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5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60화(960/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19) >
그냥 악마가 내 마음의 소리인 척 헛소리를 지껄일 때 모르는 척 내버려둘 걸 그랬다.
그렇게 했으면 부정적인 소리를 듣느라 기분이 축축 처질지언정, 지금처럼 두통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텐데.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 두통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뭘 어째야 할까?’
{ 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이고 마신 테네브리오 님을 섬겨라! 그게 네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역시 이 다혈질 악마가 울화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속을 긁는 수밖에 없겠지?’
문제는 그때까지 내가 두통으로 몸져눕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다.
실로 지독한 치킨 게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나는 처절한 투쟁 끝에 반드시 승리를 쟁취해 내겠노라 다짐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 결론이 왜 그따위야?! }
‘지금 시기상 법숭이의 중개 없이 바로 계약하면 폭주 마인이 된다며? 그걸 뻔히 아는데 계약을 하겠냐?’
{ 그거야 허접한 것들이 억지로 계약을 맺으니까 그리된 것일 뿐. 나와 계약을 맺는다면 폭주 따윈 하지 않아. }
‘그래도 계약할 생각은 없는데? 이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이용만 당할 게 뻔한데, 내가 뭣 하러 그딴 짓을 하겠어?’
대가로 영혼을 내어 줘야 하는 것도 싫고, 함께한 기억은 없어도 나를 아끼는 일행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도 않다.
하물며 악마가 내게 준다는 ‘힘’은 무척이나 쓰잘데기가 없었다.
악마가 준 힘으로 악마나 악숭이들과 맞서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 다른 수를 강구해 봐야겠군. }
드물게도 꽥꽥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그 이후로 잠잠해졌다.
어떤 제안을 해 오든 거절할 거니까 힘들게 머리를 쥐어짜 낼 것 없는데. 그 의사를 전했음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다.
어이, 이봐, 꽥꽥아. 다양한 호칭으로 불러봐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연결이 된 것이니 저쪽에서 먼저 끊었을 리는 만무하고, 들리면서 무시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아직도 악마가 떠들고 있나?”
“방금까진 그랬는데 지금은 잠깐 조용해졌어. 새 계약서라도 작성하러 갔나?”
“설마 악마와 계약을 할 생각인가?”
“아니?! 내가 미쳤다고 그딴 짓을 해?”
“으음···. 당신이 악마의 꼬임에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마라.”
세르펜스가 온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떠안은 듯한 표정으로 내게 경고했다.
괜한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할까 했으나, 걱정을 안 하게 생겼느냐는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마침 휴마누스가 벌레 마인의 시체로 추정되는 것을 들고 급하게 달려오기도 했고.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방금 악마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악마가 나타났어? 어디에? 악마가 소환되는 낌새 같은 건 못 느꼈는데 언제 소환된 거지?!”
“악마가 나타난 게 아니라···, 시온의 머릿속에서 직접 그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뭐어?!”
휴마누스가 경악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세르펜스를 가리키는 걸 보니, 그가 한 말이 사실이냐고 묻고 싶은 듯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휴마누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반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뒤늦게 고개를 돌리자 휴마누스와 마찬가지로 굳은 얼굴들이 보였다.
저들이 내가 악마의 말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을 안 건 전투 도중이었다.
분명 동요했을 텐데 용케도 실수 없이 무사히 전투를 끝마쳤구나 싶다.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누군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건 내 몫이다. 내가 조금만 더 믿음직했더라면, 당신이 불안에 떨며 악마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일행들에게 사과하는데, 세르펜스가 끼어들어 그것을 무효로 돌리더니 돌연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코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걱정 끼쳐 죄송하다는 말은 흔히 쓰는 표현이었고, 미안함이 없는 건 아니나 감사함 또한 담긴 말이었다.
그런데 세르펜스는 이 모든 상황을 제 탓이라 말하였다. 자신의 것이 아닌 책임을 짊어지는 게 익숙해서 그런 거려나?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그래서 세르펜스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막 입을 뗀 순간.
“세르펜스, 네 잘못도 아니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
휴마누스가 한발 빠르게 내가 하려던 말을 입에 올렸다.
어째서인지 세르펜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휴마누스를 흘겨보았다. 마치 원하던 것이 있었는데 빼앗기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눈에서 힘을 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
휴마누스는 세르펜스가 잠시나마 자신을 흘겨본 것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쾌활히 웃어 보이며 들고 있던 시체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저건 대체 왜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그 의문을 입에 올리니, 정화하려던 찰나 ‘악마’라는 단어가 들려서 엉겁결에 들고 왔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인을 쓰러뜨린 이후로도 방심하지 않고 계속 청력을 곤두세우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안 생겨서 은근 빈틈이 없다.
“어? 저 마인, 자세히 보니 버러지···가 아니라. 아니, 아닌 건 아닌가? 아무튼 버드렝 씨네요.”
마인의 정체를 알아본 에드나가 말했다.
버드렝이라면 마탑이 무너지게 된 원흉인 문지기 배신자였다.
도망에 성공했다길래 당연히 흑마법 계통으로 갈아타 법숭이로 이직할 줄 알았건만, 악마와 계약하여 마인이 되었을 줄이야.
법숭이로도 못 써먹을 정도로 마법적 재능이 형편없었나 보다.
아니면 배신자가 언제 또 배신할지 모르니 계약으로 묶어둔 걸지도.
‘저놈의 쓰임새는 내 정신에 틈을 만드는 거였겠지?’
결국 악마가 내게 말을 걸기에 이르렀으니 저 마인은 자신의 쓸모를 다 한 셈이다.
마탑을 무너트린 것도 그렇고, 악숭 세력 기준에서는 작전 성공률 100%에 달하는 엄청난 인재다.
그런 인재를 이렇게 사지로 내몰다니.
악숭 세력이 어째서 비주류에 머무는지 아주 잘 알겠다.
“혹시 지금도 악마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아뇨, 다른 수를 강구하겠다고 중얼거리더니 조용해졌어요. 전할 말 있으면 불러 볼까요?”
“넌 대체 왜 그렇게 겁이 없어?”
“아닌데요? 저 완전 쫄보인데?”
“퍽이나 그러하겠다. 나는 이 주변 일대를 정화해야 하니까, 자세한 얘기는 그다음에 들을게. 넌 일단 다른 일행들이랑 물러나 있어. 악마에게 먼저 말을 걸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고.”
휴마누스가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들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인이 죽으며 마기 벌레도 사라졌지만, 그 기운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일행들이 없앤 마기 벌레의 기운 또한 남아있을 터였다.
신성력으로 맞서 싸웠다면 모를까, 그 이외의 힘으로 마기를 완전히 없앤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저 벌레 형태를 잃고 대기 중에 흩어졌을 뿐이었기에, 넓은 범위에 걸친 대대적인 정화 작업은 필수였다.
그렇기에 나는 꽤나 멀리까지 물러나야 했다.
성검을 든 휴마누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일행들이 멈추어 섰다.
그래도 세르펜스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는지, 몇 발자국 더 물러나서 의자를 꺼내어 나를 그곳에 앉혔다.
“이제 머리는 좀 괜찮은가?”
“응, 꽥꽥거리던 게 조용해지니까 금방 나았어.”
내 말에 세르펜스가 조용히 나를 응시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숨결에는 안도와 답답함이 뒤섞여 있었다.
더는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내 말에도 그가 순수히 기뻐할 수 없는 건.
아프고 다친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을 지녔음에도, 그걸 나에게 쓸 수 없다는 작금의 상황 탓이겠지.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세르펜스가 먹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어든 두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다.
기억을 잃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몇 번이고 지금처럼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울지 않았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그럼에도 울지 않는 것도.
전부 나 때문이란 사실을 알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 이거 그냥 내버려 둬도 되겠는데? }
줄곧 잠자코 있던 꽥꽥이가 얄밉게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대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화풀이를 겸하여 놈을 향해 욕설을 잔뜩 퍼부었으나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효과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
“미간이 찡그려졌군. 혹 악마가 그대에게 나쁜 말이라도 속삭이는 건가? 너무 귀담아듣지 마라.”
{ 나쁜 말을 듣고 있는 건 난데···. }
표정 변화로 내가 악마와 대화 중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세르펜스의 안색만 더 어두워졌을 뿐이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해 봤자 역효과만 날 게 분명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시원하게 울려 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럼 적어도 묵은 감정은 해소되겠지.
“세르펜스, 울어 봐.”
“뭐···?”
{ 너무 뜬금없고 단도직입적인 거 아니야? }
악마의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자기가 인간에 대해 뭘 안다고 참견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저런 거 하나하나 받아주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꼭두각시놀음을 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물어봐도 되는가?”
“세르펜스가 울면 내 기분이 조금 나아질 것 같아서 그래.”
“아! 이해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군. 하지만 지금은···, 으으음···.”
“악마가 보는 앞이라 좀 그런가?”
“아, 아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그대의 기분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야 내가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세르펜스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의무감에 불타오르며 심기일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르펜스의 우는 얼굴을 본다 해도 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없을 거다.
재채기를 할 듯 말 듯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울 듯 말 듯 안 우니까.
그저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 내게는 우는 얼굴을 보며 기뻐하는 이상한 취향 따윈 없다.
하지만 정정한다면 세르펜스가 울지 않겠다고 하겠지.
그러니 변명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야옹···.”
“······?”
{ 헐···? }
{ 헛···. }
“애옹, 미야옹, 먀아-.”
“???????”
내가 놀라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마치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미치겠다고 하더니 진짜로 미치셨나?
‘아니, 것보다 방금 머릿속에서 울린 목소리가 두 개였던 것 같은데? 꽥꽥아, 친구라도 데려온 거야?’
{ 너 대체 뭘 시킨 거야? }
세르펜스의 고양이 흉내에 얼이 나간 건 악마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자신이 악마를 충격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르펜스는 계속해서 냥냥거렸다.
제국의 단둘뿐인 공작 중 하나이자, 한때는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추앙받던 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아무래도 귀여움이 모자라나 봐요. 더 깜찍한 표정으로 손동작까지 곁들어보는 게 어때요?”
말리지는 못할망정, 유지스가 시범이랍시고 양 손가락을 오므리고 손목을 까딱거렸다.
어째서 저렇게 익숙한 양 반응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르펜스가 고양이처럼 우는 게 일상인 줄 알겠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설마하니 진짜 그런 건 아니겠지?’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고양이 흉내를 내는 세르펜스에게서 잠시 시선을 돌려, 일행들의 반응을 살폈다.
유지스는 잘한다 잘한다 하며 손뼉까지 쳐 가면서 좋아라 한 반면, 윈스톤은 해탈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에드나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으며 아니마는 묘한 경쟁심을 드러냈다.
푸로르는 와하하 웃었고 리에나는 조용히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정화 작업을 마치고 다가오던 휴마누스가 걸음을 멈추고, 수치심으로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덮었다.
이들의 반응만 봐서는 이게 일상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늘 있는 건 아니고 가끔 생기는 이벤트 같은 건가?
“냐앙, 웨옹, 먉-!”
{ 살다 살다 별 해괴한···. }
흔치 않은 구경이라면 잘 봐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멍하니 지켜보는데, 머릿속에서 또다시 낯선 음성이 울렸다.
방금 그 목소리는 꽥꽥이의 것이 아니다.
역시 지켜보는 악마가 하나 더 있는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