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5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59화(959/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18) >
싸우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두려움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홀로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에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것 정도야.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평범한 감정이다.
생존 본능은 당연한 것이니 굳이 언급할 것도 없고, 그런 본능에도 불구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조차 타인을 돕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두려움과 무력감에 시달린다고 한들, 정신이 굳건한 이라면 견뎌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허상의 비웃음 소리에 시달리는 이는 거의 없을 테다.
그러니 내가 들릴 리 없는 비웃음 소리를 듣게 된 이유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코앞에서 벌어지는 위협적인 전투를 마주하기에, 내 정신이 너무나도 연약한 까닭이겠지···. 정말이지, 나는 너무 소심하고 여려서 탈이라니까! 헉! 이러다가 자괴감 가득한 마음의 소리까지 듣게 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속으로 한탄을 늘어놓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소심한 성격을 뜯어고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 잠기려던 찰나.
또다시 환청이 들려왔다. 단순한 비웃음 소리에서 그치지 않고 무려 제대로 된 문장이.
{ 아아···! 나는 정말 너무나도 쓸모가 없구나! 이래서야 일행들의 발목만 붙잡는 짐이 될 뿐이야. 내게도 나 자신과 일행들을 지킬 힘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아니, 뭐야. 내 마음의 소리가 아니잖아? 댁은 뉘신대 남의 머릿속에서 탄식하고 계세요? 지금은 제 코가 석 자라 남을 위로해 줄 여유 따윈 없으니까 썩 꺼지세요.’
{ 무, 무슨 소리야! 나는 네 마음의 소리가 맞아! }
‘맞긴 뭐가 맞아?! 말투부터가 완전 딴판인데! 모름지기 내 마음의 소리라면 의기소침하고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있어야지!!’
{ 이런 양심 없는 인간 같으니! 방금 네가 한 생각을 문자로 옮겨 적는다면, 말끝마다 느낌표가 붙었을 거다! 그런 주제에 뭐가 어쩌고 저째?! }
머릿속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때문에 두통이 일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싶다.
‘설마 벌레 마인이 내게 무슨 흑마법 같은 걸 써서 말을 걸고 있는 거려나?’
{ 내게 그런 저급한 존재를 갖다 붙이지 마라! }
‘마인이 아니라면 악마겠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힘이 어쩌고 하는 소리도 했었지?’
{ 쳇···, 들켰군. }
‘아니, 들키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티가 나도 너무 났잖아? 악마라면서 연기 실력이 그것밖에 안 돼서야, 어디 밥 빌어먹고 살 수 있겠어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악마를 걱정해주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 그전에 악마랑 대화를 하면 안 되는 거였나?
그치만 누가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대는데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입 밖으로 대답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상대가 그걸 다 알아듣는다면 더욱이 그러하다.
내 의사와 무관하게 멋대로 생각을 읽고 대화를 진행해 나갈 테니까.
“괜찮은가?”
머릿속이 웅웅 울려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탓일까?
세르펜스가 수심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에 나는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합!’ 하고 급히 입을 닫았다.
악마가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이 상황은 어찌 생각해도 절대 괜찮지 않았으니까.
{ 설마 모두가 싸우는 동안에 악마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걸, 곧이곧대로 얘기할 생각은 아니겠지? }
‘곧이곧대로고 자시고 간에, 그리 사이좋은 느낌은 아니지 않았나?’
{ ···아무튼! 이걸 알면 다들 네가 타락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
‘악마는 원래 싫다는 사람 붙들고 강제로 말을 걸면서, 힘을 줄 테니 영혼을 내놓으라는 불공정한 사기 계약을 들이미는 느낌 아닌가? 꺼지라고 말한 지 한참 됐는데 지금도 눌러앉아서 이러고 있고. 내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는데 타락은 개뿔이.’
아무리 내가 자기주장이 없어 남에게 잘 휘둘리며 귀까지 얇다지만, 저딴 개소리를 믿을 정도로 지능이 심하게 딸리지는 않는다.
딱히 잘난 머리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범인 축에는 속하지.
만일 내가 수도가 아닌 지방에서 구직 활동을 했더라면, 백수 기간이 반의반으로 줄지 않았을까 싶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한층 더 걱정되었는지, 세르펜스가 울상을 지으며 다시 한 번 말을 걸어왔다.
지금 악마 얘기를 꺼내면 세르펜스는 분명 큰 충격을 받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숨겨도 되는 것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각각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명백히 후자의 것이다.
“머릿속에서 악마가 형편없는 연기로 내 마음의 소리랍시고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정체를 들키니까 비밀로 해 달래.”
“뭐···?”
{ 그걸 왜 그딴 식으로 요약하는 건데?! }
세르펜스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퍽 애처로웠다.
그리고 악마의 반응은 이해가 안 됐다.
‘완벽한 요약 아니었나?’
{ 저 주둥아리의 악명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
‘말로 인간을 현혹해야 할 악마가 말발로 밀려서, 인간에게 악(惡)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거야? 악마로서의 자존심도 없어? 너는 정말 너무나도 쓸모가 없구나? 이래서야 마왕의 발목만 붙잡는 짐이 될 뿐일 텐데? 네게도 너 자신과 마왕을 지킬 주둥아리가 필요해?’
{ 크아악!! }
악마가 괴성을 질러대며 날 위협하려 들었다.
대륙에 소환되지도 못한 주제에 위협해 봤자 하나도 안 무섭다.
어차피 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두통을 유발하는 것이 한계다.
띵 하고 골이 울리는 통증에 이마를 짚자 세르펜스가 곧장 반응을 보였다.
“머, 머리가 아픈 건가?”
“악마가 자꾸 소리를 질러대서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까지 소리를 질러서 내 두통에 이바지하고 싶지 않은 거려나?
세르펜스가 언성을 서서히 높여 나가다가 도중에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먹먹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아니다,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다. 그러니 당신이야말로 너무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마라. 휴마누스가 마인과 마주친 듯하니 이 전투도 곧 끝날 거다. 당신이 두려워할 건 없다. 다 괜찮을 터이니 당신도 마음을 편히···.”
– 쾅!!
휴마누스가 이동한 방향에서 폭음이 들려오며 세르펜스의 뒷말을 삼켰다.
그 소리에 내가 깜짝 놀라 움찔하자, 세르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저런 눈치 없는···.’ 하고 중얼거렸다.
세르펜스는 내게 신성력을 쓰지 못하니 말로써 안심시키려 한 듯했다.
한데 그게 도중에 끊기고 내가 놀라기까지 했으니 기분이 상할 만도 하지.
‘그건 그렇고 이 주변 악숭이들은 전부 마탑 주위로 몰려들어서 박멸된 거 아니었나?’
{ 분명 기억을 잃어버렸을 텐데, 숭배자들을 이상하게 줄여 부르는 건 왜 바뀌질 않지? }
‘일행들이 그렇게 부르면 된다고 알려줬는데 몰랐어?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봐?’
{ 네 놈이 기억을 잃은 주제에 해맑아서 연결이 안 되니까···! 젠장, 본래 계획대로라면 기억이 날아가서 정신없는 틈에 계약까지 마쳤어야 했는데! }
아무래도 그 ‘연결’이라는 게 되지 않으면 시야나 청각 공유가 안 되나 보다.
그리고 연결이 되고 말고는 내 정신 상태와 연관이 있는 듯하고, 내 기억을 날려버린 이유는 사기 계약을 쉽게 체결하기 위함이었다는 모양이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내가 악마 따위와 계약할 정도로 변별력이 없는 건 아닌데.
아니, 없나? 과거를 반추해 보니 없는 것 같기도?
‘아무튼 정신이 있든 없든 어차피 너랑은 계약 안 했을걸? 벌레는 좀 징그럽잖아.’
{ 저 마인과 계약한 악마는 따로 있다! 벌레처럼 하찮은 것들을 다루는 놈과 나를 헷갈리지 마라! }
‘그럼 네 능력은 뭔데?’
{ 나는 불을 지배하는 위대한 악마시다! }
‘아, 어쩐지···. 성격이 불같더라니. 근데 불이면 그냥 물만 뿌려도 꺼지는 거 아냐? 완전 개약한데?’
{ 그깟 물 따위로 내가 피워올리는 마화(魔火)가 꺼질 리 없잖아! }
‘그럼 네가 대신 꺼져줄래?’
{ 뭐가 어쩌고 저째?! }
불을 다루는 악마라서 꺼진다는 표현이 발작 버튼이 눌리기라도 한 걸까?
악마가 또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시끄럽게 굴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었으나 귀를 막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 진짜 시끄럽네. 담당 악마 교체를 신청합니다!’
{ 내가 얼마나 열심히 연결을 시도했는데···!! }
‘그딴 거 내 알 바 아니고.’
{ !@%!%#@@$!@$!$@ }
머리가 너무 울려서 이젠 뭐라고 하는지도 못 알아듣겠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 침착성 없는 놈을 붙여 놓은 걸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아니면 원래 악마는 전부 다혈질인 걸까 의문스러웠는데.
이쯤 되니 그냥 시끄럽게 굴어서, 내가 두통에 못 이겨 계약하도록 만든다는 계획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아직도 악마가 소리를 지르고 있나?”
“응, 진짜 시끄러워 죽겠어.”
“주, 죽겠다니···! 그런 과격한 표현은 삼가길 바란다.”
그냥 흔히 쓰는 일상적 표현이건만. 세르펜스가 무척이나 심한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가만 보면 상당히 심약한 성격인 듯싶다.
그래서 나랑 친해졌나? 심약한 성격 동료끼리 의기투합해서?
{ 진짜로 심약해질 생각도 없으면서···. }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까지 읽는 거야? 미친! 악마는 사생활 존중이 뭔지도 모르나?’
{ 하! 그딴 거 내 알 바인가? }
‘악마씩이나 되는 존재가 지금 인간이 한 말을 그대로 응용해서 되갚아 주는 거야? 엄청나게 없어 보인다. 좀 더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해 보는 게 어때?’
{ 네놈도 아까 내 말을 살짝만 변형해서 써먹었으면서 양심도 없이 그런 소릴 해? }
‘세상에, 여기 양심을 찾는 악마가 다 있네?! 완전 악마 실격이다! 마왕은 뭐 하나? 이렇게 수상쩍은 놈을 색출해 내지 않고?’
{ 한마디를 안 지네, 한마디를! }
악마가 또다시 발작하며 꽥꽥거렸다.
지가 무슨 오리도 아니고 왜 자꾸 꽥꽥대는지 모르겠다.
“오리 악마가 한마디만 져 달라고 사정하며 시끄럽게 구는데, 한 번 져 주면 조용해질까?”
“악마 따위에 지지 마라.”
{ 대체 누가 사정을 했다고!! 그리고 오리는 또 뭐야?! }
세르펜스가 내 손을 꽉 붙잡아주며, 내 의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응원의 말을 건네주었다.
이 와중에도 오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무시로 일관해라.”
“너무 시끄러워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걸 어떡해?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무시도 못 하겠어.”
“으으음···.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서 계약을 강요하는 악마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 누가 그딴 방식으로 계약을 강요한다는 거냐?! }
내 머릿속에서 떠들어 봤자 세르펜스에게 그 목소리가 들릴 리 없건마는.
오리는 새대가리라서 그 당연한 생각조차 못 하는 건지, 길길이 날뛰며 세르펜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꺼지는 게 싫으면 최소한 닥치기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
{ 너야말로 제발 좀 닥쳐라! }
‘지가 뭔데 남의 머릿속에 쳐들어와 놓고 닥치라 마라야? 내 생각을 듣기 싫으면 연결 끊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그렇게 내가 머릿속 소음과 갑론을박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사이.
휴마누스가 벌레 마인을 무사히 무찔렀는지, 왱왱 사각사각 하는 벌레 소리가 한순간에 멎어 들었다.
하나 머릿속 꽥꽥이 때문에 나는 일행들이 느끼는 고요함을 함께 느낄 수 없었다.
{ 나를 꽥꽥이라 부르지 마! }
‘그게 싫으면 꽥꽥거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