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5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58화(958/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17) >
* * *
설마하니 이동하는 중에도 간식을 먹기 위해 멈춰 설 줄은 몰랐다.
점심을 먹느라 쉬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말에서 내리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급한 일이 없어서 이렇게 느긋할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니, 아무리 급해도 내가 세르펜스의 간식만은 꼭 챙겨 줬다는 답변을 들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내가 츄이스티를 꺼내고, 세르펜스가 그걸 받아먹은 게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일이이라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뭐라 할 말이 사라지더라.
‘세르펜스가 나를 만나기 전까지 간식을 한 번도 먹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긴 했지만···.’
아무튼 나도 나지만, 세르펜스도 진짜 어지간하다.
얘기를 듣자 하니 신성력까지 동원하여 말의 속도를 한계까지 높였다던데.
그렇게나 빨리 달리는 말을 몰면서 츄이스티를 받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내가 저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도 모르고, 세르펜스는 본인이 방금 꺼내 놓은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수가 서린 그의 옆얼굴은 사연이라도 있는 양 진중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실상 그의 머릿속을 채운 건 오늘의 간식 메뉴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작 간식일 뿐인데 저렇게까지 진지할 필요가 있는 걸까 싶어 혀를 내두르는데, 세르펜스 너머로 눈을 반짝거리는 유지스의 모습이 보였다.
세르펜스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일 때마다 유지스의 기다란 귀가 까딱거렸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태도다.
이건 대체 뭔가 싶어 두 사람을 관찰하는데, 문득 유지스의 목걸이와 세르펜스의 안경 줄이 눈에 들어왔다.
은색 체인 중간중간 진주를 끼워 연결한 모양이 누가 봐도 세트로 맞춘 물건이 틀림없다.
‘혹시 둘이 연인 관계인가? 얼굴 조합은 정말 끝내주긴 하지만, 이제까지 사귀는 듯한 낌새는 못 느꼈는데···. 설마 비밀 연애? 아냐, 그러기에는 너무 대놓고 커플템을 차고 다니잖아.’
물어봐도 되는 걸까 안 되는 걸까, 갈등하는 사이 세르펜스가 간식 메뉴를 결정했다.
오랜 고민 끝에 정한 것이니 엄청 대단한 거라도 꺼낼 줄 알았건만.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은 수수해 보이는 두 종류의 쿠키였다.
“이 솔트 쿠키와 초코 쿠키는 선우가 내게 가장 먼저 권했던 간식이다.”
세르펜스가 그렇게 말하며 내 앞 접시에 쿠키들을 잔뜩 담아주었다.
곧바로 하나 집어서 먹어 보니 좋은 재료를 썼는지 약간 고급스러운 맛이 나긴 했지만, 평범한 쿠키의 수준을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훨씬 맛있고 비싼 디저트가 잔뜩 있는데도 추억의 맛을 선택하다니.
“역시 세르펜스는 내가 하루빨리 기억을 되찾길 바라는 거야?”
“그런 건 아니다. 아, 아니. 아닌 게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으음···. 기억이 없어도 선우는 선우이며, 잊어버린 추억은 내가 알려주면 되잖은가?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내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했는지 세르펜스가 횡설수설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의심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내 기억상실에 가장 안타까워한 이는 다름 아닌 세르펜스였다. 추억에 가장 연연하는 것도 세르펜스였고.
그러니 나만큼이나 내가 기억을 되찾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또한 세르펜스일 터였다.
“그 마음은 고마워. 그런데 유지스랑은 무슨 관계야?”
“유지스는 선우 다음으로 각별한 친구···, 음?”
세르펜스가 대답을 하다 말고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어째서 대화 주제가 뜬금없이 이상한 쪽으로 튄 거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
그때 ‘칫!’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나보다 더 아쉽다는 표정을 한 유지스의 모습이 보였다.
“세르펜스의 안경 줄이랑 유지스의 목걸이 줄이 같은 디자인이길래 혹시나 했는데, 아니면 됐어.”
“아! 이거라면 선우 것도 있다. 이런 걸 두고 ‘우정템’이라 한다고 선우가 알려주었지.”
세르펜스가 활짝 웃으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하나 꺼내어, 내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러고는 진주가 꿰인 은색 체인의 끝 부분에 달린 고리를 내 조끼 단추에 걸어 고정했다.
내 것까지 해서 셋이 세트로 맞춘 거였나 보다.
‘과거의 나야, 눈치 안 챙기고 뭐 했냐!’
유지스가 세르펜스에게 사심이 있다는 건 조금 전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인으로 나란히 뒀을 때 보기 좋고, 장신구를 세트로 맞출 정도로 친근한 사이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건 눈치 없는 새끼나 할 짓이다.
“나도 같은 디자인으로 팔찌 같은 거 하나 살까?”
“휴마누스, 이 눈치 없는 새끼!”
“뭐? 너 기억 잃었다는 거 거짓말이지!!”
휴마누스가 생트집을 잡으며, 본인이 눈치 없다는 사실을 덮으려 들었다.
쿠키를 집어 먹으며 휴마누스와 티격태격 장난을 치고 논 지 얼마나 되었을까?
돌연 휴마누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표정을 굳혔다.
그 혼자서 정색한 거라면 내가 실수한 건가 싶었을 텐데, 동시에 세르펜스도 자리에서 일어난 터라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뒤이어 다른 일행들도 긴장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근처에 악숭이라도 있나 보다.
‘테이블이랑 의자는 치워야겠지? 싸우다 망가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나는 슬그머니 세르펜스의 옷 속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어 테이블부터 챙겼다.
그 후 나와 세르펜스가 앉았던 의자를 넣고, 다른 의자까지 챙기고자 움직이려 하자 세르펜스가 가만히 있으라며 손목을 붙들었다.
다행히도 일행들이 전투태세를 잠시 풀고 의자를 들고 와 준 덕분에, 무사히 의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공간 주머니 입구를 조이고 원위치에 가져다 놓을 즈음.
어디선가 ‘웨에엥’ 하고 날벌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상 가까이에서 난 소리 같지는 않은데, 여름날의 매미 소리보다 더 시끄럽고 귀에 거슬렸다.
어쩐지 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것 같다는 감상을 떠올린 순간.
저 멀리서 새까만 먹구름 같은 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저거 설마 벌레 떼인가···? 그치만 지금은 겨울인데?”
“진짜 벌레는 아니고, 마기로 만든 가짜다.”
내 혼잣말에 세르펜스가 그리 답했다.
얼마 전에 해치웠다던 쓰레기오라는 악마의 그림자 군단 같은 거려나?
하지만 놈은 휴마누스가 죽였다고 했으니, 벌레 관련 악마와 계약한 마인이 나타난 건가 싶다.
“아니마 씨, 보호막을 부탁합니다.”
세르펜스가 신성 결계를 펼치려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는 아니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곧이어 딱 내 주변만 감싸는 작은 돔 형태의 푸른 막이 생성되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늘 이런 식으로 보호받았던 거려나?
이래서야 완전히 짐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늘 위에서 꿀렁꿀렁 움직이는 벌레 떼가 점차 가까이 다가왔고, 사각거리는 소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메마른 겨울 대지 위를 새까만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진짜 벌레가 아니라 마기로 만들어진 거라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징그러워서 소름이 쫙 끼쳤다.
“이상하다? 기운 자체는 한 명의 것이 분명한데, 왜 마인의 기척은 여러 곳에서 느껴지는 거지?”
“저 벌레들처럼 마기로 만들어 낸 가짜 형상의 기척일 가능성이 큽니다.”
의문 가득한 푸로르의 중얼거림에 세르펜스가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며 대답했다.
인간 크기의 거대 마기 벌레를 만든 건지, 아니면 작은 벌레들을 뭉쳐서 인간 형상을 만들어 낸 건지.
어느 쪽이든 무척이나 징그럽고 괜히 상상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 ···려워 하···! }
“찾았다! 저쪽 맞아?”
성검을 뽑아든 채로 가만히 집중하던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여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휴마누스는 바로 마인에게로 향할 수 없었다.
휴마누스가 해당 방향으로 튀어 나간 순간, 날벌레들이 그에게 잔뜩 몰려들어 달라붙은 까닭이다.
“으악, 이게 뭐야!”
신성력을 성검에 불어넣어 휘두르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전신을 감싸는 성화를 일으켜 마기 벌레를 태워버렸다.
그리고 벌레들이 다시 들러붙기 전에 서둘러 신성 결계를 펼쳐 몸을 보호했다.
과연 신성 결계에는 마기 벌레가 달라붙지 못했다.
‘근데 마력으로 만든 보호막은 좀 위험한 거 아니야···?’
보호막에 더덕더덕 달라붙은 마기 벌레를 지켜보는 경험은 사양하고 싶다.
머릿속에서 떠오른 끔찍한 상상에 치를 떨고 있을 무렵 화르륵 불길이 솟구쳤다.
아니마가 우리를 중심으로 원형의 불길을 펼쳐, 땅에서 기어 오는 마기 벌레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에드나는 하늘을 통해 날아드는 마기 벌레를 향해 불덩이를 날렸다.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마기 벌레는 성화가 아닌 마법으로 만든 불에도 취약한 듯했다.
나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옆에 선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성화로 벌레들을 싹 쓸어버릴 수는 없는 거야?”
“그렇게나 커다란 성화를 피웠다가, 당신의 몸속에 있는 마기가 자극을 받으면 큰일이잖은가.”
“멀리 떨어져서 피우면 되잖아?”
“하지만 지금 당신은 세니어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태이지 않은가. 내가 곁에서 지켜야 한다.”
세니어라면 세르펜스가 만든 신성석이 박힌 검이라고 어제 설명을 들었다.
내 몸속의 마기가 날뛸지도 모른다며, 보여주지도 않아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르펜스도 지금 내 옆에 붙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적이 공격해 와도 신성력을 써서 반격하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나 대신 몸으로 공격을 막는 수밖에 없다.
그딴 건 내가 사양이다.
누군가가 나 대신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 그래, 모든······ ···못이다! }
“검 안 쓰실 거면 잠시 빌려 갈게요!”
유지스가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의 허리춤에 걸린 세검을 뽑아갔다.
불 속성 정령의 힘이 깃들어 검날에 일렁이는 불꽃이 휘감겼다.
두 마법사가 채 막아내지 못하여, 가까이 접근해 온 마기 벌레 몇 마리가 불꽃의 검에 닿아 타올랐다.
윈스톤과 푸로르도 각자의 힘을 끌어 올려 벌레들을 베거나 쳐내고 있지만, 효율은 영 별로였다.
리에나도 나 때문에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처지였으니.
지금 여기에서 제대로 싸우고 있는 건 두 마법사와 유지스 뿐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조금만 기다리면 휴마누스가 마인을 처치할 터이니, 그대가 걱정할 것은 없다.”
세르펜스가 그렇게 말하였지만, 어떻게 걱정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만 이곳에 없었더라면 저딴 마기 벌레 따위는 진작 성화에 휩쓸려 사라졌을 테다.
궁수인 유지스가 검을 들고 뛰어다닐 일 또한 없었겠지.
게다가 당장 이 상황을 어찌어찌 해결한다 하더라도 그다음이 문제다.
‘나중에 악마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세르펜스도 휴마누스와 함께 싸우러 가겠지만, 리에나는 나와 함께 후방에서 머무를 터였다.
나 때문에 귀중한 전력 한 명을 썩히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마법으로 보호받는 것 또한 전력을 깎아 먹는 건 마찬가지다.
마법사가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는 한계가 있고, 집중력을 상당히 소모하니까 말이다.
내게 직접 신성력을 쓰는 게 아니라면 괜찮을 수도 있으니 실험해 봐야 하나 싶다가도,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겁이 났다.
‘···나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걸까?’
{ 크크크큭! }
밀려드는 자괴감 때문일까?
나를 조롱하는 듯한 비웃음 소리를 언뜻 들은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