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3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40화(940/1105)
< 91. 공작님과 세 악마 (7) >
쩌적거리며 벌어지던 균열이 악마의 몸통을 감싼 흉갑 전체로 퍼져 나가더니, 이윽고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저 정도 공격이 꽂히면 제아무리 최상급 악마라 한들 충격이 없을 수가 없다.
“커헉!”
레기오가 새까만 피를 울컥 토해냈다.
그대로 순순히 죽어줬으면 참 좋았으련만. 가까스로 급소는 피했는지 놈은 휴마누스의 목을 노리고 무기를 휘둘렀다.
휴마누스를 죽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를 떼어 놓기 위함일 테다.
하지만 데미지를 더 넣겠다며 계속 성검을 쥐고 신성력을 밀어 넣는 건 미련한 짓이다.
가만히 있다간 목이 베일 판국이니, 휴마누스는 어쩔 수 없이 성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피가 쏟아지는 상처 부위를 꾹 누르며, 레기오 또한 뒤로 훌쩍 물러났다.
측면에서 들어오는 세르펜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뿐만 아니라 갑주를 수복하여 재정비하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자가 레기오의 몸통을 감싸며 새로운 흉갑을 만들어냈다.
덤으로 지혈까지 마친 건지 상체를 웅크리고 있던 놈이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나···?’
고작 한 번의 타격으로 최상급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바다에서 본 두족류 악마와 같은 예외가 있긴 하나, 보통 악마는 급이 높을수록 목숨줄이 질긴 법이다.
그러니 무려 최상급에 다다른 악마는 오죽할까.
지금은 유의미한 피해를 줬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때다.
그리고 상처가 재생되기 전에 놈을 몰아붙여야 한다.
레기오를 상대하는 세 사람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곧장 공격에 들어갔다.
‘그나마 악숭 사제가 없어서 다행이네···.’
그림자 군단이라는 무한 생성 병력이 있는 데다가, 악마가 셋이나 되며 그중 하나가 무려 최상급에 달했다.
그렇기에 굳이 악숭 사제를 동원할 필요가 없어서 데려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우리가 오기 전에 첫 번째 표적이 되어 죽었거나.
‘하기야 안 그래도 강한 악마에게 버프를 넣어주고, 치료까지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보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우선으로 죽이겠지···.’
심지어 악숭 사제의 수는 많지도 않다.
동원되어 봤자 한두 명이 최대 아니었을까?
그 수가 많다면 어림도 없겠지만, 한두 명 정도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적진에 돌입하여 해치우러 갈 만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고 실제로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
‘아니, 이걸 왜 나 혼자 생각만 하고 있지? 물어볼 사람이 곁에 없는 것도 아닌데?’
모두가 싸우는 동안 홀로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이어나가는 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내 옆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물론 긴장을 풀고 편히 쉰다기보다는 신성력 회복에 주안을 두며, 주변을 계속 경계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웨일리안이라면 내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으리라.
“웨일리안 님, 혹시 악숭 사제는 여기 안 왔습니까?”
“제가 처치했습니다.”
내 물음에 웨일리안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부담스러운 눈빛만 아니었어도, ‘와, 역시 칼립스 성을 이어받은 이단 심문관님다워요!’ 하고 감탄했을 텐데.
설마하니 웨일리안도 나의 쓰다듬을 원하는 걸까?
나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웨일리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까? 혹시 그자들을 붙잡아서 무언가 물어볼 생각이셨다던가···?”
웨일리안이 바짝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질문해 왔다.
칭찬을 해 줘도 모자랄 판에 본의 아니게 눈치를 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근데 저쪽이 먼저 내게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낸 건 사실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나는 떳떳했다. 그래도 칭찬할 건 칭찬해 줘야겠지.
다행히 내 주위에는 세니어의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웨일리안을 억지로 쓰다듬지 않아도 되었다.
“아닙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전투가 마무리되고 남은 잔당을 사로잡는 거라면 모를까, 한창 싸우는 도중에 그런 걸 고려할 수는 없죠. 게다가 악숭 사제에 관한 정보라면 악숭 살롱에서 전부 들었으니까, 더 궁금한 것도 없고.”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시선으로 저를 훑어보신 겁니까?”
웨일리안이 안도하며 한숨을 돌린 뒤 내 시선 처리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제 시선이 어땠는데요?”
“굉장히 몰염치한 사람을 보는 듯했습니다.”
“착각하신 겁니다. 참 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구나 싶어 감탄하며 쳐다본 것에 불과합니다.”
“가능하다면 제 육신을 시온 님께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몸을 바꿔줄 기세다.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신앙심이 뭐길래 그 강인한 육체를 남에게 내어 주고, 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시온의 몸 안에 선뜻 들어오겠다 말할 수 있는 걸까?
세르펜스도 이런 소리는 안 한다.
“아뇨! 됐어요, 거절합니다. 어차피 그 몸뚱이를 제가 가져 봤자 10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할 겁니다. 그냥 넣어두세요.”
“넣어 두다니, 어디에···?”
“어디든요.”
너무 기겁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내뱉어 버렸다.
그러자 웨일리안은 어딘가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거대한 자루가 있었다면 바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대체 왜 이렇게 내 모든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모르겠다. 이래서야 무슨 말을 못 하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중급 악마들과 싸우는 이들을 살폈다.
성기사 중 몇 명이 큰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그들은 제 상처를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악마와의 싸움에 새로이 합류한 인간 기사들과 드워프 전사들에게 신성력을 제공했다.
악숭이들과 싸우느라 잔뜩 지치고 상처 입었던 그들이 팔팔해졌다.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신성력은 매우 미미하고 큰 상처까지 입었으니.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거는 쪽을 택한 거려나···?’
그 희망에 부응하듯, 기사들은 빠진 성기사들의 자리를 모자람 없이 메꿔주었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범 다리 악마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내가 염소의 표정을 구분할 줄 몰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염소 머리 악마도 얼굴을 일그러뜨린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랬을 거다.
“성검의 주인이 왔으니, 가만히 앉아서 살려달라며 목숨 구걸이나 할 것이지···!”
염소 머리 악마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과연. 그래서 우리가 베리타 영지에 접근한 걸 뻔히 알면서도, 아군 병력과 합류할 때까지 내버려 뒀나 보다.
비밀 통로에서 기습을 가해오긴 했지만, 그건 전투 시작 전에 세르펜스의 신성력을 소모시키기 위함이었으니 예외다.
아무튼, 악마의 말은 헛소리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았다.
적을 앞에 두고 대체 누가 손 놓고 구경만 하겠나 싶지만, [성검의 주인] 시기에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1회차, 성검펜스가 지낸 시간대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
가만히 목을 내놓고 죽어줄 수는 없으니 무기를 들고 아득바득 버티던 이들도, 성검 일행이 오기만 하면 전선에서 빠르게 이탈했다.
자신의 목숨과 터전을 지키고자 어쩔 수 없이 악마를 저지하고 있던 거였으면서, 남의 일을 대신 해 준 양 굴었다.
어서 악마를 처치해 달라고 요구하며, 어째서 이렇게 늦게 와 자신의 소중한 전우가 죽도록 내버려 뒀냐며 원망했다.
자신들은 악마와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이며, 악마와 싸우는 건 성검의 주인과 그 일행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까닭이다.
“아무리 그래도 최상급이 포함된 악마 셋은 너무 많잖···!”
“무력을 갖추지 못한 신의 사자께서도, 언제나 위험한 전장에 서서 무기를 들고 계시는데! 싸울 힘이 있는 우리가 어찌 부끄럽게 남의 손에 목숨을 맡기고 가만히 앉아 있겠느냐! 우리는 그런 비겁한 자들이 아니다!!”
“오, 옳소!!”
분명 ‘성검의 주인과 프라시더스 공작이 악마 셋과 싸우다 죽을까 봐 그런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려던 것 같은데.
만약 악마가 둘이었거나 레기오가 최상급으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그냥 우리 일행에게 전부 떠넘길 것처럼 말문을 뗐으면서.
불만스레 소리치던 기사는 악마를 향한 이단 심문관의 외침을 듣고, 서둘러 말을 바꿨다.
‘일반적으로 나처럼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전장에서 알짱거리면, 보호해야 하니까 거추장스러워 하며 싫어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이곳에 모인 이단 심문관들은 내가 천사라는 설정을 숙지한 상태라고 했다.
천사님이 근처에 계신다면 신앙심이 막 샘솟으며, 없던 힘이 생겨나고 용기가 분출되고 뭐 그런 느낌인 건가?
같이 싸워 주지 않아도?
아군의 사기를 올려주는 전투 토템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뭐라도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나는 세니어를 더 단단히 틀어쥐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레기오가 마구 날뛰는 바람에 다쳤던 건지, 놈을 상대하는 세 사람의 옷은 여기저기 붉게 물들어 있었다.
큰 부상은 치료한 듯했으나 작은 상처는 그냥 남아있었다.
이후에 중급 악마 둘을 마저 상대해야 하니 신성력을 최대한 아끼느라 그런 걸 테다.
“크윽, 젠장···! 너무 흥분했나?”
레기오가 입가에 흐른 검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상급 악마치고 약한 몸뚱이로 살아오다가.
최상급 악마가 되고 그림자 갑주를 둘러 강해졌는데도, 상처를 입은 게 분하고 화가 나서 냉정을 잃었던 게 후회스러운 모양이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 테일러. 세 사람은 일방적으로 레기오에게 당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 증거로 레기오의 그림자 갑주는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진 상태로, 수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자 군단은 무한히 찍어낼 수 있길래 저 갑주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사실 그림자 군단도 한계가 있긴 했는데 그 한계점이 너무 높아서, 무한하다고 착각해 버렸던 걸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최상급 악마인 레기오가 재생력을 웃도는 부상을 당했고, 꽤 지쳤다는 사실이다.
놈을 상대하는 세 사람이라고 지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 전장에 남은 적은 악마들뿐이다. 악숭이 놈들은 전멸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중급 악마와 싸우는 이들을 도왔고, 우리 일행의 마법사들과 유지스는 최상급 악마 레기오를 잡는 레이드에 가세했다.
레기오는 뒤늦게나마 냉정을 되찾았으나, 분노하며 날뛸 때처럼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휴마누스와 세르펜스에게 너무 붙으면 신성력이 가득한 검에 찔리기 딱 좋고, 거리를 벌리면 기다렸다는 듯 마법이 쏟아졌다.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귀신같이 화살이 파고들었다.
그림자 갑주는 반쯤 부서지다시피 했으니, 이제 테일러가 던진 단검들을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
‘다행이다···.’
이대로만 진행되면 레기오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리라.
그러한 생각에 나는 불안을 살짝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런 성급한 판단 때문에 부정이라도 탄 것일까?
돌연 레기오가 몸에 두르고 있던 그림자를 한 점에 모았다.
그 점을 중심으로 그림자 줄기가 세 갈래로 뻗어 나와, 놈과 맞서 싸우던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세르펜스는 얇은 검으로 그 줄기를 휘감고 신성력을 발하였다.
은빛 신성력이 그림자의 내부에 침투하여 폭발했다.
그리하여 그림자 줄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불티와도 같은 작은 빛 무리만 남아 허공에 흩어졌다.
휴마누스는 우선 방패로 그림자 줄기를 튕겨 냈다.
튕겨져나간 그림자는 방향을 돌려 다시 휴마누스를 향해 줄기를 뻗었다.
예상 밖의 상황은 아니었는지, 휴마누스는 침착하게 성검으로 그것을 베어냈다.
문제는 테일러였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았던 그림자조차 끊어내지 못했다.
자신에게로 뻗어 오는 그림자 줄기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보았으나 결국 따라잡히고 말았다.
먼저 그림자 줄기를 해결한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서둘러 테일러를 돕고자 움직였다.
하지만 그땐 이미 테일러의 복부가 꿰뚫린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