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96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961화(961/1105)
< 92. 공작님,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20) >
머릿속 악마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건 중대한 사안이다.
이에 관해 얘기하려면 우선 세르냥이를 인간 세르펜스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손가락을 말아 쥔 세르펜스의 두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우리 인간적으로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누가 울어보라는 말을 고양이처럼 냥냥거려 달라는 뜻으로 해석해?”
“나의 상식을 무너트린 존재가 바로 당신이다.”
인간으로 돌아온 세르펜스가 정색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상식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소리였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온갖 깜찍한 척을 다 했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차분한 표정과 말투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니 괴리감이 장난 아니다.
“혹시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세르펜스에게 고양이 흉내를 시켰어?”
“어디 그 정도겠는가? 아예 고양이 취급을 했다.”
“그럴 리가! 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런 사람이다. 지난번 나와 둘만 있을 땐 본인의 정신 회복을 운운하며, 내게 고양이답게 야옹거리며 애교를 부려보라는 말도 했지. 그래서 이번에도 내 재롱을 보고 기분 전환을 할 목적으로, 고양이처럼 울어보라 시킨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세르펜스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가 고귀하신 공작님을 반려동물도 아니고 애완동물 취급했다니,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이는 거짓말이다. 필시 그러할 테다.
나는 그런 믿음을 품고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시온이라면 그런 말을 하고도 남죠.”
유지스가 툭 던지듯 말하였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정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믿을 수가 없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신의 사자라는 알량한 직위를 내세워,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걸까?
{ 그러게···? }
머릿속에서 울리는 꽥꽥이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른 건 몰라도 악마들 사이에서 ‘멀쩡한 인간을 고양이 취급하며 굴리는 권력 남용 신의 사자’ 따위로 입에 오르내릴 수는 없다.
나는 반쯤 아스트랄 세계에 걸쳐있는 정신을 재빨리 회수하며 변명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눈앞에 증인이 있는 것도 같지만, 착각입니다!’
{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꽥꽥이 외 1악마가 내 말을 전혀 믿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분하고 원통하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나를 찾아가, 멱살 잡고 흔들며 제정신으로 그런 짓을 벌였느냐고 따지고 싶다.
“나는 그저 세르펜스가 눈물 흘리며 우는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게 보고 싶었나? 눈물 연기쯤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울었으면 좋겠어.”
“그건, 으음···. 지금 당장은 곤란하다.”
“나도 당장은 좀 곤란해.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악마가 하나 더 늘었거든.”
{ 착각한 거야, 나 말고는 없어. }
갑자기 꽥꽥이가 턱도 없는 소리를 해댔다.
내가 분명 들은 것이 있는데, 억지 부릴 게 따로 있지.
꽥꽥이는 그 이름대로 꽥꽥거리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는데, 해괴한 걸 다 본다며 혀를 내두른 음성은 매끄러운 저음이었다.
“들려오는 악마의 목소리가 늘었다고···?”
{ 왜 갑자기 내 이름이 꽥꽥이로 확정된 거야?! }
세르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질문을 해 왔지만, 지금은 그와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악마의 언행이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다.
명백히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착각이라고 우기질 않나. 이제는 사소한 것에 트집을 잡으며 말을 돌리려 들었다.
{ 아까는 내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잠겨서 그랬던 거야. }
‘어라? 그냥 친구가 옆에서 구경할 수도 있지, 이걸 왜 숨기려 하지? 그러니까 오히려 더 의심스러운데? 혹시 옆에 있는 놈이 마왕이라도 되는 거야?’
{ 그럴 리가 있겠어? 마신님은 그렇게 한가한 분이 아니야. }
둘러대는 변명이 매우 궁핍하기 짝이 없다.
실은 반쯤 농담으로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었는데, ‘어랍쇼? 진짜 마왕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도 그러할 게 그놈이 할 일이 뭐가 있다고 바쁘겠는가?
“왜 대답이 없지?”
“아, 잠깐만 기다려 봐.”
마왕이 어떤 존재던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륙의 존재들은 물론이고, 악마들까지도 희생시키는 작자다.
평화롭게 마계를 통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법숭이들이 언제 자신을 대륙에 소환해 주려나, 손가락 빨며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설령 바쁘다 하더라도, 나를 통해 적들의 동향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데 이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어? 더욱이 지금 나랑 네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악마를 셋을 희생시킨 끝에 얻어낸 결실이잖아. 그럼 이 작전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보러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따져 볼수록 마왕이 나를 구경해야 할 이유만 늘어났다.
{ 마신님께서는 소환 이후를 내다보시며, 대륙을 정벌하고 대륙의 존재들이 자신을 따르게 할 수 있는 계책을 세우시느라 바쁘셔. 진짜로. }
‘못 믿겠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마왕 욕 한번 해 봐.’
{ 뭐···? }
‘왜? 아무리 신이라도 옆에 없으면 욕 좀 할 수도 있지. 내가 먼저 해 볼까? 룩스메아 이 개새끼!’
신의 사자인 나도 룩스메아를 욕했는데, 악마가 마왕을 욕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내가 심한 욕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했던 것처럼 ‘개새끼’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한 내 뜻을 밝히고 시범까지 보여주었건만.
꽥꽥이는 끝내 ‘마왕 이 개새끼’를 외치지 못하였다.
“내가 악마의 말은 무시하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진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나는 그대를 위해 고양이 흉내도 마다치 않았거늘. 당신은 나보다 그깟 악마를 더 우선시하는 건가?”
“아냐, 아냐. 당연히 네가 더 중요하지. 그치만 이건 진짜···. 확실해지면 말해줄 테니까, 진짜 조금만 기다려 줘.”
나는 자꾸 보채는 세르펜스를 대충 어르고, 다시 머릿속 악마들에게 말을 걸었다.
‘마왕 놈도 마왕 놈이야. 그냥 옆에 있으면 있다고 하면 되지, 다 들킨 마당에 왜 없는 척이래? 설마하니 몰래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세르펜스가 냥냥거리는 걸 보고 얼결에 목소리를 낸 게 부끄러워서 그래? 하지만 생각해 봐. 냥냥거린 세르펜스가 부끄러울까, 아니면 그걸 구경한 존재가 부끄러울까? 괜찮으니까 이리 와서 인사 한번 박아 봐.’
{ 그런 경망스러운 말투로 마신님께 말 걸지 마! 물론 마신님은 이곳에 안 계시지만, 그딴 말투로 그분을 입에 담는 것부터가 삿된 짓이다! }
‘내가 모시는 신인 룩스메아의 욕도 한 마당에, 남이 모시는 신에게 이 정도 말투는 쓸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아무리 봐도 타락한 것 같은데, 왜 나랑 계약을 안 맺어 주지? }
꽥꽥이가 또다시 딴소리를 해댔다.
아무래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작정인가 보다. 마왕으로 추정되는 놈도 다시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세르펜스의 야옹쇼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꽥꽥이만 있는 줄 알 뻔했다.
과연 고양이가 세상을 구하였도다!
{ 역시 프라시더스의 고양이 흉내는 네 사적인 취향 반영이었잖아? }
‘아닌데? 난 기다란 게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게 귀여워서 뱀 좋아했는데? 그래서 어릴 적에 뱀 인형 껴안고 자고 그랬어.’
{ 그 기억은 네···. 아니다, 벌써부터 얘기하기는 이르지. }
‘응? 무슨 소리야?’
{ 무슨 소리긴, 프라시더스 그자를 너무 믿지 말라는 뜻이지. }
꽥꽥이가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조롱 섞인 웃음기 가득한 그 목소리에 몹시 불쾌해져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악마가 떠들어대는 이간질 따위에 넘어갈 것 같으냐고 역으로 비웃어주려던 찰나.
“시온 리벨론···!”
세르펜스가 내 얼굴을 붙들고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내 풀네임을 입에 담았다.
이제까지 나를 이상한 별명으로 불렀으면서, 갑자기 풀네임으로 부르니까 뭔가 어색하다.
그러고 보니 얘도 그렇고 다른 일행들도 그렇고, 남들 앞에서는 나를 그 별명으로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
{ 호오? 그 별명이 뭔지 내게도 알려주지 않을래? }
‘싫은데?’
{ 너도 나를 별명으로 부르면서 치사하게. }
‘그건 꽥꽥이 네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 친근하게 서로서로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한 얘기였어. 그러니까 알려줘. }
‘세상에서 제일 멋져, 줄여서 세젤멋이 내 별명이래.’
{ 너무하네.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지, 사기를 치다니. }
거짓말이 맞기는 한데, 왜 안 믿는 건지 모르겠다.
어쩐지 내게 다른 별명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찝찝했다.
“야옹.”
“왜 다시 고양이가 된 거야?”
“사람 말을 하면 무시하길래.”
“미안. 근데 진짜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게 있었어. 그보다 얼굴 좀 놔 줄래?”
“이제 악마가 뭐라고 떠들든 무시하고, 나와 대화하겠노라 약속하면 그리하지.”
세르펜스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내 눈을 노려보듯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걱정의 빛을 띠고 있는 녹색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자니, 슬금슬금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기야 지금 나는 기억을 잃어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 내가 자꾸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까 초조해질 만도 하다.
비단 세르펜스뿐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마음을 졸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겠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놔 줘.”
“믿겠다.”
{ 의심이 많은 저 성격에 잘도 믿겠네. }
세르펜스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뗐다.
꽥꽥이의 헛소리에 ‘악숭이들이 의심스럽게 행동하니까 세르펜스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라고 쏘아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악마의 말은 무시하기로 세르펜스와 방금 약속했으니까.
{ 내가 고작 그런 것 가지고 의심이 많다고 얘기했을 것 같아? 프라시더스 저 인간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현 성검의 주인조차, 최근 들어 신뢰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극렬한 불신주의자야. }
나는 꽥꽥이를 무시했는데, 놈이 멋대로 내 생각을 읽고 대답을 내놓았다. 이건 정말 불가항력이다.
불가항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어젯밤 들었던 ‘선택의 날 그 사건’ 얘기가 따라서 떠올랐다.
꽥꽥이가 머릿속에서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휴마누스에게 사과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또 악마와 대화했다고 세르펜스에게 혼날 것 같아서 참았다.
“그래서 그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란 대체 뭐지?”
“내가 아까 꽥꽥이 말고 악마가 하나 더 있다고 얘기했었잖아.”
“악마에게 그런 친근한 별명을 붙이지 마라. 아무튼 그래서?”
“그 다른 놈이 아무래도 마왕인 것 같아. 꽥···. 원래 말을 걸던 악마는 아니라고 우기는데, 그게 오히려 더 미심쩍다고 해야 하나?”
“으음···.”
졸지에 마왕 앞에서 재롱부린 꼴이 된 세르펜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얼굴에 수치스러워하는 기색은 없고 수심만 가득한 걸 보니, 자신의 야옹쇼 때문이 아니라 다른 걱정을 하는 듯 보였다.
{ 아까 그건···. 다른 악마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구경거리였지. }
‘보통은 모시는 분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다고 말할 텐데, 다른 악마를 운운하는 걸 보면 역시 옆에 있는 건 마왕이구나?’
{ 나와 얘기하지 않기로 프라시더스와 약속하지 않았어? 놈과의 약속보다 나와의 대화를 택하다니 기쁜걸? }
‘아, 이런 실수! 이건 비밀이야, 비밀!’
{ 크크크, 신의 사자면서 악마와 비밀을 공유해도 괜찮겠어? }
환장하겠네.
누군가를 무시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