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5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51화(951/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10) >
* * *
교단의 성직자들은 마지막으로 사상자 보고를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나는 대화를 나누다 떠오른 궁금증부터 해결했다.
딱 한 가지를 제외한다면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로인지라 전혀 놀랍지 않았다.
에드나가 버 뭐시기를 욕하는 내용을 통해, 아니마가 마법사들에게 배척받는 걸 마탑주가 방치했다는 사실을 어림잡을 수 있었고.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마탑주에게 경고한 내용은 추측했던 그대로, 종손이 악숭 세력의 대사제이니 만남을 청해 와도 무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사제가 뭐 하는 놈인지도 들었다. 룩스메아 교단으로 따지자면 교황 비슷한 위치에 있는 법숭이라는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뭐···, 그래. 그렇다 쳐. 그런데···.’
교단의 성직자들이 나를 과도하게 신경 쓰는 이유, 그게 문제였다.
내 태도 하나하나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여 마탑주를 이단으로 의심하질 않나, 묘하게 설설 기는 듯하면서도 은근히 떠받들지 않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이유를 듣고 나니 그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다. 해결이 되기는 했는데···.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제가 뭐, 천사의 영혼?! 허, 참! 어이가 없어서···.”
정말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나처럼 제 앞가림을 하기 급급하여, 남을 챙길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못난 인간을 천사로 착각하다니.
룩스메아에 이어 성직자들까지 단체로 눈이 삐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그만큼 선우가 빛나는 사람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빛나는 건 세르펜스의 얼굴이고.”
“앞으로 더 빛날 수 있도록 열심히 가꾸겠다.”
“거기서 더 잘생겨지겠다고? 미쳤네.”
세르펜스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내두르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어떠한 생각에 멈칫 굳어버렸다.
이제까지는 그저 세르펜스가 타인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거겠거니 했다.
그래서 내 부정적인 측면마저도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나를 멋진 사람이라 말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 진짜 천사의 영혼이 내 몸에 들어와 신의 계시를 전달했는데, 악마가 그 영혼을 해치는 바람에 내 의식이 돌아온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 거라면, 세르펜스가 말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자신’이 다른 사람 같은 것도 설명 가능하다.
사실은 ‘선우’라는 것도 내 별명 같은 게 아니라 천사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세르펜스, 솔직하게 말해 줘.”
“실은···, 외모를 어떻게 가꿔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내 추측을 확인하고자 먼저 운을 띄웠더니,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세르펜스는 아직 이전의 대화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말하는 표정과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대체 왜 이렇게 외모 가꾸기에 진심인 거지? 내 몸에 들어온 천사가 외모 지상주의자였나? 그래서 선우라는 천사에게 예쁨을 받으려고 이러나?
“아니, 그건 됐어. 더 이상 안 가꿔도 충분히 예쁘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천사의 영혼’에 관한 얘기 말인데, 그거 진짜야?”
“계시 전달 방식이 독특하여 교황이 멋대로 착각한 것뿐이다. 선우가 그런 거 아니라고 말을 했는데도 믿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 뒀더니, 그게 공식적으로 굳어져 버린 것뿐이다.”
“그래···?”
“그러하다. 선우는 유별나고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늘 스스로를 평범하다 말하는···.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세르펜스가 뭐라뭐라 말을 덧붙이긴 했는데, 아무튼 천사의 영혼이 내 몸을 차지하는 일 따윈 없었던 모양이다.
정말로 천사의 영혼이 내 몸에 들어왔던 거라면. 그래서 세르펜스를 비롯한 일행들이 나를 다른 존재와 헷갈린 거면 어쩌나 했는데.
아니라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확인해 봐야겠다.
“비록 기억을 잃긴 했지만, 나는 세르펜스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 거지?”
“걱정하거나 불안해할 것 없다. 기억 유무와 상관없이 선우는 선우다. 그 사실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안심하라는 듯 세르펜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불안감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마음을 놓은 그 순간, 세르펜스가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혹시 천사가 되고 싶은 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으음···. 아니다, 어차피 지금은 불가능하니···.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겠다.”
사실 진짜 천사는 세르펜스가 아닐까?
그래서 마음에 드는 인간인 나를 동료 천사로 맞이하겠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려나?
매우 그럴듯했다. 세르펜스의 얼굴이 곧 개연성이다.
“그건 그렇고. 교단 사람들을 만나는데, 천사 설정 같은 중요한 얘기를 왜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겁니까?”
천사의 영혼 어쩌구 하는 건 거짓부렁이라는 사실도 확인했겠다, 나는 일행들을 쭉 둘러보며 따지듯 물었다.
모두를 둘러본 이후에는 유지스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눈살을 좁혔다.
성직자들이 오기 직전까지 강연에 강연을 거듭한 유지스가 제일 너무했다.
“가뜩이나 기억 상실 때문에 불안해할 사람에게, 정체성에 혼란을 줄 만한 얘기는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세르펜스가 얘기했거든요.”
유지스의 고자질에 나는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세르펜스가 움찔하며 실수로 비싼 화병을 깨뜨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내 눈치를 살폈다.
화가 나오다가도 쏙 들어갈 만한 얼굴이다.
애초에 화낼 일도 아니긴 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동안 천사에게 내 몸을 뺏겼던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그걸 생각하면 세르펜스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내가 잠에서 깼을 때 세르펜스는 내 옆에 누워 있었는데.
그 상태로 일행들에게 그런 주의사항을 일러준 건가?
알면 알수록 참 특이한 사람 같다.
“그 밖에 제가 더 알아야 하는 건 뭐가 있어요? 아까 급하게 이것저것 머릿속에 잔뜩 쑤셔 넣긴 했지만, 그게 끝일 것 같지는 않은데.”
“당장은 대륙에 소환된 악마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으니. 오늘 하루는 선우가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하며 보내는 게 좋겠네요.”
내가 다시 유지스를 쳐다보며 묻자, 그녀는 일행들을 둘러보며 이견이 있는지 확인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할 것이 있었으므로, 나는 유지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세르펜스를 쳐다봤다.
“받아 적으면서 공부하게 종이랑 펜이랑 마력 구속구 좀 꺼내 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지막에 언급한 건 필기구가 아닌 것 같다.”
“지금쯤이면 악마랑 악숭이들이 남긴 마기와 흑마력이 거의 다 정화되었을 텐데, 내가 마기를 풀풀 풍기고 있으면 안 되잖아.”
“으음···.”
세르펜스가 마지못하다는 듯 침음을 흘리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내가 부탁한 물건들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마력 구속구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 보자마자 다시 집어넣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새까만 통짜 금속이 보기만 해도 묵직해 보인다. 저런 걸 차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목이 뻐근해졌다.
심지어 우악스러운 그 모양새가 심미적으로 매우 구렸다. 패션 테러 아이템 그 자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목을 쭉 빼고 가만히 기다렸다.
“···내게 채워 달라는 건가?”
“응, 직접 차는 건 내키지 않아서.”
“정말 나로도 괜찮겠는가?”
“무슨 질문이 그래?”
“······.”
“지금 각오했을 때 빨리 해치워 버려.”
“으으음···.”
정작 착용해야 하는 사람은 나건만, 어째 세르펜스가 나보다 더 마력 구속구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마력 구속구를 집어 들어 조심스레 내 목에 채웠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목에 닿는 것이 소름 돋아서 나도 모르게 움찔할 뻔했다.
세르펜스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묵직한 금속의 무게가 온전히 느껴졌다.
어쩐지 세르펜스가 무거울 거라며 걱정하더라니 그럴 만한 무게다.
불편하고 어색하여 마력 구속구를 손으로 매만지고 있자, 세르펜스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풀어줄 터이니 한동안은 참아 다오.”
“세르펜스가 왜 사과하는 거야?”
“불쾌한 경험을 겪게 해서···.”
“불편하긴 한데, 불쾌할 정도는 아니야.”
“으음···, 기억이 없어서 그런가?”
“응?”
“아무것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불쾌하지 않다니 다행이군.”
기억이 없는 거랑 불쾌하지 않은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목줄이라는 단어에도 이상한 반응을 보였던 게 떠올라 괜히 미심쩍다가도.
순진무구해 보이는 천사펜스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이런 의심을 하는 나야말로 이상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유지스 선생님, 수업 시작해 주세요! 가능하다면 리벨론 가의 근황부터 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나는 종이를 내 앞으로 끌어다 놓고 펜을 집어 들며 말했다.
급히 알아둬야 하는 건 아까 다 들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우선으로 듣고 싶다.
유지스는 이번엔 직접 설명하는 대신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응? 제온이 공작저에 취직했다고?”
혈연을 앞세운 제온의 취직 소식부터 시작하여.
“뭐어?! 제온 밑으로 동생이 하나 더 태어났다고? 그런데 이름이 레비비셴티오?? 카론, 시온, 제온. 그다음으로 레비비셴티오가 나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신성력을 타고났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늦둥이 동생이 매우 튼튼하게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거쳐.
“그러니까 지금은 카론 형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리벨론가 사람 전원이 공작저에서 지내고 있단 말이지···?”
리벨론가 사람들. 그러니까 내 가족들이 공작저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것까지.
세르펜스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웠고, 그 이상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니 세르펜스는 조용히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다.
‘내게 쓰다듬 받는 걸 좋아하던 것 같던데, 이럴 때야말로 칭찬과 쓰다듬을 요구해야 할 타이밍 아닌가?’
리벨론가의 근황은 방금 그게 마지막이었던 걸까?
세르펜스는 자신의 백부인 에일리히에 관한 얘기를 짤막하게 언급하고, 그 이후로는 지난 4년간 대륙에 발생한 사건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참. 그런데 어젯밤에는 내가 세르펜스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런 얘기를 해주기로 하지 않았어?”
“일단은 기본 상식을 채우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우리 둘만의 추억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생긴 것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성격인가 보다.
추억 얘기가 뭐라고 일행들 앞에서도 꼭꼭 숨기려고 하나 싶지만, 세르펜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