가 직접 맞아줄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초췌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기는커녕 배가 되었다.
“저, 혹시 엘로윈 보육원의 상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아는 애들이 많다 보니 좀 걱정돼서요.”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실 거라 생각해서 관련 정보를 챙겨 왔습니다.”
내 물음에 주교가 서류를 한 장 내밀며 말했다.
그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서 곧장 에드나에게 넘겼다.
에드나의 라벤더 색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서류를 훑었다. 얼굴 가득 드리워졌던 근심이 걷히는 걸 보아 별문제 없나 보다.
나는 안도하며 다시 시선을 주교에게로 돌렸다.
“거리의 분위기가 많이 흉흉하던데 폭주 마인이 그렇게나 많이 생깁니까?”
“어휴! 말도 마십시오. 적어도 하루 한 번, 가장 많은 날은 다섯 번이나 생겼습니다.”
주교가 사람 수가 아닌 빈도수를 입에 담았다.
‘번’이 아니라 ‘명’으로 따지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폭주 마인으로 변한 건지, 상상만으로도 아득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악마의 목소리에 응하면, 폭주 마인이 될 테니 무시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알 때도 되었는데···.”
유지스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이상했다.
다들 불안할 테니 악마가 파고들 여지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이렇게까지 폭주 마인이 자주 생긴다는 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그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여럿이라고 합니다.”
“여럿이요?”
“예. 그래서 아주 미쳐버릴 것 같다며, 신전을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매일 끊이질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관들이 축복을 내리고 함께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기는 한데···.”
주교가 말끝을 흐리더니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처음에는 밤낮 할 것 없이 신도분들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신관들이 전부 탈진해 버려서, 그 이후로는 정해진 시간에 오신 분들만 순차적으로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너무 죄스러워하지 마세요. 그게 어디 성직자분들의 탓이겠습니까?”
신전에서 감당할 수 있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 도시 인구의 10분의 1만 찾아와도 신전은 미어터질 게 분명했다.
더구나 모든 이들이 신전을 찾을 것 같지도 않다. 아마 홀로 끙끙 앓다가 정신이 망가져 버린 이들도 수두룩하겠지.
꼭 있지 않은가? 자신은 괜찮을 거라며 끝까지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이들이.
신앙심이 너무 깊은 나머지 악마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죄악감을 느껴, 감히 신전을 찾아오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머릿속에서 떠들어대는 목소리에 혼이 쏙 빠져서, 신전을 찾아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며.
신전을 찾아오기는 했지만, 먼저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발길을 돌린 자들도 있을 터.
“근데 축복을 내리면 쭉 괜찮은 겁니까?”
“아니요, 얼마 가지 못합니다.”
축복을 한 번. 혹은 그 이상 받아서, 다시 찾아오기 미안하여 홀로 버티는 경우도 추가해야겠다.
아무튼 폭주 마인이 그렇게나 흔하게 생겨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이야 계약이 불안정해서 폭주 마인 수준으로 그쳤지만, 올해가 지나고 나면 제대로 된 계약이 이루어질 테니까.
‘그건 그렇고 한 사람에게 여러 명의 악마가 접근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
[성검의 주인]에서는 언급된 적 없었다.그리고 주교와 일행들의 반응으로 보아 그들에게도 낯선 일인 듯했다.
원래 악마들이 그리할 수 있었는데, 상도덕을 지키느라 1인 1악마 원칙을 고수했던 건지.
마왕이 신격을 얻고 강해지면서 무언가 달라진 건지.
어느 쪽인지 감이 안 온다.
“저희가 악마를 처치하여 불안감이 가시면 좀 진정될 거예요.”
짐짓 희망차게 말하는 리에나의 얘기가 꼭 그러길 바란다는 바람처럼 들려왔다.
그에 휴마누스가 굳은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응, 꼭 그렇게 될 거야.”
마치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말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말이 휴마누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 믿음직한 모습에 일행들의 낯빛에 결의가 어렸고, 주교는 감격한 표정을 했다.
“그보다 주교 나리, 악마들에 관해 새로 들어온 정보는 없습니까?”
이번에 말을 꺼낸 건 푸로르였다.
폭주 마인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곧 싸울 적에 관한 정보가 더 궁금한가 보다.
새로운 정보라 할만한 건 없는지 주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면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계속 숨길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진작에 드러냈을 테니.
기대를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차피 가능성은 낮을 거라 예상했는지 푸로르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럼 전황은 좀 어떻답니까?”
“···많이 안 좋습니다. 가장 최근에 받아 본 정보에 의하면 마탑이 무너졌다는 모양입니다.”
주교의 말에 아니마는 인상을 찌푸렸고 에드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충격을 받은 건 두 마법사뿐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서렸고 분위기는 더없이 숙연하게 가라앉았다.
“새, 생존자는···.”
“아!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뜻이 아니고, 말 그대로 ‘탑’이 무너졌다는 얘기였습니다. 탑의 붕괴 때문에 죽은 마법사는 없습니다.”
에드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생존자에 관해서 묻자, 주교가 뒤늦게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정보를 정정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탑이 붕괴한 건 악마의 짓입니까? 아니면 배신자가 움직인 겁니까?”
마탑에 배신자가 있다는 건 진작에 공유한 정보였다.
서로를 믿지 못하여 의심하고 경계하다 악숭 세력의 이간질에 당할 수 있는 만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 건 아니었지만.
마탑주와 교단 측 인물들에게는 전달해 놓도록 했다.
그래서 주교는 배신자라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고 침착을 유지했다.
“배신자 쪽입니다.”
“놈은 어떻게 됐어요? 잡았어요?”
“마탑이 무너지는 혼란을 틈타, 악마의 도움을 받아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도망쳐도 혼자 힘으로 도망치고, 그게 안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까 예상했건만.
악마가 도와주었을 줄은 몰랐다.
마탑의 마법사면 상당한 실력을 갖췄을 테니, 흑마법사 혹은 마인으로 만들어 재활용할 생각이려나?
“정말 큰일···.”
갑자기 느껴진 등줄기를 훑는 서늘한 감각에 나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을까 어리둥절하여 멀뚱멀뚱 앉아있는데,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동시에 입을 열어 그 감각의 정체를 밝혀주었다.
“악마가 소환되었습니다.”
“또 악마가 소환됐나 봐.”
밤이라서 하늘이 어두워져도 티가 나지 않아서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신성력이 없는 이들은 나처럼 긴가민가하며 넘어가 버렸을 테다.
아마 악숭이들은 그것을 노려 이 오밤중에 잠도 안 자고 악마를 소환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