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5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56화(956/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15) >
마탑주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아!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네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어린 시절에는 귀찮다며 방치하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별별 생색을 내며 웃어른 대접을 받으려 드는 작자가 있다죠?”
“그,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아니마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제 와 보상 같은 걸 바라겠습니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근데 왜 그러셨어요?”
“······.”
면목 없다는 낯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으로 보건대, 놀랍게도 마탑주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존재하는 듯했다.
양심도 있고 어린애를 방치하는 게 나쁘다는 것도 알면서 왜 그랬던 걸까?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지금 내 행동 또한 마찬가지다.
남의 가정사에 관여하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짓이다.
하물며 마탑주씩이나 되는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건방진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너무 자연스럽다.
‘기억은 없지만, 신의 사자라고 대우받는 게 익숙해진 거려나···?’
그런 이유도 없잖아 있을 것 같기는 하나 그 밖에도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다.
그 답을 찾고자 마탑주를 바라보니 적의가 막 샘솟았다.
아무래도 이게 가장 큰 이유인 듯싶다.
‘마탑이란 폐쇄된 환경에서 어린애가 따돌림을 받고 있는데, 할아버지란 작자가 그걸 방치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심지어 마탑의 마법사들은 대부분 성인일 텐데!’
나는 이제껏 어린아이의 복지에 크게 관심을 둔 적이 없다.
하지만 이건 관심이 있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그냥 인간이라면 마땅히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어른은 아이의 미숙함을 감싸고 배려하며 올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탑은 최상층에 거주하는 마탑주부터 시작하여, 1층의 문지기까지 완전히 글러 먹었다.
“성검 일행의 마법사에게 이러한 물건을 건넨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그녀가 실력을 키워야 자신의 안전 또한 보장되니, 강해져서 제 몫을 다 하라는 뜻이겠지.”
마탑주를 가만히 노려보며 분노하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마탑주의 연구 일지를 멋대로 펴보며 말했다.
듣고 보니 매우 그럴듯한 소리였다.
선택의 날 이전에만 해도 사람들은 세르펜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대륙의 안위를 지키는 일에 나 몰라라 하지 않았던가.
최근까지도 그런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듯했다.
마탑주 또한 그런 무책임한 이들 중 한 명이라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그의 무책임함은 이미 어린 손녀를 방치한 것으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쉽게 말해서 아니마가 목숨 걸고 악숭 세력과 싸우는 동안,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겠다는 거네?”
“아마도 그런 거겠지.”
“와, 쓰레기···!”
너무 분노한 나머지 당사자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렸다.
뒤늦게 아차 싶어 입을 막아볼까 했지만, 마탑주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길래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만 마탑주를 쓰레기라고 여긴 건 아닌 모양이다.
특히 웨일리안의 눈빛이 정말 무시무시했다.
마탑주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라는 것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전장에 던져 놓을 기세였다.
아동 방임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노역(勞役)을 시키며 대륙의 안전도 꾀할 수 있다니.
정말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르펜스는 마법사도 아니면서 마탑주의 연구 일지는 왜 읽고 있는 거야?”
“시전자에게 해를 끼치는 마법 수식이 숨겨져 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혹시나 싶어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응···?”
“마탑주는 대사제와 혈연관계잖습니까. 몰래 그자와 접선하여 악숭 세력에 가담하기로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일지를 참고하거나 최근 마탑주가 만들었다던 마법을 사용하는 건 위험합니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이어진 설명을 듣더니, 이해했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마력은 신성력과 다르게 불안정한 힘이다.
그만큼 자유로운 성질을 지녀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자칫 잘못 다루면 역류하거나 폭주하기에 십상이다.
휴마누스가 마탑주를 경계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단 심문관인 웨일리안은 한술 더 떴다.
그는 아예 마력 구속구를 꺼내 들고 있었는데, 세르펜스가 무언가 발견하면 그 즉시 마탑주에게 채울 요량으로 보였다.
“마법에 문제가 있다면 아니마가 간파하지 못할 리 없어요. 그도 그러할 게 아니마는 천재니까요! 그런 수작을 꾸며 봤자, 자신이 악숭 세력의 하수인이 되었노라 자진 납세 하는 것밖에 더 되나요? 그런 의미에서 마탑주님이 그딴 멍청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네요.”
에드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마탑주를 두둔하는 건지, 아니마를 자랑하는 건지 모를 소리를 꺼냈다.
그 의도는 아리송했으나 신빙성 있는 얘기였다.
조금 전 마탑주도 아니마의 재능은 자신보다 뛰어나니, 자신이 만든 마법 수식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말하였으니까.
만약 마법 수식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알아보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겠지.
“더욱이 마탑주님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친손녀가 힘들어할 때에도, 철저하게 방관한 분이시잖아요. 그런 사람이 그간 존재조차 모르고 지냈던 종손에게 정을 느껴, 악숭이 짓을 돕는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마탑주의 역성을 들어주는 건지, 비난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말이 에드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과연 마법사답게 논리적인 주장이다.
“그러니까 에드나 씨의 의견대로라면 마탑주는 ‘악숭하지 않는 쓰레기’라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런데 마탑 소속 마법사가 마탑주한테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마탑이 무너져서 재건을 마칠 때까지 연구비 지원은 꿈도 못 꿀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르펜스 님께서 챙겨주시는 월급과 연구비가 두둑해서 상관없어요.”
“그런 겁니까?”
“네, 그런 거예요. 사실 예전부터 마탑주님께 하고 싶던 욕···, 아니, 말이 많았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네요.”
쌓인 게 엄청 많았는지 그렇게 말하는 에드나의 만면에 상쾌한 웃음기가 가득했다.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그 미소를 보며 나는 에드나에게 밉보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억이 없는 지난 4년간 내가 실수한 게 없어야 할 텐데 괜히 걱정됐다.
‘그건 그렇고, 이런 말까지 나왔는데도 변명 한마디 안 하다니···.’
나는 마탑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쓴웃음을 머금고 있는 게 ‘내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긴 하지만, 구차하게 그것을 설명하며 이해를 강요하지는 않겠다. 나는 쿨하고 시크한 마탑의 주인이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몹시 재수가 없다.
사정이 있으면 말을 해야 이해를 하든 곡해를 하든 하지.
자기 혼자 결론을 내리고 입을 딱 다무는 건 대체 무슨 짓이람?
내가 봤을 때 마탑주는 나이만 잔뜩 먹었지 사회화가 덜 된 것 같다.
기초적인 대화조차 하지 않을 거라면 사회적 동물로 태어나질 말았어야지.
모르긴 몰라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던 우리 집안 막내, 레비비 어쩌고의 사회성이 더 뛰어나지 않을까 싶다.
“저기요, 마탑주님. 아니마가 다른 마법사들에게 배척당하는 걸 내버려 둔 이유가 뭡니까?”
“···그냥 제가 부족했을 뿐입니다.”
“이해를 하고 말고는 당사자인 아니마가 정할 문제지, 그쪽이 멋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꾸 그딴 식으로 오만하게 굴면 오해받아요. 저 먼 옛날부터 악숭이들과 모종의 협력 관계를 맺어, 천재 마법사를 타락시키고자 방치했다는 식으로.”
“예···?”
“웨일리안 님이 괜히 마탑주님을 감시한 줄 아십니까? 마탑 없는 마탑주가 되어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누군가랑 다르게, 저분은 공사가 다망하신 양반입니다.”
내 말에 마탑주···. 아니, 무(無)탑주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뒤에 선 웨일리안을 쳐다보았다.
이단 심문관의 손에 들린 마력 구속구를 뒤늦게 발견한 무탑주가 어깨를 떨었다.
낯빛이 창백해진 게 이제야 위기감이 들었나 보다.
“제가 아니마를 타락시킬 생각이었다면, 에드나 양이 저 아이를 돌보는 걸 내버려두지 않았을 겁니다.”
“와! 자신의 안위가 걸려있으니까 변명을 시작하시네!”
“······.”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자각이 있기는 한지 무탑주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게 알아서 잘 좀 하지.
내가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늙은이를 붙들어 놓고,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가르칠 지경까지 와야 하나?
“그래서 왜 그러셨던 겁니까?”
“···아들 부부가 죽고, 제게 남은 가족은 아니마뿐이었습니다.”
“그걸 알면 잘 돌봤어야···. 아니, 됐습니다. 계속 얘기해 보세요.”
“아이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계속 성실하게 마법을 배워 나갔다간, 훗날 있을 악마 숭배 세력과의 전투에 차출되어 목숨을 잃을까 겁이 났습니다. 한데 결국 이렇게 성검 일행으로 발탁된 걸 보면, 타고난 천재성은 가리려 애써 봐도 가릴 수 없나 봅니다.”
그러니까 하나밖에 없는 손녀가 위험한 전장으로 불려 나가는 게 싫어서, 타고난 재능을 썩히게 뒀다는 뜻인가?
아니마 본인에게도 이 세상에도 못할 짓이다.
그리 말하는 목소리에서 아니마에 대한 자부심이 은은하게 묻어나 더욱 어이가 없었다.
지가 뭘 했다고 아니마를 자랑하는지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마가 외로움을 느끼며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다행히도 에드나 양이 그즈음 마탑에 입적한 터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담당해야 할 육아를 생판 남. 그것도 어린애한테 떠넘겼다는 말을 참 당당히도 한다.
글러먹은 인간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는데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하자, 무탑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한층 더 쓰레기다운 발언을 내뱉었다.
“제가 이기적이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프라시더스 공작이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받는 기대가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 마탑에서만 지내는 제 귀에도 흘러들어왔습니다. 아니마가 비슷한 짐을 짊어지는 일은 없길 바랐습니다. 기대를 받는다는 건 결국 일이 잘못되었을 때 온 세상의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니···. 차라리 마탑 내에서 배척당하며 조용히 사는 게 아니마에게도 더 나은 삶이라 감히 판단했습니다.”
그때쯤에는 세르펜스도 어린애였다.
심지어는 그는 더 어린 나이에도, 그냥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기대와 책임을 짊어져야만 했다.
그걸 빤히 알면서. 아니, 알고 있어서 제 가족이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려고.
마탑주씩이나 되는 자가 차세대 천재 마법사를 그냥 내버려뒀다니.
“누군가가 부당한 책임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 같이 들어 줄 생각을 해야지! 제 가족이 그 짐을 나눠 들까 봐 우려하는 게 사람으로서 할 짓입니까?”
“죄송합니다.”
“사과는 아니마랑 세르펜스에게 해야죠! 와, 진짜 어이없어. 이제 보니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밝혀지는 게 두려워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네!”
“······.”
“진짜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그냥 닥치고 악숭이 취급받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 이미 명예 악숭이쯤 되는 것 같은데. 탑주님 본인의 생각은 어때요?”
“···신의 사자께서 벌을 내리겠다면 얌전히 받잡겠습니다.”
“환장하겠네!!”
무탑주의 태도에 내가 울분을 터트리고 있자, 옆에 앉아있던 세르펜스가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을 한 세르펜스의 얼굴이 보였다.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무탑주가 하는 소리를 듣고도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기는커녕,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아이고, 우리 공작님! 불쌍해서 어떡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우쭈쭈쭈!”
나는 세르펜스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뒤통수를 마구 쓰다듬었다.
순간 그가 웃음소리를 흘린 것 같았는데, 지금이 웃을 타이밍도 아니고 분명 잘못 들은 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