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3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36화(936/1105)
< 91. 공작님과 세 악마 (3) >
다행히도 우리는 적들에게 들키지 않고, 두 번째 비밀 통로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진동이 일더니 머리 위에서 흙과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세르펜스가 나를 재빨리 안아 들며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성 결계를 펼쳤다.
덕분에 당장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초 단위로 신성력이 소모될 테니 이곳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건 없었다.
“뛰어!!”
푸로르가 발이 느린 리에나를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에드나와 아니마를 챙긴 건 윈스톤이다. 그는 두 마법사를 양 옆구리에 끼우고 달렸다.
리에나는 푸로르에게 안긴 채로 두 손을 모아 잡으며 신성력을 발휘했는데, 그와 동시에 달음박질치는 이들의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그냥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나가면 안 되나?”
“이, 이 위에는 그, 그림자 군단이 포진해 있, 있어서···!”
반쯤 혼잣말에 가까운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테일러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답해주었다.
여기에서 천장을 뚫고 나가면 적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이대로 출구까지 달릴 수밖에.
“세르펜스! 이리 주세요, 제가 들게요.”
유지스의 말에 세르펜스가 지체 없이 나를 넘기고 검을 뽑아들며 선두로 튀어 나갔다.
천장 전체를 떠받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앞쪽 결계만 유지한 까닭에 지나온 길이 쿠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직접 달리는 게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급함이 덜하고, 천장을 지지하는 유능펜스를 신뢰하여 위기감이 들지 않아서일까?
이 와중에도 세르펜스가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이, 유지스를 믿고 나를 맡겼다는 사실에 뿌듯해졌다.
일행들의 빠른 이동 속도 덕분인지 통로의 끝에 도달하는 건 금방이었다.
정면에 벽이 보이자 테일러가 속도를 올리며 세르펜스를 따라잡았다.
“제, 제가 먼저 가서 추, 출구를 열어 놓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테일러의 말을 끊으며, 세르펜스는 벽처럼 보이는 숨겨진 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곧장 결계를 하나 더 펼쳤다.
무너지는 벽 너머에서 검은 기운이 벽돌을 가루로 만들며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세르펜스가 결계를 펼친 건 아마 저 공격을 예상한 까닭이리라.
녀석이 가장 앞장서서 달린 것도, 어쩌면 출구 쪽에서 대기하는 적의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콰아아아─!
적의 공격은 계속되었으나 세르펜스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방패병의 돌격처럼, 결계를 앞세워 검은 기운을 밀어내며 나아갔다.
그리하여 후미에서 달리던 윈스톤까지 통로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를 확인한 세르펜스가 비밀 통로의 천장을 떠받치고 있던 결계를 거뒀고, 요란한 굉음과 함께 우리가 달려온 통로가 돌무더기와 흙으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쳇, 기습은 실패인가? 일단은 신성력을 소모시킨 것으로 만족해야겠네.”
검은 기운이 멎어들며 우리를 공격했던 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흔히 역관절이라 잘못 알려진, 지행 관절 형태의 하체 위로 인간의 상체가 보였다.
하반신을 감싼 털의 무늬는 표범의 그것이었는데, 머리에는 어째서인가 소의 뿔이 달려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중급 악마 중 하나가 틀림없다.
정신에 간섭하는 능력을 가진 놈인지. 아니면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놈인지 알아내는 건 몹시 쉬웠다.
왜냐하면 놈이 천장을 향해 검은 구체를 쏘아내고는 잽싸게 공간을 찢더니, 꽁무니를 내뺐기 때문이다.
세르펜스가 또다시 천장을 받치는 사이, 우리는 지하실을 벗어나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빠져나오자마자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한 사람, 세르펜스는 ‘후우···.’ 하고 조금 지친 듯한 숨결을 내뱉었다.
“세르펜스, 괜찮아?”
나는 유지스에서 내려 세르펜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이며, 도리어 나를 걱정했다.
“그러는 당신은 괜찮은가?”
“내가 한 거라고는 들려서 옮겨진 것뿐인데, 당연히 괜찮지.”
“정신계 악마가 방금 그 소동을 틈타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는지 물은 거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거로 보아 괜찮은 듯하나 혹여 내가 놓쳤을까 싶어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 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살펴봐도 괜찮겠는가?”
“정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인다면야.”
싸우기도 전에 신성력을 너무 낭비하는 게 아닐까 우려되었으나, 불안해하며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녀석에게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펴보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세르펜스가 내 손을 붙잡고 신성력을 흘려 넣는 사이, 나는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나가는 걸 느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아군 진영의 안쪽인 만큼, 백골 따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빠져나온 건물이 주저앉으며 커다란 소음이 생겼지만, 놀라기는커녕 우리를 주목하는 이조차 없었다.
이미 이곳은 온갖 소음으로 넘쳐나고 있었으니 건물이 무너진지도 모르거나, 적의 공격을 받아 무너졌겠거니 생각한 것이리라.
주변에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지친 얼굴을 한 채 전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그림자 군단을 막는 이들이 지치면 교대하고자, 대기하며 휴식을 취하는 이들.
아군의 머리 위로 흑마법이 날아올 때마다 재깍재깍 결계를 펼치거나, 크게 다친 자가 나타나면 바로 치료해 주고자 바짝 긴장하며 전장을 살피는 신관들.
흑마법을 쏘아대는 법숭이들을 견제하며, 그림자 군단을 향해 폭격을 쏟아붓는 마법사들.
그들에게 무너진 건물에서 나온 우리를 살필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전방을 쳐다보았다.
까맣고 일렁거리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존재들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은 다섯이 모여 그림자 하나를 상대했고, 기사들은 각자 푸른 오러를 뿜어내며 그림자를 베고 또 베었다.
신성력을 씌운 검을 휘두르며 그림자를 베어내는 성기사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이단 심문관들을 도와 악마와 맞서고 있었다.
전장에 보이는 악마는 총 셋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방금 지하실에서 본 놈이었다.
임무 하나를 끝냈으니 농땡이를 부릴 법도 하건만, 곧바로 전투에 가담한 모양이다. 악마 주제에 쓸데없이 성실하다.
다른 하나는 염소 머리에 인간 몸을 한 존재였다.
아마 저놈이 정신에 간섭하는 중급 악마일 터였다.
나머지 하나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생김새의 상급 악마, 레기오였다. 휴마누스와 싸우고 있었기에 놈이 악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쓰레기오는 직접 싸우지 않고 물러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전에 레기오의 허약함에 관해 말한 적이 있으니.
그림자 군단을 보고 놈이 레기오라는 걸 알아챈 휴마누스가 먼저 싸움을 걸었나 보다.
우선 놈을 처치해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걸 테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놈은 명백히 상급 악마였다.
‘설마 위험하게 혼자 상급 악마를 상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무렵, 은빛 신성력을 두른 누군가가 레기오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거리가 멀어 그 누군가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자니, 유지스가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칼립···, 웨일리안 님이시네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화살을 메긴 유지스가 시위를 놓았다.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화살이 칼립스, 아니. 아닌 건 아니지만, 아무튼 웨일리안을 공격하려던 레기오를 노리고 쏘아졌다.
전투에 참전한 건 유지스 뿐만이 아니었다.
에드나와 아니마, 두 마법사도 스태프를 꺼내 들고 집중력을 쏟고 있었다.
허공에 나타났다가 마법으로 화하며 사라지고, 또다시 생겨나는 마법진들 사이에는 저 두 사람의 것도 있겠지.
“세르펜스, 아직이야?”
“이제 됐다. 하는 김에 축복까지 걸어 놓았으니, 별문제 없을 거다.”
어쩐지 별문제 없을 거라는 그 말이 ‘반드시 그래야만 할 거다.’라고 들려왔다.
뒤이어 소리 없이 달싹거린 녀석의 입술이 ‘아마도’라고 말하는 듯했다.
세르펜스는 못내 불안하다는 눈빛을 숨기고자 애쓰며 천천히 내 손을 놓아주었다.
녀석의 손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청량함과 따스함을 모두 품은 신성력 특유의 기운이 몸 안에 맴도는 게 느껴졌다.
“만약 축복이 사라진 것 같다면, 리에나 님이나 테일러 님께 바로 부탁해라.”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남긴 녀석이 은빛 날개를 펼쳤다.
우연히 비상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목격한 이들이 천사가 나타났다며 소리쳤다.
나와 일행들은 익숙해졌지만, 오늘 처음 보는 이들의 눈에는 역시 천사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그러고 보면 휴마누스도 날아서 이곳에 왔을 텐데, 그때도 천사가 나타났다며 감탄했으려나?’
세르펜스가 내 곁을 떠나자 세니어가 결계를 펼쳤다.
싸우는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눈에 잘 들어오고 몸에 활기가 넘치는 거로 보아, 언제나 그러하듯 버프도 걸어준 모양이다.
나는 세니어의 가드 부분에 박힌 신성석을 쓰다듬는다는 느낌으로 매만져,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손잡이를 움켜잡고 천천히 검집에서 뽑았다.
– 스르릉···.
서늘함이 등줄기를 훑는 듯했지만, 세니어를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반짝반짝 잘 손질된 검날에 햇빛이 부딪혀 산란했다.
그저 빛을 반사했을 뿐이라는 걸 알지만, 어쩐지 날카로운 검날에 햇빛까지 쪼개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손잡이를 꽉 움켜잡으며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세르펜스가 향한 방향에는 염소 머리 악마가 있었다.
우선은 내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정신 계통 악마부터 처리할 심산인 듯했다.
그러나 녀석은 곧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어? 그림자들이···.”
막무가내로 아무 데나 뛰어들지 않고, 전선이 밀리는 곳을 찾아 전장을 살피던 푸로르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 목소리에 나는 상공에 있는 세르펜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전장을 가득 채운 그림자 군단이 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놈들과 싸우던 자들의 얼굴에 어리둥절함이 떠올랐다.
어떤 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무기를 든 손을 휘적여 그림자 안을 헤집었으며, 검은 먼지 같은 가루가 자신을 덮칠까 두렵다는 듯 몸을 내뺀 이도 있었다.
“휴마누스가 벌써 쓰레기오를 쓰러뜨렸나···?”
그림자 군단은 레기오의 능력이다.
한데 갑자기 그림자들이 사라졌으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당연히 놈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건 헛된 기대였다.
“그건 아, 아닌 것 같, 같아요.”
“그림자가 악마에게 되돌아가고 있네요.”
“이거, 예감이 영 안 좋은데···.”
테일러와 유지스, 푸로르가 내 말을 부정했다.
그들의 말이 아니었어도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을 거다.
레기오는 쓰러지기는커녕, 휴마누스와 웨일리안을 밀어붙이고 있었으니까.
세르펜스가 급강하하며 놈을 향해 은빛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녀석의 검은 레기오에게 닿을 수 없었다.
먼지가 된 그림자들이 레기오의 몸에 휘감기는가 싶더니, 팽창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밀어낸 까닭이다.
– 퍼엉!!
마치 공기를 때리는 듯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놈에게 날아들던 세르펜스뿐 아니라, 근처에 있던 휴마누스와 웨일리안까지 튕기듯 나가떨어졌다.
세르펜스는 허공에서 한 바퀴 돌긴 했으나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던 둘은 바닥을 뒹굴었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던 그림자 먼지가 다시 레기오를 중심으로 모이는가 싶더니, 놈의 몸에 들러붙었다.
마침내 전장의 모든 그림자가 모여들자 레기오의 모습은 마치 묵빛 갑주를 두른 듯 변했다.
‘아니, 미친! 악마가 무슨 마법 소녀도 아니고 변신 실화냐?’
나는 [성검의 주인]에 나왔던 쓰레기오 공략법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상상을 떠올렸다.
이럴 거면 소설 안 읽은 사람을 데려와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하기야 무능메아가 계획한 게 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